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분이 이러쿵 저러쿵에 '화산고'를 보고 온 평을 올리셨더군요. 그럭 저럭 볼 만하다고... 흠... 저는 사실 '화산고'를 보고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을 했더랍니다. 그 생각중 하나는 제가 정말로 사랑하는 한국 영화계에 드리우는 암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평소 제가 잘 하지 않는 일을 하나 해볼까 합니다. 그것은 무엇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글을 쓰는 일입니다. 낯설거나 불쾌하셔도 그냥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한국 영화가 개봉하면 거의 다 봅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소름'같은 영화는 힘들게 개봉관을 찾아내 보기도 하고, '무사'나 '친구'는 쉽게 보기도 합니다. (이상하게 요즘 한국 영화의 개봉관 수는 그 영화의 질적 완성도에 반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이상한 배급 분위기? 혹은 관객 취향...) 정말 영화를 좋아하지만, 요몇달간 한국 영화를 보면서 조금씩 찜찜한 기분을 계속 느껴왔습니다.
'무사'를 보고... 정말 힘들게 찍은 영화군... 김성수 감독이 해보고 싶은 장면은 다 해봤구만... 하지만... 저 대본을 굳이 김성수 감독이 혼자 욕심을 내지 않고, 괜찮은 시나리오 작가와 공동 작업했다면 어땠을까... 심산 씨와 함께 작업한 '비트'나 '태양은 없다'가 스토리 구성은 더 나았는데... 보고 나오면서 내내 아쉬웠죠.
'조폭 마누라'를 보고... 정말 막가는 영화구나... 이게 15세 이상 이용가라니... '아멜리에'는 18세구... 도대체 살아있는 사람에게 불을 지르는 영화가 어떻게 화장실 문의 흔들림을 통해 섹스가 묘사되는 영화보다 더 건전하다는 건지... 아기를 가진 여자가 폭력을 통해 유산하는 과정이 그렇게 쉽게 표현되어도 되는 건지... 보고 나오면서 조금 불쾌했습니다.
그러다 '화산고'를 보고... 어? 한국 영화, 여기까지!
그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한국영화, 여기까지 왔네!'하면서 칭찬하십니다. 저도 역시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 영화, 이제 여기까지 왔구나...'
화산고, 정말 잘만든 테크노 무협 극화입니다. 이런 영화도 필요하지요, 한국 영화의 스펙트럼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하지만, 과연 그러기 위해 63억원의 제작비가 필요했을까요?
매트릭스 부럽잖은 무협 장면... 하지만, 그 장면 하나 베끼자고 굳이 거대한 제작비를 투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저는 영화 매트릭스의 위대함은 그 현란한 그래픽 장면에 있기보다 그러한 놀라운 장면을 묶어낸 스토리의 대단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기본 코드로, 엄청난 반전으로 뒷골을 때리고,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놀라운 상상력... 그런 스토리가 더 매트릭스를 위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화산고의 스토리... 퇴학을 밥먹듯 하는 전학생이 정의의 주인공이 되어 불량학생 처리 전담 교사를 물리치는 거야... 머, 뒤집기의 해학이라고 치고... (2시간 동안 그 긴 내용 전개를 통해 관객인 나에게 그 상황의 정당성을 설득하지는 못했지만...) 도대체 무엇이 긴장의 발단이며, 어디서 반전이 있는건지...
저는 화산고를 보면서, 혹시나 이 영화가 요즘 잘나가는, 외형적으로 비대해져가는 한국 영화계의 독선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분명 화산고는 예전 같으면 나오지 못했을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제 산업이 거대화해가면서, 거대 제작사는 나름대로 자신감이 생겼겠죠. 빈약한 스토리도 돈으로, 현란한 와이어 액션으로, 엄청난 그래픽으로 가릴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
저는 영화광의 한 사람으로 한국 영화의 양적 팽창을 환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영화 산업이 발전하고, 기술력의 진보가 대단해도, 모든 영화의 기본은 '이야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전하는가가 영화를 만들때 제일의 고려순위이지, 그 영화의 외적 요인, 그래픽이나 특수 효과가 스토리보다 우위를 점해서는 안됩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스토리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순간... 저는 그 순간 영화는 수렁에 빠져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허접한 시트콤 피디, 민시기가 한국 영화에 대해 너무 딴지를 걸었죠? 읽고 언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했던가요? 저는 한국 영화계의 양적 팽창이 질적 성숙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하는데, 혹 그러지 못할 것 같은 걱정이 자꾸 들어서 답답한 마음에 이런 글을 써 봅니다. 화산고를 보고 나오며 했던 불길한 생각, 단순한 제 기우이길 바라며...
꾸벅...
(뉴논 백신 개발 소식을 기다리셨다구요? 좀더 기다리셔야죠... 이게 아직 임상 실험도 못해봐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