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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
7월 중순부터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한 달 반을 고향에서 빌빌거렸다.
유랑캠페인 자체가 일상적 매너리즘에서 탈피하기 위한 활동이기는 하지만,
그 활동 자체가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가끔 일상으로 돌아와서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더불어 활동비 충당차원에서 아이들 방학기간 동안에는 부러 시간을
내서 돈 좀 벌어야 한다.
하지만 고향에 있는 동안에 수익사업 한다고 엽서만 왕창 뽑았다가 하마터면 피 볼 뻔 했다.
유랑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으로 디쟈인 해서 엽서를 제작한 후에 좀 팔아먹으려고 광고 문안을 만들었는데
소비자들(대체로 아는 사람들)의 반응이 전혀 열광적이지 않은 것이다.
하나 팔아줘야 할 필요성을 너무 ‘합리적’?으로 정리했던 듯 했다.
아마 그 광고문구 가지고 끝까지 갔으면 파산했을 것이다.
그래서 마케팅 전략을 바꿔서 ‘소속사가 망했다’는 내용으로 ‘사랑의 리퀘스트’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더니,
주문이 쇄도했다. ▶ 소속사가 망했어요. => 보기
한국 사람들 하여간 정 많은 것은 알아줘야 한다.
아직 안팔려서 산더미 같이 쌓인 엽서는- 지적이고 혜안있는 구매자들에게 팔려가기를
간절히 바램하고 있는 터이기는 하지만, 많은 분들이 유랑캠페인엽서를
‘기꺼히’ ‘능동적’으로 사주신 덕분에 한동안 캠페인 할 자금이 확보된 듯 하다.
그들의 관심과 지지에 힘입어 다시 짐을 꾸려 이렇게 나선다.
유랑을 나선 8월 말부터 내내 비가 뿌리고 있고 그에 따라 마음이 무겁고 울적하다.
소중한 인연을 끝내고 캠페인을 떠나온 이 심정을 하늘은 아는지...
유랑캠페인 1년을 맞으며...
나의 가장 큰 불만은 내 자신의 자유로워야 할 감정과 가치와 욕망마저도 내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사회 작용에 의해서 통제 당한다는 것이다.
위계질서를 가리는 [유교문화적인 전통]과 압축성장을 통해 심어진 [천민자본주의적인
사고]는, 한국사회에서 부와 권력의 ‘갖고-갖지 못함’으로 인해 사람들 끼리 서로를 차별하는 경향을 심화시킨다.
이러한 [자본과 권력관계의 압력]은 사회 구성원에게 엄청난 힘을 가하게 된다.
이러한 ‘위계’와 ‘권위’를 발생시키는 ‘소유지상주의 문화’는 아이들의 문화에까지 침투해서
‘폼나는’ 메이크 제품 몇 개 갖지 못하면 ‘축’에도 못 끼고 기가 죽고 따돌림 당해야 하는
독특한 [열등과 소외의 문화]까지 발생시키곤 한다.
이는 가진 것(권력)의 양이 많을 때 ‘우월감’과 스스로에 대한 ‘중요감’을 자극받고, 반대로
가진 것의 양이 적을 때 ‘열등감’과 ‘좌절’을 겪게 의지를 자극시킴으로 ‘운영되는’ 물질만능주의 사회 체제가
그 각기의 구성원에게 강요하는 [심리 작용]에 의한다.
여기에 혈연, 지연, 학연이 엮어지고, 가진 자들의 카르텔과 없는 자들에 대한 억압이 심화되다보니,
가진 자들은 계속 ‘권력’과 ‘부’를 누리며 ‘떵떵’거리며 그 허구의 아우라를 재생산해 내는 것이고,
없는 자들은 그 처지를 비관하면서 자신의 생을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투쟁의 장’으로만 일관한다.
물론 내 자신의 자유로워야할 의식도 이 압력에 의해 끝없이 시달림을 받는다.
문제는 현대사회에서의 성공을 위한 ‘경쟁심’은 근본적으로 ‘한정된 기회와 자원을 남보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조악한 욕망에 기반 한 것이고, 이로 인해서 지구생태계의 파괴는 물론 후손들의 존립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과 권력이 미디어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채움과 높임의 아우라는 사회를 살아가는
각 개인이 폼나게 잘 먹고 잘사는 행복에의 단꿈에 빠지게 만들어낼 뿐 그러한 사회적인,
환경적인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게끔 각자의 정신을 마비시킨 상태이다.
일 예로 2007년 국제연합의 환경보고서에 의할 것 같으면, 인간이 불러일으킨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하여
2020년까지 양서류가 멸종하고 2080년까지는 대부분의 동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고 발표했으며 이것이
4월 6일자 각 언론과 방송사에 대서특필되었지만, 대부분의 지구인은 여전히 제 먹고살 꺼리만 걱정하면서
이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의인이 없을 때 나라가 망하는 것은 신의 뜻이다’는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에 비추어 봤을 때 우리의 현재의 타락한 정신적이 공멸을 향해 치닫게 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내 스스로 이러한 사회에 대한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가는 사회 속에서 황폐화
되어가는 내 자신의 주체적인 실존을 바로 찾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기에,
일상적 삶의 기반을 내 자신의 삶의 장으로부터 해체할 필요에 의해서 구상된 것이 바로 ‘유랑생활’이었고
여기에 ‘캠페인’활동이 가미되어 ‘유랑캠페인’이 기획되었다.
일상을 해체하고 주체를 세우기 위한 나름의 유랑활동에 ‘캠페인’이 가미된 것은 각자의 삶 자체가 어떻게든
다른 사람-자연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내 자신 역시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음에 의한 당연한 소명의식의 결합이었다.
‘캠페인’ 활동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초등학교 등교시간에 맞춰서
인간과 환경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작은 스티커를 나눠주고, 상가를 돌면서 사람들과 마주하며
‘채우려는 욕심보다 비우려는 마음’을 공유하기 위한 작은 자극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 유랑캠페인을 위해서 ‘준비되어야할 것’이 상당했다. 기본적으로 먹고, 입고, 잘 수 있는 ‘장비’들이 배낭에
모두 꾸려 져야 함은 말할 나위 없고, 캠페인을 위해서 사용되는 스티커와 유랑과정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을
기록할 수 있는 사진기와 자료정리를 위한 노트북이 필요했다. 이 짐의 무게가 도합 25kg 정도 되었다.
자동차는 커녕 오토바이 면허증도 없는 사람이기에 이동 방법은 두 다리로 걷는 것이었으며,
인구 3만 명당 하루 활동시간을 가늠해 4년 103일의 활동을 계획했다. (한동안 활동하면서 계산해 보니,
최소한 이 두 배의 시간을 걸릴 듯 하다.)
그러나 캠페인을 시작할 때의 가장 큰 ‘걱정’은 어깨를 짖누를 짐의 무게와 금전 보충의 문제는 아니었다.
노상에서 강도를 만날 가능성에 대한 걱정도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걱정을 넘어 선 두려움이 있었으니, 그것은 안전하고 지지적인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내 자신이 철저히
홀로 되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였다.
