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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0년· 병술년 하안거 결제법어
마조의 일할 - 임제정맥의 가풍
상당하시어 주장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全機大用不思議(전기대용불사의)라
三世佛祖倒三千(삼세불조도삼천)이로다
有意氣時添意氣(유의기시첨의기)하고
不風流處也風流(불풍유처야풍류)로다
온전한 기틀과 큰 용은 생각하고 의논하지 못하는지라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도 삼천리 밖에 거꾸러짐이로다.
뜻기운이 있는 때에 뜻기운을 더하고
풍류가 없는 곳에 또한 풍류가 있게 함이로다.
풍류가 없는 곳에 풍류가 있게 한다는 것은 살활종탈(殺活縱奪) 기용제시(機用提示), 자재하고 멋진 풍류를 쓴다는 뜻이다. 이것은 바로 임제의 가풍이다.
금일은 병술년 하안거 결제일이라. 모든 사부대중은 이 석달 안거 중에 어떻게 하면 대오견성을 할 것인가에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함이로다. 우리가 부모형제를 여의고 부처님 전에 출가한 것은 위없는 대도를 성취하기 위함이니,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이 있어서는 안 됨이로다. 대오견성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반연과 모든 분별을 다 끊고 사위의(四威儀) 가운데 흐르는 시냇물과 같이 간단이 없게끔, 간절하게 각자의 화두를 들고 의심하고, 화두를 들고 의심해서 일념이 지속되게끔 혼신의 정력을 쏟아 정진에 몰두할 지어다.
화두상에 의심이 없으면 일념현전이 불가능함이로다. 옛 도인이 이르시기를 “화두상의 의심이 크면 깨달음도 크다”하였으니 이러한 금쪽같은 말씀을 잘 받아들여서 화두상의 의심과 화두가 한 덩어리가 되게끔 혼신의 노력을 경주할 지어다.
간절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화두가 흐르는 시냇물과 같이 밤낮으로 흘러가는 이러한 과정이 오면, 홀연히 보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듣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화두일념만이 지속되다가 문득 보는 찰나에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나니. 이렇게 되면 한걸음도 옮기지 않고 부처님 지위에 이르게 됨이로다. 이것이 바로 대오견성법이로다.
이러한 좋은 법을 만났으니, 이 석달 동안에 어떻게든 일념삼매를 이루어 대오견성하여 천불만조사와 어깨를 겨누는 그러한 도인이 되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화두를 참구한다면 모든 혼침 망상이 멀어지나니, 이러한 마음자세로 일념이 되도록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함이로다.
시간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는 바른 자세가 매우 중요함이로다. 자세가 흐트러지면 혼침 망상이 침범하고 화두는 멀어지게 되니, 보통 평좌(반가부좌)로 앉되 2미터 앞 아래에 화두를 두어야 한다. 가고·오고·말하고·고요한 사위의 가운데 무르익어져야 되는 것이다. 가슴이나 머리나 단전에 화두를 두는 것은 고요히 앉아 있을 때는 쉽지만, 밥먹고 산책하고 빨래하고 목욕하는 등의 때에 당해서는 일여하게 지어가기 어렵다. 화두 들기 어려울 때면 본인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가 상기가 되어 공부에 큰 장애가 되니 이러한 장애를 막기 위해 2미터 앞 아래에 화두를 두는 것이며 앉는데 있어서도 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또한 화두를 챙길 때는 눈을 뜨고 몰두해야 함이로다. 눈을 감고 화두를 챙기면 본인도 모르게 혼침에 떨어지게 된다. 눈을 뜨고 화두를 챙기라는 것은 시야로 화두를 꼬나보라는 뜻이 아니다. 화두는 생각으로 챙기는 것이지 시야로 챙기는 것이 아니다. 즉 힘으로 챙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생각으로 챙기는 것이니 이렇게 화두를 챙길 것 같으면 여러 가지 병통에서 벗어나 공부를 잘 지어갈 수 있음이로다.
금생에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어느 생에 이 고귀한 해탈법(解脫法)을 만나겠는가. 그러니 마음을 가다듬고 이번 석달 안거 동안에 이처럼 간절하게 화두를 챙기되 일체처·일체시에 화두가 순일이 되도록 용맹정진한다면 반드시 일념삼매가 지속되리라. 이렇게 일념삼매가 지속이 되면 홀연히 화두가 박살이 나는과 동시에 백천공안이 일시에 다 무너지게 되나니, 고인의 살림살이와 더불어 나의 살림살이가 차별이 없게 됨이로다.
석일(昔日)에 84인의 도인제자를 배출한 위대한 마조선사 회상에 전국의 발심한 납자들이 다 모여서 밤낮으로 용맹정진을 하고 있었다. 이 때 백장스님이 시자로 있었는데 하루는 마조선사를 모시고 산골의 들을 지나는 차제에, 인기척이 나니 못에 있던 오리들이 푸르륵 날아가거늘 마조선사가 이를 보시고 이르시기를,
“저것이 무엇인고?”
“들오리입니다.”
“어디로 날아가는고?”
“저 산 너머로 날아갑니다.”
하고 백장시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조선사가 시자의 코를 잡아 비트니, 시자가 “아야!”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마조선사가,
“어찌 날아 갔으리오.”
하시었다.
