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대란' 갈수록 심각… '아파트 덫'에 걸린 한국
벼랑끝 몰린 분양자들 집단 '입주 거부' 속출
건설사도 입주예정자도 "장기화땐 모두 망한다"
집값 하락에 따른 거래 중단과 아파트 입주 대란(大亂)이 시작되면서 후폭풍이 현실화되고 있다. 하반기에만 전국에서 17만여 가구가 입주한다. 이미 새집으로 이사할 길이 막힌 입주 예정자들은 곳곳에서 집단으로 입주 거부 운동에 돌입했다. 공사를 끝내고도 입주자로부터 잔금을 못 받은 건설업체는 수조원의 자금이 묶여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집값이 더 떨어지고, 거래가 계속 막히면 담보대출 부실로 신용불량자와 파산자가 늘고 금융권 부실도 커질 것"이라며 "금융위기보다 더 큰 충격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아파트 거래 60% 급감
최근 수도권 주택 거래는 사실상 올스톱 상태에 빠졌다. 지난 5월 수도권의 아파트 거래량은 예년의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서울 강남 3개구(강남·서초·송파구)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12월 이후 17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강북도 예년 평균보다 60% 이상 줄었다. 분당·일산·평촌 등 수도권 신도시는 71% 감소했다. 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 박원갑 연구소장은 "지금 같은 거래 감소는 실수요자의 정상적인 거래까지 완전히 막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거래가 막히면서 아파트 실거래가도 최고점 대비 30%까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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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말부터 입주를 시작한 인천 청라지구의 한 아파트 단지. 입주가 시작되고 열흘이 지났지만 총 900가구 중 30가구만 입주를 마쳤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아파트 입주 거부로 곳곳에서 마찰
거래 중단으로 살던 집이 팔리지 않자 집단으로 새 아파트 입주 거부 운동에 들어가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5월 말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는 2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모 아파트 입주예정자협의회 대표가 "대책 없는 입주를 거부한다"며 삭발식을 했다. 이 아파트는 4000가구가 넘는 대단지로 최근 분양가 이하로 분양권 시세가 추락하면서 입주 예정자와 시행·시공사가 마찰을 빚고 있다.
경기 용인의 한 아파트 입주예정자 120여명도 지난달 초 용인시청 광장으로 몰려가 "현재 분양권 시세가 분양가보다 최대 1억원 떨어졌다"면서 "살던 주택도 안 팔려 입주할 수 없으니 분양가를 20% 깎아달라"고 요구했다.
거래 중단 장기화로 잔금을 못 낸 입주자 중 상당수는 고리대금에 가까운 연체이자에 신음하고 있다. 입주 지정 기간에 잔금을 못 내면 최고 연 21%에 달하는 연체이자가 부과되고, 최악의 경우 금융권에서 신용불량자로 지정한다. 용인의 139㎡(42평)형 아파트 입주 예정자인 허모(47)씨는 "중도금 대출과 잔금 연체이자로 매월 200만원 이상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사도 고통스럽다. 입주와 동시에 받아야 할 잔금(통상 분양가의 30%)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분양가 3억원짜리 아파트 1000가구를 짓고 잔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900억원이 잠긴다. 건설업계에서는 하반기에 예정된 수도권 아파트의 평균 입주율이 50%에 미치지 못하면 최소 3조~4조원의 자금이 묶일 것으로 추산한다.
문제는 앞으로다. 가계의 소득과 체감경기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가운데 집값이 더 떨어지면 이자 부담이 커지고 소비 위축도 불가피하다. 올해 원리금 상환 만기가 돌아오는 주택담보대출도 44조원을 넘는다. 전문가들은 "집값이 더 하락하면 미국처럼 가계 부도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대출 상환을 위한 매물이 쏟아진다면 주택 시장은 더욱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