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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김흥겸
“끝까지 막 나가는 거야, 타협하지 말고”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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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했다. 아마 수잔 손탁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인간을 착한 인간, 악한 인간으로 구분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세상에는 다만 매력적인 인간과 지겨운 인간이 있을 뿐이다.’ 손탁의 말마따나 나에게 인간을 재는 지극히 주관적인 척도가 하나 있다면 만났을 때 뭔가를 끌어당기는 힘, 곧 매력이 있는 인간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여자인가, 남자인가, 선량한가, 도덕적인가, 어떤 이름을 갖고 살아가는가, 나이가 몇인가, 무슨 일을 하는가, 따위는 사실 매우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몇 마디만 주고받아도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인간의 매력이란 실상 그 존재를 구성하는 다른 어떤 요소보다 우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내가 제일 경계하는 부류는 ‘착하고 지겨운’ 인간형이다. 사람들로부터 늘 착하다는 말을 듣기 때문에 그게 칭찬인 줄만 알고 자신이 지겨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여 변화를 꿈꾸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착하다는 건 대개 체제순응적이거나 갈등을 피하느라 외부세계의 규범과 가치를 매우 적극적으로 내면화한 상태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생각 없이 착한 여자들이 지겨운 이유는 생각 없는 남자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진정한 매력 -생각 없는 남자를 위협할 수도 있는- 을 스스로 포기하기 때문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상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인간형은 남녀 불문하고 다시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성(性)적으로 끌리는 인간이고 둘은 종(種)적으로 끌리는 인간이다. 종적으로 끌린다 함은 바로 ‘피가 땡긴다’는 느낌, ‘나와 같은 종자의 인간임을 확인하는 데서 오는 가슴 뜨듯한 자매애나 형제애’가 발치에서부터 솟구치는 경우를 말한다. 성적으로 끌리는 인간이 대체로 특정한 긴장과 흥분으로 인한 조울증과 환멸, 그리고 결국 그로 인한 관계의 변질이나 파국을 예견하게 하는 반면, 종적으로 끌리는 인간은 언제나 몸은 느슨하고 마음은 편안하여 감정의 굴곡 없이 대화 가능한 상태를 보장한다. 그러면서도 늘 싱싱한 상상력과 기발한 사고의 반전으로 새로운 삶을 꿈꾸게 하는 동력으로 자리한다. (갱년기를 늦추고 노후까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싶다면, 종적인 매력을 갖춘 인간관계를 풍요롭게 일구는 게 관건이다.) 나에게 있어 김흥겸은 바로 그런 종적인 매력을 느끼게 했던 인간의 한 전형처럼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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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7월 중순부터 8월 초순까지, 그 덥고 덥던 여름날, 드라마 극본창작팀 팀장인 나와 유일무이한 팀원 김흥겸, 덩달이 자문위원 정혁현 이렇게 셋은 이틀이 멀다 하고 성공회대 캠퍼스로 모여들었다. 김흥겸의 집이 바로 성공회대 앞이었으므로 극본집필회의를 위한 최적의 장소로 방학을 맞은 성공회대의 빈 강의실을 택한 것이었다. 노트북과 도시락, 탁구채가 필참 목록이었다. 셋은 일단 만나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식당이나 잔디 위에서 도시락부터 먹었다. 그리고 잠시 내용 없는 대화를 주고받다가 탁구를 쳤다. 둘이 붙어 지는 사람이 무조건 떨어지는 토너멘트로 쳤는데, 나무랄 데 없는 건강 상태의 두 부부가 깡 마른 암환자 한 명을 당해 내지 못하여 번번이 떨어지는 바람에 김흥겸은 쇠약한 체력으로 연달아 인디언처럼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두 남녀를 상대해야 했다. 정혁현 이신정은 붙는 족족 나가떨어지면서도 이겨보겠다는 투지를 불태우느라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러댔는지 - ‘아자자자, 으쌰, 파이팅, 간다! 맛 좀 봐라’ 따위의- 곧 경비 아저씨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화장실에 가서 잠시 흘린 땀을 씻고 난 뒤에는 도서관에 들어가 돌아가며 노트북으로 뿅뿅을 했다. 소음을 견디다 못한 몇몇 학생들은 ‘대체 저 아줌마 아저씨들, 뭐하는 인간들이야’ 하는 표정으로 하나 둘 도서관을 떠나곤 했다. 마침내 그렇게 공부하던 학생들이 다 떠나고 나면 우리 역시 갑자기 뿅뿅이 재미없게 느껴져서 어쩔 수 없이 셋 중 하나가 이제는 집필회의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곤 했는데, 대체로 내가 그랬던 것 같다. 회의차 적당한 빈 강의실을 찾아 들어가면 일단 한 명은 강단 위에 신문지부터 깔았다. 왜냐, 자야 하기 때문이다. 김흥겸이 먼저 강단 신문지 침상 위에 누워 자면, 정혁현과 나는 자판기 커피 한 잔에 보조가방에 싸 가지고 간 ‘뻥이요’나 ‘썬칩’등을 산처럼 쌓아놓고 먹다가 졸다가 졸다가 먹다가 하기를 반복했다. 이윽고 김흥겸이 잠에서 깨어나면 정혁현이 바톤 터치를 하여 팀장과 팀원의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곤 했다. (물론 회의내용은 당시의 기억들을 소환하여 재구성한 것이므로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고 믿는 이들은 바보임에 틀림없다.)
