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에 대한 경고
김순진
지금까지 한 거짓말 중 세 번의 거짓말이 생각난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까지 단 세 번의 거짓말만을 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못 생긴 사람보고 예쁘다고 하고, 다음에 술 한 잔 사겠다는 식의 선의의 거짓말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되도록이면 거짓말을 삼가고 진실되려 노력한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스스로 거짓말의 두려움을 처음 경험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는 2학년 학생 중에서 열 명을 뽑아 3학년이 되면 지도부 학생을 구성하기 위하여 충남 아산에 있는 현충사 옆 충무 교육원으로 일주일간 교육을 보냈다. 나도 그 일원으로 충무 교육원에 입소하여 교육을 받게 되었다.
교육을 받던 중 분임토의가 있었는데, 경기도 내 다른 학교에서도 모두 왔는지라 수백여 명의 학생들이 입소하여 서로 모르는 학생들끼리 분임 토의를 하게 되었다.
분임 토의에 앞서 각자 자기소개를 하게 되었다. 다른 학교에서 온 학생들은 각자 멋지게 자기소개를 하였다. 스스로가 별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걱정을 하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저는 사이클 선수 입니다. 경기도 대회에서 1위를 한 적도 있습니다…"
내가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자 쉬는 시간이 되어 모르는 친구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나는 한번의 거짓말을 숨기기 위하여 일주일 내내 거짓말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에 가서 사이클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며 거짓말꺼리를 공부하여야만 했다. 무슨 말로 자전거에 대한 거짓말을 할까 늘 노심초사했었다. 다른 친구들이 물어올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그 때 나는 왜 진실을 말하지 못했을까? 너무도 후회가 되었다.
"저는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틈틈이 소의 꼴을 베고, 나무를 하며, 부모님을 도우며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라고… 아마도 그렇게 말하였다면 친구들은 더욱 정답게 다가왔을 것이다. 거짓말을 하면서 무척이나 괴로웠다. 한번의 거짓말은 그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거짓말을 필요로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러한 거짓말을 계속 꾸며대는 사람에게 속을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의 거짓말은 스물이 좀 넘은 시기인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가정형편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지방에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아끼는 친구들이나 친척들은 나를 만나면 ‘지방공무원도 좋지만 대학을 나와야 큰 사람 된다며 요즘 진학 공부를 하고 있느냐’ 물었다.
그때 나는 공부도 하지 않고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으면서 학원에 등록하여 다닌다고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 생각난다.
사촌 누이 동생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은 오누이의 정을 물으며 즐거웠다.
"오빠 요즘 뭐해?"
동생이 물었다.
"으응, 나 학원 다녀."
나는 미적지근한 표현으로 억지로 둘러댔다.
"어디? 무슨 학원?"
동생이 재차 물었다.
"으응, 고려 학원, 신설동 로터리에 있는…"
나는 문득 신설동 로터리에서 본 고려학원 생각이 나서 둘러대었다.
"어, 그거 검정고시 학원인데…" 라며 동생은 금방 얼굴색이 변하였다.
나는 그 때 정말 후회하였다.
왜 놀면 논다고 말하지 못 하였던가… 젊었을 때 조금 노는 것이 뭐 그리 부끄러운 것 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던가?
지금도 거짓말을 생각하면 그 때 사촌 동생의 실망하는 얼굴이 생각난다.
나는 이제 나이도 조금 들고 하여 이제는 좀처럼 거짓말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 전의 일이다.
동네에서 나를 무척이나 따르고 좋아하는 후배가 있다.
객지에서 만난 선후배인지라 서로에 대하여 잘 몰랐으나 친분은 두터웠다.
그날도 그와 나는 술을 한잔씩 나누며 친분을 쌓고 있었다.
그 후배가 내게 물었다.
"형님! 이 동네 토박이예요? 어떻게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알아요?"
"응, 나 원래 이 동네 토박이야. 우리 아버지 대로부터 이 동네에 살았어!"
나는 술김에 그런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물었다.
"예에, 그렇군요. 그러면 초등학교는 어디 나오셨어요?"
그가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나아? 나 응암초등학교 나왔어!"
나는 다시 깊은 거짓말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왜 시골초등학교 다녔다고 왜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였을까? 열심히 공부한 것이 무슨 부끄러움이라고…
그날 술자리야 어떻게 흐지부지 끝나 위기 모면을 하였지만, 나는 그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나중에 그를 만나 그가 물으면 대답하려고 내 나이 또래가 응암초등학교 몇 회인지를 물어 보는 어리석음을 범하였다. 나는 그를 만나기가 무서워지고 그를 먼발치에서만 바라보아도 가슴이 철렁한다. 이제 그와 거리가 생겼다. 나는 생각한다. ‘하루 빨리 그와 만나 거짓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여야겠다.’고…
옛말에 '체'가 가장 힘들다는 말이 있다.
알고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이야 대수가 아니지만, 모르고도 아는 체 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꼴불견 아닌가.
우리 주변에는 가끔 찢어지게 가난하면서도 부유한 체하며, 씀씀이를 사치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그런 사람은 얼마 가지 않아 거지꼴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도 알려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기에 모른 것을 알고 난 후에 사전을 찾고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배우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아는 사람이요, 없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여기고 후에 모으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농사꾼이 샐러리맨처럼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들로 나간다면 그것이야 말로 꼴불견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본연의 일에 대하여 충실할 때 가장 아름다워질 수 있다. 농사꾼이 옷과 손에 흙을 묻히고, 자동차 공업사의 정비사가 기름을 묻히며, 칼국수 집 주방장이 밀가루를 묻히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스러움이다.
우리는 가끔 주변에서 나이를 속이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사람은 진정한 친구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의 내면에 늘 거짓으로 친구를 대하는데 그 친구는 나를 진실로 대해줄 수 있을까?
거짓말을 하려는 이들에게 경고한다. 하나의 거짓은 수많은 거짓을 낳는다. 하나의 거짓을 덮으려면 열, 스물의 거짓 덮개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 열, 스물의 거짓 덮개는 당신을 친구로부터, 이웃으로부터 비웃음꺼리로 만들고 결국 당신은 외톨이가 될 것이다.
가장 넉넉한 사람은 신의를 가진 사람이고, 자신을 믿어주는 친구가 많은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