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가평의 남이섬을 다녀와서!
휴식은 자신이 자존하고 있는 세상에서의 자유로운 여행에서 얻어지고 재충전의
기회를 갖게되나 봅니다. 평소에 가고싶었던 곳을 친지들과 여행을 하면서 가림이
없고 격의없는 대화를 하면서 웃음을 유발하고 코믹한 제스쳐로 손짓 발짓을 하다
보면 일상에 지쳐서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니 죽을 것만 같던 깊은 시름도
해결점을 찾은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고 부정적인 암울한 생각들이 긍정적인
사고로 바껴서 세상살기 마음먹기 달렸다는 생각를 하면 자신의 삶을 더 충실
하게 이끌어 가는 힘이 생기고 미래를 내다보는 밝은 희망을 갖게되나 봅니다.
2017년11월12일 일요일 인터넷 카페 "5060아름다운걷기동호회"에서 1948냉부터
1952년생까지 월정 정기모임 장소로 정한 가평에 있는 남이섬을 가기위해 아침 07:20
분에 집에서 출발 서울 중랑구 상봉역에 가서 일행이 될 11명과 만나서 08:40분에
출발하는 경춘선 전동차에 승차하여 가다가 가평역에 내려서 걸어서 남이섬 가는
선착장에 도착하니 오전 10:00경 배표를 구입하여 유람선으로 남이섬에 건너가니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바깥 마른 잔디위에나 풀섶에 하얗게 무서리가 내려있어서
이젠 겨울이구나 하면서 산의 나무들도 잎이져서 나목들이겠구나 했는데 남이섬엔
아직 진한 빨간색으로 곱게 물들인 단풍잎들이 가을 분위기를 느끼게하는 만추
였습니다. 날씨도 햇볕이 따뜻하고 청명한 하늘이여서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남들이 쉬어가는 둥실둥실 섬나라 "남이섬"
남이섬은 행정구역상 춘천에 속한다. 남이섬 배 선착장은 경기도 가평에 있다.
서로 다른 지역의 섬과 육지는 눈으로 봐도 맞닿아 있을 만큼 지척이다. 바로
코앞인데 섬까지 따로 다리가 놓여 있지 않다. 배에 올라 섬으로 가야 한다.
배로 5분. 차는 두고 사람만 싣는다. 배에서 내리면 이제부터는 두 다리를 이용
해야 한다. 걷든지 자전거를 타든지다. 남이섬은 홍수가 날 때만 고립되는 반쪽
짜리 섬이었다. 청평댐이 생긴 뒤에야 북한강에 둥실 떠있는 온전한 섬이 됐다
. 섬 나루에 내려 조금만 걸으면 남이장군묘를 볼 수 있다. 남이섬 이름의 유래
가 된 곳이다. 이제 남이섬은 남들이 편히 쉬어간다고 남이섬이란다. 새로운
뜻만큼이나 남이섬에 들어서면 편안한 느낌이 든다. 두 다리를 이용해 둘러
봐야 하는 길 구석구석은 같은 듯 다르고 통하는 듯 나뉘어 있다. 잘 정비된
길은 이름도 가지각색이다.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 장소로 유명한
메타세쿼이아길부터 은행나무길, 벗길, 자작나무길, 이슬길 등은
쉬엄쉬엄 걷다 보면 모두 밟게 된다. 여기저기 피워놓은 장작불과
향긋한 군고구마 내음, 서로의 추억을 쌓아가며 걷는 사람들이
어울려 남이섬의 훈훈한 겨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술병은 꽃병으로, 소음은 리듬으로, 경치는 운치로
남이섬을 걸으면서 가장 놀란 것은 구석구석 숨어 있는 재치와 손맛이었다. 하루
중 이슬이 제일 먼저 내려온다는 이슬길에는 ‘참이슬’ 술병이 즐비했다. 그런데
술병은 더 이상 술병이 아니었다. 술병이 꽃병 되고 쓰레기가 예술품 된다더니
남이섬에 버려진 참이슬병은 이슬을 맞이하는 조형물이 돼 있었다. 사실 남이
섬은 그저 그런 유원지였다. 대학생들의 MT장소 정도로만 여겨지던 곳이 변화
하게 된 것은 2001년부터다. 남이섬의 경영을 도맡은 강 대표는 사소하고 하찮은
것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강 대표는 남이섬을 캔버스삼아 그림을 그렸다고 말할
정도다. 쓰다 남은 목재도, 굴러다니는 낙엽도 디자인 소품이 됐다. 남이섬의
경치에 운치를 더했더니 연인, 친구, 가족 어떤 방문객도 포용하는 어우름이
생겼다. 예술성은 숙소에 들어가면 더욱 빛이 난다. 남이섬 호텔 정관루는 일반
객실부터 콘도, 오막, 게스트하우스형 객실을 갖추고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각 객실마다 디자인과 콘셉트가 다르다는 것이다. 강 대표가 작가들에게 각