그 : 일단 집필은 팀장이 해야 하는 거, 알죠?
나 : (볼이 터질 정도로 뻥이요를 입에 문 채) 왜여?
그 : 원래 그런 거예요. 팀장이 괜히 팀장인가.
나 : 그럼 팀원은?
그 : 옆에서 야부리를 풀어 주는 거지.
나 : 팀원이 집필하고 팀장이 야부리 풀면?
그 : 그럼 위계질서가 어긋나죠.
나 : 그런가여?
나는 혹시 나의 나쁜 머리를 들킨 게 아닌가 몹시 불안하여 재차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나 : 그럼, 팀장이 집필하는 내용에 대해 이의제기를 안 할 건가여?
그 : 그럼요. 팀장이 쓰는데 어떻게 감히 팀원이 딴지를 걸어요.
나 : 그럼 날도 더운데 만날 이케 모여서 집필회의를 할 필요도 없는 거잖아요.
그 : 그건 그렇지 않죠.
나 : 왜여?
그 : 야부리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야부리는 모든 창작의 발판이에요. 상상력을 자극하니까.
이렇게 말하는 순간, 그는 이미 빛의 속도로 ‘뻥이요’를 집어먹고 있었다. 위암환자가 그런 과자를 먹으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은 이미 그가 상당량의 뻥이요를 집어먹은 뒤에 찾아 왔다. 말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그는 이미 ‘썬칩’에도 손을 뻗고 있었다. 나는 내 자신이 아무리 나쁜 짓임을 알고 저지르는 짓이라도 누가 말리려 들면 그 짓을 더 하고 싶어 했다는 걸 기억해 냈다. 그래서 그냥 놔두었다. 사실 그 때 내 머릿속은 팀장인 내가 팀원에게 말려들고 있는 게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팀의 대표자로서 내가 집필을 해야 한다는 말에 이의를 달기는 어려웠으므로 그냥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근데 문제는 그러고 나자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다시 나가 놀기로 했다.
나가 노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한 여름의 텅 빈 대학 캠퍼스는 언뜻 나태해 보이면서도 고혹적이었고, 맘만 먹으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해찰을 부려댈 것도 천지사방 널려 있었다. 생활비와 교회 월세를 벌어 보겠다고 의기투합하여 팀을 꾸린 30대의 철없는 아줌마, 아저씨들 셋은 소나기가 쏟아지면 우산을 받쳐 든 채 철벅철벅 신이 나서 물찬 운동장을 돌아다녔고, 그러다 느닷없이 비가 그치고 나면 물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잔디 위에 앉아서 바밤바나 누가바를 핥으며 온갖 수다로 난장을 벌이곤 했다.
여름 내내 그렇게 모여 먹고 자고 탁구치고 수다 떨며 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가끔은 아주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 대화중에 김흥겸은 수시로 반복해서 우리 부부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신정씨는 원래 꿈이 뭐였어요?” “혁현아 너는 뭐하고 살고 싶냐?” “신정씨는 앞으로 뭐가 되고 싶어요?” “두 부부는 지금 당장 꾸는 꿈이 뭐야?” 나는 난감하여 그냥 모르겠다 답하기도 하고, 어려서 되고 싶었던 직업적 모델들을 나열하기도 하고, 아주 얼토당토않은 꿈을 말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와중에 불가불 진심을 드러낸 적도 있었다.
