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울 기회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이해가 되어야만
진정한 불교 신자로서의 입문을 할수 있는데,
불행하게도 그러한 진리를 배울 기회를 쉽게 가질수 없기 때문에
머리로서 이해가 되지 않는데, 어떻게 가슴으로 하나가득
지정한 부처님의 사상과 그리움과 닮겠다는 마음으로 채울수 있겠습니까?
더더군다나 그러한 진리의 가르침을 만날 기회조차 쉽지 않습니다.
스스로 믿는 마음으로 진리를 배울 기회를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들은 외견상의 불상과 탱화, 그리고 각종 그림들과 친숙할 기회도 가져지지 않으면서,
어른들이 말 안들으면 저러한 보살님들과 신장님들께서
너희들에게 벌을 준다고 위협 하여 그 무서움과 두려움이
오히려 불교를 멀리 하게 만들며,
또한 아이들이 이해 할수 있는 친숙한 가르침이 없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청 소년들이 불교를 말리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열정과
뜨거운 마음의 혼란을 처음부터 바로 잡아 주거나,
아니면 가깝게 만드는 요인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인간 관계를 결정 짖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중학교 까지의 중요한 시기에 그런 청소년들은 온통 정신이 폼생폼사와
게임과 즐거운 연예계의 우상들에게 정신들이 팔리고,
아이들의 가장 중요한 한 인간으로서의 인생계획들에서는 어느 부모나,
선생님들이나,
사회에서의 어른들이나,
아니면 종교적인 지도자들을 만날 기회보다는 우선 부모님들부터,
이제 적당하게 그들에게 시선을 좀 줄이며,
그들의 진정한 고민들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부족하며,
자신들의 시간을 가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들로부터 멀어지며,
다 컸다는 안도감의 마음으로 중요한 일생의 가장 큰 바탕이 되는 시간들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진로도 중요하며, 인생을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계획도 중요 하지만
사춘기 특유의 외모와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부쩍 자란 자신의 몸의 변화에 따른 적응력이 약한 상태에서 수 많은 유혹들에 노출되어,
스스로 절제 되지 않는 참담한 현실들과
온갖 방송들에 대한 유혹과 갈등과 인터넷을 통한 자기만의 게임 세계와
절제 되지 않는 그러한 집착과 만화, 놀기, 친구들과의
유대관계보다는 경쟁심들에 대한 갈등과 고등학교에 대한 현실성 없는 두려움과
공부에 대한 압박과 지나친 어른들의 기대와 부응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자신의 냉정한 현실과 흔들리는 마음들을 어떻게 주체 하여야 될지
모르는 그러한 미로의 세계들이 자신을 감당하기 힘들게 합니다.
고등학생들은 그저 대학을 가기위한 전쟁터에 내몰리는 병사들 같은 긴장감과
그 스트레스에 적응하지 못하는 불안한 마음들로 꽉 차 있습니다.
자신없는 내신 성적 관리와 마음에 따라주지 않는 냉정한 시험 성적들과
억지로 겨우겨우 지탱하는 학교생활,
친구조차도 경쟁 상대로서만 존재하며,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의 갈등과
성숙한 육체를 따라가지 않는 미숙한 정신세계.
하고 싶은 것은 참으로 많은데,
현실적인 부족과 불만족들,
해결 되지 않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
절제 되지 않는 마음과 육체의 부조화등등,
참으로 일일히 다 열거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한 인간 관계들에 대한 부적응 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대학 생활을 하는 그들은 마냥 풍족하지 못한 현실속에서
마음껏 다가온 자유를 방종으로 허덕이며,
어떤것을 받아 들여야 하는지도 모르는 어수선한 청춘의 시간을
이성간의 교제와 공부에 대한,
진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그것을 잊어 버리고 싶은 허망한 시간 속에서
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감으로
어떤 처신을 하여야 할지 모르는 어리둥절한 시간을 그냥 받아 들여야 하는 막막함에 쌓여들 있는 것입니다
. 어른들은 자립과 가정과 안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그리고 철모르는 용기 하나로 부딫쳐야 하는 현실의 중압감에 사로 잡혀,
안그래도 복잡한 사회에 적응 하기도 힘든데, 불교적인 심오함이 막막하고,
어려우며, 골치 아프고,
귀찮으며, 그래서 멀리 도망 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우리들의 짧디 짧은 한생에서 진정한 불교 신자가 되기에는
사회의 곳곳 현상들이 미비하며,
불교 신자라는 이름을 행해지는 기복적인 엄마, 아버지들의 무지하고,
무식함 들에 기가 질리고,
무조건 고개 젓는 아이들이 많기때문에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불교 신자들의 젊은이들의 부족들을 가지게 되며,
참담한 현실속에 내동댕이져치며,
점차 진실한 불교 신자들이 부족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절에 가보면 젊은 여자들이
늙은 오래된 보살이라는 이름으로 가지는 그 신자들의 횡포에 기가 질리고,
적응 하지 못한채 차라리 떠나 버리며,
그 이름난 신자인 고집불통의 늙은 엄마들이 환히 웃으며,
반기는 그러한 포교적응은 아예 포기 하여야 할 처지 인것입니다.
내방석, 내자리의 집착은 참으로 놀랄만하게 끔찍하게 여기면서
, 자신들이 시간을 보냈던 그 법당안에서의 위세는 어이없을 정도의 포악함으로
젊은 여자들을 내 몰아 버립니다.
