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쉼터를 나오다가 외 4편
이상호
학대 받은 할머니
독서심리 치료 수업 하고 나오는 길
외동아들 술주정에 몸 성할 날 없고
몇 달 뒤 쉼터 나가도 갈 곳 없다는 말씀
한 숨과 한 숨으로
먹먹한 마음 추스르며 걷는데
길 옆 은행나무
갓 피어난 새순 하나
옹이 옆에서
파르르 파르르
길옆에서
이상호
길을 걸으면서도 나는 길을 모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피었다 지고 다시 폈다 지는 꽃들처럼
오늘도 길을 걸으면서
나는 여전히 길을 모른다
아내에게
이상호
구름이 음표처럼 흘러가듯이, 나무가 서로 합창을 하듯이
간혹 구름이 먹구름으로 변하고 나무가 잡은 손을 놓치더라도
또, 아침이 오듯 음표처럼 합창처럼
살아 갈 내일의 손을 꼭 맞잡는
퇴촌댁
이상호
종조할머니를 엄마라 불렀고
할아버지 딸로 호적에 올랐고
삼촌이 오빠가 되고
엄마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민간인학살사건으로
본적도 없는 아버지
유복자로
73년 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사람
벚나무는 바쁘다
이상호
집 앞 가로수 벚나무는 참 바쁘다
어제 꽃 피었다 생각했는데
벌써 꽃 떨어졌다
서둘러 나선 길
달리는 차 뒤꽁무니에서 떨어져 나가는 꽃잎이
어지러운 꿈처럼 난자한 아침
확 피었다
확 지고 마는 벚꽃처럼
언제 꽃이 피고
언제 꽃이 졌는지 모르고 사는
내가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