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꼬살라 왕에게 미묘한 법문을 하다
한때 세존께서는 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셨는데, 케마 테리는 꼬살라 국을 여행하는 도중, 사위성과 사께따(Sāketa) 사이에 있는 또라나(Toraṇa)에 체류하고 있었다. 그때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또라나에서 하룻밤 야영하게 되었다. 왕이 신하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오늘 이 마을에 나에게 영적인 가르침을 줄 만한 사문이나 브라만이 있는지 알아보아라.” 신하는 또라나를 샅샅이 뒤졌으나 왕에게 영적인 가르침을 줄 만한 사문이나 브라만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우연히 거기 체류하고 있는 케마 테리를 봤을 뿐이다. 그는 왕에게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이 마을에 사문이나 브라만은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제자인 케마 테리라는 비구니는 있습니다. 그녀는 현명하고, 노련하고, 박식하고, 탁월한 지성을 타고나서 교리를 기막히게 잘 설명한다고 합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께서 그녀에게 가서 가르침을 청하시는 것이 좋을 듯싶사옵니다.”
왕은 그 충고를 받아드려 케마 테리가 머무는 곳으로 갔다. 그는 그녀에게 예를 표하고 알맞은 자리에 앉아서 이렇게 물었다.
“존자시여,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합니까?”
케마 테리가 대답했다.
“대왕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죽은 다음에 존재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그렇다면 존자시여,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대왕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죽은 다음에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존자시여,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까?”
“대왕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죽은 다음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것이라고도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존자시여,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대왕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죽은 다음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도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왕은 당혹스러웠지만 또 질문했다.
“존자시여, 제가 ‘중생이 죽은 다음에 존재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존자께서는 ‘대왕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죽은 다음에 존재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만약 그렇다면, 존자시여,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존자께서는 ‘대왕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죽은 다음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존자시여,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존자께서는 ‘대왕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죽은 다음에 존재하기도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그렇다면 존자시여,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물었을 때, 존자께서는 ‘대왕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죽은 다음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도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자, 존자시여, 부처님께서는 왜 이 네 가지 질문에 대해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까? 부처님께서 이 네 가지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케마 테리는 말했다. “대왕이시여, 거기에 대해서 제가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대왕께서 원하시는 대로 대답하시면 됩니다. 제가 지금부터 무슨 말을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대왕의 백성 중에 그 누구든지 혹은 수학자일지라도 ‘갠지스 강의 모래알이 몇 개다’ 혹은 ‘갠지스 강의 모래알이 몇 천만 개, 몇 억만 개다’라고 실제로 숫자를 세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대왕의 백성 중에 그 누구든지 혹은 수학자일지라도 ‘바다의 물이 몇 되 혹은 몇 말이다’ 혹은 ‘바다의 물이 몇 천만 말, 몇 억만 말이다’라고 실제로 숫자를 세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다의 물은 너무 깊어서 측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시여, 바로 그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이라고 할 수 있는 물질[色]을 버리셨습니다. 완전히 근절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마치 뿌리 뽑힌 야자나무처럼 다시는 중생으로 태어날 수 없으며, 미래에 다시 생길 수 없게 만드셨습니다.”
“물질 무더기라고 하는 중생에서 해방되신 부처님께서는, 바다처럼 한없고 측량할 수 없는 특성과 성향과 의도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부처님에 관한 한,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한다.’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으며,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으며,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 것도 역시 적절하지 않습니다.”
(원주: 부처님께서는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한다든지,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지 않는다든지,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든지,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것은 아주 심오한 명제이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이라고 할 수 있는 느낌[受]을 버리셨습니다.……. 중략
부처님께서는 중생이라고 할 수 있는 인식[想]을 버리셨습니다.……. 중략
부처님께서는 중생이라고 할 수 있는 형성[行]을 버리셨습니다.……. 중략
부처님께서는 중생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識]을 버리셨습니다. 완전히 근절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마치 뿌리 뽑힌 야자나무처럼, 다시는 중생으로 태어날 수 없으며, 미래에 다시 생길 수 없게 만드셨습니다.”
“의식의 무더기라고 하는 중생에서 해방되신 부처님께서는, 바다처럼 한없고 측량할 수 없는 속성과 성향과 의도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부처님에 관한 한,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한다.’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으며,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으며,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 것도 역시 적절하지 않습니다.”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케마 테리의 말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왕은 테리에게 인사하고 정중하게 자리를 떠났습니다. 시일이 지난 후에, 왕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케마 테리에게 한 것과 똑 같은 질문들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케마 테리와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부처님의 대답들이 케마 테리가 한 것과 글자 한 자 틀리지 않고 똑같은 것을 발견한 왕은 깜짝 놀라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라운 일입니다! 경이로운 일입니다! 부처님의 설명은 의미나 글자나 모두 부처님 제자의 설명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것들은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완전히 똑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얼마 전에 케마 테리에게 이 질문들과 똑같이 질문했었는데, 그녀는 핵심이나 단어에 있어서 정확하게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라운 일이고 경이로운 일입니다. 부처님의 설명은 의미나 글자나 모두 부처님 제자의 설명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것들은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완전히 똑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왕은 부처님께 이만 물러가겠다고 말씀 드렸다. 부처님의 대답들에 대단히 기뻐한 그는 일어나서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정중하게 그 자리를 떠났다.
