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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靑松) 주왕산(周王山,720.6m)을 가다.
글 쓴 이 都 庵 高 枓 永
2월24일(음.正월18일), 휘영청 밝은 달이 어둠을 밝혀 주시니 천지(天地)는 조용하고 장엄하도다!
‘입춘(立春) 우수(雨水)를 지나면 대동강(大同江)물이 풀린다.’는데... 올 겨울 동장군(冬將軍)은 물러가기 아쉬운가? 쌀쌀하다 못해 매섭기까지 하구나!
오늘은 시산제(始山祭)를 겸한 산행이라 준비물도 많아서, 임원들의 수고가 한층 더 많으시다. 이것 저것 챙겨서 차에 오르니 입추(立錐)의 여지가 없다.(48명) 명산(名山.주왕산)의 인기는 역시 다른가 보다.
임원들이 자리를 양보하시며, 퍅퍅한 도심을 벗어나 대구~포항간 20번 고속국도를 따라 '갈미터널'과 '와촌터널'을 지나 와촌휴게소에서 간단한 조반(朝飯)을 드신다.
막간(幕間)을 이용하여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먼 산에는 나목(裸木)들 사이로 백설(白雪)이 희끗 희끗 보이고, 맞은편 북서 방향으로는 선본사(禪本寺) 팔공산 갓바위의 시설물이 희미하게 보인다.
휴게소 주변의 가꾸어진 정원의 철쭉, 개나리들은 싻눈을 앙다문채 아직은 꿈쩍도 않는구나! 올 봄의 화신(花神)들은 언제쯤 오려는지...?
영천에서 다시 35번 국도를 타고 화남(華南) 화북(華北)을 지나 노귀재에서 잠시 휴식하고, 현서(縣西) 현동(縣東)을 지나 부동면(府東面) 출발기점에 이르니 시계는 10시를 조금 지나 있다.
최대장의 구호 아래 잠시 준비운동으로 몸을 푼 뒤 일렬로 걸어 오르니... 절골 매표소의 관리인이 친절히도 맞아주신다. “대전사(大典寺) 입구에서 출발하는 것 보다 입장료(무료)를 벌었다.”하시면서...
무언(無言)의 미소(微笑)로 화답(和答)하며 10여 분을 걸어서 계곡을 따라 드니, 예상했던 것 보다는 빙판이 많아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계곡 양안(兩岸) 절벽(絶壁)에는 흰눈이 자욱 자욱하고, 암벽(岩壁)의 곳 곳에는 빙벽(氷壁)으로 장식되어 아침 햇살에 찬란히 빛나도다!
찬란한 햇볕에 날씨도 많이 포근 해 져서 양지바른 곳에는 눈과 얼음이 녹아 있고, 음지는 결빙(結氷)되어 진행이 더디다. 조심 조심 당겨주고 받쳐주며 한구비 한구비를 진행하니, 낯선 회원님들의 정감(情感)도 도타워 진다.
계곡은 깊고 산은 높아서 대협곡(大峽谷)을 방불케 하고, 맑은물 시원~한 공기는 세속에 찌든 몸을 청정(淸淨)하게 씻어 줍니다.
눈으로는 천하의 절경을 감상하고, 발 아래는 조심 조심 빙판을 걷는 재미가 별나다. 1시간여를 진행하다 비탈지고 따뜻한 곳에 앉아 잠시 휴식하니, 양지바른 곳의 버들강아지는 끝가지에 볼그스럼 하니 봄 기운이 감돌고, 얼음밑으로 흐르는 시냇물은 돌 돌 돌... 정겨웁기 그지없다.
주위는 여담(餘談)으로 왁자지끌 한데... 이원종님, 고치가리 서부장님, 이진학 회원님, 금와보살님, 홍총무 등 등이 있어... 함께 더워진 몸을 식히시니, 금와보살님은 가져온 방울토마토를 여러분들께 권하신다.
한알 두알 톡 톡 삼키니... 계절의 미각(味覺)을 뛰어넘는 맛이 여간 상큼하지 않다. 게다가 필자가 펼쳐논 밀감과 야쿠르트를 함께 겸하시니, 어느새 없어 졌는지... 퍅퍅하던 입안에 생기가 감돌고, 향기로운 과일향이 온 몸에 배어 듭니다.
얼마를 쉬다 다시 진행하니 한결 수월하고 기운이 다 솟는다. 휴식(休息)은 에너지를 공급하는 근원인가 보다!
30여 분을 더 걸어 ‘대문다리’ 근처에 이르니 후미에 진행을 돕던 최대장이 숨가쁘게 걸어 오면서, 이쯤에서 시산제(始山祭)를 모시는게 어떠냐고 제안 하신다. “이해수 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회원님들이 더 이상은 진행이 어렵다.”고 하면서...
