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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행성 지구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태양주위를 떠돌게 되었다. 이상한 점은 그때당시 서양인보다 인구가 많았을 이 동양의 세계에서는 지구의 움직임이랄지 태양이 움직이고 있다는 그런 논쟁을 했다는 역사를 눈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동양세계의 말로 도가 지나치면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동양세계는 이점에서 철저히 배제되어야 하며 무시되어야만 한다.철학의 기본적 자세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고 현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인간이 어떤 자세를 취하든 그것은 별개이다. 갈릴레이 재판의 실상은 이런 것이다. 지구는 그래도 돈다. 그가 이야기 했건 안했건 지구는 그때도 돌고있었으며 아마도 그때는 지구가 태양주위를 돌고있다는 의미로 쓰인말일 것이다. 갈릴레이의 유명한 재판으로 서양은 위대한 지성사의 경험과 선례를 갖게되었으며 갈릴레이는 이 때문에 훗날 더욱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물리적 이론을 발표할 때는 너무나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교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억시키었다. 법칙의 존재와 사유 사이에 우연과 갑작스런 발견이 때마침 일어나는 것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회의한 결과이지 결과 그자체가 우연과 갑작스러운 발견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자리를 빌어 많은 분들께 답장 못한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지구를 포함한 태양주위의 9개 행성이 이와 똑같은 운명에 처해진 것은 아마도 물질적 상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들도 하나의 생명체라 여긴다면 살기 위한 조건을 그들 스스로가 갖춘 것이리라.
그러나 행성이 왜 밝게 빛나는 태양같은 별주위를 일정하게 돌게 되었는지,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고, 어째서 둥근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 행성들이 어떻게 모여 지금의 공전궤도를 성립시켰는지에 관한 의문은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다.
언제나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공간 속에서 지속되었기에 옛사람들은 이 세계를 있을 수 있는 세계중 가장 가능한 세계라 여겼다.
그리고 그들이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을 관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구와 밤하늘의 별들 중 즉 관찰자가 있는 곳과 관찰 대상이 있는 곳 중에 어느하나는 반드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다.밤과 낮이 있다는 것과 태양과 달이 시시각각 움직이는 것을 여러번 경험해 지구중심설을 내놓았다. 관찰에 의해 힘입은 바 크지만 신과 인간이 있어야할 곳은 당연히 세계의 중심이라고 미신적인 면도 강하게 작용했다. 태양중심설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별로 신통한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학자들은 지구중심설을 주장하였고 그것을 공공연하게 세상에 유포시켰다. 그시대 때 그들이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것이었다.
또한 하나님의 책 성경속에 태양중심설이 은근슬쩍 들어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지구중심설은 세상에 거론할 수 없는 신성모독이었다. 정말이지 그들이 틀린 주장을 하고있다는 것이 증명되기까지에는 너무도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하였을까?
같은 인간으로서 같은 오감을 가지고 느끼고 똑같은 현상을 목격하였는데 한쪽에서는 학적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한쪽에서는 아무런 얘기도 없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위대하다던 동양철학은 여러방면에서 형이상학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사실 동양철학을 하는 이들은 서양인보다 더 자연에 가깝게 있었다. 이 가깝다는 뜻은 그들이 자연철학을 벗삼고 있어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지인, 천심, 음양오행설,이기론, 하늘의 이치, 격물치지, 우주의 본성,동양철학이 제시하는 이러한 개념들은 너무도 근사하다. 동양철학을 접하게 되면 그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 신비감마져 안겨다 준다. 하늘과 땅끝사이의 모든 이치를 마치 미인의 첫인상을 대하듯이 전개해 나간다. 학의 완벽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것같다.
동양철학의 근본적인 정신적 장애는 비판을 두려워한다는 것이고 대부분이 뜬구름잡는 호언장담, 까닭모를 언어와 단어에 대한 지나친 집착, 인간에 대한 지나친 연구는 결국 자기자신의 경험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과 산만한데다 기초가 부실하여 주먹구구식의 얼빠진 동양철학은 사기의 근간을 마련하며 도무지 웃어넘길 수 없는 학적사기꾼들만을 즐비하게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았다.이것에서 자연철학의 어떤 이론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초가 없고 논리가 결여된 학은 단순한 이야기거리이며 소설책에 불과하다는 것.
