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5월에 핀 중랑천의 장미꽃 축제
2014년5월16일 퇴근 길에 서울 중랑구 중랑천
언덕길에서 진행중인 장미축제에 갔었는데 지하철 7호선
태능입구역에서 먹골역을 지나 중화역까지의 동부간선도로 사이
중랑천변 약 4km 언덕길에서 이뤄지고 있는 장미축제는 양쪽 가로수
옆으로 철재 파이프를 박아서 붉은꽃의 넝굴 장미를 올려놓아 터널을
이루고 서쪽 언덕벽에는 각양각색의 넝쿨 장미꽃과 찔레꽃이 장관을
이루었으며 동쪽 언덕 중간에는 한 줄기에 하나만 피우는 큰 꽃의 장미
나무들을 두 세줄로 듬성듬성 심어 놓아 한 웅큼만한 여러가지 모양과
색깔이 아름다운 장미꽃들이 활짝 펴있어서 무려 두시간 반동안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을 하다가 황혼이 사라져 어둑어둑해서야 집에오니 밤
아홉시 이십분이었습니다...
♥가슴 찡한 중랑천 효녀의 이야기♥
중랑천에는 가슴 찡한 효녀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조선시대 중랑천 근방에는 국립여관인 송계원이 있었기
때문에 중랑천을 송계천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송계교를
석교로 개축할 때 인근 마을의 장정들 모두 부역으로
동원되었는데 열여섯살 된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장님 중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를 안 딸이 아버지
대신 남장을 하고 부역에 참여했는데 생리현상이 문제였습니다.
고심 끝에 대나무를 잘라서 옷 속에 넣어 배뇨를
했고 힘든 부역을 하면서도 수분 섭취를 억제했다고 합니다.
이 눈물겨운 사연을 들은 관아에서 중이의 부역을
해제했고 비로소 딸은 아버지 곁으로 갈 수가 있었답니다.
남자인줄만 알고 지내던 그를 중랑자(仲郞子)라고
불렀는데 그가 여인임을 알고 부터는 중랑(中浪)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연이 있는 중랑천을
구(區) 이름으로 만든 것입니다..
중랑천은 중랑구의 명칭이 유래된 곳일 뿐만 아니라 조선
이태조의 발자취를 비롯해서 건원릉이 조성된 이후에는 여러
임금들의 능행이 이루어졌으며 이때마다 중랑천에는 목교가
가설되었다고 하니 그 광경은 가히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어디든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진면목을
모르게 마련입니다. 누가 망우리에 산다고 하면 지저분한
중랑천과 으스스한 공동묘지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망우산의
아름답고 평온함과 중랑천 뚝방길의 운치를 모를 것입니다.
난 그들에게 언제나 망우리에 한 번 가서 볼 것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내가 편견을 버렸듯 그들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비단
중랑구민들이 사는 동네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어디든지
그 동네만의 분위기에 젖어볼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토다닥 토다닥. 밤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주말인 내일 갈곳이
정해졌습니다. 비가 아니면 산의 들꽃을 만나겠지만 비가
오거나 그친 후에는 중랑천 뚝방길이 그만입니다. 물안개에
싸인 내(川)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신비스럽기까지 합니다.
뚝방의 촉촉한 분위기를 생각하니 벌써 아침이 기다려집니다.
서울 동북부 시민들의 애환이 서린 그 중랑천이 행복천으로
변하고 있습니다.뚝방길엔 꽃대궐을 만들어 놓고 봄이면 장미꽃
축제가 열리고 가을엔 코스모스를 비롯한 가을꽃들이 세월이
덧없음을 생각케 하면서 사는 날들 잘 살아달라고 애원
이라도 하는듯 시민들을 개천 고수부지에 만들어진
보행길과 자전거길 위엔 종일토록 많은 시민들이
건강지킴이가 되어 걷기와 조깅, 자전거 타기를
하느라 오가는 움직임들이 바쁘게만 보입니다...
장미의 그림자 / 2009 박춘석 :작사 박춘석:작곡 문주란:노래
창밖에는 어둠이 하늘의 별을 뿌리고
꿈 속에 만난 님을 찾아 헤매는
옛 님의 그림자
생각을 접어두고 지난 날 잊으려고
지향없이 걸어가는 쓸쓸한 거리에
장미의 그림자
가슴 속에 피어나는 장미빛 그리움인가
바람에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
옛 님의 목소리
거리에 흩어지는 추억을 뒤에 두고
밤이슬에 젖어가는 기나긴 이 밤에
장미의 그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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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7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