더군다나 최소한 4년이 걸릴 캠페인의 첫 발을 내 디디는 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평범한 삶의 길’로
다시 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크나큰 두려움과 함께
‘격리감’ ‘상실감’ 등을 불러일으켰다. 통념적으로 그 나이 대에서 해야 할, 이뤄야할 일들을 하지 않고,
누군가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가려는 ‘의지’를 실행한다는 것은 대단할 것 없는 평범한 인간에게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하지만 내 사회관계와 일상을 해체 하기 위해서는
그 두려움은 마땅히 극복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2006년 8월 31일 그 길에 첫 발을 내디딘 후에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한 가지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내 생을 살찌우게 했던 가장 올바른 결단은 바로 그 날의 첫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그날부터 온전히 내 자신의 발로 설 수 있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고 나는 좀 더 내 자신에게 떳떳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2007년 8월 31일
중간 정도에 '야만적에너지정책'관련한 통계는 꼭 보시기바랍니다
8월 31일
전반기 활동의 종착지인 진안에 와서 진안초등학교 앞의 벤치의자에 앉아 있었다.
거기 그렇게 있으면 낯익은 녀석들이 눈에 띌 것이기 때문이다.
현준이와 근혁이 소식이 특히 궁금하던 차였다.
7월 초에 진안에 몇 일 머무르며 알게 된 사이인데, 금새 정이 들은 듯 싶다.
[ 7월 / 진안에서 활동 중에 텐트를 찾아온 두 녀석과 라면을 끓여 먹던 모습
왼쪽이 현준이 오른쪽이 근혁이 ]
좀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하교하는 아이들 사이로 현준이가 손짓을 한다.
똘망똘망한 표정은 여전하다.
근혁이는 몇 일 째 얼굴을 못 본 상황이라고 했고,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어둑어둑해 진 후에 학교 한편 급식소 지붕 아래 텐트를 치고 앉아 라면을 끓여 먹었다.
현준이 녀석 꿈은 축구선수였다.
키가 작아서 좀 그렇지만, 반에서 달리기도 1등이란다.
육상부에도 들어갔단다.
공부는 않고 운동만 할 작정인지, 방학숙제도 몸으로 떼울 작정으로 거의 안해 갔단다.
근혁이 꿈도 축구선수였다. 중학교 2학년이고, 다니는 학교에는 축구부도 없지만,
줄기차게 축구선수가 꿈이라고 했었다.
근혁이 뿐만 아니라 그때 함께 몰려다니던 녀석들 대부분의 꿈이 축구선수였다.
흑인 할램가 아이들도 아니고... 원...
이상이 그리 획일화 돼서야...
지역이나 나이를 가리지 않고 좌우지간 월드컵이 사람 혼을 완전히 앗아간 모양이지.
[7월 진안 사진 / 이 아이들 3분의 2가 꿈이 축구선수란다. ]
마침 학교 한쪽에 버려져 있는 축구공이 있어서 곳곳의 가로 등 빛의 도움으로
운동장에서 현준이와 한참 공을 찼다.
[ 0090 운동장 한가운데에 버려져 있는 공 ]
적당히 놀다가 남는 과자 몇 개 봉다리에 넣어서 현준이를 집으로 보냈다.
돌아가는 녀석의 뒷모습이 왠지 힘이 없어 보인다.
근혁이 걱정까지 들자 심히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이래저래 어려운 형편에 있는 녀석 생활을 잘하는지 모르겠다.
비가 간간히 떨어졌다.
날씨도 쌀쌀하고 피곤도 하고 해서 텐트에 들어가 누웠다.
몸은 피곤해서 눈은 감기는데 잠은 안 온다.
비가 오는데도 아랑 곳 않고 우산을 쓰고 운동장 트렉을 도는 사람들의 잡담소리...
밤늦게 집에 들어갈 생각도 않고 놀이터를 점령해 놀고 있는 아이들 소리가 가까이서 귀를 간지럽힌다.
[ 1010 진안초등학교 비오는 야경
[ 1000 낮이면 이런 전경 - 멀리 보이는 마이산 ]
9월 1일 토요일
2007년 후반기 유랑캠페인 본격적인 일장이 시작되는 첫날~
아침부터 비가 계속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긴급상황이 발생했다.
전날 해 놓은 밥에 물 말아 먹고 설걷이를 하려고 하는데,
갑자가 ‘뒤’에서 신호가 오는 것이다.
‘헙~’
아직 이른 시간이라 교실 문을 안 열어 놓았기에 화장실을 쓸 수가 없었다.
화장실을 찾아서 인근 경찰서(24시간 열려있음)까지 뛰어가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이곳 저곳 두리번 거리다가 적당한 텃밭 한 켠에 땅을 파고 일을 봤다.
떨어지는 비를 흠뻑 맞으면서.
‘아~ 악몽의 시작이여~’
간이 화장실을 리어커에 실어서 들고 다녀야 할런지...
큰 일 보는 것이 말 그대로 가장 ‘큰 일’이다.
텐트를 접고나서 뭔가를 해야하긴 했지만,
떨어지는 비 때문에 선듯 결정을 할 수 없었다.
[ 1030 급식소통로 지붕 아래에서... 비가 내리니 나설 수도 없어 갇힌 신세가 되었다. ]
잠시 앉아서 고민하고 있는데, 학교 주사님이 지나가시다가 말을 붙여 오신다.
안그래도 두달 전에 진안에서 캠페인 할 때도 넉넉하고 인자한 미소로 사려 깊게 대해주셨는데,
고생 많다고 격려를 해 주신다. 텐트 치고 잔 것도 아시는 눈치이다.
참 성격도 좋으시고 마음도 넓으신 분이다.
하지만 이런 분과의 만남에 너무 의미를 두면 '그렇지 않은' 주사님들 만났을 때 반발심이 생긴다.
어찌 이런 분만 있기를 기대하리요.
무주로 이동을 해야했지만,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고 해서 필히 하루 더 진안에서 묵어야 했다.
죽치고 있을 곳으로 도서관이 제일 이었다.
3분여 가량을 걸어 진안도서관에 도착하니 8시다.
9시부터 문을 여니 한 시간 가량을 기다려야 했다.
[ 1040 도서관 문 열리기를 기다리는 중에 바삐 쏘다니는 청설모를 포착]
[ 1050 향나무에 떨어지는 비 ]
9시가 되니 사서 아가씨가 나타나서 '오래 기다리셨냐'며 문을 따주더니,
2층 열람실문도 열어주고 불도 켜주고, '덥지 않냐' 고 까지 상냥히 물어 온다.
40개 지역 도서관을 거치면서 이렇게 친절하고 상냥한 사서아가씨는 처음봤다.
대체로 도서관 관리하시는 분들 보면, 문 따고 불 키며,
그야 말로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것으로 끝나는데,
이곳 사서아가씨는 참 친절하고 상냥하다.
자기 집에 온 손님을 대하는 듯 하다.
하여간 기분 좋게 도서관 들어와서 하루 종일 죽치고 있다가
저녁에 도서관 문 닫고 어둑어둑 해지고 나서 도서관 현관 앞에서 텐트를 쳤다.
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려댔다.
그런데 밥을 해 먹고 나서 옷을 둘둘 말아 묶은 베게에 누워서 있는데,
개새끼가 한 마리 지나가다가 낮선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멍~’ 하고(푸념하는 식으로)
한번 내 뱉고는 그냥 사라졌다.
내 원 참나 개에게까지 괄시를 받다니...
밖으로 나가서 때려줄 테다.
가만... 등치가 크면 어떻게 하지?
