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과 함께 했던 2010년
송년산행
(관악산
629m)
관악산의 전경(정상 연주대가 있는
기상레이더)
관악산
연주대
♧ 산 행 일 : 2010년 12월 29일(수) 날씨 : 맑음 (최고기온:-2.1℃,
평균기온:-5.7℃, 최저기온:-9.4℃)
♧ 산 행 지 : 관악산[冠岳山]629m(서울특별시 관악구, 금천구, 경기 과천시,
안양시)
♧ 산 행 자 : 나 홀 로
♧ 교 통 편 : 대중교통이용
♧ 코 스 : 사당역⑥출구 남현동방향코스(출발 12:40) ⇒ 국기봉데크 ⇒
마당바위 ⇒ 헬기장 ⇒ 관악문2 ⇒ 관악문1 ⇒ 관악산(연주대) ⇒ 송신소 ⇒ 8봉능선 ⇒ 무너미고개 ⇒ 제4야영장 ⇒ 철쭉동산 ⇒ 호수공원 ⇒
서울대입구(16:50) = (산행거리 13Km, 소요시간 4시간10분)
[특징·볼거리]
관악산은 서울의 조산이다. 내룡(來龍)은 백두대간에서 이어진 태백산·소백산·새재· 희양산을
거쳐 속리산이 중조(中祖)가 되어 한남금북정맥을 이루고, 북으로 치달아 칠현산·광교산·청계산을 이어, 관악·금지산·남태령에서 한강을 경계선으로
강남의 서쪽 벌판에 우뚝 솟아 강북의 삼각산과 마주하고 있다. 관악산은 청계산·삼성산과 함께 옛 금천의 진산(鎭山)인 금지산경(衿芝山經)을
이루는데, 이 산경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산봉우리의 모양이 불과 같아 풍수적으로 화산이 된다.
빼어난 수십개의 봉우리와 바위들이 많고 오래된 나무 와 온갖 풀이 바위와 어우러져 철따라
변하는 모습이 마치 금강산과 같다하여 소금강 또는 서쪽에 있는 금강산이라하여 서금강이라고 한다. 시민의 주요한 휴식처로 숲과 맑은 공기, 확
트인 조망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곳곳에 드러난 암봉들이 깊은 골짜기와 어울려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있으나 산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고 도심에서 가까워 가족동반 당일산행 대상지로서 많은 이들이 찾는다.
봄에 관악산 입구 쪽에 벚꽃이 만발하고, 철쭉이 필 때 철쭉제가 열리기도 한다.관악산
서쪽에는 무너미고개를 사이에 하고 삼성산이 솟아있는데 남쪽 계곡에는 안양유원지가 조성되어 있다.
[명칭의 유래]
검붉은 바위로 이루어진 관악산은 그 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갓 모습의 산’이란 뜻의 ‘갓뫼(간뫼)’ 또는 ‘관악(冠岳)’이라고 했다. 관악산은 옛 지도에는 ‘관악’으로 많이 나온다. 악(岳) 자체가
산(山)을 뜻하기 때문에 옛날에는 그 뒤에 다시 ‘산’자를 덧붙이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이렇듯 관악의 산이름은 그 형상이 마치 관처럼 생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처음의 산이름은 주위 산세에서 으뜸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경기 오악(五岳)의 하나,,,
관악산은 옛날부터 개성 송악산(松岳山), 가평 화악산(華岳山), 파주 감악산(紺岳山), 포천
운악산(雲岳山)과 함께 경기도 오악(五岳)의 하나였다.
빼어난 수십개의 봉우리와 바위들이 많다.
일찍이 고려 숙종 원년(1069) 김위제가 지리도참설에 의해 남경 천도를 건의할 때 삼각산
남쪽을 오덕구(五德丘)라 말하며, 그 남쪽의 관악은 모양이 날카로와 화덕(火德)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다.
남쪽 봉우리 삼성산 중턱에 있는 삼막사에는 몽고항쟁 때 적장 살리탑을 살해한 기념으로
세웠다는 삼층석탑이 있다. 물론 관악산은 그 이전 한강을 중심으로 백제·고구려·신라 삼국이 쟁탈전을 펼치고 당군(唐軍)을 축출할 때 그 지형상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다.
서쪽 끝 봉우리에 해당하는 호암산에는 삼국시대에 쌓은 석축 산성이 있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조선후기 기록인 『연주암지(戀主庵誌)』에는 신라 문무왕 17년(677) 의상대사가 관악사와 의상대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강감찬과 관악산에 얽힌 전설]
관악산은 그 북쪽 기슭 낙성대에서 출생한 고려의 강감찬과 관련한 전설도
많이 지니고 있다. 그가
하늘의 벼락방망이를 없애려 산을 오르다 칡덩굴에 걸려 넘어져 벼락방망이 대신 이 산의 칡을 모두 뿌리째 뽑아
없앴다는 전설도 있고, 작은 체구인 강감찬이지만 몸무게가 몹시 무거워 바위를 오르는 곳마다 발자국이 깊게 패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 전설들을 뒷받침해 주듯 관악산에서는 칡덩굴을 별로 볼 수 없고, 곳곳의 바위에 아기
발자국같은 타원형 발자국들이 보인다.
[15개가 넘는 절과 암자]
골짜기와 등성이에 15개가 넘는 절·암자가 있다.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도읍지로 정할 때
연주사와 원각사 두 절을 지어 화환에 대처했다고 하는 정상의 원각사와 연주암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사찰과 암자가 있는데 아슬아슬한 벼랑 위에
자리잡고 있는 연주대는 관악산의 모든 등산로가 집결하는 곳이다.
정상의 연주대는 관악산의 최고봉으로 대학동과 과천시와의 경계에 우뚝 솟은 자연 바위벽으로 절
암자바위이다. 이렇게 관악산 정상에서 남남동으로 약 40m 되는 곳에 있는 이 암자바위는 10여개의 창(槍)을 모아 세워 놓은 듯한 모양이며
50m 이상의 절벽으로 3면이 둘러싸여 있다.
[도시자연공원 관악산]
관악산은 1968년 1월 15일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관악산 자연공원은 이용시민이
행락철에 1일 10-15만명 선에 이르는 서울시민의 안식처이다. 산림욕을 하며 등산을 즐길 수 있는 숲길들이 넓은 지역에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고
많은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주봉은 연주대(戀主臺)로서 정상에 기상 레이더 시설이 있음. 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하고 조선
태조가 중수(1392년)한 연주암과 약사여래입상이 유명(한국의 산하)
♧ 사진탐방
송년의
시
이젠 그만 훌훌 털고 보내주워야
하지만
마지막 남은 하루를
매만지며
안타까운 기억속에서 서성이고
있다
징검다리 아래
물처럼
세월은 태연하게
지나가는데
시간을 부정한 채 지난날만 되돌아보는
아쉬움
내일 위해 모여든 어둠이
걷히고
아픔과 기쁨으로 수놓인 창살에 햇빛이
들면
사람들은 덕담을 전하면서 또 한 해를
열겠지
새해에는 멀어졌던 사람들을 다시
찾고
낯설게 다가서는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올해 보다 더 부드러운 삶을
살아야겠다
산을 옮기고 강을 막지는
못하지만
하늘의 별을 보고 가슴을
여는
아름다운 감정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 윤보영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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