이에 백장시자가 절로 돌아와서는 방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는 일주일간 용맹정진하여 코잡아 비튼 도리를 알아냈다. 그리하여 마조선사의 방 앞에 이르러,
“조실스님! 어제까지는 코가 아프더니 오늘은 코가 아프지 않습니다.”
하고 이르니, 마조선사께서 다른 시자를 불러 운집종을 치게 하였다.
수백명 대중이 다 운집하여 마조선사가 법상에 좌정하시고 계시는 차에, 백장스님이 앞으로 나와 배석 자리를 둘둘 말아 어깨에 메고 나갔다. 이에 마조선사는 즉시 법상을 내려와 조실방으로 돌아감이로다.
시회대중은 백장스님이 배석 자리를 어깨에 메고 나간 뜻은 어디에 있으며, 마조 도인이 대중을 위해 법상에 오르셨다가, 백장스님이 배석 자리를 메고 나간 즉시에 법상에서 내려와 조실방으로 돌아간 뜻은 또한 어디에 있음인고?
[ 대중이 말이 없으니 양구良口하시다가 스스로 답을 하시기를, ]
龍袖拂開全體現(용수불개전체현)이요
須彌倒卓半空中(수미도탁반공중)이로다.
어의의 소매를 떨치는데 전체가 드러남이요 [*어의御衣-임금이 조회 때 입는 법의]
수미산이 반 허공중에 거꾸로 꽂힘이로다.
백장스님이 다른 산중에 계시다가 수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마조선사를 친견하게 됨이라. 백장스님이 들어오는 것을 마조선사께서 보시고는 법상 각에 걸어둔 불자(拂子)를 들어 보이셨다. 이에 백장스님이,
“이를 바로 쓰십니까? 이를 여의고 쓰십니까?”
하고 물으니, 마조선사께서 불자를 법상 각에 걸려있던 본래 자리에 걸어둠이로다. 마조선사께서 불자를 걸어두고 하시는 말씀이,
“네가 장차 양편피(兩片皮,입)를 열어서 후학을 어떻게 지도 할려는고?”
이에 백장스님이 법상 각에 걸어 둔 불자를 들어서 보이거늘, 마조선사께서,
“卽此用(즉차용)가? 離此用(이차용)가? - 이를 바로 씀인가? 이를 여의고 씀인가?”
하고 물으니, 백장스님이 불자를 본래 걸려 있던 곳에 다시 걸어둠이로다. 이에 마조선사가 벽력같은 ‘일할(一喝)’을 하시니 백장스님이 3일간 귀가 먹음이로다. 모든 의식을 다 잊고 3일 만에 귀가 뚫리니, 바로 여기에서 대오견성함이로다.
백장스님이 코를 비틈을 당함에 있어서는 어떠한 진리를 깨달았으며, 마조의 일할에 3일간 귀가 먹음에 있어서는 어떠한 진리의 눈이 열렸는가를 바로 알아야 함이로다. 구경법의 최고의 향상의 일구의 눈이 열려야사 일을 다 해 마친 것이지, 법신변사 여래선에 있어서는 태산에 가려 있음을 알아야 함이로다. 백장스님은 바로 두 번째 친견에 있어서 철벽이 무너진 것이로다.
광대무변한 진리의 세계는 도저히 혼자서는 깨칠 수가 없음이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스승 없이 깨친 이는 천마외도라고 못을 박아 놓으셨으니, 조그마한 소견에 만족하지 말고 반드시 눈 밝은 선지식을 친견하여 점검받아야 함이로다. 그래서 선지식께서 아니라고 점검을 하면 즉시에 '알았다' 하는 것은 다 놓고 다시 공부해야사 바른 안목이 열리게 됨이로다.
세월이 흘러 마조선사께서는 열반에 드시고 백장선사께서 회상을 열어 법을 선양하고 계심이로다.
하루는 황벽스님이 백장선사를 참배하고 하루를 머물고, 떠나기 위해 인사를 올리니 백장선사가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어디를 가려는고?”
“마조선사를 친견하러 가려합니다.”
“마조선사께서 열반에 드신지 이미 몇 년이 흘렀네.”
“복의 인연이 엷어서 위대한 선지식을 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한탄함이로다. 그리고는,
“마조선사께서는 평소에 어떠한 고준한 법문이 있었습니까?”
하고 청을 하니, 백장선사께서 마조선사와의 재참(再參-위의 ‘卽此用가? 離此用가?’)인연을 들어 말씀하시기를,
“벽력같은 마조선사의 일할에 내가 3일간 귀가 먹었네.”
하는 말에 즉시에 황벽스님이 토설(吐舌,혀를 쭈욱 내밈)하니, 백장선사께서 말씀하시길,
“그대는 후일에 마조선사의 법을 잇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선사님을 만남으로 인해 마조선사의 큰 기틀의 작용은 보았으나 마조선사는 친견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마조선사의 법을 이으면 뒷날 저의 자손을 상하게 할 것입니다.”
전기대용(全機大用)의 임제가풍을 증득하여 일방지사(一方之師)가 되고자 할진대, 이 마조의 일할의 낙처를 알아야 함이로다. 이 마조의 일할을 좇아서 백장·황벽·임제로 이어지는 임제정맥의 가풍이 형성됨이로다.
금일 결제에 당하여 시회대중은,
벽력같은 마조의 일할의 낙처는 어디에 있으며, 마조의 일할에 백장선사가 3일간 귀가 먹은 그 살림살이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할!”
‘일할’하시고 하좌하시다.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 진제대선사 법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