제아무리 학으로 가장한다하여도 그것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암흑시대를 이끌었던 아리스토텔레스나 신학자들보다 동양철학은 더 독성 강한 독버섯이었을 것이다.
새삼 동양철학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만약 동양에서 자연철학의 참다운 전개과정이 있었다면 태양중심설, 지구중심설중 둘 중 어느하나를 어떻게 전개시켰는지(서로 지역적으로 분리된 상태였으므로) 비교하게 된다면 철학은 더욱 풍부하게 될 것이며 지적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가 있을 수도 있다는 착각에서이다..
현상에 대한 감각의 작용과 그에 대한 불만족의 소통이 원활하여 그로인해 이성의 자유룰 촉발시켜 올바른 문턱에 다다르고 싶을 때 철학의 필요가 생기며 그 증명을 위해 의식적인 수학과 실험이 탄생한다.
이때문에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가 있었다.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에 대한 믿음을 계기로 그들은 차례차례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증명해 나갔다.여기서 케플러는 천문학자 ,수학자라기 보다 그는 차라리 장인에 가깝다고할 수 있겠다.
그는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과 화성 공전궤도가 완벽한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기까지 그의 인생의 전부를 허비했다.
그는 행성이 돌긴 돌돼 그 궤도는 완벽한 원이어야한다는 강한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믿음을 자신 스스로가 수정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에겐 오차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는 스승의 방대한 관측자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천체를 이해하는데 수학의 필요성을 그의 법칙에서 시사했다.
그러나 불쌍한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여 지구가 움직이고 태양이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과 달도 지구와 같이 분화구와 산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음에도 그 발견 때문에 그는 동시대 사람들의 거센 저항과 모욕을 받아들여야 했다. 편견과 못된 관념을 물리치는 일은 진실을 발견하는 일보다 더 어렵다.
너따위가 뭔데 왜 그런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하고 다니느냐. 고결하고 품위있으며 지혜로 가득찬 이 땅의 높으신 양반들을 바보로 만들 셈이냐. 이 사회에 아무런 필요도 없으며 불란만 일으키는 지동설을 주장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키려드느냐. 네 녀석 속셈 다 안다. 그런걸 학생들과 무식쟁이들에게 애기해서 유명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냐.
기존의 물리적이론을 뒤엎는 짓은 동시대 사람들의 소박한 믿음을 헤치는 것이 되므로 반발을 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수학은 그 엄격한 논리성 때문에 또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이 극소수이기 때문에 증명만되면 통용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물리학이론은 똑같은 경험의 상태에서 역사적으로 진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증명의 한계는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이전에는 역사의 논리가 어느정도 개입된 것이다
대륙에서 이런 앞서가는 지성들이 고초를 당하고 있을 때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섬나라 영국의 뉴튼에게까지 지동설에 대한 자료들이 접수되었다.
물리학을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물리학을 위해 태어난 이 젊은 친구는 고독이 그의 평생의 친구이자 그림자였지만 대단한 수학적 철학적 능력까지 겸비하고 있어서 새로운 지식체계를 흡수하고 소화하는데 별탈이 없었다.
그리고 뛰어나게 주목할만한 점 한가지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끼고 알고 있었던 물체가 땅으로 떨어진다는 현상에 대해 자연안에 어떤 물리적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라 여겼고 그런 사유를 지구가 공전하면서 그 궤도를 벗어나게 하지 않는 힘과 동일한 것일 것이다라고 전개한 점에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머리에서도 창작되고 나올 수 있는 만유인력의 수학적 표현이 유독 뉴튼의 머리에서 나온 이유는 필연적이고 역사적인 운명때문일 것이다. 기존 지식에 만족하지 않고 그가 앞서가는 지성들의 외침들이 맞았건 틀렸건 빗나간 소리라 여기지 않고 그들 사유의 유물들을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여 그속에서 발견되는 미비와 논리의 기초를 자신의 불일치와 교호하여 끈질기게 사고한 끝에 얻어낸 수확이었다. 그리고 만유인력과 원심력의 균형으로 지구가 공전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까지 설명되었고 세상에 유포되었다. 그리고 그의 소박한 꿈은 인공위성으로 실현되었다.
