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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전설로 살펴본 ‘보기맨(bogeyman)'의 원형
하멜른의 도시기록부에는 135명의 어린이들이 피리를 부는 사람을 따라 포펜산(Poppenberg)로 사라졌다는 기록이 있다. 1,284년 6월 26일, 요한과 바울로 축제일에 일어난 일이라 한다.(??그림 전설집?? 그림형제, 웅진지식하우스, 2006년) 그런데 이 이야기를 좀 더 이야기하기 전에 빙겐의 쥐탑에 얽힌 전설을 살짝 살펴보자.
마인츠에서 배를 타고 라인 강변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뤼데스하임(Rudesheim)과 빙겐(Bingen) 사이에서 강 한복판에서 솟아오른 듯한 탑을 하나 만나게 된다. 탑의 이름은 ‘쥐탑’이다. 978년, 이 지역에는 하토(Hatto II.)라는 이름의 주교가 있었다. 그는 몹시 인색해서, 엄청난 물가고로 굶주린 가난한 자들이 넘쳐나자, 이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는 사악한 꾀를 부려서, 그들을 마을 바깥 창고에 집합시켰다. 그런 뒤 창고 문을 닫고 불을 질렀다. 불에 타 죽는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마을에 까지 전해지자, 하토 주교는 “쥐들이 찍찍거린다!” 며 변명했다. 얼마 후, 보다 못한 하느님이 쥐를 시켜 밤낮 가리지 않고 주교의 몸을 뜯게 했다. 하토는 몸이라도 부지하기 위해, 라인 강 한복판에 탑을 세웠으나, 쥐들은 라인강을 헤엄쳐 주교를 잡아먹었다. 그 후 빙엔의 쥐탑은 라인강을 지나는 배들로부터 통행세를 징수하는 곳이 되었다.
1284년, 하노버에서 남서쪽으로 45분, 비자 강(Weser River)의 동쪽 연안에 면해있는 하멜른에도 쥐들이 나타났다. (빙엔의 쥐탑에서 못된 주교를 괴롭혔던 쥐들이 하멜른까지 원정을 갔든가, 빙엔의 쥐탑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하멜른까지 퍼지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덧붙여 첨부된 것일 게다.) 쥐에 시달리던 하멜른 사람들은 자신을 쥐잡이라고 소개한 남자에게 쥐를 모두 잡아주는 댓가로 큰돈을 주겠노라 약속한다. 남자가 쥐를 다 잡자, 마을 사람들은 생각이 바뀌어 시치미를 뗀다. 성질이 난 쥐잡이 남자는 6월 26일, 붉은 빛깔의 이상한 모자를 쓰고, 피리를 불며 동네에 나타난다. 그의 피리 소리가 골목골목 퍼지면서, 쥐들을 물론이거니와 동네 아이들이 그의 뒤를 따라갔고, 사라진 135명의 아이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 무시무시한 자장가와 ‘보기맨’
<Baby, baby, Naughty Baby> 출처: http://ingeb.org
Baby, baby, naughty baby,
Hush, you squalling thing, I say.
Peace this moment, peace, or maybe
Bonaparte will pass this way.
Baby, baby, he's a giant,
Tall and black as Rouen steeple,
And he breakfasts, dines, rely on't,
Every day on naughty people.
아가, 아가, 나쁜 아가,
조용, 요 시끄러운 녀석아,
당장 조용하지 않으면
보나파르트가 이 길로 지나간데.
아가, 아가, 그는 거인이야.
루앙의 철탑처럼 크고 시커먼,
철탑에 기대 아침식사로, 저녁식사로,
나쁜 사람들을 매일 잡아먹는데.
Baby, baby, if he hears you,
As he gallops past the house,
Limb from limb at once he'll tear you,
Just as pussy tears a mouse.
And he'll beat you, beat you, beat you,
And he'll beat you all to pap,
And he'll eat you, eat you, eat you,
Every morsel snap, snap, snap.
아가, 아가, 네 소리가 들리면
집안으로 뛰어 들어올 거야.
당장 네 다리를 찢어 죽일 거야.
고양이가 쥐를 찢듯이 말야.
널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려,
곤죽이 되도록 널 때릴 거야.