작년 9월 달에도 무안 초등학교에 텐트 치고 난 후에, 개 한 마리가 내 텐트 근처를
얼쩡 거리며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다리 한쪽을 들어 올리더니 영역표시를 하는 것 아닌가!
생각 같아서는 발길질을 하면서 쫓아냈을 텐데...시베리안허스키인지 뭔지
등치가 나보다 좋아서 그냥 미소를 보이면서 빨리 가주기만을 고대했던 적이 있었다.
가만히 있으니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냥 갔는가 싶다.
이노무 개시키들...
9월 2일 일요일
눈을 떠 보니 빗줄기가 가늘어져서 이슬비만 좀 내린다.
전날은 170mm의 비가 내렸단다.
언제까지 이리 비가 쏟아질런지...
맑은 햇살이 내리 쬘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다.
장비를 챙겨서 무주로 향한다.
무주로 향하는 길에 역시나 여러 가지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 1041 진안읍 내의 정자 한편에 맥주 깡통 두개가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전날 마루에 앉아서 삶을 논하면서 한 모금씩 들이켰으리라 ]
[ 1042 다정한 가족 - 어미 개 옆에 새끼 개가 붙어서 껌 씹듯이 어미 목줄을 물어뜯고 있다.
심심해서 그런지 목줄이 어미의 자유를 얽어매고 있음을 아는지... ]
[ 1043 길 한편에서 닭들이 흙을 발로 파내고 모이를 쪼아먹고 있다. ]
[ 1110 읍내에서 빠져 나오니 전봇대 지지줄 중간에 넝쿨이 못 올라오게 접시가 하나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
[ 1120 이슬비 떨어지는 일요일인데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줄을 얽는 거미 ]
[ 1130 이미 말라죽은 풀줄기를 타고 넝쿨 새싹이 하나 감아 올라가는 모습 ]
[ 1140 아카시아 잎에 맺힌 빗방울 ]
[ 1150 이름모를 잡초에 빗방울 ]
[ 1160 싸리나무 잎에 빗방울 ]
한 시간 가량을 걸어 오다 보니 무주 가는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허헉~ 초반부터 빡새구나~ 38km 라...
[ 1200 무주 가는 표지 ]
[ 1220 극사실주의? 작품 - 냉장고가 상용화 되기 이전의 100여년 전에 이런 장면이
사진기에 포착되었다면 극히 ‘초현실주의’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무한소유와 소비를 추구하고 쓰고 버리는 삶이 일상화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의 희생/환경파괴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삶에서
쓰레기처리비용 몇 푼 아끼려고 냉장고를 길가에다 집어던지는 것은
극히 ‘현실적’이며 흔히 발견할 포착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배경으로 보이는 호수는 전라북도민 상수원으로 쓰이는 용담호]
[ 1330 풀밭 한쪽에 가지런히 벗어진 신발 - 주인은 어디갔나?
강가라면 대충 상상이 되겠는데, 풀밭 한쪽에 이리 신발이 가지런히 벗어져 있으니
계산이 잘 안됨 ]
[ 1350 용담호를 배경으로 전선줄에 새 한 마리 올라선 모습 ]
[ 1351 용담호 한편의 모습 - 호수 안으로 과거의 길이었던 곳이 침몰해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
용담호에 대하여...
용담호는 전주, 군산, 익산 등 전북 전역의 생활용수로 공급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92년 11월 착공 무주, 진안, 장수의 2읍 12면이 수몰되었는데,
특이나 진안의 1/3이 수몰되었을 정도이고, 이에 따라서 실향민들의 아픔은 말할 바가 못 된다.
이로 인해서 건설업자와 관련 정치인등은 엄청난 이익을 얻었을 터이지만,
수몰지구의 실향민들은 현재 생계, 주거대책 없이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상태이다.
[ 1353 사진은 네이버 카페 ‘마이산’님 글에서 퍼옴 -
용담댐으로 인한 수몰지역 주민들이 입주한 주공2차 아파트의 임대기간이 끝나고
분양시기가 도래한 현재(2005년) 주택공사측이 제시한 분양가가 너무 높아서 안그래도
생계의 터전을 잃어 소득이 없는 실향민 주민들이 항의집회를 하는 모습
전북도 측에서는 헐벗고 굶주린 민중들의 생존권을 담보로 가진 자들과 있는 자들의
배를 불리는 ‘새만금사업’에 이어 이러한 대형국책사업을 추진하면서
약자들의 권익은 아예 무시하고 있다. ]
용담호는 우리나라 인공댐 중에서 5위 규모의 댐이다.
유역면적이 930㎢ 이고 60여 km의 일주도로가 호를 둘러 있다.
[ 1355 용담호 유역도 - 진안군청펌 ]
[ 1352 용담댐 한편을 가르는 ‘월포대교’의 콩크리트 벽위에 핀 강아지풀 ]
이곳 진안에서 무주로 향하는 길은 개발이 안되고 ‘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그에 따라 확률적으로 동물들이 로드킬 당할 가능성이 높아서 그런지
상당히 많은 죽음을 접할 수 있었다.
(끔찍한 장면들이 있어서 볼만한 것만 추려서 올림)
[ 1400 누구의 다리인가 ]
[ 1410 아마 도로를 가로지르다가 차에 치인 듯 한데 그 살갓 벗겨진 쓰라림이 전해 오는 듯 하다 ]
[ 1430 가지런한 죽음을 맞이한 세 - 새 이름 아시는 분 댓글 좀 달아주시길 ]
[ 1450 개구리 가죽인 듯... 차에 치이고 뭉개지고 하면서 살은 다 빠져 나가고... ]
[ 1460 ]
[ 1470 나방이 한 마리 ]
[ 1480 떨어진 낙옆 ]
길 가는 내내 우울한 장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추석이 다가온다고 산등성이 곳곳에서 벌초객들로 붐벼댔다.
진안에서 무주 가는 사이에 열 두서너 곳에서 벌초객들이 휘두르는 요란한 제초기 소리를 들은 듯 하다.
[ 1500 벌초객들 모습 ]
[ 1510 진안의 수동터널을 배경으로 버스에서 한 어르신이 내린 후에 먼산을 잠시 바라보는 모습 ]
[ 1520 자그마한 휴게소 건물 창문까지 넝쿨이 뒤덮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배는 무지 고팠지만 밥 먹을 시간이 아녀서 매점에서 과자를 사서 문앞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배를 채우고 움직였다. ]
[ 1530 한 지붕 네 가족 - 안천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안천초등학교, 안천중학교, 안천고등학교 -
마 음만 먹으면 한 건물에서 13년을 학교생활 할 수 있는 환경 ]
[ 1540 안천초등학교 전경 - 13년 학교 생활하면 집보다 정이 더 들겠지? ]
[ 1550 발자국의 주인공을 때려 주고 싶다! - 시멘트로 발라놓은 곳인 줄 알면 좀
피해갈 것이지 두세 놈이 고의적으로 밟고 지나간 흔적으로 사려됨.
시멘트의 상태를 보아 최소한 10여년 전의 사건인 듯 함 ]
진안에서 무주 오는 길의 3분의 1 지점인 안천면의 ‘땅콩하우스’ 라는 음식점에서 밥을
맛있게 먹고 그 근처의 파출소 앞에서 배낭을 뉘어 놓고 등을 기대고 누워서 한숨 잤다.
