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숙님은 염부다. 소금밭에서 잔뼈가 굵어 노인이 되었다. 평생 외길을 걸어오셨는데 칠십이 넘은 지금도 일을 놓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바닥에 장판을 깔았지만 얼마 전까지 토판 염을 고집하셨다. 토판 염은 천일염 중에서도 최고다. 칼슘, 칼륨, 미네랄 등 갯벌의 영양분을 그대로 품고 있지만 작업속도가 느리고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장화를 신으면 염판에 흠집이 나기 때문에 짠물에서 맨발로 작업을 해야 하니 발이 견뎌내질 못한다. 그렇게 조심해도 흙이 일어나는데 흙이나 이물질을 걸러내는 것도 일일이 수작업이다. 대파 질을 할 때도 흙이 쏠리지 않도록 어깨로 힘을 모으고 바닥에 발자국이 남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 세워야한다.
몇 년 전에 나라에서 염전을 없애려고 장려금까지 주며 권장했었다. 갯벌이 좋은 신안군은 국내 천일염의 70%를 생산하는데 그 사이 폐 염전이 많이 늘었다. 염전은 함초가 자라는 갯밭이 되거나 새우 양식장으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시숙님은 끝내 일터를 붙들고 있었다. 그런데 외국 사람들이 천일염을 보고 하늘이 내려 준 보석이라고 극찬하며 왜 이런 보물 밭을 없애려느냐고 의아해 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사양길에 들어섰던 염전이 살아나게 되었고 친환경 바람을 타고 다시 기지개를 켰다.
천일염은 지구 0.1%의 희귀자원으로 신의 선물이다. 동물이나 식물, 세포가 있는 생명체는 소금이 없으면 죽는다. 사막이나 만년설이 덮인 히말라야에도 소금 길이 있다. 예로부터 소금이 생산되거나 교역이 이루어진 곳은 대도시가 되었다. 지금도 소수 민족들은 소금나무에서 염분을 채취하거나 암염을 찾아 땅을 파기도 하고 수십 킬로 떨어진 소금 호수를 찾기도 한다. 염부들은 바람과 햇볕을 동업자로 여긴다. 사람은 땀을 흘릴 뿐, 노력만으로는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소금을 자신들이 만들었다고 하지 않고 소금이 왔다고 한다.
우리 천일염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게랑드 소금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지난해에는 엄격하기로 유명한 청결식품마크인 코셔(kosher) 인증을 받았다. 젖산 발효식품인 김치나 젓갈이 상하지 않은 것도 그 비밀이 소금에 있다. 굴비며 된장, 각종 장아찌...천일염이 명품 음식을 만든다. LA에 있는 최고의 맛 집에서도 한국 소금을 사용한 뒤로 손님이 많아졌다고 한다. 앞으로 우리 소금은 한류바람을 타고 한식의 세계화에도 한 몫 할 것 같다.
날이 풀린 4월부터 소금밭 일이 시작된다. 염도 2%의 바닷물이 소금이 되려면 10단계쯤 과정을 거쳐야 한다. 1단계는 수로를 통해 바닷물을 끌어들인다. 그 물을 누테(증발지)로 올려 덧 물을 뿌려주며 염도를 높여가는데 그게 물 만드는 작업이다. 보매도(염도계)의 눈금이 17도를 넘어가면 해주(소금물을 담아두는 곳)에 저장한다. 시숙님은 자면서도 라디오를 머리맡에 틀어둔다. 그렇게 일기예보에 촉각을 세우다 비가 오면 만사를 제쳐두고 염전으로 달린다. 증발지에 깔아놓은 소금물에 빗물이 섞여버리면 며칠 동안의 수고가 헛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비설거지를 하는 염부들은 번개처럼 빠르다. 숨이 붙었다 끊어졌다 할 정도로 일을 몰아서 한다. 여기저기 물꼬를 터서 해주로 물을 모은다.
비가 개면 다시 해주에 저장해 놓았던 물을 끌어 올린다. 몇 년 전까지 수리차질을 했는데 지금은 전기가 들어와 양수기를 돌린다. 염도가 28도가 되면 소금을 앉힌다. 이 때 햇살의 열기는 대단하다. 염부들의 장화는 늘 땀이 고여 질척거린다. 오죽하면 소금 한 되에 염부 땀 한 되라는 말이 생겼을까. 영하로 내려가야 굳는 민물과 달리 바닷물은 30도가 넘어가면 제 모습을 잃어버리고 단단하게 굳는다. 마지막 결정지로 옮겨진 물은 오후 세시가 넘어가면서 하얗게 모습을 바꾼다. 육각형의 하얀 알갱이들이 송알송알 모여드는데 이것을 소금 꽃이라고 한다. 안개꽃을 흩뿌려 놓은 것처럼 동동 떠다니는 소금 꽃은 물에서 하얀 별들이 솟아난 것 같다. 소금 꽃은 데 금방 가라앉기 때문에 바로 떠야 한다. 이 꽃소금이 정제하지 않은 자연산 가는 소금이다.
