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놉시스를 제대로 쓰는 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플롯과 스토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라는 말이 특별히 스토리와 플롯, 이 두 가지의 차이점을 설명하는데 가정 적절한 것 같아서 인용을 해봅니다. 플롯이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오는 개념으로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야기의 ‘구조’ 정도에 해당할 것입니다. 시학의 주장대로라면 가장 큰 플롯의 종류는 ‘비극과 희극’ 이렇게 두 가지 정도이겠지만 이런 플롯을 아무리 더 확장시켜본다고 해도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기본 플롯은 채 서른 가지가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지금 새로운 이야기라고 믿고 있는 것들도 플롯을 정리해보면 모두 이미 존재하는 플롯들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얘긴데요. 하물며 전통적으로 내러티브적인 제약이 많은 영화 스토리텔링에서 가능할 수 있는 플롯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가 생긴지 100년이 넘은 후로 계속해서 과거의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것에 열중인 허리우드만 봐도 이제 영화에서 쓸 플롯은 다 썼기 때문에 더 이상은 창조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하지만 리메이크가 되어도 스토리는 현대적 감각에 맞추어 변형되기 때문에 관객들은 리메이크 영화도 새로운 영화처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플롯과 스토리의 차이를 아실 것 같은데요.
그러면 플롯을 스토리로 만드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요소가 과연 무엇일까요? 답부터 얘기하자면 바로 ‘설정(setting)’이란 것입니다. 얼마 전에 본 ‘데자뷰’란 영화를 예로 들어본다면 사실 이 영화의 플롯은 ‘백투더퓨쳐’, ‘터미네이터’, ‘시월애’의 플롯과 같습니다. 그 플롯은 이정도가 되겠네요.
“주인공이 과거와의 조우를 통해서 원치 않는 미래를 원하는 미래로 바꾼다.”
하지만 이 세 영화의 스토리는 모두 다릅니다. 왜냐하면 인물의 캐릭터, 시대적 상황, 공간적 상황... 등 이 모든 설정들이 다 다르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서 좀 더 작가를 비참하게 만드는 식으로 표현해 본다면 새로운 스토리의 창조란 이미 존재하는 플롯에 새로운 설정을 가미하는 정도의 작업인 것입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시놉시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 자신만 보려고 쓴 아이디어 메모 정도의 시놉시스가 아니라면 분명히 그 목적은 자신이 구상한 영화의 스토리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일 텐데요. 제작자가 아닌 단지 막역한 사이의 친구가 본다고 해도 결국 남을 보여주기 위한 글은 그 형식이란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형식이 없이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체계의 숙명 때문이죠. 물론 아무렇게나 써도 다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더라... 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이미 글을 쓰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형식의 틀에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형식을 떠날 수 없다면 좀 더 바른 형식으로 글을 써야하지 않을까요? 더더군다나 전문가가 되려고 한다면 그 형식에 있어서 전문적이 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형식’이 바로 ‘전문성’이니까요. 이 형식이 바로 플롯인데요. 플롯이 드러나 있지 않은 시놉시스는 시놉시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최근의 충무로 경향은 큰 영화사일수록 제작자나 프로듀서들은 시나리오보다는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를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시나리오가 없어도 이야기만 좋으면 개발해서 좋은 시나리오를 만들 인력과 자본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다보니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이 되려고 해도 시나리오를 잘 쓰는 것은 2차적 문제고 일단은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를 잘 써야 합니다. 어차피 이것들로 제작자를 설득해서 일을 얻지 못한다면 시나리오를 쓸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제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미 플롯에는 새로운 것이 없는데도 제작자이나 프로듀서들은 항상 ‘새로운’것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이제 감이 잡히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이야기’란 바로 ‘새로운 설정’임을 아셔야합니다.
그래서 시놉시스를 쓰는데 플롯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가 이러한 설정들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설정을 어떤 순서로 보여주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점이 생기는데요. 이것을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이 바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배웠던 기초적인 작문법을 이용하는 겁니다.
누가 - 주인공이 어떤 사람으로 설정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성별, 나이, 직업, 성격 등...)
언제 - 주인공이 살고 있는 시간적 배경을 얘기해줍니다. (사극인지 현대물인지...)
어디서 - 주인공이 처한 공간적 상황을 설명해 줍니다. (거주지, 직장, 사건의 발생 장소...)
