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이자 임상심리학자이기도 한 심영섭샘이 꼽은 명장면 best 5 입니다.
여러분은 어떤영화 어떤장면에 마음이 꽂히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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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2005 한국 영화 명장면 >
1. 형사 - 남순과 슬픈 눈의 골목 대결 장면
이명세 감독의 <형사>는 눈물과 해학과 시각적 과장법으로 어우러진 이명세표의 한 판 너스러진 구전 판소리였다. 동시에 그것은 빛과 어둠으로 재창조된 조선, 시간과 공간 모두가 모호한 퓨전 사극의 옷으로 때깔 좋게 치장한 또 다른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속편이기도 했다. 특히 추적에서 대결로, 미장센의 아름다움에서 액션의 역동성으로 방점을 옮긴 이 명세 감독이 그림자가 뚝뚝 떨어지는 달밤, 돌담길에서 벌이는 남순과 슬픈 눈의 대결은 단검과 장검의 대결, 여자와 남자의 대결,정의와 불의의 대결, 외향성과 내향성의 대결 등등 두 사람의 모든 내면적인 사회적인 요소들이 충돌하면서 일거에 절정으로 치닫는 이 명세표 액션의 어떤 경지를 보여준다.휙 솟아 올라 달까지 박차 오르는 무술은 일종의 발레하는 예술, 결국은 에로틱하게 승화된 윤무에 가까운 관능성의 느낌마저 배어있다. 여기에 감독은 저속 촬영과 고속 촬영뿐 아니라 심지어 배우의 실사 동작으로 저속과 고속을 표현하는 무성영화시대의 액션을 차용하기까지 한다. 이 장면은 우리의 스타일리스트인 이명세가 마침내 돌아왔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까지 깨닫게 만든다.
2. 너는 내 운명 - 황정민과 전도연이 구치소에서 대면하는 장면
너는 내 운명은 이제까지의 신파 멜로의 궤도를 돌면서도 농촌에 불어닥치는 국제결혼 문제나 에이즈와 연관된 인권과 언론의 냉대 같은 사회적 반응들을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삶의 조건으로 가감 없이 짚는다. 다큐멘터리 PD 출신답게 우리 사회 곳곳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들인 박진표 감독의 노력이 전도연과 황정민의 눈물의 연기와 버무려졌다고 할까. 이 장면이 장착한 묵직한 최루탄은 관객을 울리는 신파 멜로야말로 혹 한국 영화의 운명이 아닐까 착각하게 만들 정도다.
3. 사랑니 - 마지막 장면. 흐드러진 벚꽃이 만개 한 날, 맹장 수술을 마친 인영은 ‘나 다시 태어나면 석이 될 꺼야’ 라고 울먹인다.
개인적인 2005년 최고 작품은 <사랑니>이다. 이 영화가 갖는 일견 복잡해 보이지만 정교한 이야기 구조, 특히 플래시백인 줄 알았던 화면 전환이 사실은 현실에서 빚어지는 교차편집일 수도 있다는 독특한 얼개는 사랑의 어떤 속성, 세대를 거쳐도 자꾸 반복되고 그러면서도 깊숙한 사랑의 기억이 다시 다른 남자에게 투사되는 연애의 신비함을 살포시 잡아낸다. 마지막 순간, 만개한 벚꽃 아래서 수술자국을 보여주며 인영은 ‘나 다시 태어나면 이석이 될 거야’라는 바람을 고백한다. 이때 화면 가득한 인영의 얼굴에는 사랑에 빠졌을 때 잠깐 나타나는 모든 여자들의 실존적인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맹장처럼 없애버려도 얼마든지 살아가는 데 지장은 없지만, 몸속 깊은 뿌리에서 나와 자꾸만 육신의 한쪽을 얼얼거리게 만드는 사랑의 속성을 반짝이는 감수성으로 은유하고 있다.
4. 오로라 공주 - 쓰레기장에서 남편이자 형사인 문성근과 엄정화가 대치하는 장면
아이와 어른을 오가며 혼신의 힘을 부어 연기에 임하는 엄정화의 치열함이 마침내 공포 영화 장르의 피해자로 나타나는 귀신의 형상을 당당한 능동적인 주체로 탈바꿈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육체없는 귀신의 또 다른 무언의 가해자로 나타났던 가부장제하의 남편의 표상이 이 분열증적인 장면으로 인하여 무언의 조력자로 변화하는 희귀한 순간이었다. 여성주의 시각이 충만한 오로라 공주의 이 장면은 한국 장르의 일종의 도발이기도 하다.
5. 친절한 금자씨 - 최민식의 범행을 보여주자 경악해하는 부모들과 마침내 그를 처단하는 장면.
금자는 과연 누구일까? 영화의 전반부 2/3 이야기는 이금자 그녀는 천사 아니면 마녀라고 밑줄 좍 그어 강조되어 있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질문의 해답을 위해 시간을 넘기는 감독의 편집술이다.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고무줄처럼 이 장면은 과거와 현재를 탄력적으로 넘나들고, 박찬욱 감독의 가위질은 단지 플래시 백워드가 아니라 현재에서 미래를 건너뛰는 플래시 포워드로 앞뒤로 컷을 가져다 붙인다. 그것은 죄의식의 날개를 타고 인간의 피부 밑 속으로 칼날처럼 파고드는 원죄적 기억. 혹은 이미 미래의 사건을 예견하는 한 여자의 직감이나 신성성. 그러므로 <친절한 금자씨>는 조각나는 시간의 파편 속에 철저하게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퍼즐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