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2001년 한국 사회 구성원의 집단 무의식에는 폭력세계에 대
한 선망과 두려움이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는 사회심리학적
인 정치한 분석이 뒤따라야겠지만 조폭들이 영화에 자주 출몰한 것이
최근 현상은 아니다. 90년대 초반 흥행가도를 달리던 작품 중의 하나
가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 시리즈였는데, 3편까지 제작되었다.
과거에는 우리 영화를 구분할 때 [활극]이라는 장르가 있을 만큼 건달
들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많았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등장한 소위 깡패영화들은 조금 다르다. [깡패
수업][넘버3][초록물고기][남자의 향기]같은 영화들에 등장하는 깡패들
은 예전 영화처럼 낭만적 건달들이 아니라, 사업가의 양면적 얼굴을
하고 주류 사회에 기생하는 조폭들이다.
박철관 감독의 데뷔작 [달마야 놀자]는, 조폭과 스님들이라는 극단적
인물군들이 충돌하면서 파생되는 긴장감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다. 스
님과 조폭,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가. 같은 것은 첫째,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과거사가 있을 것 같다는 것, 둘째 집이나 가정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집단생활을 한다는 것, 때로는 머리가 짧다는 것 등이다.
다른 것은 첫째, 스님들은 살생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러나 조폭들
은 눈 깜짝 안하고 살생을 한다는 것, 둘째 식사를 할 때 스님들은 침
묵 속에 있지만 조폭들은 형님에게 큰 소리로 깍듯한 예의를 갖춘 뒤
식사를 한다는 것, 이렇게 무수히 많다.
절에 간 조폭들과 스님들은 철저하게 일대 일 대립이 가능하게 짜여
져 있다. 조직의 중간 보스 재규(박신양 분)와 상좌승 청명(정진영
분), 해병대 출신 불곰(박상면 분)과 역시 해병대 출신인 대봉(이문식
분), 힘있는 날치(강성진 분)와 역시 절에서 장작패는 등 힘쓰는 일을
맡아 하는 현각(이원종 분), 말이 너무 많은 왕구라(김수로 분)와 2년
째 침묵 속에서 묵언수행을 하는 명천(류승수 분), 막내(홍경인 분)는
동자승과 맞부딪친다. 상반되거나 아주 흡사한 캐릭터들의 5:5 대결은
단순하지만 선명하다.
밀어내기와 버티기. [달마야 놀자]를 관통하는 힘의 실체는 바로 이
것이다. 처음에 밀어내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은 절로 피신한 조폭들이
다. 그들은 사회에서 했던 방식 그대로 절을 [접수]하고 업소를 장악했
을 때 그랬던 것처럼 [관리]하려고 한다. 밀어내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절의 젊은 스님들은 밀려나지 않겠다고 버틴다. 이러한 밀어내
기/버티기라는 양대 힘의 축은, 이후 밀어내기를 시도하는 측이 스님,
버티기를 시도하는 측이 조폭들로 역할이 변모되면서 새로운 전개양상
을 띈다. 이러한 역할 바꾸기가 전반과 후반의 뒤집기를 통한 재미를
안겨 준다.
그러나 몇 가지 빈틈이 눈에 띈다. 우선 조폭과 스님들의 강렬한 대
립이 빚는 전반부의 쉴새없는 웃음의 코드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눈
에 띄게 약화된다. 절에서 나가라는 스님들과 못나가겠다는 조폭들은
3천배/족구/고스톱/잠수/369 게임 등을 통해 5판 3승제로 힘을 겨루면
서 발생하는 웃음은 중반을 넘기며 사라진다. 이제 조폭과 스님이라는
전혀 다른 집단의 충돌은 중반에 접어들면서 서로 조금씩 동화되기 때
문이다. 그렇다면 중반에 새로운 접근 방법이 있어야만 했다.
또 비구니 스님(임현경 분)이 등장하지만 왜 등장하는지 적절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다. 날치가 비구니 스님을 눈여겨 보지만 그저 단순
히 그것뿐이다. 라스트씬에서 절에 남겠다고 결심하고 머리까지 깍는
날치(강성진 분)의 내면에 조금 더 비중을 두고 묘사를 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없는 게 오히려 군더더기 없는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바로 이
런 부분이 불교적 소재를 단순히 소재주의 차원에서 차용했다는 의심
을 받게 한다.
그리고 감초 역할로 설정된 츄리닝 입은 고시 준비생(김영준 분)의
역할도 애매하기 짝이 없다. 영화의 완성도에 오히려 흠집을 낼 뿐이
다. 스님과 조폭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무너뜨리고 웃음을 주기 위
해 설정된 듯한 고시 준비생의 역할 역시 좀 더 세밀하게 설정하거나
아니면 삭제했어야 옳다.
조폭 영화가 쏟아지고 있는 것에 대한 세간의 거부감 때문인지 [달
마야 놀자]의 영화제작사 측에서는 [달마야 놀자]가 조폭 영화가 아니
라고 강변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얄팍한 장사 속에 불과하다. [달마야
놀자]의 긴장감은 절로 간 조폭들이라는 설정 자체에서 발생하기 때문
이다. 그들은 평범한 남자들이 아니라 조폭들이다. 오히려 이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은 조폭들이 별로 조폭 답지 못하다는 것이다.
차라리 더 조폭다웠더라면 스님들과의 충돌도 훨씬 생동감 있게 전개
되었을 것이다.
의심 많은 나는 혹시, 절과 스님이라는 진지한 코드가, 조폭이라는
가벼운 코드가 주는 웃음과 재미를 포장하기 위해 선택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달마야 놀자]가 결코 절집 이야기를 값싸게 낭비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든가 [부처의 귀가 떨어졌으
면 붙이면 되지]같은 화두가 가슴을 치며 사람 사는 모습에 대해 생각
하게 해주지만, 울림이 깊거나 오래가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