오는 길 내내 비가 왔다 멈췄다를 반복했기 때문에 몸은 물론이거니와 발이 젖어서 신발을 옆에 팽개치고 누웠다.
오랜만의 행군으로 인한 피로로 인하여 눕고 눈을 감자 바로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한 시간 반 후였고, 양말도 다 말라 있었다.
하지만 다시 걷는 중간 중간에 다시 이슬비, 보슬비가 떨어져 대다가 소낙비 까지 떨어져
내리면서 신발과 몸이 다시 젖어갔다.
한참을 더 걸으니 무주경계선이 눈에 들어온다.
[ 2000 무주 군경계선 ]
[ 2010 참으로 패션어블한 무주 버스정류장 - 이뻐서 좋은데 겨울엔 춥겠다 ]
대기가 불안정할 때는 참 난감하다.
구름가득 낀 하늘에서 시종일관 이슬비만 뿌린다면 그냥 감수하고 진군할 만도 하지만,
이것이 가랑비가 되고 다시 온전한 빗방울이 되어서 떨어져 내리면서 몸을 젖게 하기 때문이다.
특이나 개발이 안 된 ‘청정지역’ 이동 중에는 중간에 비를 피할 수 있는 곳(버스정류장 등)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내내 맞고 이동해야한다.
물론 혹자는 비옷을 입거나 우산을 쓰고 다니라고 한다만은
(몸에서 뿜어내는 열기 때문에) 비옷을 입었다가는 당장 통구이가 될 것이며,
짐의 무게 때문에 고개를 숙이면서 ‘허걱’거리기도 바쁜상황이기에
우산을 들을 수 있는 자세 자체가 나오지 않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비오는 중 이동시의 복장은
우비로 배낭을 감싸고 모자와 수건을 머리에 두른 모습이다.
우천시 이동 중에는 비 맛는 것도 문제이지만, 누워서 쉴 곳이 없다는 것 또한 큰 문제이다.
평상시에는 45분 걷다가 15분씩 아예 벌러덩 누워서 쉴 만큼
체력의 소진을 ‘편안한 쉼’으로 보충을 하곤 하는데,
비가 떨어질 때는 앉아 있을 곳 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몸의 압력은 가중된다.
하여간
안천면에서 나와서 한 시간 정도 걷다가 잠시 쉬려고 배낭을 깔고 누운 순간에 이슬비가
점점 굵어지더니 가랑비 수준으로 굵어지는 것이다.
‘이정도 쯤이야’하고 대충 버틸려고 했는데, 빗발이 조금씩 굵어지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어나서 ‘피난처’를 찾아 앞으로 진군한다.
10여분 넘게 겔겔거리면서 고개를 오르다보니 조립식건물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지붕이 4, 50cm 정도 튀어 나와 있는 터라, 배낭을 세워 놓고 비를 피한다.
앉을 공간까지는 나오지 않아서 꼿꼿히 서서 비가 멈추기만을 고대할 뿐이다.
[ 2020 판쵸위로 감싼 배낭을 새워 놓고 잠시 비를 피하고 있는 중 / 쉬기가 깝깝한 순간 ]
20여분 정도 서 있으니 다시 비가 멈춘다.
언제 하늘의 변덕이 시작될 줄 모르겠지만, 비가 잠시라도 멈췄을 때 한발이라도 움직여야 한다.
[ 2030 도로 한쪽의 돌망태 벽 사이로 이끼들이 솟아나온 모습으 보인다.
마치 외계의 행성에 와 있는 기분에 한참 서서 그 아기자기함을 감상했다. ]
저녁 여섯시 쯤이 될 때 앞으로 당도하는 마을에 야영지를 찾아 들어가려했다.
오랜만의 행군이라 상당히 피곤하다.
내리막 길 아래에 삼유리(무주군 적상면)라는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 구석에 삼방초등학교 표지가 있길래 그리로 향했다.
그런데 마을 가게 쪽에 잠시 차를 세워둔 두 청년이 내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가보다 했는데,
고생한다면서 손에 먹을 것을 들고와서 건네는 것이다.
그들 둘도 작년에 한 달 넘게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고성군의 ‘통일전망대’까지
(남쪽끝에서 북쪽 끝까지)남북을 갈랐단다. 그때의 추억을 떠 올리며 차량으로 이동 중에
내 모습을 발견하고 격려차원에서 잠시 멈췄단다.
역시 고생해본 사람이 그 고생을 앓지~
건네는 과자들을 고맙게 받아들고 야영지인 삼방초등학교로 향했다.
[ 2240 건네받은 과자와 우유 ]
그러고 보니 나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캠페인 한다면서 돌아다니는 놈이
전라남도 해남을 지나면서 '땅끝마을'도 안 거치다니.
쩝~ 어쩌랴~ 내 본분이나 다하자.
초등학교 찾아다니면서 캠페인 할 시간도 빡빡한데.
조그마한 시골학교 삼방초등학교에는 비를 피해 텐트를 칠만한 적당한 공간이 없었다.
학교 뒷편으로 다용도목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의 지붕을 하나 발견했는데,
넉넉하지는 않아도 바로 떨어지는 비는 피할 수는 있을 듯 했다.
하루 종일 발이 빗물에 절어 있었다.
텐트를 치고 신을 벗고 들어가자 그 ‘쭈글쭈글’한 자태가 드러났다.
이 날씨에 빤다고 마른 양말도 아니지만 삼일동안 신고 있었던 양말 냄새가 너무 심해서
근처 수돗가에서 빨아서 텐트 한편에 널었다.
주변에 가로등이 없어서 간간히 지나는 차량이 내 뿜는 헤트라이트가 어렴풋하게
그 빛을 전할 뿐이었다. 그 어둠 속에서 눈만 껌벅이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에 비가 떨어졌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서 텐트에는 빗물이 그리 많이 튀어오지는 않았다.
[ 2060 삼방초등학교 야영 전경 ]
9월 3일
짐을 챙겨서 다시 무안으로 향하는 길에 이채로운 장면들이 눈에 띈다.
[ 2080 담배 밭 중간에 지게가 세워져 있는 모습 ]
[ 2090 흙으로 지어진 방앗간 건물인 듯 ]
[ 2100 물이 불어난 천 한쪽에 호박 두개가 넝쿨 한줄씩에 생사를 맡긴체
호박밭 주인 아주머니가 어서 나타나서 구해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웃인 호박꽃도 나팔을 불며 주인 아주머니를 찾지만,
폭우로 난리가 된 집구석을 정돈하느라 주인아주머니가 언제 올지는 기약이 없다. ]
[ 2110 호박부잣집 전경 ]
[ 2120 무당벌레 암수가 착 달라붙은 모습 ]
‘황당가’(황색 무당벌레의 노래(가))
짝 달라붙은 저 무당벌레
암수 서로 정답구나
외로워라 이 내 몸은
누구한테 달라붙을 꼬
( 일부 학계(둥글리즘분석학회)에서는
‘황당가’를 ‘황조가’를 능가하는
서정문학 최대의 금자탑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날도 빗줄기가 대중없이 굵어졌다가 얇아졌다가 그치다가를 반복해서
행군에 어려움이 많았다.
[ 2130 모 면사무소 앞의 버스정류소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빗줄기가 굵어져서 30여분을 쉬었다 움직였다. ]
[ 2140 2150 파헤쳐지는 도로와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도로
같은 방향의 도로가 세 개가 만들어지면서 산과 들이 파 헤쳐진 까닭은 아마 ‘지극히 단순’할 것이다.
