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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에 마음을 씻고…원시림 그늘에 나를 누인다 | ||||||
산허리 감도는 100리 물길. 그 길따라 거슬러 오른 외길 하나. 제 그림자에 놀란 송사리가 재빠르고, 멀뚱멀뚱 쳐다보는 어린 노루가 길 비키기를 머뭇거리는 때묻지 않은 자연. 6·25의 포성도 바람결에 스쳐간 오지 중 오지인 그곳에 원시의 시정이 봇물처럼 쏟아져 내린다.
고선리 구마계곡은 그곳 봉화의 수많은 계곡 중 하나. 하지만 계곡은 국토의 모산 태백산에서 발원된 골짝답게 100리 길을 헤쳐가며 물길을 열어놓고 있다. 그 중 절반은 원시림의 세계. 울창한 수림 사이로 넉넉하고,때론 게으르게 흐르는 계곡은 굽이를 돌 때마다 청정자연의 싱그러운 속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구마라는 이름은 이 골짝 어딘가에 아홉마리의 말을 맬 수 있는 구마일주(九馬一柱)의 터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것. 지금도 이 전설은 흐르는 물결따라 마방 죽통골 굴레골 등의 이름으로 오롯히 살아 있다.
계곡으로의 여행은 소천면 소재지인 현동리 현동삼거리에서 태백방면으로 좌회전,다시 3㎞ 더 올라간 지점에서 길 건너 고선2리 마을 표지석을 보고 좌회전하면서 시작된다. 들머리는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만한 시멘트 포장길. 길 왼쪽으로 보이는 평범한 개천이 구마계곡의 물이 흘러든 현동천이다.
개천과 나란한 외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4㎞쯤 지나 마방교라는 다리가 나온다. 계곡의 아름다움은 여기서부터 펼쳐진다. 하지만 걸어가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거리다. 차로 타고 갈 수 있는 마지막 마을인 간기까지 아직도 6㎞가 남아 있고 또 간기에서 8㎞이상 더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달려선 곤란하다. 길 자체가 협소한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물 먹으러 내려온 산짐승들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어를 1단으로 넣고 천천히,그러면서도 간간이 만나는 비포장도로의 굴곡에 몸을 맡기다보면 저 멀리서 뛰어노는 어린 노루와 다람쥐,심지어 뽈뽈거리면 기어다니는 도마뱀까지 시야에 넣을 수 있다. 간혹 오전 중에 이 길을 오른다면 좀처럼 보기 힘든 몽환 같은 물안개도 만날 수 있다. 계곡을 찾는 이들에게 제공되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다.
계곡의 끝마을인 간기는 노루가 물을 먹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해서 이름 붙은 노루목과 두어 채 집으로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 큰터민박집을 지나면 곧 만난다. 마을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사는 사람은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 안창수(67·여)씨와 민박집 아래의 오빠 내외 뿐이다. 동족상잔이 나서 빨치산이 출물하기 전에는 20여가구가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고 한다.
찻길은 여기서 끊어지고 대신 산책길이 열린다. 계곡도 여기서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태백산 사고지가 있는 각화산의 중봉이고 오른쪽은 청옥산과 태백산이 함께 자락을 늘어뜨리고 있는 도화동이다.
구마계곡의 매력은 빼어난 풍광보다 깨끗한 자연이 앞선다. 기암과 폭포로 어우러지는 화려함보다 수수하지만 때묻지 않은 숲과 여울이 눈부시다. 높은 산 깊은 골짝도 오염되고 있는 세태에서 원시의 자연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계곡이 순하고 부드럽다는 것도 손꼽히는 자랑이다. 아름답지만 눈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계곡이 그리운 계절이기 때문이다. 어디든 첨벙 뛰어들어도 안전한 물놀이장인 이 계곡은 그런 면에서 최고의 피서지인 셈이다.
곡의 진수는 바로 이 마을 끝에서 도화동으로 오르는 8㎞ 구간에 걸쳐 펼쳐진다. 물길은 계곡을 닮아 천천히,그리고 넉넉하게 흐른다. 물색은 너무 맑아 그야말로 무색이다. 소와 담으로 떨어지는 하얀 포말이 없다면 물이 흐르지 않나 착각이 들 정도다. 구중궁궐의 대들보로 쓰였다는 춘양목도 계곡의 운치를 더한다. 원시림을 뚫고 들어온 조각빛이 물 표면에 쪼개지면서 빚어내는 실루엣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포스터를 연상시킨다. 물길 좌우로 군락을 형성한 단풍나무 또한 황홀한 가을의 전설을 예고한다.
도화동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역시 넓고 편안해 가족과 함께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길은 원시림 사이로 줄곧 이어가지만 간간이 햇볕이 쏟아지는 구간으로 바뀌기도 한다. 계곡을 오르면서 서늘해진 몸을 말릴 수 있다. 근처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한 일주일쯤 푹 쉬었음하는 바람이 돌아오는 찻길 내내 지워지지 않는다.
글·사진=진용성기자 ysjin@busanilbo.com" target=_blank>ysjin@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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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눈으로 먼저 피서를 했네요 .올해도 해외로 많이 나갔다고 하는데 이런곳으로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