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의 고려위치는 대륙에 있었다.
[영화의 화보]
[영화의 줄거리]
1. 고려말 공민왕때 공민왕의 후세를 놓고 원과의 갈등이 있자 왕(주진모)은 호위무사와 왕후의 대리궁합을 명하는데, 궁합은 계속 이어지고,여인의 몸을 알게된 호위
무사(조인성)는 정략적인 궁합을 떠나 왕후(송지효)와 애정을 느끼게 되는데, 이들은 결국 금기의 사랑에 빠지게 된다.
2. 결국 이 사실은 왕에게 발각되어 호위무사는 피신하게 되고, 나중에 왕후의 임신이 알려지자 대리궁합을 아는 궁인들은 모두 살해된다. 호위무사도 그 대상이 되었
고 결국엔 호위무사 홍림은 왕을 죽이기 위해 대궐에 잠입하였다. 이에 왕과의 결투를 하다가 모두 죽게 된다.
3. 영화평은 한마디로 애정의 뜨거운 장면이 예상외로 많이 나왔고, 성애의 69위도 나올정도이다. 무술장면은 사실적으로 잘 표현해 내었다. 사랑과 유혹, 배반등 캐
릭터들의 심리상태로 인한 사건 사고가 잘 전개되고, 풍류에서 고려의 무악과 악기, 노래등이 새롭게 표출되었다.
[역사적인 배경]
1. 고려당시 중국대륙엔 중국이 없었다. 중국의 국가로 정해진 송나라, 남송, 거란, 요, 서요, 동여진, 서여진이 모두가 고려와 몽골(대원)에게 망하고, 대륙엔 고려와
몽골(대원)밖에 없었다. 쌍화점에서도 보면 대원의 칙령을 읽는 몽골의 대변인의 말이 중국어가 아니고 몽골말이었다. 생소하게 들리는 대원어였다.
2. 그당시 고려는 몽골 대원의 부마국이었다. 즉 몽골의 사위국가, 고려의 공주는 몽골에 시집을 가서 몽골의 황후가 되었고, 그래서 고려는 사위국가 , 부마국이 되
는 것이다. 고려는 몽골의 속국으로 전락하였지만, 몽골의 지배를 받지 않은 독단적인 나라였다. 몽골이 고려를 멸망시키지 않은 이유도 동족이라는 개념과 고려를
상국으로 여겨왔었다는 감정이 내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3. 몽골 징키스칸도 선조가 고구려의 주몽, 동명성왕이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몽골도 고구려을 계승한 고려를 인정하였고, 같은 몽골 부족국가중의 하나로 대우해 주
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몽골 징키스칸이 일어나기 전 몽골은 고려의 제후국으로 북부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었던 것이다.
4. 위치별로 보면 고려는 초창기 유라시아를 휩쓸고 있었다. 만리지국이라 하여 고려사에 그리 나오고 있다. 동으로 한반도를 비롯하여 중국대륙, 중앙
아시아, 아라비아반도까지 그 영토를 넓혀가고 있었다. 인근 국가( 거란,서요,동여진,서여진,남송)들과의 모든 싸움을 승리하여 300여년간 대제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5. 고려중후반에 북쪽의 몽골이 크게 부족을 연합하여 제국을 형성하여 고려의 북쪽지방을 석권하며 고려에 압력을 가하게 되었고, 결국 몽골-고려간 전쟁에서 몽골
이 승리하여 제후국에서 황제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토만큼은 거의 몽골에게 넘겨주지는 않았다. 몽골은 기껏해야 현몽골지역과 중국의 내몽골지역이북
에서 시베리아지역이었고, 고려는 그 이남의 중국이 모두 고려의 고유영토였었다. 가히 고려라 하더라도 대국으로 독립국으로 현존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겠다.
그러나 중국의 국가들은 모두 멸망하여 대륙안에 존재하지 못했던 것이다.
6. 영화속에서 장면을 보면 고려왕궁은 한반도풍으로 지어졌고, 의상들은 중국풍의 냄새가 많이 풍겼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몽골의 간섭이 있던 시기에 몽골풍의 의
상이나 머리모양, 풍습들의 표현이 부족했다. 그리고 고려의 왕궁이나 건축물들은 현재의 중국풍으로 지어져야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