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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들 <펌>명말청초 만주족에 의한 한(漢)족 대규모 학살
한교 추천 0 조회 1,144 09.07.21 12:41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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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7.21 13:24

    첫댓글 우아... 어찌했든 인구의 절반이상을 잃었다는거네요.... 한족이 원,청같은 이민족 왕조에 적대적인 평가를 내릴법도 하네요..;

  • 작성자 09.07.21 14:50

    명나라가 내부분열과 스스로 약체화 되지 않았다면.. 청군의 저런 만행도 불가능했을듯요..그냥마구잡이식으로비교하자면 민간인까지 합쳐 전사자 교환비가 한 1대 100정도는 되는군효.

  • 09.07.21 15:31

    양주에서 청군이 저지른 학살은 매우 유명하죠. 남명의 장수인 사가법이 끝까지 저항하다가 순국하고, 자그마치 30만 명이 넘는 한족들이 청군에게 학살당해, 그 시체에서 나온 피에 현판이 떠다녔다고 했을 정도라는군요.

  • 09.07.21 18:31

    한번 당하기 시작하면 저렇게 피바다가 됐으니, 한이 골수에 맺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 09.07.22 00:56

    조선인은 얼마쯤 끌려갔나요?조선은 어떤 꼴을 당했는지 기록이 없습니까? 조선에게는 변발을 강요 안한게 다행이군요.어떻게 보면 수백년동안 쌓인 감정이 많은데 말이죠.

  • 09.07.22 01:20

    병자호란이 끝나면서 조선인 포로가 최대 60만에 달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다른 기록들도 최소 10만에서 20만 명의 조선인이 청군에게 붙잡혀 갔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족히 수십만의 조선인이 청군의 포로가 되어 청나라로 끌려가 노예 생활을 했고, 조선에 남아있던 가족들이 몸값을 마련해 찾아가도 몸값을 높게 부르는 바람에 찾아오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 09.07.22 01:32

    청나라에 잡혀간 조선인 포로들의 경우, 남자들은 조선영이라고 해서 청군 휘하의 외인부대에 소속되기도 했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노예가 되어 논밭을 일구거나 각종 공사장에 끌려 다녔습니다. 여자들의 경우는 청나라 귀족이나 군사들의 성노리개가 되어 더 비참한 생활을 살았습니다.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면 제가 쓴 <옛사람에게 전쟁을 묻다>의 "청에 끌려간 조선 포로의 삶"과 "환향녀, 비뚤어진 시각이 남긴 아픈 흔적" 부분을 참조하세요. ^ ^ ~

  • 09.07.22 07:36

    흠.... 좀 이상할지 모르나.... 전 청대의 역사에 대해 대체적으로 한족 편입니다.... 음 이글만 보면 당시 한족(그래도 당시 가장 귀한 명나라 시민권자들이었는데....)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들이군요... 뭐 극단적 비교로 , 북방민족극야만적 시각등으로 본다면 이글또한 칭기즈칸의 흥기시대 몽골의 잔육한 살육방식 과 쌍벽을 이룰만한 자랑스런 글

  • 09.07.22 07:43

    입니다. 그리고 20세기 전반기 일본이 저지를 최대의 만행보다도 더 값진 짓이고요...... 전 청나라 이꼴 현재 무형유형의 중국완성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잠깐 얘길 센다면...20세기가 시작된지 얼마지나지 않아...청조 최고 권력자 서태후는 만한통혼 금지를 폐지합니다.... 자 어떻습니다...이제 표면상 청제국은 보통의 중화제국이 되었습니다....(그전에도 차이나 엠파이어 였지만...) 뭐...뒤에 나올 중화민쿡, 인민공화국의 앞...그러니까... 원형이 되었죠... 더이상 한인들이 청나라인(아주 작은 범주로는 만주족등 팔기인)이 아니다...재외국민이다..이제 쓸모없는 말이 되었죠...이는 당시 메이지 일본등에서의 국민형성등과도

  • 09.07.22 08:50

    "만한금혼 폐지 -> 청의 중화제국화, 민족통합 -> 근대국민국가 형성" - 이렇게 보시는듯 한데, 청은 그 이전부터 스스로를 '중화제국'으로 자칭했습니다!!! "만주족의 무력 + 한족의 문화 = 새로운 중화" - 이게 청나라가 내건 '중화'였죠... 또 서태후가 그런 조치를 행한 후에도 '만한관계'는 여전했으며~ 기본적으로 서태후는 '만주귀족'과 '한족관료'의 알력을 이용해서 정권을 공고히한 사람입니다!!! 결코, '민족통합' 따위에 발을 들일 사람이 아니었어요...ㅡㅡ; '소수민족 차별'이 아직까지 살아있고, '근대국민국가'도 미완성인 나라가 중국입니다...ㅉㅉ

  • 09.07.22 07:47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당시 청은 이것말고도 국적법이라든가? 입헌 절차등등까지도...완전히 새롭게 탈바꿈 하기 위해 변혁을 시도했죠..... 다음은....한줌 서양에 비해 무력이 강대한 중화제국에 관한것인데...... 비록 가설이지만....18세기 이전까지 서구가 중국을 침략하지 못한것은 당시 중화제국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스페인도...영국도.... 중국을 공격하지 못했죠...

