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의 산 영암산~선석산
▷영암산~선석산 784m~742.4m·경북 칠곡 ▷골산과 육산을 동시에 경험…금오산 남쪽
경북 칠곡군 북삼읍과 성주시 초전면, 김천시 남면의 경계에 자리한 영암산(鈴岩山·784m)은 이 지역의 사람들만 가끔 찾을 뿐 널리 알려진 산은 아니다. 이는 인접한 북쪽에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인 금오산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영암산은 결국 금오산의 유명세에 눌려 가려져 있었던 것
금오지맥의 가지를 이루며 남동쪽으로 선석산(742.4m), 비룡산(546m)으로 뻗어가는 지능선을 형성하는 영암산은 이름에서 방울(鈴)과 바위(岩)에서 비롯된 산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방울바위산 또는 방울암산으로 부르고 있다. 이는 성주쪽에서 바라보면 3개 바위봉우리로 이뤄진 정상부가 흡사 방울을 닮았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일부에서는 매달린(懸) 방울(鈴)을 뜻하는 현령산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금오동천이 자리한 북삼면 사람들은 바위산인 금오산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 하여 바우남산이라 부른다. 이밖에도 바울암산, 바우암산 등으로 불리는 이 산은 모두 순우리말인 방울바위산에서 파생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영암산은 바위봉우리 셋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도에는 남북으로 놓여진 영암산의 머리 부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봉우리에 영암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성주 사람들은 가장 남쪽 봉우리를 영암산으로 알고 있고, 거기에 표석까지 세워 놓았다. 사실 지도에 영암산이라 표기되어 있는 북봉은 나무가 많은 흙으로 된 봉우리로 별다른 특색이 없다.
반면 남쪽 봉우리는 사방이 바위절벽으로 된 바위봉우리로 경관도 좋고 조망도 좋다. 또 성주쪽에서 보면 이 남봉이 방울처럼 보여 산이름은 예서 얻은 것이다. 성주 초전면쪽에서 북봉(지도에 영암산이라 표기된 봉우리)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편의상 지도에 영암산이라 표기된 봉우리를 상봉이라 하고, 방울처럼 보이고 표석도 세워져 있는 남봉을 주봉이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 상봉(북봉)에서 주봉까지는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편으로 바위벼랑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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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산과 선석산의 이름, 그리고 선석사 반면 선석산은 바위가 없으며 등성이가 넓고 번번하여 밭을 일구어도 될 정도다. 따라서 선석산은 숲이 좋고 비탈이 가파르지 않아 산길이 산책길처럼 순하다. 고스락은 둘레에 큰 나무들이 많아 조망이 좋지 않다. 이 선석산 아래에 옛절 선석사가 있고, 육관도사가 우리나라 30대 명당이라 했다는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실이 있다.
영암산의 한자는 방울이라는 뜻의 령(鈴) 자로 되어 있다. 그래서 '방울바위 산'이 된다. 처음에는 방울이나 종과 관계 있는 전설, 또는 방울이나 종 모양의 바위가 있지 않나 생각했다. 그러나 송춘상 대장은 성주쪽에서 보면 방울 모양으로 보여 옛날부터 '방울바위산' 이라 했다는 것이다. 영암산의 이름은 이처럼 그 유래가 분명했다.
선석산의 이름은 선석사에서 유래한다. 의상대사가 신라 효소왕 1년(692년)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신광사라 했는데, 신라 화엄10찰의 하나로 이름난 절이었다. 그때의 절은 지금의 절 서쪽에 있었다 한다. 공민왕 10년(1361년) 나옹대사가 주지로 오면서 지금의 자리로 절을 옮겼다. 이때 절터를 판판하게 닦는데 큰 바위가 나왔다 해서 절이름을 터를 닦는다는 뜻의 선(禪) 자와 돌 석(石) 자를 써서 선석사라 했다 한다. 그때 발견된 바위는 지금도 대웅전 앞뜰에 묻힌 채 그 일부가 땅 위에 내밀어져 있다.
영암산과 선석산의 산행은 따로따로 할 수도 있지만 두 산을 묶어서 하는 것이 좋다. 산 자체로 볼 때에는 영암산이 좋으나 영암산만 산행하면 산행시간이 짧고 선석산이 안고 있는 세종대왕 왕자 태실이나 선석사를 볼 수 없다. 또 선석산 하나만 오른다면 선석사와 왕자태실은 둘러볼 수 있으나 흙산으로 너무 단조롭고 산행의 맛이 적다.