선뜻 동의하여 ‘대문다리 바위’ 근처에 양지바르고 편편한 곳에 자리잡아 제물(祭物)을 진설(陳設) 하시니... 향(香)내음이 진동하고 쌍 촛불이 밝게 빛나도다!
始 山 祭 祝 文
維歲次 戊子 正月 甲寅朔 拾八日 甲午
幼學 大邱 廣域市 南山 山岳會員 一同
敢 昭 告 于
天地神明 日月星辰 周王山 神靈님께
至極精誠 하오며 維時保佑 하 시 옵고,
南山山岳會의 無窮한 發展과 十方世界
山行에 無事 安寧을 祈願 하오며, 會員
相互間의 親睦과 友義를 敦篤히 하시옵고
盡忠報國 所願成就를 仰望하오며, 會員님
들의 一身健康하심과 家和萬事成을 祈願
祈 願 하 옵 나 이 다.
謹 以 淸 酌 庶 羞 恭 伸 奠 獻
尙 響
올해로 열세번째 모시는 시산제라 회원님들의 관심도 높아서, 모두가 줄을 이어 재배(再拜)하고 복전(福錢)도 넘쳐난다.
밤, 대추, 배, 사과, 감 등을 골고루 나누어 드리고, 술과 고기, 팥시루떡 까지 맛있게 드시니... 山中에 진미가 따로 없습니다 그려!
일부는 하산하고 가메봉으로 향하니, 경사는 가파르고 쌓인 눈도 많아 등산이 쉽지않다. 암벽(岩壁)에는 녹은 눈이 고드름으로 기이(奇異)하게 달려있어 물(水)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시니... “물은 신(神)이다.” 라는 말이 과연 허언(虛言)이 아님을 알겠슴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30여 분을 올라 7부능선 쯤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주능선(主陵線)에는 여러기의 묘가 모셔져 있다. 그중에 용.혈.사.수.향(龍.穴.砂.水.向)이 잘 조화된 한기가 있어 살펴보니, 안동권씨와 안씨의 합장묘(合葬墓)다.
주산(主山)은 웅장하고 힘있으며, 청룡 백호도 잘 감싸주고, 안산(案山)과 조산(朝山)이 적당한 거리에서 겹겹이 감싸주시니 참으로 길지중에 길지(吉地)로다!
봉분에는 수맥(水脈)이 없고 좌향(坐向)은 계좌정향(癸坐丁向) 또는 자좌오향(子坐午向)으로 짐작된다. 무엇보다 해발 600여 고지에 선조(先祖)를 모신 후손들의 정성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살아 백년(百年)이 어려운데, 죽어 만년(萬年)을 가오리다! 조금 뒤에 오른 최대장도 좋다 좋다를 연발하며... 다시 정상을 향해 오르니 정상 주위로는 많은 바위들이 뭉쳐있어 가메봉(駕馬峰)의 정기가 온 몸으로 느껴집니다.
정상 200m 전방에서 부터는 쌓인 눈이 더욱 많아서 발목이 다 잠기고, 가파른 경사를 따라 여러계단을 밟아 오르니... 널찍하고 평평한 암반(巖盤)이 펼쳐지고, 사방이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탁 트인다.
아스라이 펼쳐지는 연봉(連峰)들을 배경으로 여러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도착하는데로 삼삼오오 모여 앉아 가져온 점심을 드신다. 오를때만 해도 불던 바람이 식사때는 따뜻하고 고요해져서 정성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느낌니다.
점심후 잠시 둘러보니 사방(四方)이 산 산 산이요!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하여 그저 감탄(感歎) 감탄만 나올 뿐이다!
이곳 가메봉(약800m)은 주왕산(720.6m)과 인접한 거리에 있으며, 백두대간상의 태백산과 매봉산 부근에서 갈라져 동남으로 울진의 백병산(1259m), 칠보산(974m), 백암산(1004m)을 거쳐 청송의 대둔산(900m), 왕거암(907m)을 지나 이곳 가메봉과 주왕산에 이르며...
다시 남으로 포항의 내연산, 건천의 단석산, 양산의 천성산을 거쳐 부산 금정산에서 그 맥을 남해바다에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낙동정맥(洛東正脈)이라 한다.
산세는 수려(秀麗)하고 기암괴석(奇巖怪石)이 많아서 풍광(風光) 또한 빼어나다. 가운데 봉우리인 주왕산을 중심으로 태행산(933m), 대둔산(大遯山.905m), 명동재(875m), 왕거암(907m) 등이 빙둘러져 있으니 병풍을 친 듯 하여 석병산(石屛山)으로 불리워 졌으며, 또한 대둔산 주왕산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동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용전천(龍田川)의 원류가 되고, 서남쪽으로는 주방천(周房川)이 흘러 용전천으로 다시 합류되니, 영양의 반변천(半邊川)과 더불어 임하댐으로 흘러들어 낙동강의 지류가 돼고 있슴니다.
