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뢰하라
누가복음 12장22-32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그들을 끌고 가서 위정자나 권세있는 자 앞에 세울 때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할 것을 가르쳐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형제와의 재산 분할을 조정해주기를 요청하는 청년에게 모든 탐심을 멀리하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 그가 탐심으로 인해 그의 생명을 잃게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자가 그와 같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1. 염려하지 말라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12:22-2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22절). 다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대상이 무리들에서 제자들로 바뀌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물질적 조건을 확보함으로써 안전을 도모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또한 재산을 소유하지 못한 제자들로서는 무소유에 대해서 염려해서도 안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것들을 축적하기 위하여 노력하며(18절), 이것들이 확보되지 않을 때는 염려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그것을 염려하지 말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 즉 목숨과 몸을 위하여 재물을 축적하려 함으로써 싸움과 갈등을 일으키며, 그러므로 안전이 아니라 염려만 더욱 증폭되는 상황을 정지 시킬 수 있는 삶의 방식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전폭적으로 내어 맡기고서 이기적 탐욕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은 염려하지 않는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염려하지 말아야할 이유에 대해서 예수님은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23절). 목숨이나 음식, 몸이나 의복 -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알고 계십니다. 목숨이 중요함을 아시므로 음식을 주실 것이고 몸이 중요함을 아시므로 의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적어도 이 사실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의 가치를 혼동하여 본질적인 것이 아닌 음식을 위하여 본질적인 목숨을 가볍게 여기거나 중요하지 않은 의복을 위하여 중요한 몸을 하찮게 여기는 세상 사람들의 전도(顚到)된 가치관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2. 염려하지 말아야할 이유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12:24-26)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아야할 이유를 설명하면서, “까마귀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24절). 7절에서는 참새에 비교하여 제자들의 귀중함을 강조했는데, 여기서는 까마귀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마태가 단순히 '공중의 새'(마 6:26)라는 표현을 사용한데 비해 누가는 까마귀를 언급함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분명히 드러냅니다. 즉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까마귀는 부정한 새입니다(레 11:15; 신 14:1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까마귀를 돌보십니다. 하물며 새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중요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깃입니다. 까마귀가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는다는 말은, 사람은 심고 거둔다는 것 즉 노동을 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본문을 노동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고 말씀하십니다(25절). 본문은 해석상의 논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키'에 해당하는 헬라어 '헬리키아'는 '나이'를 뜻하기도 하고(요9:21), '신장'(身長)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19:3). 또한 '한 자'의 '자'(페퀴스)는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기의 길이를 한 단의로 하는 '규빗'(창6:15)을 뜻하는데 이 단위 역시 '길이'를 가리키기도 하고 '시간'을 가리키기도(시 39:5)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 될 수 있습니다. (1)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키를 한 자 크게 할 수 있는가"(Bengel,Godet,Farrar). (2)'시간'의 개념으로 보아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 있는가"(Bruce,Plummer,Vincent).
예수님은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26절). 본문은 마태의 평행 본문에는 없는 것으로 누가만의 독특한 기록입니다. 이 말씀은 25절에 대한 결론으로, 염려함으로써 해결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염려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키를 늘리는 것이든, 생명을 연장(延長)시키는 것이든 하나님께는 지극히 작은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철저히 무능력함을 인정해야 하며 자기의 노력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하는 믿음을 가짐으로써 삶의 안전을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3. 하나님의 돌보심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12:27-28)
예수님은 이어서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먹을 것에 대해서는 '새'에 비유하시고(24절), 입을 것에 대해서는 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백합화로 번역된 헬라어 '크리논'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들이 있는데, '크로크스', '터어키산 백합', '글라디올러스'등이 그것입니다. 또는 솔로몬의 자색 의복이 상응하는 자색의 아네모네 꽃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Dalman).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옷도 들의 백합화만큼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 말씀은 인간의 유한성과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세심하신 배려를 또 한 번 대조해 보입니다. 특히 이 백합화는 28절에서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것으로 묘사됨으로써 하나님의 크신 위엄을 더욱 뚜렷이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라고 말씀하십니다(28절. 이것은 수명의 짧음과 무가치함을 실감나게 표현하신 말씀입니다. 인간에 비하면 형편없는 가치를 가진 들풀을 아름답게 입히시는 하나님이 사람을 입히는 것은 자명(自明)한 사실입니다. 들의 풀들이 자라며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내는 것을 보면서 우주만물과 특히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여기서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꾸짖으셨던 당시의 세대들처럼(9:41) 믿음이 전혀 없는 것도, 가나안의 여인처럼(마15:28) 믿음이 큰 것도 아닌 상태이며 당시의 제자들이 아마 이런 상태 즉 믿음과 염려가 교차하는 상태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4. 너희는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12:29-3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권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29절) 22절 에서 주어졌던 '염려'에 대한 금령이 여기에서 재차 반복되면서 한층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너희는'(휘메이스)이 강조적 위치인 문장의 맨 앞에 나와 있습니다. 또한 '근심하지도 말라'는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말인데 '허공에', '높은 곳의'라는 뜻을 가진 '메테오로스'에서 온 고대 동사로 '희망에 들뜨다', '공중에 높이 들다'는 뜻입니다. 이는 허망한 욕망에 이끌려 상념이 가득찬 상태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삶을 위한 정당한 노력을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제자들의 내적 열망 즉 궁극적 관심이 먹고 마시는 것에 고착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30절). '세상 백성들'(타에드너 투 코스무)은 하나님을 믿지 일아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랍비적(Rabbinic) 표현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아 물질적인 삶의 조건들에 집착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라면 의당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을 따로 구할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31절). 지금까지의 금지령 대신에 여기서는 적극적인 의미에서 행위를 명하십니다. 본문의 의미는 (1) 물질적 관심보다는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기를 구하라. (2) 물질의 축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적 축복을 구하라 (3)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실천하라 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고 말씀하시며,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물질적인 조건들이 하나님의 나라보다 하위 개념이며 물질이 하나님 나라에 종속되어 있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 물질적인 것들은 부속물로 주어진 것이지 그이상의 것은 아닙니다.
적용: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뢰하려면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뢰하라고 명하십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무언가 해보려고 하기 때문에 염려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염려하지 말아야할 이유는 공중의 새들과 들의 꽃까지 돌보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공급하시는 분이기기에 하나님만 의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의뢰하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에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뢰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믿어야합니다. 사람들이 염려하고 있는 것은, 공중의 새들과 들의 꽃까지 돌보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아버지이심을 믿는다면 그들은 결코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아버지이심을 말씀하시며 공중의 새들과 들의 꽃까지 돌보시는 하나님이 하물며 너희를 돌보지 않겠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합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우리가 구해야할 것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합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회복 속에서 우리의 일상에 필요한 것들이 공급되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일을 돌아보면 필자가 20년 동안 선교사로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복음 사역을 하면서 먹을 것과 마실 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한번도 없었음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팬데믹 기간 동안에도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을 온전히 신뢰하는 자녀를 외면하지 않고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의뢰하며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하나님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주실 것입니다(롬 1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