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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을 넘는다. 거침 없이 빠르게 넘을 수 있다. 아흔아홉 굽이를 돌고 돌아 넘던 그 시절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그렇지만 세상사 모두가 편하고 빠른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편하고 빨라진 대신 낭만이 사라졌다.
아흔아홉 굽이 대관령을 걸어서 넘는다. 곶감 열 줄 허리에 차고 길을 나선다. 한 굽이 한 굽이를 돌 때마다 곶감 한 개씩 뽑아 먹는다. 멀고도 험한 굽이 모두 돌고 보니 곶감은 한 개만 남았다. 그래서 아흔아홉 굽이라고 했더란다.
재경강릉시민회는 ‘고향을 생각하는 수상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회지 <강릉사람들>을 펴냈다(1997년). 이 회지 속에는 대관령이라는 지명이 가장 많이 나온다. 그만큼 대관령은 강릉사람들 가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관령이 넘기 쉬운 고개라면 과연 그럴까.
이 회지의 글 몇 줄을 여기 인용해 본다. 건국대부속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신 박용근 선생의 ‘고향 가는 길’ 중의 일부다.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한양서 강릉을 가자면 7일에서 10일은 걸렸던 길. 1940년대 초 서울 유학시 방학이 될 때면 방학 수일 전에 서울역 소화물계에 짐을 탁송하고 집에 전보를 친 후 방학날 밤 11시 경원선 만주 목단강(滿洲 牧丹江)행 열차를 많이 탔다. 열차의 제일 앞칸이 양양행으로, 안변역에서 동해북부선 원산~양양으로 자동 연결되게 된다. 기차는 통천, 장전을 통과하면서 새벽 일출이 외금강을 비추고 해금강을 통과한다.
아침 8시경 양양역에 도착. 오전 10시경 강릉행 버스를 탄다. 오후 5시경에야 강릉에 도착한다. 그러니 꼭 이틀간, 시간으로는 20시간이 걸린 셈이다. 이토록 지루한 길이었지만 언제나 이 길은 즐거웠기 때문에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강릉 산꾼부부 이기호-이선희씨의 ‘왕숯불구이’
‘얼리지 않은 생돼지고기 전문점’을 표방하고 있는 왕숯불구이의 메뉴는 단출하다. 생삼겹살(1인분 200g 7,000원)과 생고기두루치기(1인분 6,000원)가 메뉴의 전부이고, 점심시간에 한해 주변 직장인들을 위한 특별메뉴로 돼지고기김치찌개(4,000원)를 내놓는다. 삼겹살을 굽는 솥뚜껑 같은 철판이 특이하고 생고기두루치기가 대단한 인기다. 서울의 어느 TV방송도 이 집을 소개한 바 있다. 시청에서 지정한 모범업소가 강릉에 수십 집도 넘을 터인데 이 집을 소개한 것을 보면 그 명성을 알 만하다.
왕숯불구이에 인접한 옥천동 5거리 용봉볼링장 맞은편 큰 길가에는 강릉에서는 가장 큰 규모라는 등산장비점 강릉산악(033-647-3853)이 있다. 웬만한 등산장비는 다 진열해 놓았는데 할인정가제라는 이 집의 상품들은 강릉의 다른 업소들보다는 확실하게 싸다는 것이 주인의 주장이다. 서울에서 장비도매상을 하는 한 업소와 같은 집으로 분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밝혔다.
강문 회마을의 토박이집
‘해양회센타’
▲ 상차림이 꽃꽂이처럼 조화롭다.
이럴 때 업소를 찾아가는 현명한 선택이 있다. 토박이들이 잘 가는 토박이집으로 가면 된다. 시내에서 경포대로 가는 길, 강문 회마을로 가면 틀림이 없다. 효산콘도와 현대호텔의 중간, 강문 해수욕장에 접해 있는 강문 회마을에는 이 지역 출신 토박이들이 운영하는 20개 업소가 성업 중이다. 단골 고객은 주로 강릉시내 사람들이다. 밤이면 오징어잡이배에서 쓰고 있는 집어등으로 조명을 한 곳이라 대낮처럼 환한데 어느 집이나 손님들로 북적된다.
