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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열정적인 삶 스크랩 한국을 사랑한 대장 부자의 희생 - 워커 대장과 그 아들 워커 대위
짱구천사 추천 0 조회 16 09.12.10 09: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전쟁과 아름다운 이야기>

 

한국을 지극히 사랑한 대장 부자의 희생 

- 워커 대장과 그 아들 워커 대위 -

 

 

"아버지는 그날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우리 미 24사단을 독려하고 한국 정부의 영국군 27여단에 대한 부대표창을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을 대신하여 수여하는 한편, 후퇴작전 중 큰 전공을 인정받아 미국 정부가 저에게 수여하는 은성무공훈장을 직접 가슴에 달아 주시고자 짚차로 달려오는 중 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정부 근처에서 후퇴중인 한국군 트럭에 부딪쳐 현장에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계속되는 추위와 끝없이 밀려오는 중공군의 대공세에 밀려 모든 전선이 계속 패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모처럼 아군이 큰 승리를 했고 그 승리의 주인공이 아버님이었다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크리스마스 이틀 전인 1950년 12월 23일 이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며칠 전 맥아더 사령관은 미국 정부에 아버님의 대장 진급을 상신해 놓았더군요.·····. 이렇게 해서 부자간의 영원한 이별이 시작되었습니다" 

 

참모들과 함께 작전을 협의하고 있는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1950. 7. 14)

 

‘불 독’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아버지 미 8군사령관 월튼 워커 중장(대장추서)의 우락부락한 모습과는 달리, 아들은 멋진 미 육군정장 차림에다 네 개의 별 (★★★★)이 반짝이는 바나나 모자를 쓰고 있었다. 1980년 4월 알링턴 국립묘지, 훤칠하고 잘생긴 아들 샘 워커 예비역 육군 대장은 아버지 무덤에 한참이나 거수경례를 한 뒤 눈물을 글썽이며 한국 TV방송사 6.25 30주년 다큐멘터리 제작팀과의 인터뷰를 이어갔다.

 

"이틀 뒤 저는 도쿄의 UN군사령관 맥아더 원수에게 불려갔습니다. 사령관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워커 대위! 아버님의 전사를 진심으로 애도한다. 월튼 워커 대장은 정말 훌륭한 군인이었다. 그의 죽음은 우리 미군은 물론 미국의 커다란 손실이다. 귀관에게 워커 대장의 유해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임무를 맡긴다 .’ 이때 저는 매우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각하, 저는 일선 전투중대장입니다. 그리고 지금 저희 부대는 후퇴중입니다. 후퇴작전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하다는 것은 각하께서도 잘 아실 것 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 부하들은 목숨을 건 위험에 노출되어 악전고투 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대장이 바뀌면 안 됩니다. 아버님의 유해운구는 의전부대에 맡기십시오. 저는 전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때 문을 향해 걸어 나가던 맥아더 원수가 뒤 돌아 서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것은 명령이야’·······그리고는 방을 나가버렸습니다. 군인이 명령을 어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님의 유해를 가슴에 안고 이곳 알링턴까지 와서 바로 이 자리에 안장 했습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저는 이미 워싱턴의 육군본부로 발령이 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그때 맥아더 장군이 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이해합니다. 사랑하는 부하와 그의 아들을 한 전선에서 한꺼번에 죽여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그 결정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군인이 부하 들을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는 위험한 전장에 남겨놓고 떠나왔다는 생각이 지금도 가슴을 무겁게 합니다."

 

그러나 그가 결코 한국을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인 초대 주한 미 8군사령관 고 월튼 워커 대장과 함께 미군 최초의 부자(父子)대장이자 육군사상 최연소 대장 진급자였던 전도유망한 샘 워커 장군이 젊은 나이에 예편된 것은 바로 한국을 위한 행동 때문 이었다.

 

1970년대 후반 카터 미 대통령이 주한 미군을 대거 철수시키려고 했을 때 주한 미 8군 참모장 존 싱그러브 소장이 반대하다가 예편된 사실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때 미국에서는 미 육군의 엘리트 중 엘리트이며 차기 육군 참모총장이나 NATO군 사령관 으로 유력하던 샘 워커 대장이 카터 대통령에게 반대를 하다가 예편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뿐 아니라 워커 미 8군사령관의 짚차와 부딪힌 한국군 트럭 운전병을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사형시키려 하자 미군 참모들이 적극 만류하여 사형을 면하도록 해주고 대신 가벼운 징역형으로 감형케 한 감격적인 역사도 묻히어 왔다.

 

 

(출처 :사랑우정 그리고 낭만 원문보기   글쓴이 : 박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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