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마지막 구간 동행 취재>
Mountain & Enterprise
경재문 경문도시개발(주) 사장
“등산은 생기 정기 활기 온기의 실천입니다”
글 박성용 기자·사진 양계탁 기자
<Mountain 사진은 링크 중단되어
최폴리 사진으로 대체>
지난 2007년 12월 22일,
백두대간의 남쪽 마지막 구간인
강원도 진부령. 땀으로 범벅인 산꾼들이
백두대간 종주를 끝낸 자축 플래카드를
펼쳐들고 가슴 벅찬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2005년 1월에 첫 걸음을 뗀 뒤
3년에 걸친 대장정을 마치는
순간이었다. 이들 가운데 이마에
스카프를 묶고 유독 감개어린
표정을 짓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경재문 경문도시개발㈜ 사장
“감개무량합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백두대간 완주를 하고 싶어 하지만
실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힘든 고비를 이겨내고 큰 사고 없이
종주를 마쳐서 감사할 뿐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세웠던 인생의
수많은 목표 중 선뜻 내세울 만한 것이
과연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백두대간 종주는
마음먹고 실행에 옮겨 성공시킨 것
가운데 가장 보람되고 감동이
컸습니다.”
남다른 형제애로 동문건설 성공
신화 일궈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지 두 달이
흘렀지만 산 이야기가 나오자
경재문 사장의 얼굴엔 가벼운
흥분이 일었다. 산줄기를 더듬어
올라가는 듯 그의 시선이 가볍게
떨렸다.
진부령에 서서 차가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던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은 감동에
코끝이 찡했다”고 표현했다.
산이 대체 뭐길래, 나이 쉰 중반에
접어든 한 사내의 가슴을 이토록
사무치게 하는 걸까.
산이 보여주는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인간은 다만 자기 자신의 처지에
맞는 부분에 방점을 찍으며 산의
매력과 교훈을 체득해가는 것은
아닐까.
그에게 산은 아픈 몸을 낫게 해주고
또 삶의 목표 달성에 필요한 동력이
되어 주었다.
“20년 전쯤 되었을 것입니다.
차가 두 바퀴를 굴러 도로 아래
배추밭에 거꾸로 박히는 교통사고로
목뼈를 다쳤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할 게
없다며 열흘 만에 퇴원했지만,
운전을 30분 이상 못할 정도로
어지럽고 졸음이 쏟아져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이대로 두면 영영 쓰러질 것
같아 북한산을 오르기 시작했죠.
3년 동안 열심히 산에 다니자
후유증이 거짓말처럼 말끔히
씻어졌습니다.
유명한 종합병원도 못 고쳤던
교통사고 후유증을 산이 고쳐
주었다니 참 신기한 일이죠.”
북한산 의상봉 코스와 밤골 코스를
샅샅이 누비고 다니며 건강이
좋아지자 사업도 술술 풀려나갔다.
경 사장은 브랜드 아파트
‘동문굿모닝힐’로 유명한 동문건설에서
건설인의 꿈을 키웠다.
경재용 동문건설 회장이 그의 친형으로
두 사람은 창업부터 지금까지
남다른 형제애를 발휘하며 회사를
키워왔다.
1984년에 설립된 동문건설은
창업 23년 만에 국내 도급 순위
49위 건설업체로 성장했다.
“80년대 초반으로 기억합니다.
10년 안에 회사 매출 100억을
달성하자고 마음먹고 전자계산기를
하나 샀어요.
100억대가 표시가 되는 고가의
계산기를 갖고 다니며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8년 만에 목표가
달성되더군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동문건설 부사장이었던 그는
회사가 커지자 형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1998년 주택전문건설회사인
경문도시개발로 자리를 옮겼다. 1
988년 동문건설의 자회사
그린주택으로 출발한 경문도시개발은
1993년 동문도시개발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2003년 지금의
경문도시개발로 이름을 바꾸고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경문도시개발 초대 대표이사를
6년간 맡았던 그에게는 그간 쌓은
경영 노하우를 십분 발휘하는데 딱
들어맞는 회사였다. 그가 사령탑에
다시 앉은 경문도시개발은 그간
10년 동안 파주와 일산 등지에서
100% 분양 실적을 올리며 놀라운
성장을 거듭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문도시개발은 2006년 330억이었던
매출이 지난해에는 약 600억으로
100% 가까이 성장한데 이어
올해는 목표를 1500억대로 잡을
만큼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또 사세도 확장돼 하영설비·
경문건설·청솔건설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인테리어 회사도
올해 안에 설립할 계획이다.
백두대간 종주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보람 “산은 힘든 과정을 거쳐서
정상을 오르기 때문에 누구든 마음속에
인생에 대한 결의 하나쯤은 품게
됩니다. 그 결의는 확신으로 변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줍니다.
이렇게 따지면 사업도 이만큼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회사를 경영하다보면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힘들었던 산행을 떠올리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신감이 생기곤
하니까요.”