나 : 실은, 쫌 창피하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글로 사람을 위로하기도 하고 글로 문제를 일깨우기도 하고...
그 : 잘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나 : 내가 알기로 나란 인간은 재능도 부족하지만 무엇보다 끈기가 부족하답니다.
사람이 워낙 가벼워서 누가 계속 잘 한다고 칭찬해 주거나,
아니면 글이 밥을 먹여 주거나, 그 두 경우가 아니면 아마 계속 쓰지 못할 거예요.
그 : 으음.. 내가 보기에는, 신정씨 글에는 개성이 분명해. 그걸 키워야 해.
나 : 뭐가 개성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 막 나가는 거.
나 : 머여? 거 욕 아녀요?
그 : 그게 아니라, 말하자면 이런 거죠. 사람들이 가렵긴 가려운데 체면 때문에
잘 못 긁는데 있잖아요. 신정씨 글은 그런 데를 약~간 긁어주거든?
근데 아직 아주 시원하지는 않아. 그러니까 막 나갈래면 아예 끝까지 막 나가라구.
어정쩡하게 타협하지 말구. 막 나가는 척 하다가 갑자기 할렐루야, 예수님 사랑이
어쩌구 이러믄 진짜 짜증나거덩.
나 : 내가 은제 할렐루야 했다고라?
그 : 끝까지 가란 말예요. 소심하게 눈치 보다가 주저앉지 말구. 머 더 잃을 것두 없잖어?
사실 여자가 막 나가면 더 못 말리거든. 그리구는 시치미를 뚝 떼는 거지. 불쾌하다고
딴지거는 인간들은 신경쓰지 말구, 통쾌해 하는 사람들하고 같이 가는 거야. 그래서
특히 기독교 판에서 이른바 경건하다고 생각하고, 거룩하다고 믿고 있는 것들을 다 깨
놓는 거야. 뭐 한 마디로 깽판을 치는 거지. 으아아, 씨발, 생각만 해도 통쾌하다.
나 : 혹시... 그거, 흥겸씨가 하고 싶은 일 아녀요?
그 : 으흐흐.
나 : 맞죠? 나 앞세워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시킬려는 거지? 그래서 나 팀장 시킨
거지? 그죠? 내가 머리 나쁘다구 위험한 거 다 나 시키구 뒤루 빠질려는 거지.
아, 씨... 내가 못 살어. 남편이 부실하면 남편 친구들이라도 좀 믿을 만해야 되는 거
아녀요?
생각해 보면 김흥겸은 그 때 자기 자신한테 던지고 싶은 질문을 우리 부부를 우회로삼아 던졌던 게 틀림없다. 원래 자기 꿈이 뭐였는지, 지금 뭘 하고 싶은지, 아니 뭘 하면 좋은지, 앞으로는 또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몸의 중요한 일부를 잃고 난 다음에야 그는 자기 꿈에 대해 돌아볼 시간을 얻은 것이었다. 그 이후로도 김흥겸은 끊임없이 ‘글쓰기’에 대해 말하곤 했는데, 언제나 논조는 똑같았다. 끝까지 가야 한다는 거, 사람들이 적당히 묻어두고 안 건드리는 걸 건드리고 깨야 한다는 거. 바닥을 봐야 한다는 거. 그는 그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정말로 진지했고, 이는 결코 남 이야기가 아니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곤 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하고 말 거라는 결의 같은 게 비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단지 나를 격려하려는 게 아니라, 내게 투영된 김흥겸의 또 다른 자아에 대해 말하고 격려하고 북돋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내 생각도 그의 생각과 전혀 다르지 않았으므로 농담처럼 넘기긴 했으나 나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새로운 기운을 얻곤 했다. 늘 끝까지 가지 못한 채 안전선 안에만 머물려는 나의 글쓰기 -를 비롯한 인생 전반의 행태- 에 대해 자책이 심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뭐, 따지자면 나는 나이만 먹었을 뿐, 글 쓰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초보상태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목회를 시작하고 나이 서른에 주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내가 글을 쓸 수도 있다는 걸 자각한 때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때 김흥겸의 조언과 격려는 그 누구한테서도 들어본 일이 없는 무게와 관심과 진심이 실린 것으로 나는 정확하게 가려운 부위를 긁고 난 뒤처럼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그 무게와 관심과 진심은 김흥겸 자신이 거듭나려는, 이전과는 다른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변화의 열정을 토대로 맺어진 결실이었으므로 나는 동류항에 속하는 인간을 새로 만난 듯 사기가 충전됐고 덕분에 늘 부족했던 용기와 배짱까지 마구 솟구치는 걸 느꼈다. 