널 먹고, 먹고, 또 먹어,
한 입에, 아작, 또 한 입에, 쓱싹.
무시무시한 내용의 자장가이다. 어르고 달래며 아이를 잠재우기위해 이토록 끔찍한 내용의 자장가를 불러준다는 것이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자장가는 18세기 후반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실제로 불렸다고 전한다. 가사 속의 ‘보나파르트’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을 가리키는데, 당시의 영국인들에게 나폴레옹은 ‘보니(boney)'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추측하건데, 영국입장에서는 무역항로를 개척하는데 프랑스인 나폴레옹이 이끄는 함대가 훼방꾼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유모들은 아이들이 조용하지 않으면, 나폴레옹이 잡아간다고 잔뜩 겁을 주어 잠재웠을 것으로 유추되는 풍습을 위 자장가는 암시한다. 이런 풍습을 예를 들며, ’보기(boney)'가 말 안 듣는 아이들을 잡아가는 ‘보니맨(boneyman)'의 어원이 되고, 보통 명사 ’보기맨(bogeyman)'으로 변화되었다는 주장을 펼치는 어원연구자들이 있다. 다른 한 쪽에서는, 말라카 해협에서 서성거리던 해적선을 겁주던 인도네시아 원주민 부기족(the Bugie people)로부터 유래되었을 것으로 보는 어원연구가들도 있다. 이들에 따라면, 해적들이 토탄 늪지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나타나는 원주민들을 좀비라고 여겨 겁을 집어먹고 본토로 건너가 소문을 퍼트렸다는 것이다.
‘보기맨(bogeyman)'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겁을 주는 무서운 존재’를 뜻하는 중세 영어 ‘부게(bugge)’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16세기의 영어 방언으로는 웰쉬어 ‘보가트(boggart)','보기(bogy)', 게릭어 보칸(bocan) 등이 있으며, 독일어 뵈게(bogge)와는 같은 뜻의 파생어이다. 한편 요즈음까지 가장 널리 쓰이는 보기(bogey)는 1505년 경, 스코틀랜드어 보글(bogle)을 기원으로 본다. (출처: http://www.monstropedia.org) 이처럼 어원을 고찰해보면, 현대 영어에서의 ’보기(bogey)' 혹은 ‘보기맨(bogeyman)'은 독일어 뵈게(bogge)와 밀접한 친밀성을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위 노래 가사 중에, '고양이가 쥐를 찢듯이 말야.(Just as pussy tears a mouse)'에서 쥐가 등장한 것은 빙엔 지역의 쥐탑에 얽힌 민담과 하멜른의 하멜른의 피리부는 남자 이야기 등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다.
유럽 문화에서는 ‘겁을 주는 무서운 존재’를 가리키는 ‘보기맨(bogeyman)'에 해당하는 그 나라의 단어와 이에 얽힌 풍습이 존재한다. 불가리아에서는 '토발란(torbalan)'으로 불리우는 시커먼 괴물이 있다. 이 괴물은 커다란 보따리에 말 안 듣는 나쁜 애들은 주어 담는다. 프랑스에서도 역시 보따리를 매고 다니는 괴수가 있는데, 이를 '크로퀴-미땡(le croque-mitaine)'이라고 부른다. 독일에서는 이들을 침대 밑이나, 옷장, 혹은 숲 속 같은 곳에 숨어있다 밤에 나와 활동한다고 '쉬바르체 만(schwarze mann)'이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들을 '루모 네로(l'uomo nero)'라고 부르는데, 이 역시 직역하자면 '검은 인간' 정도에 해당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탈리아의 ’루모 네로‘는 오늘날 많은 영화에서 패러디되는 ‘보기맨’들의 겉모습의 원형이 되고 있다. 이들은 검정색 후드 혹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무거워 보이는 검은 옷을 치렁치렁하게 입고 있는 키가 큰 남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들은 어린애들이 사는 집을 돌아다니면서 문들 두드리며 “검은 인간이 왔다. 죽을 안 먹는 아이가 이 집에 사는 걸 알고 찾아 왔다.”라고 말하고, 아이들을 유괴해 달아난다.
