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계작가선
이경자의 『붉은 장미꽃잎이』
판형 15cm× 21cm 신국판 224쪽 ,
정가 12,000원
ISBN 979-11-85448-30-5 03810
발행일 2016년 11월 11일
발행처 / 수필세계사
2011. 2. 16(제2011-000007호)
41958 대구광역시 중구 명륜로 23길 2
TEL (053)746-4321 FAX (053)792-8181
■ 수필가 소개
이 경 자
jeun427@hanmail.net
경남 마산여고, 숙명여자대학교 가정학과,
경성대 예술대 미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창조문학』신인 수필문학상 등단.
한국문인협회, 부산문인협회, 한국에세이포럼 회원.
부산문협 수필분과 이사, 부산남구문협 이사.
한국미술가협회, 부산미술가협회 회원.
정은 음악학원 원장, 경성대 미술학과 외래교수,
동아대학교 회화과 강사 역임.
부산여성문학인협회 작품우수상, 부산문학상 우수상 수상.
수필집 『우리 둘이서 살살 써보자』, 『물수제비를 뜨다』,
『붉은 장미꽃잎이』
■ 목차
책머리에
빛을 향해 걸어온 길
제1부
다시 꽃이 핀다 13
환승 18
그동안 제대로 보았을까 23
세상 밖으로 27
깍지벌레 30
염주 34
갑옷을 두르고 38
여섯자루의 소금 43
금시계 48
제2부
목련꽃이 말했다 55
살아있다는 것은 59
붉은 장미꽃잎이 64
멋있는 붓글씨 68
등 굽은 향나무 73
흰 머리 78
누가 죽어 보았는가 82
에어컨을 안 켜는 이유 88
은영이 92
제3부
슬픔과 그리움의 빛 99
열 개의 훈장 103
이런 행복·1 108
이런 행복·2 112
이런 행복·3 117
피아노와 수제비 121
우산을 받고 127
해인사 홍류계곡 131
가을 산 135
제4부
달팽이와 꽃 그리고 나 141
동그랑땡에서 무슨 일이 146
수시렁이좀을 가리며 150
독구리난 154
빨간 머플러와 이사도라 던컨 159
칼마삭 분갈이를 하다가 164
책들이 말했다 169
아리랑 고개 174
제5부
아깝고 무거워서 181
아름다운 두 이별 186
언니의 말(馬) 190
벽지 196
첫 제사 200
어머니의 초상 205
산소에서 212
또 길을 떠난다 217
발문 홍억선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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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새 빛을 향해 걸어온 길
생각해 보면 지난 날 단 한 번도 시간에 쫓기지 않고 넉넉하게 살아보질 못했다. 무엇이 그렇게 나를 뒤쫓아 와 옥죄이게 하였는지 모르게 시간은 흘러갔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가 부러워 나도 그렇게 잘 그렸으면 했다. 6학년이 되자 6.25 전쟁 때 서울에서 피난 온 아이가 노란 바탕에 16분음표가 그려진 피아노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는 피아노를 치고 싶었다. 중학교 때는 시골에서 공부하러 온 친척언니가 우리 집에 같이 있게 되었다.
친척 언니는 수를 잘 놓았다. 손수건, 이불 보, 골무 만들기 등을 같이 배우며 지냈고, 결국 그것이 인연이 되어 대학 갈 때 전공과목을 가정학과로 택했다. 고등학교 때는 시인이던 국어 선생님이 마산의 여성 수필가 C씨의 글을 칭찬하여서, 나도 그 글을 읽고 수필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꿈이거나 큰 꿈이거나 사람들은 꿈을 꾼다. 그것이 더러는 이루어지기도 하고 중도에 포기해 버리거나, 평생 무지개를 쫓듯이 헤매기도 한다. 꿈을 이룩한다는 것을 거룩하고, 거창하게 생각했다.
그동안 순서로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지만 수놓기, 피아노 치기, 그림 그리기, 그리고 지금은 수필을 쓰고 있다. 처음에 이 모든 것이 그냥 그렇게 내 삶에서 필연적으로 점을 하나씩 찍고 가는 과정이거니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 삶을 되돌아보니 어릴 때 막연히 하고 싶었던 그 생각이 하나씩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꼭 그렇게 하리라고 작정한 것도 아니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놀라웠다.
나는 우리 집 다섯 형제자매 중 맨 꼴찌로 태어났다. 인물 좋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 오빠 셋과 언니를 위로 두고, 나는 외모도 그렇고 머리도 그저 그런 끝물로 태어나 형제들 사이 항상 열등한 위치로 존재감 없이 자랐다.
꼴찌나 끝물은 낱말의 의미는 다르지만 내포된 뜻은 비슷하다. 끝물은 과일로 치면 마지막에 달린 열매로 볼품없고 맛도 없다. 나에게는 꼴찌와 끝물이란 두 단어가 쌍둥이 같이 평생 나를 따라 다녔다.
꼴찌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빛을 향해 새로운 길을 계속 걸어가야 했고, 볼품없이 못난 끝물인 나를 알이 찬 과일로 되게 해야 했다.
젊은 날에는 70살이 되었을 때 쯤 수필집 한 권을 냈으면 했다. 그런데 어쭙잖은 글로 세 번째의 수필집을 내게 되었다. 이제 쫓기듯 살아 온 긴 시간들과 이별을 하고 싶다. 나는 지금이 좋다.
