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회 산행일지 : 흐린 기억으로만 남게 된 고사리 분교
(경남 밀양시 재약산)
일시 : 2007년 12월 9(토)
날씨 : 초겨울 바람기 있는 맑은 날
11월은 건너뛰게 되었다. 두어 번 날을 정하였지만 4명의 회원들 일정이 다 같이 맞지 않아 12월로 넘기고 말았다. 등고선으로서는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인데 완벽하다면 오히려 비인간적이지 않을까 하는 변명으로 위안을 삼는다. 사실 12월 들어서도 년말이라 바쁘긴 마찬가지이다. 각자의 사업으로, 총무는 노조의 파업과 년말평가 탓으로, 그리고 난 며칠 전 맡게 된 경상북도의 식품산업클러스터 계획서로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고 더욱이 난 감기까지 가족으로 맞아들여 동거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오늘은 김이돌 회원의 참석이 어려워 셋이서 가까이 남겨둔 영남알프스의 마지막 재약산으로 산행지를 정하였다.
총무가 집으로 와서 함께 약속장소인 성서 홈플러스에 갔더니 주차장이 수리중이라며 입차를 거부한다. 아마도 여기에 주차를 해두고 산에 가는 사람이 많아 그런 모양이라며 총무가 분개하지만 하는 수 없이 차를 돌려 공용주차장에 겨우 주차한다.
달랑 세 명인데도 큰 차 스타렉스로 둘은 처음이라는 대구-부산간 고속도로에 올랐다. 청도터널을 지나자 안개에 쌓인 산들이 멀어질수록 옅어지는 가벼운 터치의 수묵화 같다.
표충사 입구에서 입장료를 3,000원씩이나 달랜다. 문화재 관람료라나... 올해부터 국립공원 입장료는 없어져서 산에 다니기는 좋아졌으나 이런 문화재 관람을 빙자로 한 터무니없는 입장료는 낼 때마다 기분을 상하게 된다. 문화재가 절의 재산도 아닌 전 국민의 재산인데, 그것을 보지도 않을 등산객들에게 일방적으로 받는 것도 말도 안되는 일이다. 정히 받으려면 절 입구에서 받든가해야지 정말로 분이 치밀어 오른다. 싸울 수도 없어 결국은 주차료까지 포함하여 11,000원을 지불하고 주차하다. 배낭에 분명히 카메라를 넣었었는데 없다. 금의 카메라를 빌려 들고 산행을 시작한다. 9시 45분.
표충사에는 들르지도 않고 돌담을 따르는 우측의 사자평 4.5km의 길을 외면하고 직진방향의 천황산 4.5km 이정표를 따라 시멘트 포장길로 시작한다. 조금 오르면 좋은 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천황산, 서상암 방향으로 올라서야 한다. 널찍한 바위로 이루어진 계곡을 따라 오르니 곧 판자집 같은 한계암이다. 함께 오르던 부부는 한계암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곧바로 급경사 오르막으로 접어든다. 20여분을 오르니 힘도 들고 땀도 많이 나기에 사자봉이 잘 보이는 곳에서 총무가 산 엿을 먹고 있자니 부부가 추월해 간다. 10시 20분, 다시 출발. 앞서던 부부는 곧 다시 뒤로 처지고 너덜지대로 들어선다. 계속되는 오르막이다. 참나무 군락지역에서는 굴피가 1미터 정도의 폭으로 날카롭게 벗겨져 나간 자리가 짙은 갈색의 생채기를 품은 굵은 굴참나무가 몇 있다. 내가 아프다. 너덜이 상당히 길다. 이 긴 너덜이 지나면 능선일 것 같았는데 기대와는 달리 오르막이 계속된다.
9시 20분에 출발하였다는 남자들을 만난 것은 거의 능선에 올라서서였다. 다시 휴식, 사자봉이 옆으로 지척에 보이고 산 아래쪽으로는 영남 알프스의 영봉들이 농담을 낮추며 겹겹 능선을 만들며 흐르고 있다. “이걸 사진에 담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며 금도현이 아쉬워한다. 11시 30분, 재출발. 힘도 들고 배도 고파 적당한 자리를 찾아보지만 바람이 워낙 강해 적당한 자리가 없다. 기어이 사자봉 정상(1,189m), 정상석은 천황산이란 이름을 깊게 새기고 있고 매직으로 쓴 듯한 사자봉이란 글이 초라하게 작은 글씨로 옆에 붙어 있다.
