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008. 05. 12) 오후에 고향 청도에 다녀 오면서 함안 무진정 방향으로 가던 길에
함안나들목으로 나가지 않고 칠서나들목으로 나와서 대산면 가는 지방도를 오면서
대산면 소재지 인근에 知人이 하던 공장의 근황을 살핀 후에 여섯번 째로 처녀뱃사공
노래비와 처음으로 악양루에 올라 옛날 선비들이 시상에 젖어들었을 아름다운 풍광을
구경한 후에 단풍이 물들 가을에 다시 찾아보기로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01. 처녀뱃사공이 노를 저었던 그 江 (남강 지류로
'함안천'으로 불린다) / 노래비의 남쪽(가야읍 방향).
#02. 사진 왼쪽이 노래비, 오른쪽에 안내표시판이 보인다
#03.
#04.
#05.
#06. 처녀뱃사공이 노를 저었던 그 江 (남강 지류로 '함안천'으로 불린다)
노래비의 북쪽방향, 남강과 합류한다 / 끝단 지점에 악양루가 위치한다
#07.
#08. 처녀뱃사공의 조카 되시는 分이 식당을 운영한다고 알려져 있다.
#09.
#10. 전봇대 뒷쪽으로 내려가면 악양루에 오르는 오솔길이 있다
#11. 넓직하게 자리잡은 주차 가능한 여유공간
#12. 백파 홍성유의 '한국 맛있는집 1234점' 안내판.
#13. 난생 처음으로 알게된 회이름 "웅어회"
#14. 처녀뱃사공이 노를 저어 건네주면 배에서 내려 대산면 지역으로 오르던
고갯길 (처녀뱃사공을 탄생시킨 악단장 윤부길씨 일행도 힘들어 하며 고갯 길을
올랐을 것이다...)
♣ 노래비가 세워진 곳 ; 경남 함안군 대산면 악양리
'처녀뱃사공' 노래의 발상지는 함안군 대산면 악양루 앞의 나루터이다.
함안군 가야읍에서 악양루로 향하다 보면 악양루 입구에 '처녀뱃사공'
노래비가 자리하고 있다. 남강이 흐르는 법수면과 대산면을 잇는 악양
나루터에는 처녀뱃사공이 노를 저었다.
6.25전쟁이 막 끝난 1953년 9월 유랑극단 단장인 윤부길이 그 모습이
궁금해 사연을 듣게 된다. 당시 23세였던 박말순과 18세의 박정숙
두 아가씨가 교대로, 군에 갔다 소식이 끊긴 오빠(6.25때 전사함)를
대신해 노를 젓게 된 것이다. 벌써 5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애절한 사연을 가사로 쓰고, 1959년 한복남의 작곡으로 민요가수
황정자의 입을 통해 노래가 탄생한다.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처녀뱃사공' 노래는 1975년에는 최고의 인기를 끌며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악양루가 있는 곳은 남강과 함안천이 만나는 지점으로 주변경관이
빼어나다. 악양루 입구의 지방도 변에 '처녀뱃사공' 노래비가 세워져
나그네를 반긴다. 2000년 10월에 있었던 노래비 제막식에 당시 함께
배를 탔던 윤부길의 아들인 가수 윤항기가 참석해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노래비의 앞면에는 노래 가사가 적혀 있으며,
뒷면에는 노래에 얽힌 유래가 상세히 소개되어 당시 상황을 잘
전해주고 있다.
노래비 바로 앞으로 함안천이 흐르고 있으며, 함안천과 남강이
만나는 지점도 한눈에 들어와 전망이 좋다.금방이라도 처녀
뱃사공이 나타나 나룻배를 저으며 남강을 가로질러 갈것만
같다.
노래비를 찾아나셨다면 함께 들러야 하는 곳이 악양루이다.
악양루가든에 주차한 후 강변의 산책로를 따라 500여 m를
걸으면 악양루와 만난다. 악양루(도 문화재자료 190호)는
대산면 서촌리 악양마을 북쪽 절벽에 자리하고 있다.
악양루는 조선 철종 때인 1857년에 남강의 거암 단애에
세워진 정자이다. 함안천과 남강이 만나는 합류지점 약 400m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다. 남강 건너편인 법수면의 제방과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데다, 남강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어 시원스런 전망을 자랑한다. 악양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옆에서 볼때 팔 ?자 모양의 팔작지붕이 올려져 있다.
이곳의 풍광이 중국의 악양에 비길만하다 하여 악양루라
지었다고 전해온다. 늦 가을에서 겨울철에는 남강변 모래
사장에 철새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도 볼 수 있어 한결
여유롭다.
♤ 추천맛집
악양루가든 (055-584-3479)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가든 바로 앞이 그 옛날
악양 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이제는 노젓는 나룻배가 아닌
모터보트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한다. 나룻터 건너편은 갈대가 바람에 하늘대는 모습이 정겹다.