그리고 끝이 났다.
이 다음부터의 글은 동양에서 , 특히 한반도에서도 지동설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분에게 공개합니다.
거기에는 일부러 안했다기보다 좀 더 깊은 뜻이 있었다고 여기시면 좋겠습니다.
보낸사람 "채수완" 받는사람 newtein 참 조 제 목 행성이 자전하면서 공전하는 것에 대해서... 보낸일자 Tue, 30 Jan 2001 18:04:43 KST
따라서 Fsinq=mv^2/r
안녕하세요
Fsinq =mv^2/r Fsin세타=mv^2/r_1과 Fsin세타=mv^2/r_2를 비교해서 지구의 자전속도V_1(근일점)과 지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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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답장이 늦었지만(2002, 3, 1) 채수완님이 이렇게까지 깊이 생각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제가 밝힌 공자전 공식은 지구와 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자전하며 공전하는 전 행성에 적용되어야되는 보편적인 법칙입니다.
저는 처음 길이이론을 운동량식에 대입할 때 공자전식이 나올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째서 수학적으로도 틀리지 않는 이식이 기존의 원심력 공식과 틀린가를 곰곰히 생각한 끝에 그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처음에 믿겨지지 않았지만 저도 놀란 것은 어떻게 이론이 현실에 적용되어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밝혀낼 수 있느냐하는 거였지만 이것은 논외라 그만하겠고 저는 공전궤도를 완벽한 원으로 생각하고 그 공식을 유도했고 그것을 타원궤도에 적용한다 하여도 이상할 것은 전혀 없습니다. 물론 단위는 라디안이지요. 그것도 모른다면 수학공부를 다시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또한 이렇게 생각합니다.
삼각형법에서 (공전하게 하는 힘, 즉 앞으로 나가는 힘)*sinq =회전력이라는 것이지요. 이와같이 논리를 전개하시면 채수완님이 의문 나는 사항이 다 해결되리라봅니다. 회전운동학도 공부하시면 좋은 참고사항이 될 것입니다.
만약 만유인력 원심력이란 구공식을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코 지구자전에 대해서 설명하질 못할 것입니다. 만유인력 원심력은 행성이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게 하는 작용반작용의 힘이고 앞으로 나가는 힘과 회전력 사이에는 sinq 의 관계가 있는 것이지요.
이럼으로써 모든 행성의 위성에까지 확대 적용할 수 있고 또한가지 확실한 점은 공간에서의 광속은 절대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이지요. 자연의 빛은 장애물에 막히면 통과되지 않을 수 있으나 공간에서 광속은 항상 일정하며 변함이 없답니다.
그렇다면 공간에서 빛의 속도가 제각각이면 도대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그리고 상대성이론은 이제 여러분도 눈치채셨겠지만 물리학에만 국한된 이론이 아닙니다. 이 세계의 현실에서도 인간에게도 적용되고 있는 이론입니다.인간에게 적용될 때는 많은 논란이 있겠지만 먼전 진리인식에 대한 과정에도 상대성이론은 발견됩니다.
C는 참다운 지식의 세계이며 어쩌면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의 세계인지도 모릅니다. A란 동굴은 이성이 탄생하여 안주하는 최초의 동굴입니다. 그 동굴에서는 편견, 오해, 우상,비논리, 비합리등 모든 것이 용납되지만 인간이성자체가 A란 동굴에서 헤쳐나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B라는 동굴로 빨리 가야하겠지만 그것은 너무도 긴 길이고 오히려 그 반대방향으로 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어쩌다 아니면 필연적으로 B동굴에 도착한 이성은 A동굴보다 월등이 진보되어있고 더 좋은 세상에 안착하게 되는 것이지요. 적어도 자연의 빛을 쬘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인간이성은 더욱 A의 경우보다 B동굴에 안착할 수 있습니다. B에서 C 로 가는 길목은 A에서 B로 나오는 길보다 더 협소하고 비좁으니까요. 새롭고 완전한 이론이 나오기까지 이과정을 거치며 논리와 사변의 목적이 결국 달성되는 것이지요.