따라서 영암산과 선석산을 함께 산행하고 선석사와 왕자 태실을 둘러보는 것이 산행의 맛도 좋고 뜻도 있다. 그러나 두 산이 성주군과 칠곡군 경계에 있어 산길은 양편이 모두 있지만, 아무래도 칠곡쪽에서는 두 산을 모두 오르기는 어렵다.
▶산행들머리는 신거리고개, 선석사, 보손동(칠곡군 북삼읍) 등 크게 세 갈래라 할 수 있다. 신거리고개(김천시 남면 월명리, 월명 성모의집)는 성주군과 김천시 경계가 되는 고개다. 월명 성모의집은 신거리고개에서 조금 북쪽 월명리쪽(김천시 남면)에 있다.
월명 성모의집에서 산등성이~턱~상봉~주봉~잘록이(영암산과 선석산 사이)~선석산~선석사를 거쳐 왕자태실로 내려서는 데 약 4시간이 소요된다. 이 코스를 역으로 산행해도 된다.
4번 국도변의 보손동(칠곡군 북삼읍) 들머리에서 보손동~보손동 골짜기를 통해 잘록이(영암산과 선석산 사이)로 올라서는 데 약 2시간이 걸린다. 또는 보손동에서 등선이길을 이용해 곧장 선석산으로 올라서는 데에도 약 2시간이 걸린다. 보손동 길은 잘록이나 선석산까지 멀고, 영암산이나 선석산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흠이 있다. 칠곡이나 약목 북삼 주민들이 여가를 이용해 어느 하나를 산행할 때 이용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영암산-비룡산 종주산행의 들머리는 신거리고개.
김천시 남면과 성주군 초전면 경계인 고갯마루엔 장승부부 한 쌍이 산꾼들을 맞는다. 동쪽 지능선으로 산길이 뚜렷이 이어진다. 소나무숲길을 이어가면 금오산(976.6m)이 다가드는 전망바위 지나 이정표가 자리한 능선 삼거리에 올라선다(1시간20분). 이곳에서 3분이면 영암산과 구미 시가를 조망할 수 있는 소나무 전망바위다. 다시 조심스레 안부를 내렸다 다시 오르면 정상석과 작은 돌탑이 자리한 영암산 정수리(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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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남동쪽 급경사 바윗길을 조심스레 내려가면 정동녘으로 능선길이 꺾어진다. 넓고도 느긋한 참나무숲길을 1시간10분 가면 누진산 정수리다. 다시 남녘 능선을 내려 동쪽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르면 오늘 산행지의 막내인 비룡산 뾰족 정상에 닿는다(50분). 하산은 남동 능선을 조금 내려가 첫번째 안부에서 북동쪽으로 내려가는 계곡길을 이어야 한다.
다소 희미한 곳도 있으나 50분이면 두만지 지나 신유장군 유적지가 자리한 약목면 복지회관 주차장에 이른다. 신거리고개~영암산~누진산~비룡산~신유장군 유적지를 잇는 종주코스는 약 5시간 걸린다.
유적지 뒷산은 시묘산(367m). 이곳에서 길을 조금 내려간 곳에 세워진 등산안내도 지점에서 한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다.
영암산영암산(782m)은 김천시 남면과 성주시 초전면, 칠곡군 북삼면의 경계에 자리한 산이다. 구미의 진산이며 도립공원인 금오산(977m) 정남녘에 자리한다. 영암산 남동쪽으로 누진산(742m)과 비룡산(576m)이 당차게 능선을 이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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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의 들머리는 김천시와 성주군의 경계를 이룬 신거리고개. 905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고갯마루에는 한 쌍의 장승부부가 봄바람 같은 미소로 산꾼들을 맞는다. 절개지 위로 이어지는 산길 조금 오르면 소나무숲이 우거진 솔향 가득한 산길이다.
잔설이 더러 남은 산길을 휘적휘적 따라 오르면 벼랑 곁에 세운 전망바위에 올라선다. 다가드는 금오산의 묘한 산세며 남북저수지, 지경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산길을 이어가면 '영암산 정상'과 '무릉농원'을 알리는 이정표가 자리한 능선삼거리다.
여기서 길은 오른쪽으로 꺾이며, 곧 소나무와 어우러진 바위봉에 올라선다. 쌍봉으로 보이는 정수리의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누진산, 비룡산으로 이어가는 산줄기가 햇살을 가득 받아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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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를 돌아 내리면 구미시가를 조망할 수 있는 명당이 있다. 북풍을 피하고 따뜻한 햇살이 포근한 이곳은 간식을 나누며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인 쉼터다. 비탈길을 조심스레 내려 다시 20분 오르면 아담한 돌탑이 자리하고, 1998년 '약목 설령산악회'가 세운 정상석이 자리한다.
