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식목일의 유래에 대해서는, 신라가 당나라 세력을 몰아낸 날이자 조선 성종이 동대문밖 선농단에 나아가 제를 지낸 뒤 적전을 친경한 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식목일이 4월 5일로 정해진 것은 미군정 당시로 1946년으로 추정된다.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의 연표를 이용하면 1회 기념식이 1947년 4월 5일 서울 사직공원에서 거행되었다고 나오는데 신문 기사를 통해서도 당일날의 행사를 확인할 수 있다. 정부 수립 후 1949년에 공휴일로 지정되어 1960년에 잠시 폐지된 후 이듬해 다시 부활되어 나무를 심고 가꾸는 날로서 매해 기념되고 있다. 식목일이라는 특정한 날을 정해서 기념을 시작한 것은 조선총독부 때라는 것이 통설이다. 식민지 시기에 조선총독부는 4월 3일을 식목일로 정해서 기념행사 등을 거행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주요 백과사전 등에 나오는 내용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역통의 검색을 통해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단, 해방 후 식목일 제1회 기념식이 1946년인가 1947년인가에 대해서는 기록에 차이가 있으므로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역통을 통해서 재밌는 기록을 찾을 수 있는데 서재필의 기록이 그것이다. 역통에서 식목일로 검색하면 문서에 1건이 검색된다. 독립기념관 제공 자료로 The New Korea, 1938년 11월 10일자 서재필(Philip Jaisohn)의 My Days In Korea라는 기사이다. 이에 따르면 1897년에 서재필에 의해 4월 5일이 식목일로 지정되었으며 왕이 그 내용을 법령으로 선포하였다고 한다. 서재필의 회고에 의한 글이므로 그 내용에 꽤 신빙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규장각에서 제공하고 있는 이 시기 관보에는 관련 사항을 확인하기가 힘들다. 관련 날짜의 관보를 뒤지거나 식목일을 표현할 만한 다른 검색어로 검색하여 보면 해당 사항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지금까지 식목일은 미군정 당시 식목일 제정에 기원하는 것으로 보고 조선총독부가 4월 3일을 식목일로 지정한 것을 그 전사(前史)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재필의 회고가 사실이라면 식목일은 조선말 개화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왜 4월 5일이라는 날짜를 택했는지는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