?듀안 마이클의 ‘보기맨’
‘연속사진(Sequence Photography)’의 대가 듀안 마이클(Duane Micals)의 사진 ‘보기맨(bogeyman)’이다. 공간에 카메라를 정지시켜 놓고 시간의 변화만 부여하고 찍은 사진을 ’연속사진‘이라고 하는데, 카메라의 각도,거리, 방향은 그대로 유지시킨 상태에서 시간의 흐름대로 연속적으로 찍는 사진 기법을 의미한다. 듀안 마이클은 초기에는 5~6장으로 구성되는 짧은 내용을 연속되는 사진 속에 담았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길어져 후기에는 26장짜리 연속 사진도 만들었다. 그는 필름 속에 꿈, 기적, 죽음, 초능력과 같은 소재를 선택해서 불가사의한 비밀을 사진으로 담아내는데, 이러한 초현실주의적 기법은 1965년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인물사진 작업부터 본격적으로 추구되기 시작했다. 초현실적인 세계를 포착하기 위해, 그는 장면 장면을 치밀하게 구상하여, 한 편의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듯 연쇄적으로 대상을 카메라로 찍었다. 위의 연속된 사진에서처럼, 두얀 마이클은 일상 생활 공간을 무대로,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은 심리의 상태와 변화에 포커스를 맞춘다. 비록 그가 포착하는 공간과 대상은 평범하다손 치더라도, 그의 일련의 ’연속사진‘작품은 기괴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로 가득차있다. 위의 ‘보기맨’만 하더라도 그렇다. 아이가 책을 보고 있고 아이 옆의 옷걸이에는 긴 외투와 모자가 걸려있다. 두 번째 사진에서는 아이가 옆에 있는 옷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다음 사진에서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고(세 번째 사진), 옷을 들춰본다.(네 번째 사진) 아마 아이는 뜬금없이 어른들에게서 들은 ‘보기맨’이야기가 생각난 듯싶고, 옷 속에 아무 것도 없음을 직접 확인함으로서 안심한 듯싶다. 그러나 이어서 보여주는 사진에서 아이는 졸고 있고 옷걸이에 걸려있는 외투자락 아래로 남자의 두 다리 형태가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에서, 얼굴의 형태는 알 수 없으나 모자까지 쓴 외투 입은 남자가 아이에게 다가가고 있다. 앞서 말한 이탈리아의 '루모 네로(l'uomo nero)'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사내의 모습이다. 아이의 마음속에서 일기 시작한 두려움이 극복되는 순간 아이 마음속의 두려움이 사진밖에 존재하는 감상자의 마음으로 옮겨지면서 감상자의 심리 상태가 사진에 개입된다. 사진 속의 주체인 아이는 이제 ‘보기맨’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감상자들은 ‘보기맨’이 아이에게 미칠 해악을 우려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대상과 자신을 일대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알고 있는 영악한 듀안 마이클은 더 뒤로 혹은 더 위쪽으로 물러서서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순간 속에 잠들어 있는 영속성과 의식 속에 묻혀있는 무의식에 주목하였다. 또한 인간의 눈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는 점에 착안하여 일상성을 지배하던 합리주의를 비틀어 왜곡시키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든다. 이제 감상자들은 그의 철저한 의도대로 연속되는 사진 속에서 그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읽는다. 마치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을 보는 듯 의심도 해보지만, 결국엔 그의 신비한 마술에 홀린다. 마치 우리들 자신은 위 사진 속의 여자애이고, 그는 옷걸이에 숨어있던 보기맨이었던 것처럼 어느새 우리들은 그의 셔터 소리를 뒤따라가고 있다.