회마을로 조성된 것이 오래지 않고 앞바다 고기를 바로 구입해서 상을 차리는 곳이라 업소의 시설이 깨끗하고 음식값이 싸게 마련이다. ‘해양회센타’(033-652-1331)로 들어가 본다. 주인 내외 진병국(44)-권옥화(40)씨도 이 지역 토박이다. 내외가 함께 이곳 강릉대학을 나와 고향에 대한 애착 또한 남다르다고 자부했다. 나이에 비해 많은 경력을 쌓았다는 조리사 신대중(32)씨가 차려낸 모듬회 쟁반이 꽃꽂이 작품처럼 아름다웠다. 식탁에 앉아 통유리 넓은 창밖으로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니 속이 확 트인다. 4인이 먹기에 충분한 분량의 모듬회 한 상이 60,000원이다. 매운탕이 따라 나오는데 매운탕 대신 우럭미역국을 주문해도 된다. 우럭미역국으로 숙취를 풀겠다는 아침 손님들도 많다고 했다.
강릉 먹거리 필수 코스
‘초당순두부마을’
▲ 모두부와 순두부에 비지찌개가 올라온 상차림.
이 마을에서 단연 돋보이는 ‘소나무집 옛날초당순두부’(033-653-4488)는 세상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안주인 김재선(金在善·44)씨의 친정어머니 때부터 2대로 이어져 오는 집이다. 인상이나 성격이 둥글둥글하다고 ‘둥글이’라는 별명의 김재선씨는 순두부 만드는 일 하나만은 대한민국에서 제1인자가 되겠다는 집념을 가졌다고 했다. 친정어머니 김원기씨도 딸의 솜씨는 인정할 만하다며 “두부박사 학위는 없느냐?”며 웃었다.
순두부백반·모두부 4,000원, 두부전골 15,000~20,000원. 식당 옆 소나무숲도 볼거리지만 소나무 아래 묻어 둔 단지 속에서 익힌 김치맛도 일품이다. 가까운 곳에 문향 강릉이 낳은 조선 중기 문인이자 사상가인 허균과 허난설헌이 태어나 어릴 때 뛰어놀던 초당 생가터(허난설헌)가 있다.
미식가들이 극찬한 성산마을
‘길목민속촌’
▲ 꿩만두 상차림.
이 집의 꿩만두국(5,000원)은 이 마을을 꿩만두국 마을로 만든 역활을 했다. 특히 이 음식은 겨울철 음식이라 눈 쌓인 산촌 경치를 보면서 식도락을 즐기겠다는 사람들이 경향 각지에서 모여 든다.
감자적(5,000원) 역시 이 집에서 제일 먼저 추천하는 음식으로 많은 미식가들이 그 맛을 극찬한다는 설명이다. 70을 넘기신 창업주 김성자(金成子) 할머니는 30년 동안 쌓아온 손맛을 며느리 김종숙(金鍾淑·44)씨에게 물려 주었는데 며느리 또한 쌓은 경력이 20년이나 된다. 감자적을 놓고 동동주 한 잔을 걸치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먼 산골마을까지 찾아오는 이유를 알 만했다.
넓은 공간의 식당 2층에서 내다보는 바깥 경치가 절경이다. 150명이 함께 이용할 수 있고 주차공간도 넉넉하다.
선자령 가는 길
‘산골아이들 놀이학교’
▲ '산골아이들 놀이학교'라는 부제로 놀이공원을 차린 보광가족관광농원.
겨울 횡계 순백의
‘고향이야기’
▲ 한우숯불구이로 명성이 자자한 고향이야기.
한우숯불구이 전문점인 고향이야기는 워낙 유명한 집이라 예약없이 갔다가는 문전에서 돌아서기 딱 좋다. 아침 11시에 영업을 시작해서 점심때는 곤드레돌솥밥(7,000원)과 오징어불고기(6,000원)를 차려내고, 저녁에는 등심(200g 22,000원)과 갈비(작은 것 4대 12,000원)를 차려낸다.
저녁 8시30분 이후에는 어떤 사람이 주문해도 주문을 받지 않는다. 업주 이종우(李鐘羽·45)-김순옥(金順玉·40)씨 내외의 이러한 프로근성이 오늘의 이 집이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한다. 눈이라도 펑펑 내려 길이라도 막히고 통나무집 지붕도 하얗게 되면 희디흰 순백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통나무집 밖으로 새어 나올 것만 같다. 식당 안 벽면을 장식한 아름다운 사진들은 사진작가인 업주 자신의 작품들인데 소재는 모두가 나무다.