‘두 번째 도로가 처음 도로보다 빠르고, 세 번째 도로가 두 번째 도로보다 빠름’
조만간 네 번째 도로가 만들어지겠지?
그렇다 ‘한국도로공사’와 ‘도로 건설업자’들의 꿈~ => 전국토의 도로화]
[ 2160 콩밭 중간에 뜬금없는 해바라기 한줄기 ]
[ 2170 도로 한 편의 깍아낸 바위 위에서 다람쥐가 열심히 뭔가를 주워 먹고 있는 모습 ]
[ 2175 한국통신 푯말 위에 왠 묵주? 누구의 사연이련가~ ]
[ 2180 어른(둥글이) 지나가고 있는데 함부로 짖다가 주인아주머니에게 터진 개 /
사진 찍힐 당당히 표효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5초 후에 주인아주머니에게 두들겨 맞고
나서는 매우 겸손해짐 ]
- 활동수칙을 지키자~
재를 하나 넘어와서 중간에 어느 주유소 한 켠에서 쉬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주인아저씨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구십니까? 깜짝 놀랐습니다’라며 불쾌한 듯 한마디 하고 간다.
벌러덩 누워 있다가 화급히 일어나서 짐을 챙겨서 다시 걷는다.
‘절대로 사유지에서 쉬지 말것’이라는 철칙을 잊은 댓가이다.
좀 위험하더라도 국도상 갓 길이나, 인도위에서 누워서 쉴 일이지
뭐 한다고 사유지로 걸어 들어가선...
안그래도 그 직전에 경찰이 한번 왔었었다.
국도상 갓길에서 누워서 쉬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것이다.
아마 ‘누군가 쓰러져서 죽은 것 같습니다’라거나, ‘어떤 미친놈이 누워서 잡니다’라는 제보를 받고 출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 출동은 늘상 시간이 걸리는 이유로, 휴식을 끝마치고 다시 이동할 때 와서
상황을 확인하곤 한다. 그래서 내 쉬는데 방해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사유지’를 지키려는 그 소유자들의 정신은 24시간 잠들지 않는 유로,
좀 피곤해서 짐을 한 켠에 눕혀 놓고 좀 쉬고 있을라치면, 실시간적으로 반응해서 내가 쉴수 없게 만든다.
내 몸이 여유롭게 쉴 수 없음은 내가 태어난 시대의 한계이라라.
- 발이 아파오고...
발등과 발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인대가 놀랐는가 보다.
온전히 걷지 못할 만큼 통증이 심해졌다.
특히나 무주에 닿기 두어 시간 전부터는 아주 죽을 맞이었다.
쩔뚝쩔뚝 거리다가 잠시 멈춰서 발목을 이리 저리 풀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비까지 떨어져 내리니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진안에서 무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인 싸리재 터널에 들어설 때부터 빗 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는데 터널 아래서 비가 잦아지기를 기다리며 30여분을 멈춰 서 있었다.
[ 2190 무주로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 싸리재 터널 안에서 ]
비가 그치고 짐을 꾸려 터널을 빠져 나와 커브 길을 걸으니 무주읍내가 눈에 들어온다.
[ 2200 멀리 보이는 무주입내 ]
전날과 당일 도합 13시간을 넘게 걸어서 당도한 곳인데,
그 긴 진군의 끝에서 목적지에 당도한 것에 대한 기쁨이 솟아나지 않는다.
발등의 통증이 심해져서 한발 한발 걷는 것이 고역이어서였다.
한편으로 진안에서 무주까지의 진군은 '풍성함'의 향연이기도 했다.
한여름의 따가운 햇빛을 한껏 머금으며 토실토실 열매를 맺는 다양한 과실들을 살필 수 있었다.
[ 2210 알이 맺혀지는 대추 ]
[ 2220 무르 익는 배 ]
[ 2230 살이 오르는 감 ]
[ 2240 알이 굵어지는 밤 ]
[ 2250 수확을 앞둔 사과 ]
고추나 대추 정도는 (당사자들의 의중에는 아랑곳 않고) ‘보시’ 받았다 샘 치고 따먹곤 했는데,
사과나 배는 괜히 따먹다가 걸리면 일 당할 성 싶어서 눈치만 보다가 그냥 지나쳤다.
특히나 오는 길에 '인삼‘과 ’장뇌삼‘ 밭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저녁밥에 한 뿌리씩 넣어 먹으면 바닥난 힘이 밑바닥에서부터 불끈불끈 솟아 오르면서,
무주까지 1분도 안 쉬고 뛰어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캐다 걸리면 바로 형사입건’ 류의 플랭들이 많이 붙어있어서 쳐다보기도 무서웠다.
기후가 미쳐서 그런지, 대추나무가 미쳐서 그런지, 아직 철이 아님에도 종종 대추나무에
실한 대추가 열려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물론 보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는 삶의 습성을 가지고 있는 나는 잠깐씩 멈춰서서
자연이 주는 혜택을 감사해 하며 주머니에 차곡히 넣어 담았다.
[ 2350 사과여 대추여 ]
환경오염, 하나님, 석가님...
지구 온난화로인한 환경피해로 인해서 이제 인류는 자고로 멸망을 향한 길로 치닫고 있다.
한국이라고 이를 피해갈리 없다.
한국인들도 올 여름 '미친 날씨'를 경험하면서 좀 더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장마가 끝났음에도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리면서 각종의 피해를 불러오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도 대기는 점점 불안정해지고 예상치 못한 재앙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기온이 1도 오르면 농작물 생육에 미치는 영향에 의해서 10%이상의 수확률이 감소된단다.
기온은 오르고, 이에 따라 농작물의 피해는 증가되고,
인구는 늘어나고 해빙에 의한 침수에 의해서 거주지는 줄어들고...
생물들이 멸종하면서 생태계의 균형이 깨진단다.
이로 인해서 바이러스와 세균의 창궐로 인한 심각한 문제도 발생하게 될 것이다.
가히 앞으로 우리가 직면해야할 재앙은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문제는 이러한 재앙은 특별히 많이 소유하고 소비하는 몇몇 갑부들과 기업가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과거 300년 전에 비해서 평균 2000배 이상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우리들 각자가 빚어낸 문제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금' 의 세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좀 더 집중적인 노력으로 환경의 파국을 막으려는 노력을 하면 좋을 텐데...
정치인들과 자본가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더 많이' 소유하고 소비할 수 있는 사회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고 있고,
그들이 하는 세뇌공작에 포섭되어서 '잘 먹고 잘 살 생각'만 하는 국민들은
자신의 '평범한 일상'이 결과적으로 세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알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기꺼히 그러한 야만적인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을 믿고' '마음공부'를 한다는 이들 역시 이러한 현실에 전혀 게의치 않고,
오직 '영생놀이‘와 '도' 놀이만 하고 있다.
하루에 세 종류의 생물이 멸종하고 있고,
후손들의 미래는 갉아 먹혀지는 상황에 있지만 그들의 굳건한 믿음은 이러한 현실을 바라볼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안타깝게도 '좋은 것' '재미난 것' '즐거운 것' '사적인 행복'만을 쫓게 만드는 현대 사회의 분위기에 잘 적응된 이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토로하는 것 자체도 '불쾌히' 여기고 있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나서서 뭔가를 해야할 바의 필요성은 더더욱 강조된다.