사실 그의 말대로, 나는 더 잃을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눈치 보는 건 그나마 뭔가 잃을 게 있는 인간들이 하는 짓 아니던가. 잃을 게 없다는 점에서 다른 차원의 용기를 내야 했던 건 김흥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 때 김흥겸과 나는 아주 좁은 단면이나마 서로가 접촉한 면을 통해 상대 안에서 자신의 한계와 미래를 동시에 보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투사(projection)와 내사(introjection)가 동시동작으로 이루어진 셈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여름이 끝날 무렵, 그 동안 나눈 진지한 대화나 격려와는 무관하게 우리의 극본창작팀은 단 한 푼도 벌지 못한 채 팀이 해체되는 비극을 맞아야 했다. 원고를 퇴짜 맞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 내리 놀다가 막판에 급히 써 갈겨 간 원고가 받아들여졌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다. 부실한 원고를 보고 화가 난 한지원은 내게는 차마 아무 말도 못한 채 괜히 김흥겸을 추궁했다. “팀장언니는 집필이나 했지, 당신은 뭐했어?”
내가 하는 일이 대체로 그랬다. ‘앞으로 뭘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하느라 늘 당장 살아갈 생계수단을 놓치는 것 말이다. 잠시나마 옆에서 지켜본 결과 김흥겸도 막상막하였다. 언제나 뭘 먹고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같지만 정작 자신이 먹고 살 수 있는 방도보다는 남들에게 뭘 먹고 어떻게 살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 주느라 제 시간을 빼앗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은 무척 많지만 정작 그 일에 나서자니 밟히는 얼굴들이 많아 늘 제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 말이다.
그 철부지 같았던 여름으로부터 꼭 1년이 지난 96년 7월, 김흥겸은 거의 완쾌되었다고 생각했던 몸에 다시 암세포가 퍼졌다는 선고를 받고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나는 아주 오랜 망설임 끝에 병원을 찾았다. 그 때 마침 정혁현은 한 달 동안 집을 비운 참이어서 나는 더 용기를 내기가 어려웠다. 살다가 그렇게 궁지에 몰린 사람을 위로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되면 내가 그동안 얼마나 위로 받는 데만 익숙해져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위로받는 건 쉬워도 위로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내 고통과 상처를 들이밀며 투정부리기는 쉬워도 다른 사람의 고통과 상처를 들여다보며 매만져 주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신촌 전철역에서부터 세브란스 병원까지 샌들 뒷굽을 잡아먹을 듯 찐득하게 들러붙는 아스팔트 열기 속에서 느릿느릿 걸으며 느릿느릿 생각했다. 김흥겸은... 나을 수 있을까. 김흥겸과 늙어서도 가끔 만나 깔깔거리며 철없는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 나는 그의 영원한 팀장으로 상상력이 필요할 때마다 그의 야부리를 듣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
병실에는 환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간병하는 분이 있다가 내가 들어가기 직전 자리를 비웠다 했다. 나는 잠시 딴청을 부리다가 당시 유행하던 만득이 시리즈 최신판을 들려주었다. 예상대로 김흥겸은 기운 없어 하면서도 킬킬대며 좋아했다. 그리고는 입가에 웃음을 그대로 머금은 채 이렇게 말했다.