정수리의 조망은 눈부시다. 북쪽으로 금오산이 성큼 다가오고, 동쪽은 굽이굽이 낙동강의 흐름이 아련하다. 영암산은 행정구역상 김천시, 칠곡군, 성주군에 걸친 산이건만 속하지 않은 구미 시가만이 한눈에 환하게 내려다보인다. 비록 법적으로는 나의 소유가 아닐지라도 방방곡곡의 명산을 두루 밟고 다니는 산꾼들의 무소유 정신을 이곳 산정에서 만난다.
묵묵히 사방을 둘러보노라면 어디선가 일깨움의 요령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요령산 이야말로 진정 깨달음의 청산이었으니, 누진산은 동남녘 능선을 이어야 한다. 밧줄이 걸려 있는 급한 절벽을 두 번이나 거푸 내려가 솔숲길을 이어가면 돌목재다. 영암산(한자를 풀이하면 요령바위산) 이름의 뜻을 살피려 몇 번이나 되돌아 본 내림길 적당한 지점에서 요령과 흡사한 정수리 모습을 발견하고 옛사람의 안목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돌목재 부근에서부터 산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아름드리 참나무가 더러 보이는 넓고 느긋한 능선은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산책길이다. 급하지 않은 오름길도 이리저리 돌아가는 누진산 산길은 또 다른 여유로움의 인생길을 생각하게 한다. 준족이라면 영암산을 출발해 한 시간 조금 못되어 누진산 정수리에 올라설 수 있다. 베어 낸 나무들이 어지러이 누워 있는 정수리는 길고 넓은 여유를 보인다.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낡은 삼각점과 묵무덤이 자리하는 이곳에도 1997년 '약목 청솔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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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진산은 성주군과 칠곡군의 경계를 이루었으나, 정수리 조망은 역시 구미시가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금년 4월 개통되는 경부고속철도가 발밑을 지난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1:50,000 옛 지형도에는 정상석에 적힌 것 같이 누진산이 분명하나, 최근 발행한 지도에는 이름이 선석산으로 바뀌었다. 이어서 비룡산으로 향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비룡산은 이름 그대로 하늘로 솟구치려는 뾰족한 산세를 자랑한다. 정상 조금 못 미친 바위지대에선 남녘조망도 시원하다. 누진산 출발한 지 한 시간이면 비룡산 좁은 정수리에 올라선다. 오늘 오른 3개의 산 가운데서 가장 낮은 막내며, 칠곡군에만 속한 산이건만 이름에 걸맞는 참으로 훌륭한 조망을 펼쳐 놓았다. 북쪽으로 도립공원 금오산과 구미시가 샅샅이 보이고, 낙동강대교를 지난 낙동강의 유유한 흐름이며, 경부고속국도, 4번 국도, 경부고속철도 등이 부처님 손바닥 보듯 한눈에 보인다.
하산은 동남녘 능선길을 따른다. 조금 내려가면 안부에 이르고,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계곡길을 따라야 한다. 간혹 희미한 부분이 있긴 해도 어려움 없이 '칠곡교육청 실습지' 팻말을 지나 초록못물 그득 고인 두만지에 이른다. 두만지 둑에 서서 내려온 산을 다시 우러르면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비룡산 산세는 참으로 황홀하거니와, 백오십 여 미터 더 높은 누진산보다도 더 높아 보인다. 못 속에 비친 산그림자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미련을 떨치고 다시 산길을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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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지 북녘 가에는 신유(1619~1680) 장군 유적지가 있다. 이 고장 약목 출신인 장군은 인조 23년에 27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해 여러 무직을 거쳤다. 효종 9년(1658년), 청나라의 요청으로 원군을 이끌고 러시아군을 전멸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를 나선정벌이라 하며, 장군은 이 원정의 전말을 북정일기라는 기록으로 후세에 남겼다.
이 일기는 우리나라와 러시아간 최초의 접촉에 대한 현지 사령관의 기록이란 점에서 세계적인 사료로 인정되고 있다. 그후 장군은 경상좌병사, 황해병사, 삼도통제사, 포도대장 등을 역임한 후 숙종 6년(1680) 향년 62세로 생을 마감했다. 경상북도 기념물 38호로 지정된 이곳 숭무사에는 신유장군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로써 두만강에서 비롯된 두만지 못 이름에 대한 화두가 저절로 풀리게 되었다. 지도에 이름이 없는 유적지 뒷산은 시묘산(367m)이다.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시묘산 등산로 안내도'가 자리한다. 시간이 허락하는 준족들은 이곳에서 한시간이면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다.