또한 C와 대립하고 양립하는 세계는 육제적 본능과 감정의 세계입니다. 감정과 본능의 세계는 인간이 경험하게될 참다운 경험의 세계이고 그것은 언제나 진실이었다는 것밖에 더 할 말이 없군요. 이 양자를 떠받드는 것은 인간이고 인간은 또한 자연과 양립합니다. 인간없이 자연이 있을 수 없고 자연없이 인간이 있을 수 없을 테니까요. 물론 인간이 없을 때도 자연은 존재했지만 인간이 없다면 자연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상대성이론이 적용되고 있는 세계에 인간이 살고있다면 여러분들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제가 밝힌 것은 아직까지 저 혼자만의 주장이고 설사 그것이 완전히 맞는다하여도 그것은 오랫동안 숨겨질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전세계에 퍼진 물리학 책을 모두 수정하지 않으면 안될 사태가 발생할 것이고 학교 선생님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 발각될테니까요.
지금에 와서 저도 뭐가 맞는건지 틀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맞으면 어떻고 틀리면 어떻습니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제가 ~~에 관해 글을 썼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틀리면 그만인 것이고 맞으면 더 좋은 것이 되겠지요.
지난세기 모든 혁명적 이론과 학교교과서의 내용을 채우는 공급원은 사실 대부분이 학교밖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국의 대학들 저는 이대학들을 별로 신뢰하지는 않지만 한반도에 대학이 생긴지 근 600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그들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제대로된 이론 하나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매우 달라져 가고 있겠지만 그래서 그런 대학이 있는 한국이란 나라는 어떤 이론이 나왔을 때 그것을 자체적으로 판단할만한 능력과 경험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시대에 참다운 지성사의 경험을 하지 못하고 지금껏 흘러온 것이지요.
가끔 저는 서울을 걸으며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전에 학문과 예술을 위해 투신한 사람중에 학적으로 따져볼만한 인물이 아무도 없다니, 600년된 서울에 유서깊은 가문과 학파가 아무것도 없다니, 정말이지 서울은 뭣같은 놈들만 모여살던 곳이었을까?
작가와 시인이 부족한 이도시, 역사의 지도자인 작가와 선생님을 가르치는 스승 시인이 한반도의 정신을 주도하고 이끌었어야 했습니다. 이 최고의 지성들이 한 국가와 민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여러분들이 더잘 알 것입니다.
물론 작가도 작가 나름이고 시인도 시인나름이어야겠지만. 그들이 없는 도시에 사는 것은 정말이지 양아치, 불량배들이 살고있는 소굴에 사는 기분입니다. 그들이 없음으로해서 오는 손실과 손해는 모두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고스란히 남겨질 것입니다.
제가 한가지 정확하게 알고있는 것은 지난세기 한민족은 끊임없이 이상적인 정치적 지도자를 찾고 소원했지만 그들이 진정 원하고 탄생시켰어야할 사람은 작가와 시인이었어야 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들입에서 지도자, 지도층이란 말을 들을때는 이제 신물이 날 정도입니다. 한민족은 지난세기 헛된 허영과 바램속에 살아왔던 민족이지요.
과연 한민족의 정신이 무엇인지 찾으려 했지만 지금도 저는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서울은 어떤 단체나 어떤 기관의 이름을 빌어 유명한 사람보다 그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인물을 많이 배출했어야 했습니다.
한국은 이제 60년된 나라로서 앞으로 다 잘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 짧은 시간에 이만큼 잘 살게된것도 훌륭한 것이지요.