기자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등산이 사업보다 힘들다니!
그가 회장으로 있는 하늬물산악회 산행은
‘빡세기’로 소문나 신입회원들이 혀를
내두른다고 한다.
한번 산행에 나서면 7∼8시간은
기본이라고 한다. 백두대간 완주도
지리산 종주산행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의기투합해 시작했다고 한다.
“백두대간 종주는 처음 시작은
미약하고 두려움이 컸지만 가면 갈수록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완주를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확신은 자신감으로 이어져
목표를 달성하는데 큰 힘이 되었죠.”
사업이나 등산 모두 고생이 많으면
보람은 반비례로 커지는 법.
그는 백두대간 종주를 하던 2005년 7월
한여름에 덕산재∼질매재 구간에서
식수가 바닥나 대원 전원이 탈수 현상을
겪기도 하고, 2006년 4월 초봄
차갓재∼저수령 구간에서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한 악천후를 만나
조난 직전까지 갔던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혹독한 고생을 치렀기 때문에
그는 등산이 사업보다 힘들다고
말한 것은 아닐까.
그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산행하는 걸
좋아한다. 등산 동료들은 예전 김포군에
속했던 고향 신월동의 동네 친구들이
대다수를 이룬다. ‘하늬물’이라는 산악회
이름을 물맛이 좋았던 고향의 샘 이름에서
따올 정도로 고향과 옛 친구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하늬물산악회는 이름이 아름다운 산악회로
꼽히기도 했다. “강현주 고문과 경재천·
이대섭 부회장을 비롯해 최영수 박용섭
오창호 김석준 김상수 신용웅 하성철 유진숙
민병운 방옥섭 박근숙 최성호 이영순
권정대….” 그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백두대간을 종주한 대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다 보니
나보다는 남을 더 편하게 해주려는
스타일인데, 그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고
웃는 그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항상 가슴에
새겨둔다고 한다.
“사람을 무시하지 말라. 거지에게도
인격이 있다. 사람을 무시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무시당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이
젊었을 때는 다가오지 않다가 다 커서야
가슴에 남게 됐다고 한다.
이런 부모님의 영향 때문인지 그는
소외된 주변에 따뜻한 손길을 건네고
있다. 2003년 태풍으로 수해를 입은
삼척 미로초등학교에 컴퓨터를 보내는가
하면 국가유공자 노후주택 보수지원을
하고 있다. 또 목동 화목성결교회와
협력하여 노인무료급식을 지원하고,
양천구 관내에 사랑의 쌀을 전달하는 등
조용히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특히 고향에서 장학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동생이 학교를 한 해
쉴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던 유년을
보냈던 그는 누구보다 배움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을 추구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한 계단씩
밟아나가며 안정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경영 스타일이다.
건설업으로 잔뼈가 굵은 경영인답지 않게
신중하다.
“나 혼자만의 회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직원들과 부양가족들을 생각하면
함부로 할 수가 없어요.
만약 경영 판단을 잘못해서 사회적
물의를 빚게 된다면 가정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될 사람은 우리 직원들입니다.
그래서 무리한 사업 확장보다는
지속가능한 경영을 통해 성장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독자
브랜드를 개발해 자체 역량을 키워나갈 것
입니다.”
산에 가면 반드시 정상에 오르는 성격
그렇다고 사람이 물러 터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늬물산악회 신용웅 총무는 “회장님은
한번 마음먹으면 끝을 보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산에 가면 반드시 정상에 올라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등산을 권할 생각이다.
좋은 취미를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밀어줄 계획이란다.
그리고 시간 나는 대로 하늬물산악회
회원들과 백두산, 중국, 일본 등
해외산행도 나설 생각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 정철의 <관동별곡>을
외우라고 닦달(?)했던 국어 선생님이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이라고 한다.
지금도 자주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스승 중 한 분이라고 한다. 선거철에
북한산을 등산하다 보면 이재오 의원의
우렁찬 목소리가 산에까지 들린다고 한다.
그는 요즘 하늬물산악회와 함께
정맥종주를 시작하려고 한다.
백두대간 종주에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실수하지 않고 빠르게 완주를 계획하고 있다.
그가 산행에서 얻은 교훈은
심칠뇌삼(心七腦三). ‘항상 마음을
너그럽게 하고 머리는 조금만 써라.
세상 모든 일은 마음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라’는 이 사자성어를
가장 사랑한다고 한다.
그는 한 사람의 CEO로서 사회적으로
국가의 혜택을 많이 받았기에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소원한다. 그래서 그는 그 혜택들을
사회에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싶어 한다.
“내가 돈을 벌고 가족이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것은 사업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리 직원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뛰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이 사회에서 소외받고 어려운
이웃에게 회사 이익의 일정 부분을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사회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백두대간 마지막 종주코스를 동행 취재한 월간 mountain 양계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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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가족등)게시물
월간 마운틴...(2008. 3월호)
최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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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0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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