------------------ 무주군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는 인구 3만 규모의 소군으로
‘1경 라제통문’으로부터 ‘33경 향적봉’으로 이르는 무주구천동을 품에 담고 있는
덕유산국립공원으로 유명하고, 6월 중순에 1주일간 치루는 반딧불 축제로 이름이 나있다.
우리 무주군은 경상남북도, 전라북도, 충청남북도 등5개도 6개 시,군이 함께 만나는 중심에
위치해 있는 곳입니다. 특히, 지난해 12월, 국토의 남북축을 형성하는 대전-진주간 고속도
로가 개통되어 무주를 관통함으로 서울, 부산 등 전국 어디서나 2시간대에 도달할 수 있는
접근성을 갖추게 되어 명실상부한 내륙교통의 중심지로서 무한한 성장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최동북단의 소백산맥 준령에 위치한 무주군은 충청남.북도경상남.북도와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서 국립공원인 덕유산을 중심으로 사계절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면적은 631.7평방
킬로미터로 서울시 전체면적보다 약 27평방 킬로미터가 넓으나 인구는 3만1천명으로써
쾌적한 전원 농촌지역입니다. - 무주군청 발췌
산림이 전체 면적의 83%인 무주는 사실상 산업화될 수 없는 특징이 있기에 대신
‘친환경이미지’를 부각해서 덕유산과 무주구천동지구를 중심으로 ‘건강-휴양-관광’ 도시의
이미지를 부각하여 관광특수를 누리고 있는 상황에 있다.
이에 맞게 무주의 심볼도 자연과 인간을 상징화 한 것이다.
[ 2400 무주군심볼 / 주제 : ‘자연과 인간’ ]
[ 2401 무주군청 전경 ]
무주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식당부터 찾았다. 한식부풰점이었는데, 가격이 4천원이다.
고기도 없이 주로 채소로만 이루워진 소박한 식단이었지만, 공기 밥 추가한다고
천원 더 받을 것에 대한 걱정하지 않고 양껏 먹을 수 있었다.
밥을 먹고 나서 무주우체국 한 켠 통로에 쭉 뻗어서 한 시간 가량을 잤다.
발등의 통증도 통증이었지만, 오랜만의 행군으로 몸이 워낙 피곤해서 지나가는 사람들
아랑 곳 않고, 한 시간 동안 배낭 뉘여 놓고 그 위에 뻗어서 간간히 비방울 떨어지는
것에 게의치 않고 잘도 잤다.
저녁 야영 / 빨래
저녁에는 무주초등학교로 들어가 수돗가 옆으로 텐트를 치고 나서 신발과 양말부터 빨았다.
8월 31일부터 계속 몸이 젖어있는 상황이다.
비 때문에 양말과 신발이 몇 일 째 계속 젖어 있었기 때문에 그 냄새가 말 할 바가 아니었다.
빨래를 해서 말릴 방법이 마땅이 없었지만, 냄새가 워낙 심해서 물에 적셔서 우선
때 국물이라도 빼야 할 판이었다.
계속 몸이 젖고 말릴 새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꿉꿉하기가 이를데없다.
배낭은 물론, 침낭, 텐트, 깔판, 냄비주머니, 슬리퍼주머니 등등으로 해서
습기가 안 배인 장비가 없을 지경이다. 몸에는 곰팡이가 쓸 지경이다.
엉덩이도 습진 때문에 여간 가려운 것이 아니다.
그나저나 내일은 해가 뜨려나?
그런데 밤하늘이 구름 가득해서 영 불안하다.
또 비 떨어지면 어쩌나...
[ 2410 야영지 풍경 사진 / 인근 테니스 코트에서 쏟아지는 빛이 텐트를 훤히 비춘다. ]
9월 4일
아침 여섯시 1분에 텐트에 빗방울이 몇 개 떨어지는 소리에 눈을 깼다.
텐트 지퍼를 열어서 삐끔히 보니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비가 쏟아지면 낭패를 볼 일이다.
하지만 전날 강행군으로 인해서 몸이 피곤해서 쉽게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좀 더 침낭 속에서 버티고 있으려 하는데 비 떨어지는 소리의 간격이 더욱 좁아진다.
쏟아질 태세다.
급히 일어나서 전날 해 놓은 밥을 입에 털어 놓고 짐을 꾸려서 등나무 아래편에 옮긴다.
[ 2420 등나무 아래편에 급히 짐을 옮기고서 ]
[ 무주초등학교 활동 ]
여섯시부터 줄 곳 내리던 비는 7시 반쯤해서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간간히 빗방울이 볼에 떨어지기는 했지만, 이정도면 버티고 캠페인을 할 만한 상황이다.
짐을 가지고 무안초등학교 정문 앞에 선다.
자그만 시골학교 앞에서 시종일관 넉넉한 분위기로 듬성듬성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스티커를 나눠주며 활동을 했다.
한 달 반여만의 캠페인 활동이었지만, ‘관록’^^이 붙어서 그런지 아무런 부담없이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한동안 쉬면서 표정과 말투가 좀 더 상냥해지고 다정하게 ‘숙성’?된 듯 하다.
선생님들도 문제 삼는 분들이 없었고, 관심 있는 아이들은 스티커를 몇 개씩 집어가고 했다.
캠페인 끝날 즈음해서 또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해서 학교 삥 둘러서
휴지 좀 줍고 난 후에 바로 짐을 싸들고 밖으로 나섰다.
[ 2430 무주초등학교 전경 ]
하루 종일 비가 떨어지는 이유로 군청에서 버티고 있다가 여섯시 쯤에 야영할 곳을 찾아 움직였는데,
비를 피해서 텐트를 칠만한 처마나 지붕을 한 곳이 눈에 안 띄는 것이다.
마침 아침에 캠페인 하다가 발견한 무안초등학교 교무실 들어가는 현관자리가 떠올랐다.
어둑해져서 들어가서 짐을 놓고 쉬고 있는데 마침 퇴근하며 관심을 가져주시는
한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쫓겨나지 않고 텐트를 치고 묵을 수 있었다.
이로서 하루일과 끝~
이라고 생각했지만,
이후로 교감선생님과 야간작업하는 여선생님들과도 대면하고 설명 말씀 올려야 했다.
[ 2450 현관 앞에서 야영 중 ]
[ 2460 양말 말리기 - 계속 내리는 비와 높은 습도 때문에 빨은 양말이 마르지 않아서,
하나는 냄비 위에 올려놓고 말리고, 하나는 신어서 말렸다.]
9월 5일
[ 변화의 시작 ]
긴 글 다 못 읽더라도 아래의 ‘야만적 에너지 정책’관련한 통계는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 변화를 희망하며
오후 점심 먹고 나고 보니 잠시 비가 멈추길래 상가 돌아다니면서 1대 1로
상점 주인들을 잡고 캠페인작업에 들어갔다.
[ 4000 무주군청 주변 상가 ]
이견이 있는 사항을 넉넉히 받아주시며 껄껄 웃어 넘기는 아저씨...
‘시간없다’며 쌀쌀한 눈초리로 거부하는 아주머니... 등등의 분들을 거치다가,
한 상가에서 젊은 아저씨 하나가 환경문제에 대해서 비교적 전문적인 이해를 갖고 있음을 접했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과 중국이 환경생각 하지 않고 저리 성장을 향해서만 치닫고 있는데,
우리 같은 소시민들이 환경보호를 위한답시고 뭘 할 수 있겠냐?’는 상당히 회의적인 관점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대할 수 있었다.