해가 설핏해 지는 5시부터 채렴이 시작된다. 대파로 소금을 한 곳으로 긁어모으는 것이다. 대파질을 할 때는 좁은 보폭으로 걸으면서 어깨에 바짝 힘을 줘야 한다. 무거운 소금을 밀다보면 여지없이 근육이 뭉친다. 소금이 많이 온 날은 저녁도 거른 채 달빛을 받으며 일을 한다. 염부들은 집에서도 고봉밥을 먹지만 도시락도 5인용 밥통보다 크다. 대파질 몇 번이면 배가 꺼져버리기 때문이다. 대파질이 끝나면 소파질을 한다. 다음 소금을 앉히기 위해 바닥에 남아있는 소금을 녹여주는 것이다.
소금 판은 경사가 맞아야 한다. 1미리라도 차이가 나면 물이 낮은 곳으로 모여 소금이 고르게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염부는 소금밭이 쉬는 겨울에도 놀지 않고 바닥을 다진다. 바닥을 다지는 일을 발발이라고 하는데 발발이는 품앗이로 한다. 여러 사람이 꼬리를 물고 빙빙 돌면서 뛰는데 흡사 달팽이가 기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오리들이 떼를 지어 뒤뚱거리며 걷는 것 같기도 하다. 뛰는 데도 요령이 필요하다. 앞사람 발자국과 겹치지 않게 빈틈없이 밟아줘야 하는 것이다.
한 군데로 모은 소금은 외발 수레에 담아 창고로 옮긴다. 요즘은 창고까지 레일을 깔아 밀고 다니지만 전에는 어깨에 지고 옮겼다. 대 광주리 가득 소금을 담아 나르느라고 시숙님의 어깨에는 옹이가 박혔다. 그렇게 채취한 소금은 염막에 보관했다가 간수가 빠지면 날을 잡아 포장 작업을 거쳐 판매한다.
소금은 장마가 지난 한 여름, 짧은 시간에 만들어 낸 것이 가장 맛이 좋다. 염부들은 이 때 만든 소금을 달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맛있다는 뜻이다. 시숙님네 염전은 산과 가까운 곳에 있는데다 갯벌을 끼고 있어 바람이 많다. 사월 끝자락쯤이면 소나무마다 노란 송화가 피어오른다. 하늬바람을 타고 송화 가루가 염전으로 날아들면 노란빛을 띤 송화소금이 만들어진다. 송화소금 알갱이를 혀끝에 대면 입안이 환해지면서 진한 솔향기가 풍긴다. 시숙님은 그 소금을 아껴두었다가 보내주신다. 시숙님의 땀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귀한 선물이다. 우리 집 모든 음식은 시숙님 표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시숙님은 소금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저수지에서 창질을 한다. 창은 대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만든 지극히 원시적인 도구다. 시숙님의 창질 솜씨는 훌륭하다. 창을 던졌다 하면 백발백중 운저리(망둥어)가 달려 나온다. 그럴 때의 시숙님은 아마존의 전사 같다. 물꼬 막이 판자에 썰어서 풋고추와 함께 된장에 찍어 먹는다. “제수씨 딱 한 점만 잡싸 보쑈. 달디 달단 말이요” 시숙님은 어떻게든 먹여보려고 애를 쓰는데 나는 매번 도리질을 하고 만다. 눈을 퍼렇게 뜨고 퍼덕이는 것을 어떻게 먹겠는가.
가끔 시골에 가면 해 넘어갈 때쯤 염전에 간다. 염전 옆에 있는 원둑에 오르면 볼 것이 많다. 짱뚱어가 뜀을 뛰고 칠게는 숨바꼭질 한다. 등지느러미를 곧추 세운 망둥어들의 싸움구경도 재밌다. 저수지에서 모시조개를 한 바가지쯤 잡아놓고 나서 소금 내는 일을 거들어 드린다. 다른 일은 잘 못해도 대파질은 할 수 있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시숙님을 뵈러 가야겠다. 꽃소금이 오는 것도 보고 대파질을 하며 땀도 좀 빼야겠다. 이번에는 운저리 먹기에도 한 번 도전해 볼까나?
첫댓글 옛추억이 나는구나 요정아 너가 쓴 글은 이렇게 맛있냐 고맙다
구석구석 조리있게 적어노은 모든사물을 보는든같구나
고맙다 네고향 향수을 적게해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