2016년 늦은 가을에
이 경 자
■ 발 문
이경자의 손가락 이야기
이경자의 수필은 잘 숙성된 와인이다. 제대로 발효가 된 푹 익은 빵과도 같다. 그의 수필을 읽어가노라면 나도 일흔쯤의 나이에 저렇게 깊은 맛이 우러나고, 여유마저 넘쳐나는 글을 쓸까 하는 부러움이 앞선다.
어느 현자賢者가 이르기를 인생 일흔이면 두 눈으로 바르게 보고, 두 귀로 옳게 듣고, 두 코로 향내를 구별하고, 입으로는 거침없이 말하며, 몸에 든 것을 밖으로 내보내는데 막힘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경자의 수필이 바로 그러하다. 그의 수필은 보고 듣고 말하는데 거리낌이 없으며, 다채롭기가 그지없다. 쌉싸름하다 싶으면 달달한 맛이 뒤따르고, 무미하여 맨 맛인가 싶으면 어느새 고소함이 입에 가득하다. 삶의 이력, 연륜이라는 것을 참으로 무시할 수가 없게 만드는 그의 수필이다.
수필이 작가의 자전적 보고서라면 나는 「열 개의 훈장」을 그의 대표작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비틀어지고 부풀어 오른 열 개의 손가락은 그의 인생을 대변하고, 그의 수필의 연원을 함축한다.
이경자는 네 토막의 인생을 살아왔다. 나는 그 네 토막의 인생을 ‘네 번의 환승換乘이 있었다’ 라고 말하고 싶다. 환승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고단함을 무릅쓰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차를 갈아타는 일이다. 우리 인생에서 점점이 찍어 놓은 징검다리를 건너는 일과도 같다. 그 징검다리는 건너가서 지워버리는 과거의 허물이 아니라 인생의 종착지에 이르러 마침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차곡차곡 쌓아가는 퍼즐 조각 같은 것들이다.
이경자는 숙명여대 가정학과 출신이다. 그 세대에 마산에서 서울로 올라가 대학을 다녔다면 모르긴 몰라도 있는 집안의 귀한 딸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학업을 마치고 한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상대는 언론사 기자였다. 의상학을 전공한 그는 남편의 박봉을 핑계 삼아 손가락에 골무를 끼고 바느질에 나섰다, 첫 번째 환승이다. 그때부터 그의 열 손가락은 길고 긴 수난의 길에 들어선다.
아이를 갖고 남산만한 배를 안고 병풍 수를 놓기 시작했다. 온종일 앉아서 아래만 쳐다보고 수를 놓으니, 다리는 저리고 얼굴은 술 단지 같이 퉁퉁 부었다. 그 일은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손으로 돈을 벌어 보겠다는 첫 번째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두 번째 환승은 피아노 교습이다. 두 손가락으로 침선의 수를 놓던 그가 열 손가락을 동시에 쓰는 일로 발전하였다. 30년이란 긴 세월을 그는 하루같이 피아노를 두드리며 수백 명의 제자를 가르쳐 세상 밖으로 내보냈다. 명문학원 원장이라고 명성이 높아갈수록 손가락은 혹사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삶의 터전이 되었고, 자식들을 튼튼하게 뿌리내리게 하는 도구가 되었다.
세 번째의 환승은 ‘그림 그리기’다. 쉰의 중반에 그는 느닷없이 만학도로 미술대학에 들어갔다. 학부를 거쳐 대학원에 진학하고, 강단에까지 섰다. 아홉 번의 전시회를 거치고 서양화가라는 이름표를 다는 동안 그의 오른 손은 더욱 흉하게 틀어졌다.
이제 그는 작가다. 오른 손의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세 손가락을 이용해서 글을 쓰는 수필가의 길 위에 서 있다. 그의 삶은 ‘오른 손 수놓기’에서 ‘양손 피아노 치기’ 그리고 ‘오른 손 그림그리기’로 갔다가 ’오른 손 글쓰기‘로 점철되어오면서 한 번도 손가락을 편안하게 두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가난했던 무관의 제왕은 지역 언론사의 관리자가 되었고, 두 아들은 치과의사가 되었다. 거기에다 치과의사, 인문학 박사인 두 며느리를 얻었다. 참으로 장한 열 개의 손가락이다. 갈퀴 같은 저 두꺼운 손가락들은 기어이 보상의 열매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가 건너온 네 번의 환승은 오로지 생활의 도구였고, 가족을 위한 희생이었을까.
나는 오 년 전에 수필가 이경자를 처음 만났다. 짧게 깎은 스포츠머리, 원색의 트렌치코트, 이사도라 던컨의 머플러 그리고 투사하는 눈빛, 투박한 돌직구의 사투리에 일순 압도되었다. 그리고 편편의 수필을 통해서 그가 먹고살기 위해 무작정 달려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순서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지만 수놓기, 피아노 치기, 그림 그리기, 그리고 지금은 수필을 쓰고 있다. 처음에 이 모든 것이 그냥 그렇게 내 삶에서 필연적으로 점을 하나 씩 찍고 가는 과정이거니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 삶을 되돌아보니 어릴 때 막연히 하고 싶었던 그 생각이 하나씩 이루어져 왔다.
그리하여 그는 수필가이고, 화가이고, 음악인이다. 세 번째 수필집 『붉은 장미꽃잎이』에는 그의 인생을 한 폭 그림으로 완성하게 한 열 개의 손가락 이야기가 눅진하게 녹아 있다. 아득하게 어린 시절, 막연하게나마 꿈꾸어 온 것들을 이루어 낸 애틋한 사연들이 숨어 있다.
-홍억선(한국수필문학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