  • 09.07.22 08:44

    18세기까지 서구국가들이 중국을 넘보지 못한 것은~ '항해기술 미흡' 등의 요인 이외에도, '중국 공포증'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청나라의 정성기인 '강건성세'에 중국에 왔었던 영국인 '맥카트니'는 "중국은 거지꼴의 노후한 대국"이라고 평했다지만, 당시 서양에는 중국의 직접적인 상황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고, 이것이 '과대평가'로 이어졌던 것이죠^^; 그러나 1840년 '아편전쟁'을 계기로 중국의 실체를 인식한 서구열강들은~ 앞다투어 중국침략에 혈안이 됩니다!!! 같은 아시아의 일본도 '청일전쟁'을 계기로 '중국 공포증'을 떨쳐버리고,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하죠...ㅡㅡ;

  • 09.07.22 07:50

    근데....만주족은 중국에서의 싸움에서 여타 다른 경쟁세력을 물리치고 취후 승리자가 되었습니다...비록 결과적이지만...그럼 중국을 새로 접수한 만주족은 서구보다 무력이 강하다라는 말이 나옵니다....명이 그렇게 약한것일까요? 아니면 이것은 어느정도 내전적인 요소가 있는지라....완전한 재외세력인 서구는 중국을 정복할순 없지만..(혹은 영토을 차지할수 없지만)만주족은.....천명등을 받아...중국을 차지할수 있는걸까요? (좀 다른 얘이지만......7세기 중국을 차지한것은(강력한 수를 대체한것은) 고구려가 아니라.....이씨 일가 였습니다...)

  • 09.07.22 21:23

    만주족이 중원에 들어오는 소위 '입관(入關)'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명나라의 '자멸'이었고, '한간(중국의 배신자)'들도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만약 '이자성의 난'이 진압되었다면~ 청나라의 '입관'은 한참이나 늦어졌을 겁니다... 명나라의 불행은 앞뒤의 적을 맞아야했다는 겁니다...ㅉㅉ 예컨대 숭정 10년(1637)에 양사창 등이 이끄는 관군 10여 만이 난을 거의 진압하고, 장헌충의 항복을 받기까지 했었고, "청과 화의하고 우선 난을 진압하자"는 의론이 있었지만, 반박되었죠ㅡㅡ; 이렇게 난이 평정되려는 찰나, 이듬해인 숭정 11년, 청군이 대대적으로 침범해와~ 관군이 철수하자 난이 되살아 나고...

  • 09.07.22 08:44

    게다가 청나라가 '입관'할 당시에는 명나라의 구심점인 '북경조정'이 붕괴되고, '대명천자'도 자결한 상태로~ 사실상 '지휘부'가 상실된 상태였기에 손쉽게 각지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겁니다!!! '남명정권'의 쓰레기들은 백성들을 단결시켜 "무지막지한 오랑캐"를 당적할 구심점의 역할을 하지 못했구요...ㅡㅡ;

  • 09.07.22 07:58

    끝으로.....청대 인민들은 살기 편한 시대였나 입니다... 그리고 만청시대 청 집권자의 극악무도한 행패질은 중국 역사에서 특수한 것인가? 아니면 기강이 엄벌한...혹은 소년천자 강희에게서 볼수 있는 선정을 베푼..... 냉정하고 좋은 시대 였는가 입니다.... 솔까 말....그럼 명나라 종실들은....최고 권력자는....꽃추 없는 나부랑이들은 당시 명대 백성들을 대규모 패죽이지 않았는가? 자세히 살펴보진 않았으나.....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명나라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혹한 관의 횡포에..... 반란군의 봉기에...... 배고픔등에

  • 09.07.22 07:59

    의해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 09.07.22 08:49

    물론 중국 역사상 많은 '대량도살'이 있었지만, 만주족처럼 단기간에 저렇게 많은 인구를 학살한 전례는 매우 드뭅니다... 명나라의 부패도 정말 병맛이지만, 청나라도 그 이상으로 썩어 문드러졌고, "가혹한 관의 횡포에..... 반란군의 봉기에...... 배고픔"은 마찬가지였어요...ㅡㅡ; 그러나 "어치피 그놈이 그놈..."이라고 생각해 봐도, 만주족의 '대량도살'은 명나라의 부패를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ㅡㅡ;;

  • 09.07.24 14:51

    몽골군을 빠뜨리셧군요.; 뭐 만주족은 학살을 점령, 통치를 위한 정책으로 썻지만 말입니다.

  • 09.07.29 18:51

    강건성세 시절에도 민란은 있었죠. 특히 건륭제 때부터 산동, 대만, 그 유명한 백련교의 난까지.. 명나라때나 청나라때나 백성들 힘들기는 매한가지니.

  • 09.07.30 12:38

    실상 따지고보자면 만주족이 발흥하기 이전에 한족에게 탄압 당한걸 생각하면 샘샘 아닌가요?

  • 09.07.31 18:15

    하기야 한족들도 기회만 닿으면 어떻게 저것들을 다 쳐 없앨까 궁리했겠죠.. 이이제이 전술 자체도 제압할 힘은 안 되고 견제는 해야겠고해서 나온 전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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