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당당히 영화의 출연진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있었다.
2002년에 개봉된 '집으로'는 엔딩 자막에 출연진과 스태프를 소개하면서
잠깐 출연했던 소를 '라형구씨 댁 황소'라고 소개했다.
'집으로'는 일곱살배기 도시 아이와 70대 산골 할머니의 어색한 만남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 가는 정을 담았다.
400만 관객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 영화는 주인공이나 출연진,
장면에서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었지만 역시 픽션이었다
이번에는 아예 소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화제다.
'워낭소리'에는 칠순이 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마흔 살이 넘은 소가 출연하며,
배경 역시 쇠락한 산골마을이다.
소나 말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이 '워낭'이다.
어릴적 고향에서는 워낭을 '요롱'('요령'의 경상도 방언)이라고 불렀다.
야산에 소를 풀어놓은 뒤 해가 저물 무렵 소가 어디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요롱소리였다.
가끔 소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바람결에 실려오는 이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워낭의 본래 목적이 아닌 듯하다.
소가 다른 짐승들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어른들이 밤중에 워낭소리가 들리면 "소에게 무슨 일이 있는가"라며
외양간으로 간 기억이 떠오른다
영화 '워낭소리'의 흥행 열기가 예사롭지 않다.
독립영화 사상 최다 관객, 최다 상영관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고 있다.
11일까지 40만9천명이 영화를 봤고 주말, 60만명 돌파도 가능하단다.
기획 5년, 촬영 3년을 포함, 10년이 걸린 제작기간이 말해주듯 영화 한 컷 한 컷은 일종의 기다림이다.
물론 영화를 이끌어 가는 힘은 노부부와 소의 진실된 삶의 모습들이다.
그것은 신뢰를 통한 배려의 모습으로도 다가온다.
그래서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오랜 동반자(Old Partner)'인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한번 되돌아보아도 좋을 듯하다.
강종규 논설위원 jk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