그런 견해에 처음 접하게 되는 사람은 ‘옳거니’ 하고 맞장구 칠 수도 있다.
우리보다 훨씬 많이 쓰고 많이 사용하는 나라의 성장을 향한 욕망이 오히려 가속도가 붙어서고,
환경 파국을 부채질 하고 있는데, 우리 같은 약소국민이 덜 갖고 덜 쓴다고 환경이 변하겠는가? 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극히 패배주의적이고, 자포자기적인 관점이다.
이는 인류 공멸을 위한 암묵적인 동조의 다름이 아니다.
인류가 나락을 향해서 치닫고 있는 현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의 근거’를 갖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불분명하고 불안정한 심리상태에 자신을 내 맡기다 보니,
‘하나라도 더 갖고 높이려는 의지의 성취’를 통해서 근원적인 상실과 불안감을 상쇄하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욕심’이 각 나라간의 ‘분쟁’ ‘전쟁’을 불사하게 만들며 끝없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렇기에 우리는 없는 희망이라도 다시 만들어서 그러한 ‘근원적불안과 불안정감’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 근원적 불안감이 만들어 내는 물질과 권력에 대한 갈증과 집착,
이를 통한 인류의 갈등과 환경의 파괴, 미래세대 존립의 위협을 극복할 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라도 먼저 더 갖기 위해서 부족한 지구자원을 두고 서로 피튀기며 싸우지 않고도,
형제애로 서로를 감싸고 부족한 자원을 함께 ‘공유’할 ‘마음의 여유’있음을 먼저 보여야 한다.
미국의 경우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분의 1인 뿜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의정서협약(온실가스배출감소를 위한 협약)에마저도 탈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세계 패권국가국으로서 누려왔던 지위를 잃을지 모름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감 때문이다.
부시의 공화당 정권이 이라크를 침략하는 등으로 각종 세계의 분쟁지역에 들어가서 그 갈등을 극대화 하여,
그 이권(석유 등)을 취하려하는 것도 기존에 구축해 왔던 산업화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맥락이다.
그 ‘기반’이 무너지는 순간 그들의 디즈니렌드도 무너질 것이기 때문에
자국민 이외의 ‘어떠한 이들의 희생’이라도 감수하면서 그 기반을 지키려 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군사비를 증강하며 재무장을 시도하며, 지구환경을 파국으로 몰고 갈 것임을 앓에도,
15억이 넘는 인구의 소비수준을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끓어 올리려고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것도
미국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더 많은 권력을 갖고자 하는 욕망,
불분명함에 대한 공포감으로, 미래야 어떻게 되든 말든 ‘지금 당장’ 어떤 가시적인
성취를 손에 쥐려하는 것이다.
이것은 온전한 ‘삶’과 ‘희망’이 들어차야 하는 영혼의 자리에 ‘권력’과 ‘자본’이 들어찬 결과이다.
이들은 마음의 여유를 빼앗기고 성취와 경쟁, 효율의 논리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인간과 인간의 우애와 인간과 환경의 조화 등의 ‘계측할 수 없고’ ‘금전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은
따라서 아무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그들의 눈에 씌워진 욕망의 굴레는 그들을 그리 일방적으로 내 몬다.
함께 공멸로 치닫는 작금의 상황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늦기 전에 그들에게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보여줘야 한다.
언듯 생각하기에 이는 ‘우스운 발상’이다.
도대체 우리 같은 약소국민 중의 하나가 그들과 같은 강대국 정책자들에게 도대체 뭘 보여주고,
알려줄 수 있단 말인가? 하는 푸념이 일 것이다.
하지만 세계를 망가트리고 환경을 파괴시키며, 후손들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들어내는
인간 욕망의 근원이 내 자신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우선 직시해야 한다.
모든 변화의 시작을 기존의 ‘채우고 높이려는’ 욕망이 아닌, ‘비우고 나누려는’ 마음가짐으로 두고,
이를 내 자신의 삶의 장으로부터 시작하면서, 내 주위사람들에게 알리고,
지역에 전파하며, 올바른 국가 운영의 기반으로 세워 낼 때,
이러한 경향은 순풍을 타고서 세계사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렇게 된다’는 몽상이 아닌,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희망을 말하고 있음이다.
일예로 온실가스감축협약인 교토의정서협약국이 가하는 여론을 통해서도 이를 살필 수 있다.
선진 유럽 국가의 국민들은 물론이거니와 러시아까지 교토의정서 협약에 참여 하면서
지구적인 위기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며 미국과 중국 등에게 국제여론의 압력을 가하는데,
이에 미국과 중국 등의 (미참여)강대국은 내심 난처한 상황에 있다.
그런데 교토의정서 참여 후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나라의 경우에는
그네 국민들 각자가 일상의 장에서 지구적인 환경파국의 문제에 대해서 대처할 고민을 실천한 것이,
국가적인 파급력으로 확대되고 조직화된 결과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 개개의 국민들의 의지가 없었다면 결코 그들의 국가는 국제적 의무를 충당할 필요를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둔다면 ‘내 자신부터 내 생활의 장에서 전지구적인 파국에 대비한
시야로 움직여야 한다’는 말의 의미가 ‘개개의 도덕적 의무로 환원 된
실효성 없고 공상적인 환경의식’이 아니라, 2500년 전 플라톤이 얘기했던 ‘국가는 국민의 반영이다’라는
말이 함축한 바대로 ‘인간 개개의 의지가 그 조직(국가)에 가하는 힘의 절대성‘에
입각한 ’조직의 역학‘을 반영한 주장임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유럽선진국의 환경의식이 ‘완벽’하다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그것을 ‘이상’으로 둘 일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유럽과 같은 에너지 절약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친환경에너지전환을 위한 민관이
하나된 노력은 둘째 치고, 더욱 더 많이 쓰고 많이 소비하기 위해 야만적인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니 문제이다.
2. 야만적 에너지 정책
유럽연합의 경우에는 2011년까지 전체 전력수요의 15%를 신재생5에너지로 충당할 것을 합의하였고,
덴마크의 경우에는 2030년까지 전체 전력의 50%를 풍력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지열, 태양력, 풍력, 바이오가스, 유기물 고체연료, 하수가스 을 이용한 자가 발전
등의 재생에너지 비율을 2010년까지 최소 12% 2050년까지 50% 이상 끌어 올림으로 인해서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되는 ‘화석에너지’ 수요를 최소화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충분한 이해 국민적 합의가 동반되어야 했는데, 가령 네온간판도 많지
않지만 밤이면 모두 소등되고 도시가 암흑에 휩쌓인다고한다. 그네 나라 신재생에너지정책의
진전은 지구적 위기 상황을 각자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타개해 보려는 그네들 개개화 된 노력이 집적된 결과이다.
