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평리 의정부에서 첫 버스로 도평리에 오니 7시30분인데 광덕고개를 넘어 사창리 가는 버스는 8시35분이 첫 차니 1시간을 기다려야한다. 전에도 이 사창리 첫 버스를 탄 적이 있었는데 지금에야 차 시간이 생각이 나니 괜히 이른 걸음을 했다. 어디 들어갈 데가 없나 두리번거리다 추위를 참지 못하고 앞의 기사 식당으로 무작정 들어간다. 이 사람 저 사람 밥 먹는 것을 지켜보며 난로 멀찍이서 1시간을 보내고 식사를 안했어도 눈총 한번 주지 않은 일하는 아주머니께 고마운 마음을 보내고 사창리 버스를 탄다. 광덕고개를 넘어서 4-5km 내려가다가 반암산 휴게소에서 내리니 작은 나무 이정표가 걸려있고 개울을 건너서 허옇게 눈이 쌓인 산길로 들어선다.(08:58)
- 반암산 오르는 길에는 휴게소에서 등산로 표시판을 간간이 달아 놓았으며 처음부터 가파른 길이 이어지고 낙엽 위로는 적당히 눈이 쌓여 굉장히 미끄럽다. 쓰러진 나무들을 넘어서 낙엽에 푹푹 빠지며 작은 암봉을 오르니 멍석바위라는 전망대 바위가 나오는데 바로 앞에는 학이 춤추는 형상이라는 무학봉이 우뚝하고 발 밑으로는 사창리 일대가 훤하게 보이며 읍내를 감싸고 있는 두류산의 긴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랜만에 만나는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에 겹겹이 솟아있는 수많은 봉우리들 사이로 멀리 대성산도 보이는 듯하다. 눈이 덮고 있어 미끄러운 암릉들을 지나면 날카로운 암봉들 너머로 반암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암봉 하나를 우회하고 오르니 큰시멘트 판들이 서있고 숫자들이 적혀있는데 아마 군 훈련장으로 쓰였던 모양이다. 다시 험상궂은 암봉을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 오르는데 길이 무척 가파르고 잡을 것이 마땅치 않아 까다로우며 지금처럼 눈이 쌓인 겨울에는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암봉을 올라 보조 자일을 잡고 가파른 암릉을 넘어서 헬기장을 지나면 작은 정상석이 서있는 반암산(832m)이다. (10:25) 가져간 지도에는 구름다리바위와 구멍바위등 족보있는 이름들이 적혀있는데 전혀 보지를 못했으니 암릉을 통과하느라 신경을 쓰기는 했지만 참 면목 없는 일이다.
- 한북정맥 덕골에서 올라오는 등로를 지나 능선으로 계속 진행하면 군 참호와 토치카등 군 시설물들이 이어진다. 참호 사이로 얕으막한 길을 걷다가 뒤돌아보면 속살을 감춘 반암산은 평범한 낮은 봉우리로 보이고 백운봉에서 이어지는 한북정맥이 평행선을 그리며 나타난다. 임도를 넘고 꼬불꼬불한 능선 길을 지나가면 화악산의 공군기지에서 석룡산을 지나 도마치에 이르는 장대한 능선은 주위의 여러 군 시설물들과 어우러져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견고하게 보인다. 완만한 능선 길을 오르면 도마치에서 올라오는 능선과 만나고 쉬는 김에 빵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다. 지난 겨울에는 몇명이서 석룡산을 올랐다가 도마치 휴게소에서 막걸리를 잔뜩 마시고 증기 기관차처럼 더운 김을 내뿜으며 맹렬하게 이곳을 오른 적도 있었다. 능선을 조금 올라가니 큰 냄비에 소세지와 콩나물을 잔뜩 넣고 끓여서 먹지않고 내버린 김치찌개가 보이는데 이 산 속에서 어떤 사람들이 저런 못된 짓을 했는지 인상이 찌프려진다. 중얼 중얼 욕을 해대며 한북정맥 능선 상의 헬기장에 올라가니 예전의 찬 바람은 간 곳 없고 봄날처럼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며 도마치봉과 주위의 암봉들이 수려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11:34)
- 국망봉 올 때마다 재미없는 방화선 길이 이어지고 눈 속에서 억새들은 지고 있으며 함부로 파헤쳐 놓은 참호들은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 그나마 눈에 걸리는 것이 없어 읍내와 도로들이 시원하게 보이고 광덕산에서 각흘산을 지나 명성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하늘금이 위안이 된다. 국망봉은 마치 바로 앞에 있는 듯 솟아있고 신로봉 전에서 용수목 쪽으로 길게 내려간 지능선이 눈에 띄는데 저런 능선이면 길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올라가 보니 지도에는 표시가 없지만 역시 초입에 표지기 몇개가 보인다. 오랜만에 신로봉(999m)에 올라 가리산으로 이어지는 노송이 즐비한 암봉들을 감상하고 신로령으로 내려가면 가파른 눈길이 기다린다.