▷신거리고개-(1시간20분)-능선 삼거리-(3분)-소나무 전망바위-(20분)-영암산-(1시간10분)-누진산-(50분)-비룡산-(50분)-약목면 복지회관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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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암~영암산~선석산~시묘산 종주코스
이번 등로는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칠곡군 약목면을 기점으로 보손동~미타암~영암산 동릉~북봉~남봉 정상~중리지 갈림길 안부(잘록이)~선석산~시묘산을 거쳐 신유 장군 유적지를 날머리로 삼았다.
약목면 소재지에서 김천으로 가는 4번 국도를 따라 택시로 10분쯤 되는 거리의 길 왼편에 미타암을 가리키는 입간판이 있다. 산행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시멘트도로를 따르면 길 왼편에 가정집 같은 미타암을 두고 제법 널찍한 산길로 접어든다. 길가에 보손지 표석을 볼 수 있지만, 보손지는 물이 고인 저수지가 아니라 홍수나 산사태 방지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사방댐이다.
곧이어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편 길로 5분 정도면 중리지다. 저수지 옆 갈림길 팻말(영암산 2.4km, 영암산 2.8km)에서 우측 능선길로 접어들면 짙은 소나무숲으로 산길이 이어진다. 처음부터 올려치던 산길은 10여 분이면 경사가 다소 누그러지면서 임도를 건넌다. 속옷이 땀에 후줄근하게 젖을 무렵 숲속을 벗어나면서 암릉길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1시간쯤 올라야 한다.
이 산은 이름 그대로 바위로 형성된 골산이다. 특히 눈앞에 올려다보이는 암릉은 이 산의 옹골찬 골격을 이루는 근간이라 할 수 있겠다. 크게 위험하지 않는 바위를 붙들고 이리저리 돌아 오르는 재미는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백미가 아닌가 싶다.
깎아지른 벼랑에 설치된 로프를 붙들고 올라서면 세 바위봉으로 이뤄진 영암산의 모습이 또렷하다.
아기자기한 암릉을 뒤로하고 올라서면 영암산 북봉(북봉, 중봉, 남봉은 필자가 임의로 붙임)이다. 세 바위봉우리 중 지형도에 표기된 상봉이지만 아무런 표시물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잡목들로 둘러싸인 일반적인 봉우리로 조망마저도 시원찮다. 여기서 북서쪽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신거리고개에 이르고, 선석산 방향은 왼편의 바위봉으로 이어진다. 북봉에서 중봉을 거쳐 정상표석이 서있는 남봉까지는 양편이 바위벼랑을 이루고 있어 약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남봉에 올라서면 아담한 돌탑과 함께 정상표석이 자리하고, 운치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사방이 시원스럽게 트인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압권이다. 성주에서 김천쪽으로 이어지는 중부내륙고속도로의 공사가 한창이다.
성주군 초전면 일대의 비닐하우스 단지는 한낮의 햇빛을 받아 넓은 호수를 연상케 한다. 비닐하우스 단지 너머로 가야산이 솟아 있고, 시계방향으로 대덕산, 민주지산, 삼도봉, 황악산을 잇는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아슴푸레하게 스카이라인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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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선석산까지는 1시간3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다. 널찍한 바위를 지나면 로프를 붙들고 내려가는 암벽지대다. 곧이어 또다시 로프가 걸린 바위를 내려서면 눈앞에 암릉이 나타난다. 이 암릉을 넘어서면 세 번째 로프가 걸린 바위벼랑이다.
이곳은 이때까지와는 달리 제법 고도감이 느껴지는 곳으로 초보자들은 반드시 암릉 직전에서 오른편 우회로를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
암벽지대를 통과하면 경사가 가파른 내리막 숲길이다.
곧 안부인 잘록이에 갈림길 팻말이 서있다. 다시 500m 정도 더 진행한 곳에도 이정표가 있는데, 보손지라고 가리키는 곳은 중리지의 등산로 입구를 말한다.