반면 한국은 어떠한가? 민간은 민간대로 전기가 철철 넘쳐나는 듯이 소비하고 있고,
정부는 정부대로 더 싼값에 전기를 공급하겠다고 호언한다. 이에 국민들은 ‘환호’하고
매년 공급물량을 초과하며 전기를 소비하면서 다시한번 정부의 화석에너지(지구온난화 앞당기는 에너지)
사용을 종용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수준은 국민소득이 세배에 달하는 일본과 맘먹는 상황인데,
산자부에서는 앞으로 전력소비도 연간 4~5% 수준으로 증가할 것을 내다보면서 그에 맞게끔
핵발전소 등의 증축을 통해서 에너지 충당 계획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것이 지구적인 위기 상황에 함께 분담할 생각을 하지 않는 ‘공동의 책임의식부재’의 관점에서
살펴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폭발적인 에너지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정책은 ‘산자부와 핵산업계의 직접적인 이익’이
달려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문제이다.
산자부와 핵산업계는 돈 되지 않는 재생에너지 정책은 거의 포기하다 시피하고, 한 기당 2조원씩
시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원자력발전소 건립을 통해서 자신들의 이권을 확대하고 있다.
원자력수요를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핵산업계)에서 앞으로 10년 동안 16기의 원전을
증축할 것이라는 세계 최대의 원자력확대정책을 내 놓은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이러한 에너지 정책은 인류와 환경, 후손에 대한 야만적 행위이지만,
오직 ‘좀 더 많이 갖고 소비하는 사회’의 구성원이기를 갈구하는 한국민들의 ‘여론’은 ‘핵마피아’들의 정책을 오히려 지지하면서
핵정책을 비롯한 화석에너지 정책에 반대하며 나서는 투사들에게 오히려 ‘그렇다면 동굴 들어가서 촛불키고 살으라는 말이냐’는
손가락질을 하게 만들어내고 있는 참담한 실정이다.
한국의 재생에너지(화석연료를 재외한 에너지) 사용비율은 OECD 평균이 6.0%에 훨씬 못 미치는
0.7%로 OECD 회원국 중의 최하위 수준이다.
이는 지구적인 위기 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못하는 이나라 국민들의 야만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통계이기도 하다.
3 첨부해서
우리 자신들의 소유-소비습관부터 고쳐나가지 않고서 그들 환경오염의 주범(미국, 중국 등의 강대국)들이
‘올바른 길’을 가기를 고대하는 것은 언어도단임을 계속 강조하게 된다.
그들의 마음속에 스며들어서 인류를 파국으로 내몰고 있는 그 ‘욕망’ 자체가
우리의 마음속에 스며들어와 있는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서 세계를 파국으로부터 구해내고 싶다면,
내 자신부터 바뀐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 이후의 긍정적인 연쇄반응이 있을지 없을지는 별도의 문제이지만,
이렇게라도 우리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가 ‘내 자신만 잘하면 된다’ ‘자기 마음 들여다보기에만 매진’하라는
얘기로 오해될 듯 싶어서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세상의 문제에 대한 실천적인 고민을 하지 않는 ‘자기만 들여다보는 노력’(‘도’ ‘천국’ 찿기)은
극히 유해할 뿐만 아니라, 근절되어야 하는 잘 못된 관념습성 중의 하나이다.
이는 세상과 자신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자신의 생존 자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에
어떤 식으로든 실천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는 극히 유아론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앞선 이야기에서 ‘내 자신부터 잘 하라’라는 부류는 ‘최소한’ 자기 자신의 욕망의 근원을
제대로 들여다보라는 얘기이지, 그것에만 고착되어 있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내 자신부터 잘 한다’는 얘기는 단순히 재활용 잘하고 아껴 쓰고 나눠쓰고 하는 따위의
‘사생활의 공간’에서의 성실성만을 강조한 표현이 아니라,
환경파국을 고조시키는 세계화 추진경향에 맞서서 조직적인 활동에도 동참하고
자본과 권력을 가진 세력들의 억압이 도를 넘어섰을 대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때로 과격한 폭력 시위에도 앞장서야 한다는 이야기까지가 포함된 개념이다.
내 자신의 주체를 올바로 세워서 ‘내 일을 잘하는 것’은, 절간이나 교회 내에 짱박혀서
염불과 성경만 읊어댄 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중심이 되어 있는 인간, 사회, 환경 관계의
중심에서의 올바른 작용을 이룬다는 의미까지가 포함되어 있음이다.
[저녁 야영 ]
저녁 야영은 벽천공원 한편의 정자 2층에서 했다.
공원주변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기 때문에 야영에 방해되는 이유로 거들떠보지 않지만,
비도 계속 내리는데 할일 없이 공원에 찾아들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야영지를 삼았다.
[ 5000 벽천공원 전경 ]
텐트를 치고 저녁 준비를 하며 보니 탁 트인 경치가 좋다.
[ 5110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경 ]
저녁에는 오랜만에 맥주 한 캔을 사다가 야경을 감상하며 마셨는데
값자기 바람이 불면서 빗방울이 튀기는 통에 짐 정돈하다가 캔을 텐트 바닥에 엎어서
걸레가지고 한참을 닦아야 했다.
[ 5120 야경 ]
상당히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들었는데, 30분이 채 못 되어서 눈이 띄여진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패들 셋이 빗속을 뚫고 등장한 것이다.
이곳 공원정자는 방황하는 학생들의 만남의 장소인 듯 하다.
녀석들은 내가 머물고 있는 정자 2층에 잠깐 올라왔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다시 밑으로 내려가서 떠들어 대기 시작하는데,
한 시간 반 정도를 그리 있었다.
사내 녀석들은 그래도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는데,
여자아이는 종종 재밌다고 동네 떠나가라 비명의 비명을 지르고 소리에 소리를 질러댄다.
‘주변 사람들 다 잠들어 있는 그 야밤에 저리 개념이 없을까’ 하면서
한마디 해줄까 말까 고민하는 중에 녀석들은 저 멀리 골목으로 사라졌는데,
여자아이가 내 지르는 소리는 여전히 귓가에 쩌렁쩌렁 울렸다.
잠이 제대로 올리 없었다.
9월 6일
[ 무주중앙초등학교 활동 ]
나머지 스티커도 소비해야하고 오늘 아니면 무주에 다시 와서 캠페인 하기가 힘들 것이기에
이슬비 보슬비가 번갈아 떨어지는 상황에 무주중앙초등학교에 섰다.
[ 5130 무주중앙초등학교 전경 ]
오르막길을 올라오는 아이들에게 스티커를 나눠주면서 스티커에 떨어진 빗물을 닦아내기를
계속 반복했다.
[ 5140 스티커 사열 ]
캠페인이 끝날 즈음 이곳 전교조지부장님께서 관심을 가지시고 접근하셔서
몇 말씀 나눌 수 있었다.
선생님은 친절하게 스티커를 한주먹 쥐더니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같이 나눠주시는 것이다.
1년간 활동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활동 초기부터 알게 되었다면 많은 말씀 청해 들었을 판인데,
떠나는 마당에 알게 된 것이 참 아쉽다.
교문 앞 활동을 끝내고 떨어진 스티커를 줍고 다니는데도 안들어 가시고 살펴주시기까지 했다.
그러한 배려심이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도 전해졌던 것일까?
싹싹한 아이들이 상당히 많았고, 휴지를 주워버린 후에 짐을 챙겨 가려고 교문 앞으로 나서니,
배낭 주위로 해서 스티커를 받으려고 예닐곱 아이들이 삥둘러 서있었다.
비는 좀 맞았지만 유쾌하게 활동을 끝마치고 내려갈 수 있었다.
--- 2007년 9월 6일 전라북도 무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