지질학적으로 주왕산의 생성연대는 약7천만년 전으로서 중생대 백악기 후기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하며, 이때는 한반도에 공룡들이 떼지어 살던 시기이다.
주왕산의 계곡(溪谷)이 이처럼 아름답고 기이(奇異)한 봉우리들이 많은 것은 당시 화산이 격렬하게 폭발한 뒤에 용암이 흘러 내리면서 굳은 '회류응회암(灰流凝灰巖)'이 이루어진 것들이다.
이런 응회암(凝灰巖)들은 침식에 약하기 때문에 풍화차이(風化差異)에 따라 수직절벽이나 계단모양의 지형, 폭포 등을 만들어내게 된다고 하며...
또한 같은 시기에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산들은 영천의 보현산, 포항의 내연산, 청도 운문산, 거제의 산들과 남해 금산(錦山), 고흥반도의 천관산, 완도, 진도의 첨찰산 등으로 이어진다.
천하의 조망(眺望)을 뒤로하고 하산길로 접어드니, 시장끼도 면한뒤라 한결 수월하다. 30여 분을 걸어 후리메기 삼거리 부근에 이르니 주왕산과 제3폭포로 가는 이정표가 보이고, 남은 거리는 대전사 4.2Km 라 적혀있다.
음지의 계곡은 결빙(結氷)이 심하여 조심하느라 구경은 뒷전이고, 이순(耳順)을 넘긴 정상조 회원님은 그래도 동심(童心)이 발동하여, 얼음타기에 무척이나 즐거워 하신다.
아름답고 미끄러운 빙계곡(氷溪谷)을 빠져나와 제2폭포 부근에 이르니, 등산로는 말끔히 정돈되어 대로(大路)를 걷는 기분이다.
10여 분을 더 걸어 내려오니 제1폭포가 나오고, 주위의 풍광은 볼수록 신기(神奇)하고 빼어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깊은 계곡에 수정같이 맑은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는 대자연의 교향악(交響樂)이요! 물신(水神)의 또 다른 모습이로다!
등산로는 나무계단으로 설치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최대한 고려한 듯 하며, 암벽의 여러 곳에는 얼어붙은 빙벽(氷壁)이 석양빛에 반사되니... 자연의 조화로움이 극치(極致)에 달(達)하도다!
얼마를 더 나려와 학소대(鶴巢臺)와 시루봉에 이르니, 금강(金剛) 설악(雪嶽)을 능가하는 경치로다! 학소대는 높고도 우람하여 하늘에 닿아있고, 시루봉은 마주보며 큰바위얼굴 모습이요! 저녁 노을에 물들어 얼굴에는 홍조(紅潮)를 띠고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微笑)로 다가온다.
지근(至近)한 거리에 급수대(汲水臺)는 홀로 우뚝하여 사모(紗帽)의 모습이고, 안내판에 신라 37대 선덕왕(善德王)이 후손이 없어 29대 무열왕(武烈王)의 6대손인 김주원(金周元)을 왕으로 추대(推戴)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상대등(上大等) 김경신(金敬信)을 왕으로 추대 하였다. 이에 김주원은 이곳 주왕산에 피신하여 대궐(大闕)을 짓고 생활 하였는데, 당시 산위에는 샘이 없어 계곡의 물을 퍼 올려 식수로 사용한데서 급수대(汲水臺)라 한다고 적혀있다.
다시 얼마를 더 내려오니 주왕암(周王庵), 주왕굴로 가는 안내판이 보이며, 이 곳에는 아름답고 애닯은 전설이 있어 잠시 옮겨 봅니다.
중국 당나라때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779년에 당(唐)나라 수도인 장안(長安)으로 쳐들어 갔으나 크게 패(敗)하여 쫓기다가 마침내 숨어들어온 곳이 이곳이라 한다.
당나라에서 주왕을 섬멸(殲滅)해 달라고 신라에 요청하자, 신라에서는 마일성 장군5형제를 보내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마장군이 쏜 화살과 철퇴를 맞아 주왕이 죽었다는 곳이 여기다.
이때 주왕이 흘린 피에서 이름모를 나무에 꽃이피니 이름하여 ‘수달래(水丹花)’, 또는 ‘수단화(壽斷花)’라고 불리워 지고 있다.