무엇을 - 주인공이 해결해야 하는 갈등의 요소를 설명합니다. (악당, 병, 무관심...)
왜 - 주인공이 그 갈등요소를 제거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어야겠지요. (동기 유발...)
어떻게 - 주인공이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투쟁, 인내...)
여기서 갈등이란 말이 갑작스러워서 조금 생소할 테지만 갈등이야말로 모든 드라마의 핵심요소입니다. 위의 설정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꼭 생각해야 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HOOK: 이 영화가 왜 만들어져야 하는가? (무엇이 관객의 흥미를 끄는 요소인가?)
2. HERO: 주인공은 어떤 사람인가?
3. GOAL: 주인공은 이 영화에서 어떤 목적을 가졌는가?
4. ANTI-HERO: 주인공의 목적달성을 방해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이것이 바로 악당)
5. CONFLICT: 그래서 발생되는 갈등은 어떤 것인가? (이것이 영화의 주된 사건)
이런 핵심만을 기술하면 글 속에서 길을 잃고 장황한 이야기로 쓸데없이 시놉시스가 길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적이고 깔끔한 형식의 시놉시스가 됩니다. 그러나 제작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새롭게’ 또 ‘흥미롭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치장은 좀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장을 화려하게 쓴다거나 장황하게 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바로 위에 적어놓은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HOOK, 즉 이 영화가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요소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영화의 도입부와 클라이맥스 부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시작으로 흥미를 끌어야 일단은 글을 계속해서 읽게 되며 클라이맥스가 재미있어야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이 두 부분에서는 좀 더 감각적인 표현이 필요한데... 도입부의 예를 들자면...
주인공 동민은 30대 직장인으로서 매일 집근처 공원으로 아침운동을 나간다. 그러던 그는 어느 날 운동 중 매일 마주치며 눈인사 정도를 나누었던 20대 여인이 괴한에게 납치되는 것을 목격한다.
이것보다는...
허약한 체격의 30대 직장인 동민은 매일 아침 그렇듯이 오늘도 집근처 공원으로 운동을 나가지만 다른 날들과는 조금은 다르다. 매일 운동 중 마주치면 언제나 상냥한 눈인사를 해주어 그에게 운동을 계속할 동기를 주던 20대 여인이 지금 그의 눈앞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되고 있는 것이다.
뭐... 이런 식으로 짧은 시놉시스지만 읽으면서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도록 좀 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놉시스를 쓰면서 범하는 가장 흔한 오류가 영화 광고지에 나오는 시놉시스와 혼동하여 결말을 ‘그래서 동민은 그녀를 구하러 나서게 되는데...’ 이런 식으로 끝을 맺는 것인데 이것은 마케팅을 위한 시놉시스일 뿐 제대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결말까지 작성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요소들에 주의하면서 자신이 정해놓은 플롯에 맞추어 설정들을 붙여 나가다보면 저절로 제대로 된 형식의 시놉시스가 탄생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적어놓은 것들은 장편영화, 단편영화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자신의 시놉시스가 영화로 만들어지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제작현실을 고려한 스토리를 써야합니다. 만들 영화가 독립영화인데 스파이더맨과 같은 시놉시스는 의미가 없는 것이 될 것이며 30분 정도의 단편영화인데 2시간 정도의 장편영화에나 맞는 시놉시스를 쓴다면 그냥 자신의 상상력이나 테스트 해보는 용도의 시놉시스가 되겠지요.
결국 좋은 시놉시스를 쓰는 법을 한 단어로 요약해본다면 ‘배려’인데요. 시놉시스를 읽는 이를 위한 배려, 그것이 발전된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를 만들게 될 이들에 대한 배려, 영화가 되었을 때 그것을 보게 될 관객에 대한 배려... 이런 것들이 결국 좋은 시놉시스를 쓰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장황하게 글을 쓴 것은 바로 이 말을 하기 위해서인데요. 마지막으로 자신이 읽어봐서 부족한 시놉시스는 남이 읽어도 부족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전에 자신이 먼저 읽어보고 또 읽어봅시다.
-유세문
Question or Comment? http://www.cyworld.com/semoony
첫댓글 감사합니다.^^;;
뭉뚱그려서 알고 있는 것 들, 정말 알고싶었던 것 들을 정확히 짚어주셨어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