이제부터 선석산까지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이다. 산등성이를 비켜 오른편 산허리를 에돌아 이어지는 산길은 수목으로 뒤덮인 숲길이다. 성주군과 칠곡군의 경계선을 따르는 이 산길은 영암산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영암산이 날카로운 바위와 벼랑으로 이뤄진 골산이라면 선석산은 부드럽고 넉넉한 육산의 면모를 지녔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여유롭게 올라선 선석산 정상은 널따란 쉼터를 제공한다. 둘레에 큰 나무들이 많아 조망은 좋지 않지만 주변은 넓고 편평하다. 선석산(禪石山)은 이 산자락의 성주군 월항리에 있었다는 옛 절 선석사(禪石寺)에서 유래한다. 절 아래편에는 육관도사 손석우씨가 우리나라 30대 명당으로 지목한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실지가 있다.
그런데 정상표석에는 누진산(樓鎭山)으로 표기돼 있어 의아하다. 칠곡이나 성주의 지명에서 서진산(棲鎭山)으로 표기된 문헌은 많은 편이지만, 그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누진산은 그 근거가 어디에도 없다. 이는 한자인 루(樓)와 서(棲)가 서로 비슷한 글자인 관계로 잘못 쓰는 우를 범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국립지리원 지형도에도 선석산으로 표기돼 있다. 또 옛 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8권 성주목 산천조에는 ‘주 북쪽 28리에 있다. 세조의 태를 봉안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잘못된 표석과 이정표 등은 하루 빨리 정리해 이 산을 찾는 사람들이 혼동을 일으키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선석산은 남동쪽의 비룡산과 동쪽의 시묘산으로 산길이 나눠지는 갈림목이다. 이제 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시묘산으로 향한다. 시묘산은 지형도에 표기돼 있지는 않지만 신유 장군 유적지 북쪽의 366.9m봉을 일컫는다.
시묘산으로 향하는 산길은 구불구불한 능선으로 연결되지만 고만고만한 봉우리 몇 개를 오르내려야 한다. 15분쯤 지나면 금오산이 바라다보이는 전망 좋은 마당바위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얼마동안은 하늘을 가린 수목들로 주변 전망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거리 안부를 지나면 가끔 갈림길을 만나지만 능선길로 진행한다. 한 굽이 산길을 올려칠 즈음 산허리를 가로질러 나아가면 송전탑이 흉물스럽게 자리한다. 여기서 15분이면 능선 상에 쌓아놓은 돌탑이 있고, 발아래로는 북삼 일대와 약목 일부가 훤하게 보인다.
다시 10분 뒤면 이정표가 있는 안부 갈림길. 곧장 통나무 계단길로 오르면 체육공원을 만나고 된비알의 산길을 왼편으로 돌아 오르면서 봉분이 커다란 묘지가 있다. 다시 한 굽이 내려섰다가 올려칠 즈음 길가에 길원지(吉原地)라 새겨진 뜻을 알 수 없는 표석을 지나 왼편으로 오르면 시묘산 정상이다. 잡목에 가린 산정에는 삼각점(선산 45, 1982 복구) 외에는 별다른 시설물이 없을뿐더러 주변 조망도 시원찮다.
시묘산(侍墓山)의 시묘는 부모가 돌아가면 3년간 묘 옆에 여막을 짓고 묘지를 돌보는 시묘살이를 일컫는다. 이 산은 이와 같은 내력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행방향으로 곧장 내려서면 시묘샘 팻말을 볼 수 있고, 신유 장군 유적지까지는 1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데,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있어 큰 어려움은 없다. 하산 후 알게 된 사실은 능선 갈림길에서 200m 떨어진 헬기장에 시묘산 표석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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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념물 제38호인 신유 장군 유적지(申瀏將軍遺蹟地)는 조선시대 무장을 모시는 사당이다. 장군은 1619년(광해군 11) 이 고장에서 태어나 27세 때 무과에 급제, 1658년(효종 9) 청의 요청에 의해 원군을 이끌고 만주로 원정하였다. 청 군사들과 함께 송화강과 흑룡강이 만나는 곳에서 스테파노프 장군이 이끄는 러시아군과 접전을 벌여 대승을 거두는 전과를 올렸다.
이를 조선의 제2차 나선정벌(羅禪征伐)이라 하는데, 장군은 이 전투의 기록을 북정일기에 남겼다. 그 뒤 경상우수사, 전라좌수사, 경상좌도와 황해도 병마절도사, 포도대장 등을 지냈다.
주차장 옆에는 약목면 복지회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별로 사람이 없지만 벚꽃이 활짝 피는 봄이면 지역학생들의 교육장소로, 또 연인들은 데이트장소로 많이 찾는다고 한다. 여기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도로를 따라 20분이면 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