합창단이니, 아니면 신행단체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집요함과 어느때는
그 절의 스님들조차 어찌 할수 없는 그러한 사람들이 각절과 암자,
신행단체에서는 꽉 자리잡고들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나 라는 상과 나의것이라는 집착을 버리는
참다운 신자들은 어느것에도 눈뜨고,
찾으려 하여도 찾기 힘든 상태입니다.
하나도 실천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들로 꽉찬 이 시대의 발못된 불교신자들의
그 폼생폼사는 바로 그러한 무리들을 가르치고, 이해 시키며,
제대로 실천하게 만들어야 하는 승려들의 잘못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배려속에 탄생된 조계종이라는
이름의 대표적인 한국불교의 태동의 승려들이,
사리사욕과 정치적 집단화된 집단 이기주의자들의 모양으로 불교가 정리 되면서,
잘못 이끌려 들어온 깡패들의 잔존 세력들이
자신들을 합당화와 합리화시키기 위한 포석을 수행의 가장 근본인 탁발을 통한 만행을 못하게 막으면서,
그들의 세력권을 안정 시켜주는 국립공원의 입장비행과 문화재보호비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반 강제적인 세금들의 폭리로 인하여,
투명 하지 못한 행정과 돈의 흐름을 만들었고,
그러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보호되며,.
사리사욕으로 점철된 잘못된 모습들을 미화시키는 방편으로 참선과 화두라는 방편으로 무장한채,
근본적인 교리들을 이해 시키지 못하며,
자신들의 행위조차 덮어버리는 안일함으로
사회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종교로 무참하게 만들어 버린 그들이,
그러한 신자들의 무식함 조차 용납하며,
가르치지 못한것이 오늘날의 낭패적인 상황으로 내몰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십시일반이라는 이름의 보시는 오로지 절 모양 꾸미고,
동양제일의 부처님 만들기와
세계제일의 불상 만들기 경쟁으로 내 몰았으며,
우리끼리 동양제일이니, 세계제일이니 떠들어 보았자,
남들은 전혀 인정하지도 않는데,
세계인들은 오히려, 티벳불교와,
남방불교인 태국과 베트남 불교를 더 많이 알며,
국민 98%가 불교신자라는 일본의 한심한 기복신앙을 더 알아주며,
젠이라는 일본식의 선과 명상을 더 높이 사며,
한국민족의 신앙인 단군과 불교는 인정하지 않는 모순속에서
기독교인들은 2040년까지 젊은이들을 이끌며,
60%이상의 신자들로 포교할것이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있습니다.
정치인들도,
공공연히 그들이 지배하는 도시를 하느님께 봉양하고 있으며,
연예인들과 각 이익단체들의 모든 구성원 종사자들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들로 이루어져,
종교를 바꾸지 않으면 그 세계에서 살아남고,
적응하기 힘들게 만들며,
모든 방송과 첨단 업체에서의 그러한 폭거는 이제는 일반화 되어져 버렸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 사회에 기여한 공로가
대부분의 국민들이 인정하듯이 기초에서 오랫동안 이 사회에 기반을 만들은 결과인것입니다.
그 동안 불교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사회에 기여는 커녕,
눈살 찌푸려지는 싸움질과 하나도 그 자신들은 버리지 않으면서,
신도들에게 헌공 할것을 다잡으며,
남의 가정들에 불회만 일으키는 부녀자들을 동원한 엽색행각과,
날강도 같은 도둑질과 사기와 하나의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허무맹랑한 문구로
동원되는 신도들에게 강요한 헌금들의 착복과,
문화재 팔아먹는데 앞장서는 매국행위와 제것만 챙기며,
긂주리고, 헐벗는 국민들에게 시선돌리기와
장애인들을 이용한 협잡과 착취와 학교 하나,
병원 하나 제대로 살립하지 못하고,
방송국 조차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며,
불교신자들을 위한 가장 중요한 사회봉사 어느것 하나 체계있게 이루어 지지 않는
한심함들과 제 모양만을 강조하고,
불교 라는 이름으로 하나 되지 못하는 이기심의 극치와 사주보고,
팔자보며, 관상이나 보면서, 미신만을 강요하는 한심한 종교가 되어 버린것입니다.
이제는 그러지 마십시요.
정말 부처님만을 그리는,
그리고 부처님의 삶과 같은 모습들은 다 아니더라도,
조금씩은 닮아가는 가슴에 진리를 새겨 둔 그러한 신자들과 수행자들로 모습들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시간은 화살같이 빠르게 우리들에게 많은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죽으면 그뿐이고, 부처님 팔아먹고 산 장사치들은 수단과 방법이 남들보다 뛰어 났을지는 몰라도,
그 업보는 참으로 지엄하게 더 냉정하게 돌아들 갈것입니다.
이제 진정한 불교 신자들이 점차 나타 나고들 있습니다.
진리를 압니다.
진리만을 믿습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이해 합니다.
가장 중요한 실천자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들 있습니다.
희망의 이 땅에서 영광과 빛의 진리를 생의 목적으로 삼는 진정한 불교신자들이 많아 질것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자성의 회복을 하였을때, 이곳에서 미륵불의 출현을 우리들은 보게 될것입니다.
나는 압니다.
나는 봅니다.
나는 믿습니다.
시방 삼세의 부처님들과 보살님들과 신장님들의 기쁨을 .....보고. 듣고.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