악양루가든 주인장의 누나와 고모가 바로 처녀뱃사공의
주인공이다. 주인장을 통해 당시의 생생한 증언을 전해들을
수 있어 노래비 탐방시 필수 코스로 꼽는 곳이다.
어탕국수와 어죽 등 전통민물고기 요리가 나그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백파 홍성유의 '한국 맛있는집 1234점' 등에
소개된 민물요리 전통 맛집이다.
악양루가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50여 m를 가면 악양루가
나온다.
→ 글 : 넥스투어 여행전문가 김정수
찾아가는 곳 ☞
1. 남해고속도로, 함안IC(나들목) -> 법수면소재지로 좌회전
-> 대산면 방향으로 우회전 (이정표 참조)
2. 중부내륙고속도, 칠원/칠서 나들목 -> 대산면소재지(지방도)
-> 법수면소재지로 넘어 오늘 길(고개를 넘어서면 닿는다)
.... 찾아온 악양루 모습.........
#01. 악양루 가든에서 내려오면 보이는 악양루 안내판 (약 50미터 전진 하면 닿는다)
#03. 바위 틈 사이로 난 오솔길
#04. 바위 사이로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면...
#05.
#06. 벼랑을 끼고 찾아가는 길(약주 많이 드신 후는 각별히 조심 할 것...)
#07.
#08.
#09.
#10. 바윗길을 지나쳐오면 저만치 절벽위 아름다운 풍광속에 악양루가 고운 자태를 나타낸다!
#11.
#12. 악양 마을 북쪽 절벽에 있는 정자로, 조선 철종 8년(1857)에
세운 것이라 한다. 악양루는 전망이 아주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정자 아래로는 남강이 흐르고, 앞으로는 넓은 들판과
법수면의 제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국전쟁 이후에 복원하였으며, 1963년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3.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의 이름은 중국의 명승지인 ‘악양’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기두헌’이라는 현판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청남 오재봉이 쓴 ‘악양루(岳陽樓)’라는 현판만 남아 있다.
#14. 악양루 마루 사이로 보이는 남강(南江)의 넉넉한 풍경!
#15. 입구쪽에서 바라본 남강 방향의 윗부분.
#16. 남강을 뒤로하고 바라 본 입구 방향의 윗부분.
#17. 조선 후기 이곳을 다녀간 선조들의 여러 시문詩文 현판이 걸려 있다.
#18.
#19. 넓직한 제방이 한눈에 들어온다.(上部에 진주 남강댐이 들어서게 됨으로
수량이 크게 줄어 물이 흐르는 강폭이 좁아져 강 언덕배기의 놀고 있는
땅이 제법 넓다./ 봄날 이곳의 강언덕배기에서 "남강 야생화축제"가 열린다.
#20.
♤ 등악양루(登岳陽樓: 악양루에 올라) / 淸道人, 朴武兼 ♤
산천은 의구依舊하고 악양루의 아름다운 풍광도 그대로이건만
풍류 즐기는 詩人墨客(묵객) 간곳없고 찾는 이 발길마저 뜸하니
홀로 찾아온 길손(客)의 가슴속에 온갖 상념想念이 이는 구나
無心히 흐르는 저 강물은 상심傷心한 나의 마음을 알아나줄까
...
#21. 수박밭이 있는 넓은 들판, 원두막이 한가롭다...
#22. 처녀뱃사공이 나룻배로 건너 주었던 강(함안천)은 다리로 연결이 되어 다리 아랜 강태공의 명당
자리가 되었고 저 건너 보이는 산은 함안시내와 無盡亭 지나 여항면에 위치한 명산, 여항산(艅航山)
#23. 강변 수풀속에 피어난 하얀 찔레꽃이 떠나는 길손에게 잘가라고 인사한다!
(늦가을에 다시 찾을꺼야 홀로 다짐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은 돌린다...)
# 24. 악양루의 늦가을 風光 (사진 출처: Daum blog 묵향의 정원)
♧ 중국의 악양루(동정호의 호수와 문화유적이 어우러진 곳) ♧
▲ 두보의 詩로 더욱 유명해진 악양루(岳阳楼)
후난성(湖南省)에 위치한 동정호(洞庭湖)는 연화봉이 자리한 헝산의 북쪽을 가로막은
중국 최대의 호수다. 호수의 면적은 계절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난다. 겨울부터 봄까지
수위가 내려가는 시기에는 3000㎢정도 되지만, 물이 불어나는 여름에는 4000㎢에
이른다. 동정강이라고도 불리는데, 엄밀히 말해서 호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4개 하천의
물이 모였다가 양자강으로 들어가는 줄기지만, 그 모양이 호수처럼 생겼다.