대관령에 눈이 내리면 황태가 제철
▲ 대관령의 명품 황태를 소재로 한 횡계의 황태회관.
이 상태의 명태가 명태로서는 최상의 맛을 내게 되는데 이것을 황태라고 한다. 바람이 잘 불고 눈이 많이 내리지만 안개가 끼지 않는 영하의 기온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장소라야만 덕장 설치의 적지가 된다. 대관령이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켜 주고 있다.
대구과에 속하는 바다고기 명태는 고려 때부터 북어(北魚)라고 했는데, 한겨울 ‘북양에서 오는 고기’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뒷날 조선시대에 와서 그 이름이 명태(明太)로 바뀌었다고 한다.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온 낯선 고기를 본 임금님이 무슨 고기냐고 물었는데 그 이름을 몰랐던 상궁은 “함경도 명천에 사는 태(太)서방이 잡아 올린 고기”라고 아뢰었다. 그랬더니 임금님 말씀이 “그럼 명태이구먼”한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명태라는 이름을 얻게 된 사연도 재밌지만 사람들이 명태를 두고 부르는 이름도 웃긴다. 물태, 생태, 동태, 춘태, 하태, 여름태, 낚시태, 북어, 노가리, 코다리, 금태, 백태, 노랑태, 황태 등이다.
이러한 명태가 대관령에 눈이 내리면 제철을 만난다. 횡계에 있는 황태 전문음식점들도 제철을 만난다. 대관령 지역의 대표음식이기도 한 황태요리를 먹을 수 있는데 ‘고향이야기’와 인접해 있는 ‘황태회관’(033-335-5795)과 ‘송천회관’(033-335-5942)이 황태구이와 황태북어국, 황태찜 전문점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왜 평창송어인가
‘평창송어양식장’
▲ 송어회 상차림.
또 한 가지 평창에 따라 붙는 단어 하나가 있다. 송어다. 평창과는 전연 지역적인 연고가 없는 곳에서도 우리는 쉽게 평창송어집을 만날 수 있고, 또 평창에서 갖고 온 송어로 요리를 한다는 음식점을 만날 수 있다.
송어는 원래 우리나라 재래어종이 아니다. 1965년 처음으로 수입된 외래어종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수입된 곳이 평창이고 지금은 성공적으로 정착, 우리들의 미각을 즐겁게 해 주고 있다.
평창읍 상리에는 ‘평창송어양식장’(033-332-0505)이 있다. 이곳이 1965년 1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냉수어족인 무지개송어의 종란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도입해 양식을 시작한 곳이다. 당시의 강원도 박경원 지사는 도립양어장을 만들어 식량증산과 고단백질 식품공급이라는 기치 아래 송어양식을 시작했다. 뒷날 민간인 김수돈씨에게 이양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김수돈씨의 아들 김재용(43)씨가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송어 양식의 3대 기본조건은 수질과 수온, 그리고 수량인데 이곳 양식장은 이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켜주고 있다. 삼방산 줄기에서 솟아나는 7~13℃의 자연용천수가 이곳 양식장으로 공급된다. 전연 오염되지 않은 물이 송어양식에는 가장 이상적인 물이다. 1만 평이나 되는 넓은 부지 위에 만든 충분한 공간의 양식장에는 용전산소량(물속에 녹아있는 산소량)이 풍부하고 송어 한 마리가 차지하는 물속 공간도 넓다. 그래서 이 양식장에서는 물에다 인공으로 산소를 공급하지 않아도 된다. 살아있는 넉넉한 수량 속에서 자란 송어라 육질의 우수함은 새삼스러운 설명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잘 조경된 양식장은 학습탐방의 코스로도 좋겠고 유통과정을 하나도 거치지 않는 식당에서는 가장 저렴한 값으로 식도락을 즐겨봄직도 하다(송어회·튀김·구이 각 1kg 20,000원. 회덮밥 7,000원). 양식장 한 켠에는 송어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전국의 송어양식업자들이 모여 ‘송어 양식 30주년’을 기념해서 1995년에 세운 비다.
박재곤 산촌미락회 고문·60대산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