방의 디자인을 의뢰한 것. 어떤 방에는 쓰다 남은 철사가 조형물로, 또 다른
방에는 수명이 다한 전구가 예술품으로 변해 있었다. 방 안에는 TV 대신
라디오가, 컴퓨터 대신 책이 놓여 있다. 조용히 방에 앉아 라디오를 켜고
책을 펴니 소음도 리듬이 된다는 별천지 ‘남이나라’가 펼쳐진다.
한류를 이어 지구촌을 품는다
하루 밤을 묵고 밖으로 나오니 남이나라의 조용한 밤이 분주한 아침으로 변해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배를 타고 건너 온 손님은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
<겨울연가>의 그 길을 걷고 주인공처럼 포즈도 취해본다. 각기 서로 다른
언어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겨울연가>에 실린 한류 덕에 남이섬을 찾는
외국인은 점점 더 많아졌다. 2002년 3만 명에 불과하던 외국인 관광객은 2005년
29만 명으로 10배 가량 늘었다. 사실 한류는 식고 있다. 그런데 남이섬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비결은 간단하다. 남이섬
을 장식하고 있는 다양한 나라의 국기들이 그 답이다. 남이섬은 ‘나미나라공화국’
을 선포하고 지구촌 나라들과 직접 수교를 맺었다. 매달 국제 행사를 유치하고
분주한 아침을 맞는 나라. 상상의 동화 나라가 한류를 넘어 지구촌을 품고 있다.
남이섬에서 나오기 전 강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외국인들은 오히려 남이섬에
아무 것도 없어서 좋다고 합니다.” 남이섬의 쓰레기는 다시 육지로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쓰레기로 쌓여 있지도 않다. 재활용품을 재료로 상상을
조리법으로 맛있는 남이섬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남이섬은
없는 듯 채워져 가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남이장군묘 [南怡將軍墓]
1973년 7월 10일 경기도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
에 있다. 2단으로 쌓인 석축대 위에 있다. 사성(莎城)에 둘러싸인 봉분을 중심으로
바로 앞에 상석이 놓여 있고, 왼쪽에 묘비가 있으며 좌우에 망주석이 있는 간소한
묘이다. 남이(南怡:1441∼1468)는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태종(太宗)의 외손(外孫)
이며, 좌의정 권람(權擥)의 사위이다. 1457년(세조 3) 17세 때 무과(武科)에 급제
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이시애의 난(1467)이 일어나자 출전하여 용맹을 떨쳤고
, 여진(女眞)의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할 때에도 선봉으로 적을 무찔러 이름을 날렸다.
적개공신(敵愾功臣)이 되고 훈(勳) 1등이 되어 26세의 나이로 병조판서(兵曹判書)가
되었다. 그러나 예종(睿宗)이 즉위한 후인 1468년 유자광(柳子光)의 무고로 역모를
도모한다는 죄명을 쓰고 능지처참형을 당하였다. 400여 년이 지난 후인 1818년
(순조 18)우의정 남공철(南公轍)의 주청으로 관작(官爵)이 복귀되었다. 시호는 충무
(忠武)이다. 후에 창녕의 구봉서원(龜峯書院), 서울특별시 용산의 용문사 및 성동의
충민사에 배향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남이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강원도 춘성군 남면의 남이섬에도 남이가 묻혔다는 전설이 있는 돌무더기
가 있다. 남이섬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그
돌을 함부로 가져가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섬을 유원지로
개발하면서 돌무더기 위에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들어 지금은 그 둘레가 잘 치장되어 있다.