동정호가 유명한 것은 중국 역대의 역사와 전설, 문학이 서려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3대 누각으로 일컬어지는 악양루와, 호수 가운데 떠 있는 군산이라는 섬이
유명하다. 동정호는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동정추월이라 하여 동정호에 비치는 가을
달빛이 특히 아름답다. 달빛이 아름다운 호수라면 용왕이 살기 좋은 곳이 아니겠는가?
당연히 동정호 용왕은 온 중국 사람들이 다 아는 전설과 역사의 주인공으로 군림해왔다.
옛날 진시황이 지방을 순찰하다 동정호에서 심한 풍랑을 만났다. 옥으로 만든 도장, 즉
옥새를 호수에 던지니 물결이 잔잔해졌다. 8년 후 진시황이 화음지방을 지날 때 한 노인이
길을 막고 서서 “용왕님께서 돌려드리는 것”이라며 옥새를 주고 사라졌다. 진나라가
망하고 한나라가 서자 진시황의 손자가 그 옥새를 한나라의 유방에게 바쳤다. 이때부터
옥새가 황제의 상징이 됐다고 한다.
군산(君山) 은침차(銀針茶) : 동정호 안에는 군산이라 부르는 조그만 섬이 떠 있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군산에는 옛부터 내려오는 갖가지 전설이 묻혀있으며
호반의 악양루에서 보면 ‘은쟁반 위에 놓인 푸른 조개’처럼 보인다. 이 섬은 중국의
명차로 알려진 은침차와 관상용 죽림이 재배되고 있다. 이 은침차는 선인(仙人)이
살고 있다는 군산에서 생산되는 차로 당나라 때부터 황제에 진상되던 귀한 물건이
었다. 마치 은빛 바늘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생산량이 적어 희소가치가
높은 제품이다.
登岳陽樓
昔聞洞庭水, 今上岳陽樓.
吳楚東南坼, 乾坤日夜浮.
親朋無一字, 老病有孤舟.
戎馬關山北, 憑軒涕泗流.
악양루에 올라
동정호 이야기를 오래 전에 들었는데
오늘에야 악양루에 오르게 되었구나.
오나라와 촉나라가 동남으로 나눠 있고,
하늘과 땅,해와 달이 밤낮으로 동정호수에 뜨고 지네.
친척과 친구로부터는 소식도 없고,
병들고 늙은 몸을 쪽배에 의지하는 외로운 신세.
관산의 북쪽에는 아직도 전쟁 중이라니,
난간에 기대서니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린다
▲ 두보(712~770)
두보의 시로 더욱 유명해진 악양루 : 악양루는 삼국지의 무대로, 오나라의 왕
손권이 지은 것이다. 형주를 뺏으려고 촉나라의 유비와 다투던 중 전략요충지인
동정호 부근을 장악하였다. 이때 동정호에서 수군을 훈련시켰는데, 호수의 군사
훈련을 감독할 망루로 악양루를 지은 것이다. 당대 이후 군사적 가치를 상실한
것을 재상 출신인 장설(张说)이 악양루라는 이름의 누각으로
새로 지은 것.
건설 당시부터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악양루는 훗날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 가 이곳을 둘러보고 ‘악양루에 올라’라는 명시를 남기면서
웨양을 대표하는 명소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 시는 786년 늦은 겨울 , 두보가
후베이, 후난을 유랑하면서 악양루에 올라 지은 작품이다. 만년의 산수시로써
그의 풍부한 인생경험을 통한 감회가 짙게 배어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에
젖어 들게 한다.
※ 중국 강남의 3대 누각 ※
▲ 황학루
악양루는 우한의 황학루(黃鶴樓)와 난창의 등왕각 (藤王閣)과 함께 강남 3대
명루로 꼽힌다. 한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두보(杜甫)의
등악양루(登岳陽樓)의 무대 동정호와 악양루이다.
@ 후베이성(湖北省) 우한(武汉)의 황학루(黃鶴樓) : 무한 창장 기슭에
위치하고 있고, 천고의 명승, 천하의 절경으로 칭송되었다. 삼국시대 오나라
황무(黃武) 2년(서기 223년)에 처음 건립된 후 수많은 전설을 잉태했고,
시인묵객들의 발걸음이 끊어지지 않았던 곳이다.
@ 후난성(湖南省) 웨양(岳阳)의 악양루(岳陽樓) : 후난성 웨양시
서문 성루 위에 위치한 것으로, 두보의 등악양루 로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 장시성(江西省) 난창(南昌)의 등왕각(藤王閣) : 난창시 서남쪽에 세운
누각. 중국 당나라 태종의 아우 등왕(滕王) 이원영(李元嬰)이
홍주 도독으로 임명.되었을 때 지었다. 각은 그의 봉호로 명명되었다.
▲ 장시성 난창의 등왕각
♪ 처녀 뱃사공 - 조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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