“신정씨, 날 위로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난 정말 괜찮거든요. 나는 그저 이렇게 침대에 누워서 죽는다는 일에 대해 생각하지요. 그럼 정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죽으면 우선 내가 워낙 잠자는 걸 좋아하니까 누구의 간섭도 안 받고 실컷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구요.. 또 한편으로는 살아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거니까 과연 어떤 걸까 호기심이 일기도 하구요. 그리구 정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니까요. 이렇게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 보면 내 장례식 장면이 막 눈앞에 펼쳐져요. 누가 누가 조문을 왔나, 영정에는 어떤 사진이 꽂혔나, 누가 정말 서럽게 우나.. 어떤 놈이 끝까지 안 울고 개기나... 이런 것도 보이구.... 근데... ”
이 지점에서 그때껏 장난기를 잃지 않던 그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근데, 아직 못한 일이 너무 많아서 그게 많이 걸리죠. 특히... 딸 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많이 아프죠... 솔직히 우리 마누라 지원이, 내가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그 친구 걱정은 크게 안돼요, 아주 강한 사람이니까 잘 극복할 거라 생각해요. 우리 엄마도 믿음이 워낙 좋으시니까 잘 이겨내실 거예요. 근데... 우리 아버지랑 우리 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정말 가슴이 미어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 실감한다니까요... 정말루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진다면... 이 일 저 일 하고 싶었던 거 많이 해 볼텐데.. 사실 난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게 너무 많어요. 뭐. 물론 해야 할 일 못한 것두 많구... 사실, 뭐, 헛살았죠 뭐...”
나는 정말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그 앞에 가까이 가 앉아 기도했다. 그런데 그 때 그 병실에서 그가 내게 했던 말들은 하나하나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내가 그를 위해 뭐라고 기도를 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엄청 떠듬거리며 중언부언했던 것 같다. 다만, 개중 단 한 구절만큼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하나님, 흥겸씨 진짜 좋은 사람인데 너무 빨리 데려가진 마세요.”
그것이 의식이 있던 김흥겸과 내가 나눈 마지막 만남이자 마지막 대화였다. 이후로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그를 한 번 더 보고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으로 한 번 더 보았다. 나는 그의 죽음을 무척 아쉬워했지만 대단히 슬퍼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어쩜 나는 김흥겸과 아주 친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는 없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언제 어디서 만나도,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꺼내도 불편 없고 오해 없이 들어줄 부드럽고 다정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떤 시기, 어떤 접촉을 통해 알게 된 그의 일면이 그의 나머지 면모까지 미루어 짐작하고 신뢰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지금껏 나에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글쓰기, 배짱 좋게 갈 데까지 가는 글쓰기’를 권유한 사람은 남편 정혁현과 그의 친구 김흥겸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남편은 그렇다 치고, 김흥겸의 격려는 더없이 자극적인 것이었는데, 나는 그 이유가 바로 김흥겸의 격려 안에 김흥겸 자신의 결단이 배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는 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입시켜 나눠주곤 했던 것 같다. 자기 곁에 누가 있던 그와 나눌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는 걸 찾아내고 바로 그걸 나누는 데서 생의 기쁨을 찾던 사람이 김흥겸이었던 것이다.
나의 신앙을 골자만 추려 표현한다면, 예수가 살아생전 그리고 죽어서까지 꾸던 꿈을 함께 꾸는 것이다. 나는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 그가 꾸던 꿈을 계속 꿀 뿐이다. 죽은 이를 타자화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 이가 살아생전 꾸던 꿈을 계속 같이 꾸어 나가는 것이다. 나는 김흥겸의 유지를 받들어 계속 막 나가볼 작정이다. 그래서 회칠한 무덤의 언어에 갇혀 있는 이들이 불쾌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느끼게 될 때까지 배짱 좋게 밀어붙여 볼 생각이다. 재능이 딸리고 머리가 딸려도 뜻을 잃지 않으면 바닥을 치게 되는 날 오리라 믿는다. ‘나를 바꾸고, 어제와 다르게 생각하기 위해 글을 쓴다’던 푸코의 말처럼 나는 어제와 다른 인간이 되기 위해, 어제와 다른 세상을 만들어 보기 위해 부실하나마 계속해서 막 나가는 글을 써 볼 작정이다. 김흥겸의 표현을 빌어 말한다면, 온갖 경건한 것들 위에 걸터앉아 기름진 밥을 먹는 인간들이 불쾌해 할 걸 생각하면, 으아아, 씨발, 생각만 해도 통쾌한 일이다.

지원언니랑 늘 얘기하곤 했는데... 모르셨죠? 언니: "정말 정말 글재주가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이신정 전도사야" 나:"마자마자"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