강원도 춘성군 남이섬 내 "남이장군묘"
조선 초기의 무신인 충무공 남이(1441∼1468) 장군의 묘소이다.
세조 3년(1457)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세조 13년(1467)에는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여 적개공신 1등에
봉해진 후, 여진을 토벌하여 이등군공에 올랐으며 26세의 나이에 병조판서에
올랐다. 그러나 1468년에 예종이 즉위하자 유자광의 모함으로 역모를 꾀한다
하여 28세 때 처형당하였다. 그 뒤 순조 18년(1818)에 복직되었으며, 서울 용산의
용문사 및 충민사에 배향되었다. 현재 묘역에는 장군과 부인이 합장되어
있고 봉분은 2기이며, 봉분 아랫부분은 둘레석이 둘러져 있다. 묘 앞에는
묘비가 세워져 있고, 좌우에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1쌍씩 있다.
MBC강변가요제(MBC江邊歌謠祭)
1979년∼2001년까지 북한강변에서 문화방송이
개최하였던 대학생 중심의 창작가요 경연대회.
내용
강변가요제는 MBC FM의 주최로 1979년 7월 26∼28일 사이 청평유원지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2001년 막을 내리기 전까지 여름휴가의 절정을 이루는 7월
말과 8월 초 청평유원지, 남이섬, 의암호 주변 등의 북한강변 피서지에서 진행
되었다. 가요제 실황은 라디오 및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되었으며 본선 참가곡
은 음반으로 제작되어 판매되었다. 초기에는 대학가요제와 더불어 한국 가요계
의 젊은 바람을 일으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국 가요계 등용문의 산실이었고
수많은 스타들이 이 대회를 통해 배출되었다. 강변가요제를 통해 널리 사랑받은
노래로는 홍삼트리오의 「기도」, 4막5장의 「J에게」, 티삼스의 「매일 매일
기다려」, 이상은의 「담다디」, 육각수의 「흥보가 기가 막혀」 등을 꼽을 수
있다. 주현미, 이선희, 장윤정, 이상은, 이상우 등은 강변가요제가 배출한 대표
적인 가요계 스타들이다. 유명 음악프로듀서들로는 강현민, 김도훈, 박광현 등이
있다. 영화배우 한석규와 개그맨 이수근도 강변가요제를 통해 연예인으로
데뷔하였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기획사에서 훈련된 비디오형 가수인 아이돌
들이 등장하여 가요계를 석권해 나감에 따라 강변가요제의 수상곡과 경연대회
참가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점차 축소되었다. 1999년의 20회 대회에서는
학력 제한을 없애고 만 17세 이상의 모든 성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기도 하는
등의 개혁을 단행하기도 하였으나 2001년 22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결국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매니아디비 (www.maniadb.com)
한국어위키백과사전 (ko.wikipedia.org)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newslibrary.naver.com)
김재호:작사
이수인:작곡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뭇 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녁을 날아간다
아 이제는 한적한 빈들에서 보라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달 가고 해가면 별은 멀어도
산골짝 깊은 곳 초가 마을에
봄이 오면 가지마다 꽃 잔치 흥겨우리
아 이제는 손 모아 눈을 감으라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2017-11-12 작성자 명사십리
첫댓글 나미나라공화국 가을 나드리 깊은 추억 마음의 휴식처
멋진모습 잘 보았습니다.
밝은 모습 시원한 가을 즐기기 넘 좋은 모습 보기 넘 좋아
보는 것만으로 흐뭇 감사합니다.
지기님! 늘 건강하심과 수고 덕에 자연 경관 보기에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