어쩌다 가끔 경복궁이나 창경궁을 스쳐지나갈 때, 저는 속으로 이씨왕조에 대한 심한 욕을 해댄답니다. 제가 이씨왕조와 같은 시대에 태어나지 않는 것도 다행스럽게 생각하지요. 한반도에서 편견과 오만, 자기쾌락의 옛궁궐터에서 거기 살던 왕을 쫒아내고 없앤것은 너무나 잘 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반도적인 동굴의 입구를 개방하지 않고 봉쇄한 상징적인 문지기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저는 지금 한국사회에 깊이 침투해 있습니다. 한민족을 연구하기 위해. 철학의 신이 저를 이곳으로 침투시켰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왜 이런 용어를 쓰는지 모르겠으나 직장에서의 저의 이중생활로 인해 그러는가 봅니다. 저도 여느사람과 같이 술도 먹고(많이는 먹지 않지만),웃고 떠드는 것 좋아하고, 똥고집도 있는데다 거의 화내는 일은 없지만 몹시나 화가 날 때 심한 욕지거리도 하며 못된짓도 했습니다. 때론 거짓말도 하곤 했구요.제 인생 자체가 거짓말이니까요. 그들과 잘 지내는 것이 저의 첫번째 의무이고 또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연구하는 것이 또다른 임무이지요.
어쩔때는 그들에게 신물이 날 때도 있지만 이런 것은 제가 가끔 괴로울 때 느끼는 것이고 그들과 친구처럼 잘 보내고 있습니다.
생활에 충실한 그들을 제가 주제넘게 뭐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모두 훌륭한 가장이요 직장인이고 또한 남자들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 주위에 지적으로 성찰한 인물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지요. 그들에게 그런 것을 바란다는 것은 무리이지만 제가 처참한 심경에 빠질 때 누군가를 몹시나 그리워 할 때도 있지요. 어떨 때는 길을 걷다가 그런 인물들을 만나고 싶을 때도 많았죠. 그렇지만 그런 인물을 만난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한민족이 과연 학문과 예술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민족인가하고 회의를 가질 때면 그 원인은 모두 제 주변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들은 차라리 술이 더 낫다는 개념이지요. 쓸데없는 짓거리라 생각하지요. 그들에게 제관심분야를 조금이라도 이야기할라치면(많이는 하지 않지만) 그것마져도 그들은 학교에 교수도있고 너보다 배움많고 똑똑한 사람 많은데 도대체 뭣때문에?....
저도 이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궁색한 변명으로 얼버무리고 끝나지만 어찌보면 재밌기도 합니다. 그러한 미묘한 대화의 충돌때문에.한꺼번에 두탕뛰는 사람만이 맛볼수 있는 묘미를 저는 맛보고 있다고 제 스스로가 위안합니다.
독자들 중에 학문에 관심있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당부하고 싶은 바는 한국에서 수학자,과학자, 철학자, 예술가가 되려는 꿈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시락 싸들고 말리고 싶은 정도이니까요. 차라리 좋은 직업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장사꾼같은 머리를 개발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이도 저도 싫으면 산으로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론 물리학은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수학은 더이상 빈틈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완성돼 있습니다. 또한 지금의 시대는 그런 사람들이 별로 필요치 않은 세상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그런사람들이 안나타나리란 법도 없지만 저도 별이상한 이론에 심취하여 제 아까운 젊음을 허비하고 살았다는 것이 약간 후회가 됩니다. 그렇다고 달리 더 잘사는 법도 없으면서 말이죠.
한가지 무서운 현실은 생계없는 철학과 과학은 있을 수도 없고 버티기도 힘듭니다. 돈을 벌고 인생을 즐기는 일이 그런것보다 더 현세적인 위안을 가져다 줄것입니다. 조금 남는 시간이 있다면 모를까.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저도 한때는 까닭모를 신념과 사명감으로 불타오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희미해졌지만...
그렇게 젊지도 늙지도 않은 이 나이에 또다시 삐딱선을 타기도 두렵기만 합니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요..
저도 이제 독이든 이 세상의 컵을 그 만 마시고 싶답니다. 이성과 인생이란 결국 독에 불과한..........
바보인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있는 걸까요.....
보든지 말든지, 읽든지 말든지, 생각하든지 말든지 지금도 지구는 계속 돌고 있을 뿐입니다.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