(12:49) 봉우리를 오르다 보면 정맥 종주자들이 간혹 좋은 길로 우회한것이 보이는데 어려운 길이면 몰라도 가능하면 마루금을 제대로 밟아야 하겠다. 국망봉 바로 전의 암봉에 오르면 방화선은 없어지고 다시 운치 있는 산길이 시작된다. 마지막 가파른 눈길을 지나서 국망봉(1168.1m)에 오르니 젋은 부부 두분이 다정하게 점심을 먹고 있다.(13:32) 바람 한 점 없는 따뜻한 정상에 앉아 장암저수지를 내려다 보며 정상주 한잔을 마시면 화악산은 지척이고 한북정맥의 물결은 흐릿하게 보이는 험준한 운악산을 향하여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 민드기봉 정상에서 내려가면 전에는 못보던 무인 산불감시초소가 서있는데 공사재도 여기저기 널려있는것이 최근에 지은 모양이다. 무주치폭포로 내려가는 길을 지나고 잠시 후 휴양림의 광산골에서 올라오는 등로를 만난다. 관목과 억새들 사이로 내려가 잡목이 울창한 개이빨산(1110m)에 오르니 이정표도 있고 용수목에서 올라오는 등로가 뚜렷하며 내려가면서 작은 암봉들을 몇개 지나는데 멀리에서 보면 개이빨처럼 보인다는 그 암봉일 것이다.(14:12) 얼굴을 찌르며 성가시게 하는 잡목들을 헤치고 작은 봉우리에 오르면 민드기봉이 바로 앞에 보이고 적목리 쪽으로 뻗은 동쪽 능선은 제법 덩치가 크고 길게 이어지는 것이 하산로로 적당하게 보인다. 안부로 내려가 가파른 길을 조금 올라가면 온통 억새로 뒤덮힌 민드기봉(1023m)인데 헬기장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길은 도성고개와 강씨봉을 거쳐 청계산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이고 왼쪽으로 꺾어지는 능선이 적목리로 내려가는 길이다.(14:57)
- 승덕고개 잡목과 억새가 무성한 숲 속에서 오래된 표지기 하나를 확인하고 동쪽으로 내려가면 낙엽 사이로 희미한 족적이 이어진다. 완만한 길을 따라가면 삐쭉삐죽하게 암봉들이 솟아있는 개이빨산의 정상부가 인상적으로 보이고 민드기봉은 머리위에 불쑥 솟아올라 지긋하게 밑을 내려다 보고있다. 인적도 없는 한적한 숲속을 걸으며 이런저런 잡념에도 빠져 보지만 행여 길을 잘못들까 정신을 바짝 차린다. 잡목이 빽빽한 낮으막한 817봉을 올랐다가 어울리지 않게 수풀 속에 설치된 작은 삼각점 하나를 지나면 임도가 나오는데 바로 승덕고개이다. (15:58) 고개를 넘으면 벌목 때문에 나무들이 많이 쓰러져있어 바로 앞에 보이는 능선도 오르기가 힘들다. 이리저리 돌아서 능선에 붙어 차돌박이산으로도 불리는 710봉을 오르면 명지산에서 귀목고개를 지나 귀목봉으로 이어지는 산괴가 더욱 웅장하게 보이고 좌우로는 거림과 논남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이제는 지능선들이 자주 갈리고 길은 거의 흔적이 없어 주능선의 방향만 잡으며 내려가면 ㅇ산악회의 표지기들이 간간이 길을 확인해준다. 고도를 낮추며 내려가면 적목고개로 생각되는 안부에 닿지만 길도 불확실해서 계속 능선을 이어간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고 삼각점이 있는 583봉에 오르면 마치 비행기를 탄 듯 사창리와 가평을 잇는 383번 도로가 까마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16:50)
- 가평천 다 헤진 프랭카드가 지저분하게 널려있는 정상에서는 좌우로 능선들이 갈라지는데 논남쪽으로는 길이 있지만 가림쪽으로 내려가는 등로는 보이지 않는다. 지나쳤던 안부로 돌아가다 보면 가림 쪽으로 작은 지능선 하나가 갈라지는데 마치 인공 시설물이 있는듯 언뜻 흰 막대가 보인다. 부리나케 내려가보니 눈 속으로 긴 나무 하나만 쓰러져 있는데 다시 올라가기도 귀찮아 그냥 내려가니 무덤들이 보여서 안도해보지만 밑으로 길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무작정 내려가면 잡목과 넝쿨들이 꽉 차있고 낙엽에 가려진 너덜 속으로 발이 푹푹 빠지며 쓰러진 나무들은 밑으로 포복하거나 힘들게 타 넘는다. 이리저리 돌며 어렵게 내려가니 얼어 붙은 폭포 지대가 나타나고 여기도 멀치감치 비껴서 통과한다. 가파른 급사면을 내려가면 드디어 가평천이 나오고 절개지를 기어올라 도로에 오르니 가림마을 약간 밑인데 아름다운 교회 안내판이 서있고 안부에서 내려오는 넓은 길이 보인다. 안부로 되돌아 갔으면 편하게 내려왔을것을 자만했다가 죽을 고생만 한 셈이다. 터벅터벅 내려가며 지나가는 차를 기다리면 주위는 금새 어둠에 빠지고 능선을 넘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몸이 움추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