? ‘보기맨’ 이야기는 지구 어디에나 있다
민담에서 공통된 화소가 전세계적으로 분포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불가리아에서는 ‘토발란(torbalan)’이나 프랑스의 ‘크로퀴-미땡(le croque-mitaine’, 러시아의 ‘바베이(Бабай)’는 모두 등에 자루를 매고서 말 안 듣는 아이, 때 쓰는 아이를 잡으러 돌아다닌다. 그런데 우리네 망태 할아버지 말고도, 인도에도 ‘보리 바바(bori-baba)’라는 자루(bori)를 매고 아이를 잡으러 다닌다는 남자 이야기가 있고, 브라질에도 ‘호멤 도 사코(homem do saco)’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보기맨(bogeyman)’ 민담은 자루를 맨 남자가 말 안듣는 아이를 잡아 자루에 담아간다는 기본 골격이 지역에 따라 풍습에 따라 조금씩 이야기를 달리하고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현대에 이르렀다. 그리고 헐리우드에서는 극장판 보기맨을 여러 차례 만들어 냈는데, 웨스 크레이브 감독의 영화 <나이트메어>의 프레디나 클라이브 바커의 단편 소설 ??forbidden??을 각색한 영화 <캔디맨>에 등장하는 캔디맨이 바로 그들이다. 다만 이들은 어린 아이들을 잡아가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을 잡아간다는 점에서 옛이야기나 민담 속의 보기맨들과 다르다. 그러나 어릴 적에 보기맨이나 망태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자란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보기맨의 아류격인 프레디나 캔디맨은 여전히 무시무시한 존재인 것이다.
?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란 말에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
2007년 볼로냐 국제어린이 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80인’ 중 하나로 선정된 박연철씨의 그림책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는 내 추억과 맞물려 무척 인상적이었다. 어린 시절 툭 하면 울었다는 나는, 엄마의 기억에 의하자면,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다.”고 겁을 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겁 없는 아이었다고 한다. 셋방살이를 하면서 눈치를 봐야했던 엄마는 망태 할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는 어린 나를 쥐어박지도 못하고, 큰 소리쳐 야단도 못치니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게 ‘망태 할아버지’는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뭔가 기발한 소재를 다룬 그림책을 찾고 있던 내 눈에 단박에 띤 작품이 바로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이다. 표지에서부터 길고 짧은 시커먼 일곱 개의 손이 아이를 향해 뻗어 나오고 있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겁먹은 아이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박연철은 새장에 갇혀있는 여러 아이들, 과 실로 꿰매진 입을 열지 못하는 아이들의 굳어버린 표정을 보여주면서, 그림책을 보고 있을 많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망태 할아버지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부각시키고 있다. 더불어 전하는 그의 말은 이러하다.
망태 할아버지는 정말 무서워.
말 안 듣는 아이를 잡다 혼을 내 준대.
우는 아이는 입을 꿰매 버리고
떼쓰는 아이는 새장 속에 가둬 버리고
밤늦도록 안 자는 아이는 올빼미로 만들어 버린대.
아이가 망태 할아버지라면 두려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림책 속의 엄마는 아이에게 망태 할아버지를 핑계로 끊임없이 훈계한다. 엄마에게는 망태 할아버지가 든든한 지원병인 셈이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거나, 편식을 하거나, 잠을 자려하지 않으려 할 때 마다, 엄마는 망태 할아버지를 부른다고 엄포를 놓는다. “너, 자꾸 ~하면 망태 할아버지한테 잡아가라고 한다.” 아이는 야단을 치는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망태 할아버지가 정말 무서워서 엄마 말을 꼬박 꼬박 듣는다. 그러면서도 망태 할아버지를 향한 두려움 반, 엄마를 향한 억울함이 섞여 혼란스러운 아이의 마음이 여기저기에서 읽힌다.
