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7월 북한의 전 주이탈리아 대사대리 조성길 씨가 한국에 입국한 사실이 JTBC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그 동안 극비에 붙여졌던 그의 신분이 하루아침에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고 취재한 언론에서 실제로 그들 부부를 만났다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여기에 대해 처음에는 국가 기밀 정보부와 통일부 등 탈북자 관련 주무부처는 관련 사실에 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말은 통상 알고 있으나 말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의 SNS를 통해 그 사실이 확인되었다. 말하자면 정부는 껄끄러운 말을 야당 의원의 입을 빌려서 한 셈이다.
1년이 넘게 정착해서 잘 살아오던 이들이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꾸었을까? 보도에 따르면 조성길 전 대사대리의 부인이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전부터 강력히 원했다고 한다. 그들 부부에게는 장애를 가진 외동딸이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어미로서 장애를 앓고 있는 딸이 늘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부인의 폭탄선언에 대해 조성길 전 대사대리는 말이 없다. 결별을 하지 않은 다음에야 말이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그 일로 부부싸움을 했다 하더라도 언론에 알린다고 하면 극구 말렸을 것이다. 언론에서도 조성길 전 대사대리를 만났다는 보도는 없는 형편이다. 이런 중요한 사건에 왜 한쪽 당사자 이야기는 없는 걸까?
상황이 어떻건 딸의 건강 때문에 북한으로 가기를 희망했다는 것은 어딘지 논리가 궁색해 보인다. 더구나 그런 말을 정부기관이나 그들의 신변을 보호하는 사람들을 재껴두고 언론에 불쑥 ‘나 돌아갈래’하고 영화 같은 말을 했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언론에서는 이런 특종이 어디 또 있을까. 그런 특종에 대해 그들의 입국과 송환 희망 사실에 대해 궁금한 것이 한 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보도를 위해서는 사실 확인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이다. 그들은 정부에 대해 어떤 사실을 확인했을까. 사실 확인이 없이 국제적으로 이슈가 될 수 있는 사안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었을까. 정부는 오히려 기사를 보고 알았다고 했다.
그 동안 그들 부부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정부의 철저한 보호 아래 있었다. 민초들은 그들 부부의 입국부터 오늘까지의 행적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이처럼 철저한 보안 속에서 그들의 실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던 것은 북한의 보복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 부부의 양가 집안은 북한에서 상당한 권세를 누리는 집안들이다. 그들이 현재 어떠한 상황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들 부부의 실체가 외부로 드러난다는 것은 그간의 김정은의 성정으로 볼 때 그들 양쪽 집안의 생사가 걸릴 수도 있는 문제일 수 있다.
그런데도 부인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건 뭔가 국가와 사전 교감이 충분히 있었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 의심일 것이다. 부인의 말이 보도되어도 정부의 어느 곳에서도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부의 관련 부서에서는 발칵 뒤집혔어야 정상이 아닐까? 그러나 정부는 짐짓 태연할 뿐만 아니라 온통 모르쇠다.
그들 부부와 관련한 북한이 반응이 재미있다. 현재까지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 정부는 모르쇠고 북한은 반응이 없다는 건 사전에 양쪽이 교감을 가졌다는 정황을 짐작케 한다. 북한은 이럴 경우 전례를 보면 입에 담기 거북할 악담을 퍼주었었다. 그런데 말이 없다. 이것이야 말로 북한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의미로 읽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이 정부는 초기부터 줄곧 북한에 대한 구애가 거의 광적인 수준이었다. 뭔가 한방을 터뜨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북 대화 주선은 한반도에 해빙무드는커녕 양쪽으로부터 불신만 받는 오리 알 신세가 되어 버렸다. 대통령은 효과에 성급했고 대북라인은 서툴렀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집념은 식을 줄을 모른다.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뭔가 강력한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느낄 만한 시점이다. 여기에 국내의 정치적 상황도 여의치 않다. 자고 나면 새로운 문제들이 고구마 줄기 나오듯 나온다. 특히 북한군에 의한 우리 공무원 사살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냉담하다.
이를 일거에 만회할 무엇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숱한 악재들을 코로나로 덮고 관리해왔으나 민초들은 차츰 코로나 정국에 식상해 한다. 그러므로 일거에 정국을 뒤흔들 한방이 절실했을 것이다. 북한도 숨통을 돌리고 이 정권도 지금까지 드러난 수많은 악재를 잠재울 뭔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때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등장한 것이 ‘양치기 소년’이 아닌가 싶다. 과거 독재 시절에도 민심이 흉흉하면 희한하게도 간첩이 나타났었다. 민초들은 놀라서 움츠리고 군인들이 우르르 몰려다녔다. 그때는 간첩이라는 메뉴는 거의 블랙홀 수준이었다. 물론 그때는 북한과 날선 대립을 하고 있던 시기였으므로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날선 대립이 아니라 이 정부는 북한과 함께 가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일석이조의 노림수가 필요한 것이다. 여전히 민초들에게는 북한은 안보와 직결되므로 관심거리다. 과거 군부 정권이 안보를 강조했다면 이 정권은 평화를 강조해왔다. 북한과의 화해 무드는 매우 매력적이다. 그 동안 빗나간 미·북 대화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북한엔 유화 제스처를, 국내에는 평화 분위기 조성을 꾀하는 묘수로 조성길 전 대사대리가 시야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추측이 된다. 조성길 전 대사대리가 한국에 입국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뉴스임이 틀림없다. 그런 그들 부부가 탈북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갈등을 빚고 마침내 부인이 송환을 원한다면 그야말로 각본이 기막힌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북한 입장에서도 체제 선전을 할 수 있으니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 동안 탈북자들이 더러 재 입북을 하는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조성길 전 대사대리의 경우는 그런 재 입북과는 격이 다르다. 그렇다면 그들이 또는 그 부인이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절대적이나 이 정부는 그 절대적 의견을 뛰어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터라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여당 의원은 통일부 장관에게 슬그머니 북송을 권유하고 통일부장관은 공감대가 형성이 되면 상황을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서로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슬쩍 송환의 운을 띄운 것이다. 이 정부는 결국은 북한과의 협상 테이블에 이들의 송환을 올릴 것이다.
과거 김대중 정권 시절 남북합의에 따라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북송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부터 대한민국에 귀순할 의사가 없었던 예외적 사례였다. 이 정부 들어서도 탈북 의사를 밝힌 두 명의 북한인을 서둘러 판문점을 통해 다시 돌려보낸 적이 있다. 상황은 달라도 북송의 전례는 있는 셈이다.
어차피 정치란 이현령비현령이 아니던가. 정부는 남북화해라는 상징성을 부여해서 이들에 대한 북송을 추진하려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전초전 격으로 소위 대국민 간보기를 하는 중이다. 그러데 여기서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엄청난 금융스캔들이 그 동안 꽁꽁 숨겨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연평도 앞바다에서 실종된 공무원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는 바람에 민초들의 시선이 온통 그곳들로 쏠리고 있다. 자연스레 조성길 전 대사대리와 관련한 뉴스가 지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다. 자칫 멋진 각본임에도 불구하고 찻잔 속의 미풍 같은 헤프닝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기왕에 남북 간의 밀약에 의해 기획된 것이었다면 조성길 전 대사대리 문제는 기왕에 드러난 문제이므로 언제든 수면 위로 떠오를 살아있는 카드가 될 것이다. 내년이 선거의 해이므로 더욱이. 그러나 민초들은 매번 ‘양치기 소년’에게 속을 만큼 우매하지는 않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