[원주: 부처님께서는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는지,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지 않는지,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지,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지’로 구성된 네 가지 질문들에 대해서 왜 대답하지 않으셨을까?
① 존재계에 진정으로 존재하는 실재는 오온밖에 없다. 궁극적인 의미에서 중생이라는 것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중생이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부처님께서 하실 말씀이 없다. (설명하지 않음 상윳따 세 번째 경인 “사리뿟따와 꼿티따 경1” S44:3)
② 사성제의 관점에서 오온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만, 위에서 네 가지 질문과 같이 ‘중생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라는 의문이 생기는데, 이는 그의 사견 때문에 생긴다. 사성제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네 가지 의문이 생기도록 하는 사견이 없다. 부처님께서는 사성제를 가장 완벽하게 이해하기에, 그러한 네 가지 의문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신 것이다. (위의 책, 네 번째 경인 “사리뿟따와 꼿티따 경2” S44:4)
③ 그러한 질문들은 오온에 대한 집착 혹은 갈망을 버리지 못한 사람의 사견에 의해 생긴다. 오온에 대한 갈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런 질문들이 생기지 않는다. 부처님께는 오온에 대한 갈망은 물론 습득된 사소한 습관까지도 제거하셨기에 그러한 사견이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침묵하신 것이다. (위의 책, 다섯 번째 경인 “사리뿟따와 꼿티따 경3” S44:5)
케마 경에서 케마 테리의 대답은 이와는 약간 다르게 부처님의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왜냐하면 꼬살라 왕도 마음속에 부처님을 염두에 두고 네 가지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케마 테리의 대답의 요체는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는 (오온의 원인을 제거함에 의해) 오온을 제거하셨기 때문에, 소위 ‘중생’이라는 것이 죽은 다음에 다시 존재계에 나타나지 않는다. 오온이라는 미래의 세트로부터 자유로우므로, 존재라든지 사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부처님께서는 이를 아시기에 죽은 다음에 ‘중생’이라고 말하는 것이 부처님께는 부적절하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질문들에 대해서 침묵하신 것이다.
이런 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부처님께서 오온을 새로 받지 않기에 첫 번째 질문(‘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는가?’)에 대답하지 않으신 것은 이해가 된다. 허지만 부처님께서는 ‘중생은 죽은 다음에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왜 대답하지 않으신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그렇다,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해야 하지 않는가?”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궁극적 의미에서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해서도 대답하지 않으신 것이다. (이는 복주서의 설명이다.) 케마 테리 경은 심오한 법을 설하고 있다. 덕망 있는 이에게 물어 봐야할 것이다.]
3. 비구니 중 지혜제일
부처님께서 케마 테리를 가장 심오한 지혜를 가진 비구니라고 하신 제일 가까운 원인은 또라나에서 꼬살라 왕에게 법문했기 때문이다. 다른 때에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실 때 비구들을 모아 놓고, 비구니들 중에서 각 분야에서 뛰어난 비구니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단언하셨다.
“비구들이여, 내 비구니 제자들 중에서 지혜 제일은 케마 테리이다. “
부처님의 이 호칭은, 그녀의 자서전에 있는 다음 게송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케마 테리 자신에 의해서도 즐거이 기록되어 있다.
① 내가 비구니가 된 다음 또라나에서
꼬살라 국 빠세나디 왕의 심오한 질문에 대해
교리에 따라서 설명했네.
② 나중에 왕은 부처님께 같은 질문을 했고
부처님께서는 그 심오한 질문에 대해서
나의 대답과 정확하게 똑 같이 대답하셨네.
③ 다섯 마왕의 정복자이시며
모든 사람 중 가장 높으신 분께서
법을 설하는 나의 탁월함에 만족하시어
나를 뛰어난 현인 중 제일가는 비구니라 하셨네.
케마 테리 이야기 끝.
첫댓글 사두사두사두
철학적으로도 대단히 심오한 내용입니다.
양자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슈레딩거고양이의 살아 있으면서 죽어있는 중첩된 상태처럼 이상야릇한 질문이 2500년전에도 유사하게 회자되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사두사두사두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