아이는 엄마가 만든 질서에 반항도 해보려 애쓰지만 어른의 거대한 명령 앞에서는 금새 위축되어 진다. 겨우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엄마는 너무 해.”라고 대드는 정도거나, 씩씩 대며 침대에 누워 엄마를 미워하는 정도이다. 그런데 아이의 마음속에서 엄마에 대한 원망이 밀려나가고 자꾸 무서운 생각이 차고 들어온다. 아이는 두려워한다. 문밖에서 자꾸 이상한 쇠가 들려오는 것 같다.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가려고 문을 두드릴 것 같아 꼼짝할 수 없이 온 몸이 빳빳해져 오는 것만 같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 올리고 덜덜 떨고 있는 아이의 얼굴 표정이 이 아이가 엄마로부터 망태 할아버지 이야기로 공포를 쇄뇌당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윤곽을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에서 뻗어 나온 손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장면은 이 그림책에서 공포의 절정에 해당된다. “너 잡으러 왔다!” 라는 망태 할아버지의 말, 책 속의 아이도 책 밖의 아이들도 “엄마!”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는 장면이다. 그런데 웬걸. 검은 손아귀에 잡혀가는 것은 아이가 아니다. 대반전이다. 지금껏 화면을 절반 이상 채울 정도로 크게 그려졌던 엄마가 거인의 손아귀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아진 모습도 이전과는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공포물에는 카타리시스가 있어서 감상자들이 안심을 하게 된다. 특히 그 감상자들의 연령이 낮다면, 반드시 이들을 안정시킬 장치가 확실해야 한다. 다행히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는 “애야, 무슨 일이니?” 하며 놀라 아이의 방안으로 뛰어들어오는 엄마를 반기는 아이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악다구니만 퍼붓던 엄마의 커다란 입이 모처럼 웃음을 머금은 온화한 표정을 보여준다. 아이를 감싸 안은 엄마, 엄마 품에서 안도하는 아이, 엄마는 아이를 달래준다. “엄마 여기 있어. 이제 괜찮아.” 이어서 아이는 혼잣말을 한다. ‘난 이제 망태 할아버지가 하나도 안 무서워.’라고.
? 망태 할아버지보다, 호랑이보다 곶감이 더 무서웠던 어린 시절을 돌이키며
그런데 이 아이가 앞으로는 망태 할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절대 없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유쾌하고, 기발하고, 특이하고, 재치 있는 그림책을 발견한 즐거움에 들떠, 이 책을 네 살짜리 조카에게도 사주었다. 당연히 내가 기대했던 것은 조카의 행복이었다. 그런데 웬걸. 이 그림책을 건네주기 전까지는 망태 할아버지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조카는 그림책을 통해 망태 할아버지를 알게 되었는데,(나의 어린 시절과 요즘 아이들의 환경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간과한 결과이다.) 조카가 고집을 부릴 때, 슬쩍 “망태 할아버지 온다.”고 했더니, 얼굴이 파래지면서 울기 시작해 올케 앞에서 난처해졌다. 조카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자, 무안했을 나를 향해 올케가 하는 말인즉, 조카가 이 그림책을 무서워한단다.
너무나도 뜻밖이라, 내가 절대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이라, 나는 정말 그러냐고 물어야 했다. 선의의 선물이 어린 조카나 울리는 공포물이 되어서야 안 되지 않는가? 다행이도, 너무나도 다행이도 조카는 무서워하면서도 매일 매일 올케에게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를 읽어달라며 조른다고 한다. 참 알다가도 모르겠는데 사람 마음이라더니, 어린 아이들조차 무서워하면서도 즐기는 이율배반적인 심리는 무엇일지.
선물을 해 주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지만, 조카 앞에서 망태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는 게 내 쪽에서 오히려 조심스러워 졌다. 어제는 내가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주는 동안 옆에서 놀고 있기는 조카가 기분이 좋아 보이기에, 슬쩍 “망태 할아버지 무서워?”라고 물었다. 그런데 조카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지는 것 같아, 또 실수를 한 것 아닌지 후회되었다. 다행이 나의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조카에게 “너희 고모는, 호랑이 나온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는데 곶감 나온다고 하면 울다가도 뚝 그쳤다.”고 말씀해주었다. 나야 벌써 여러 번 들은 이야기니까 어린 나는 망태 할아버지보다, 호랑이보다, 곶감을 더 무서워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조카는 고작 먹거리인 곶감을 망태 할아버지보다 무서워하는 고모를 어떻게 생각할지? 어쩌면 이런 고모를 둔 덕분에 망태 할아버지가 곶감보다도 무섭지 않은 존재임을 일찌감치 깨닫고 멋대로 행동하는 ‘못된 다섯 살 어린이’로 자라나는 것은 아닐지?
오싹하면서도 통쾌하게 그림책 보는 재미를 보여준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는 스스로 ‘너무멀어자세히안보면잘안보여’ 별의 왕이라는 박연철의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그림책 ??어처구니 이야기??에서는 어처구니들의 이야기를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명랑하게 풀어내더니, 이번에는 망태 할아버지로 우리를 떨게 만들었다. 그를 만나면 코딱지 차를 준다고 하던데, 별빛 가루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믿을 수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