진달래보다 더 진하고 검붉은 반점이 있는 아름다운 수달래는 해마다 5월 초순에 “주왕산 수달래제”로 오늘날 자리매김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주왕이 숨어 들었다는 주왕굴(周王窟), 당시 주왕의 군사들이 무기를 감췄다는 무장굴(武藏窟), 주왕암 입구에서 나한봉(羅漢峰)에 걸쳐 쌓았다는 자하성(紫霞城.주방산성), 주왕의 딸 백련공주가 성불했다는 연화굴(蓮花窟) 등 주왕과 관련된 지명들이 많이도 있슴니다.
당(唐)나라 수도 장안(長安)은 오늘날 중국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이며, 주왕이 패(敗)하여 만리도 넘는 신라땅 이곳 까지 피해 왔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로는 견강부회(牽强附會)한 느낌이 없지 않다고 생각되며...
김장호 교수의 저서(著書) ‘한국명산기(韓國名山記)’에서 백제의 문주왕(文周王,475~477)이 477년에 이 근처에 온 기록은 있으나, 우리의 고문헌(古文獻) 어디에서도 당의 주왕(周鍍)이 이곳에 왔다는 기록은 없다고 하였으며...
더구나 이중재 선생은 ‘한국상고사(韓國上古史)’에서 三國(고구려,신라,백제)이 한반도가 아닌 대륙(중국)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이병화 선생도 ‘대륙에서8,600년 반도에서600년’이라는 저서에서 신라가 935년에 멸할 당시에 지금의 중국 산동성(山東省) 치박시(淄博市)에서 최후를 맞이 하였다고 하시니...
믿을 수 도, 안믿을 수 도 없는 애틋한 전설을 떠 올리며 주방천(周房川)을 따라 내려 옵니다.
이름난 명산에는 동식물(動植物)들도 살기가 좋으신지, 곳 곳에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들이 보인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됀 망개나무를 비롯하여 굴참나무, 떡갈나무, 작살나무, 당단풍, 살구나무, 물푸레나무, 쪽동백, 고로쇠나무, 박달나무, 신나무, 굴피나무 등 등이 줄을지어 서 있고 궁노루, 멧돼지, 여우, 오소리, 족제비 등 줄잡아 서식하는 동물이 500여 종이 넘는다고 적혀있다.
주방천(周房川)의 초입(初入)에는 기암(旗岩)이 우뚝솟아 석양에 찬란히 빛나고, 그 옆으로 천년의 도량(道場) 대전사(大典寺)가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안내문에 대전사(大典寺)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 했다고도 하며, 한편으로는 고려 태조2년(919)에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건립했다고 전해온다.
경내(境內) 전각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아서, 보광전(普光殿)을 중심으로 산령각, 수선당(修禪堂), 명부전, 요사채가 전부며 뜰 앞에는 삼층석탑(三層石塔)이 한기 서 있다.
조각수법(彫刻手法)으로 봐서는 고려 중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기단석(基壇石)을 비롯하여 탑신부(塔身部)가 많이도 훼손되어 보수한 석재(石材)의 색상과 많은 차이가 있으니 보는 눈이 아름답지 못하고, 또한 기단석 4면에는 8부중상(八部衆像)이 새겨져 있어 마모가 심하나 특이하다.
보광전은 정면3칸 측면1칸의 맞배지붕으로 경북지방문화재 제20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모셨다는데 지금은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주불로 모셔 놓았다.
깊은산 맑은물이 흐르는 이 곳에는 오고 간 인걸(人傑)들도 많아서, 개창조 의상을 비롯하여 신라말에 최치원, 나옹화상, 도선국사, 보조국사, 무학대사, 서거정, 김종직 등이 이곳에서 수도 하였다고 전해오며...
또한 도량내(道場內)에는 사명스님의 진영(眞影)과 임진란 당시에 명나라 이여송(李如松) 장군이 사명스님께 보냈다는 친필목판이 있다고 하나 볼 수 없슴이 못내 아쉽구려!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는 산문을 걸어 나오니, 겨울의 짧은해가 어느 듯 서산에 기울어서 붉은 노을에 모든 시름을 태워 버림니다.
대문다리 시산제에서 남산님들의 소원을 빌고
가메봉 넓은 바위에서 천하의 소식을 들으니..
주왕의 딸 백련공주는 연화굴에서 성불하여
천년도량 대전사에서 영겁(永劫)으로 찬란하다!
단기 4341년(서기2008년) 2월 24일
청송(靑松) 주왕산(周王山,720.6m)을 가다.
첫댓글 함께 하지못해 섭섭한 마음이 크옵니다....산행후기로 이 마음을 달래봅니다...글 잘읽고 갑니다~~~~(꾸~~뻑^^)
구슬님! 반갑습니다. 가내 두루 편안하시죠? 부족한글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가끔씩 산행에도 동참 하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