좌측 얼음골(3.3km) 방향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다. 가지산, 간월산, 취서산, 운문산 등 영남 알프스의 주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억새와 관목 숲을 헤치고 조금 내려가 바위 밑에 자리를 마련하고 식사준비, 오늘은 김이돌이 없어 파빠진 오리지날 안성탕면의 순수한 맛을 본다. 따뜻한 커피까지 마시고 하산길이다. 내리막을 20여분 내려오면 매점을 만나고 곧 배내골과 표충사, 재약산으로 갈림길인 사거리, 그리고 ‘참 좋은 인연입니다’라고 쓴 또 다른 포장마차를 만난다. 이곳에도 손님이 많다.
재약산을 향하는 길은 다시 오르막이다. 아주머니 한분이 얼굴을 하얗게 하여 힘들어하며 앉았기에 체한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여 금도현에게는 합곡을 누르라고 하고 등을 5분여 지압하니 트림소리를 연하여 내뱉는다. 수원 명신산악회에서 왔다고 하기에 금천 김현구 박사를 아느냐고 했더니 앞에 지나갔다고 한다. 대충 된 것 같아 길을 재촉하여 재약산 수미봉(1,108m)에 올랐다.
아래쪽으로는 그 유명한 사자평이 편안하게 펼쳐져 있다. 좀 전의 그 아주머니가 와서 자꾸 따달라고 하기에 일회용 침으로 두 손가락을 따주었는데 0.9km 하산 지점의 사자평에 다 내려왔을 때는 완전히 좋아졌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다.
대부분은 사람들은 임도 쪽 너른 길로 하산하고 우리는 고사리 분교 방향으로 하산 길을 잡았는데 그 보고 싶었던 고사리 분교는 보이지 않고 흔적만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사실 나로서도 대학 당시 이곳에 올라보고 거의 25년이 넘어 다시 왔으니 그간의 세월이 짧지만은 않았으니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희미한 기억의 저편에 남아있던 모습을 떠올려보고는 곧바로 하산을 서두른다.
거의 한 시간여를 내려와 대숲을 지나고 3시 10분경 표충사에 들어 목을 축인다. 차에 올라 주차장을 지날 무렵 명산 산악회 버스가 보이길래 기다려 김현구 박사를 만났다. 김박사는 이전 필자의 직장 동료로서 매주 산행을 다니는 매니아이며 매주 화요일 산행편지를 전국의 200여명에게 메일로 보내고 있고 지난 달에는 15박 16일 동안 네팔 트래킹을 다녀온 분이다. 우리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따뜻한 수제비를 나누어 먹고는 먼저 우리가 자리를 떴다. 오늘은 천황산과 재약산 두 봉우리를 올랐으며 산행 거리로는 약 12km 정도였다.
시간도 다소 여유로워 부곡하와이에 들렀으나 요금이 무려 10,000원, 돌아서서 부일온천이란 곳에 3,500원으로 싸게 들었는데 동네 목욕탕 보다 좁고 시설이 못하다. 그러나 따뜻한 온천물은 피곤한 몸을 휘감고 부드럽게 달래어 주었다. 적당한 식사 장소를 찾으려고 애를 써 보았으나 까다로운 우리 맘에 드는 곳이 없어 언덕을 넘어 부곡 IC를 향하던 중 우측의 화려한 한옥집의 도리원(055-521-6116)을 발견하고 금도현이 미리 들어가 분위기와 가격을 정탐한 후 들어갔다. 권수열 사장은 신지식인 농업인, 문화관광부지정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점 100선 선정, 그 외에도 수많은 수상내역과 감사패 등을 입구부터 줄을 세워 놓고 있었다. 한방돼지 + 대나무 통밥(11,000원/1인)을 3인분 시켜서 직접 담은 약초 장아찌와 함께 맛있게 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