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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들이 자라는 시간
무상심심미묘법(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원해여래진실의)
지난시간 방편품까지 공부 하면서 나름대로 설명하였지만 무한정 시간을 써가며
한구절 한구절 마음껏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아쉽고 유감이라고 하셨어요.
시간의 제약으로 세세하게 설명드리지 못한 부분은 불자여러분들의 몫이니
법화경을 천 번 만 번 읽고 쓰라고 하셨지요.
함께 걷기 ...아름다운 아침
간밤에 비가 많이 내렸어요. 땅이 젖어서 산에는 올라가지 마시라고
모두들 말씀하셨는데요.
큰스님은 산으로 올라가는 샛길을 지나쳐 그 길을 주욱 내려가셨어요.
언젠가 벚꽃들이 흐드러졌고, 우리들 큰스님을 기다리며 예쁜 길이라고 했던
그 길이었는데요...이제 풀들이 주인공인 계절인가 봐요.
씩씩하게 자라난 풀들 때문에 서울 거리에도 풀냄새가 났지요.
한참을 걷다보니 길 왼편에 전에 산에서 내려다본 건물이 나왔어요.
함께이면서도 혼자인 것처럼
그 길의 산책은 고요하고 충만했는데요.
따뜻한 침묵을 깨고
저기가 산에서 내려다본 그 건물이라는 이야기를 나눌 때
마침 맞은 편에서 부지런히 올라오시던 보살님이
큰스님을 뵙고 깜짝 놀라 법회가 이미 끝났냐고 물으셨지요.
큰스님은 하하 웃으시며 아직 법회가 시작 안했다고 친절하게 답해주셨어요.
“보살님 먼저 올라가세요.”
그리고 큰스님도 방송국으로 방향을 잡으셨지요.
올 때는 못 보던 분들이 푸대와 집개를 들고 나무사이의 휴지를 줍다가
그 중 한 분이 상냥하게 “스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셨어요.
“네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큰스님도 다정하게 인사하셨어요.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써 알아듣는다
애매모호하거나 형이상학적인 깊은 이치는 비유로써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다고요.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써 알아들으니까”
법화경에도 법화칠유(法華七喩)라고 해서 일곱 가지 비유가 나온다고 하셨어요.
예를 들어 ‘화택의 비유’는 ‘우리 사는 세상이 화택(火宅 불타는 집)과 같다’는
내용인데요.
지금까지 방편품에는 ‘삼승은 방편이고 일불승이라고 하는 진실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는 내용이 누차 있었다고요.
열반을 앞두신 부처님은 당신이 깨달으신 오묘한 진실의 말씀을 남겨두실 수 없고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법화경은 청중의 수준을 결코 생각하지 않은
“청중과 타협하지 않은 실법”을 알려준다고요.
법화경의 순수성
이제 우리는 ‘경중의 왕’인 ‘최상의 경전’을 만났는데
“또다시 법화경을 만나리라는 보장이 없잖습니까?”하고 물으셨어요.
법화경을 만났을 때 현실의 상황이나 사찰의 운영이나 청중의 수준과 타협하지 않는 “법화경다운 법화경 이야기를 저도 들려주고 싶어요.”라고 하셨어요.
그것은 부처님의 순수성이기도 하고
법화경의 순수성이기도 하다고요.
그 순수성에 맞춰서 이야기 하려는 것은 바로
‘진정 사람이 무엇인가’ ‘진리가 무엇인가’ ‘존재의 실상이 무엇인가’라고요.
부처님은 당신이 깨달으신 진리를 어떻게든 드러내는데 지대한 관심이 있으셨다고요. 듣는 사람의 수준에 맞춰서 방편을 쓰지 않는 부처님이 매정해 보이지만
‘알아들을 사람만 알아들으라’고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그것이 오히려 자비’
라고 하셨어요.
부처님은 어마어마한 투자가 있으셨으니 건지려고 하는 바가 있으시다고요.
부처님이 건지려고 하는 것은 “오로지 진리를 전하고자 하는 것”
“불교는 엄청난 진리”이기 때문에 “진실대로 이야기 되어져야 한다”고요.
새로운 각오
불교를 자꾸 평범한 보통사람들에게 낮춰서 끌어내리려 하지 말고 우리가 한걸음 한걸음 진리의 세계로 올라가는 것, 부처님의 높은 수준에 맞추려고 하는 노력과 자세와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요.
지금 “진리가 진리답게 이야기 되고 있는가?”
“방편이나 청중수준 사찰운영 이해에 두지 않고 진리,
불교의 올곧은 정신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이야기 되고 있는가?” 물으셨어요.
“자꾸 낮추다 보니 영혼을 잃어버렸어. 정신이 없어. 껍데기만 남았어”
‘영혼은 없고 껍데기만 남은 불교’는 불교를 제대로 아는 입장에서 보면
부처님께 체면없는 일이라고요.
새로 입문한 사람이 껍데기만 남은 불교가 진짜 불교인줄 아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므로 ‘부처님의 진실을 이해하고 거기 한걸음 나아가려하는
‘새로운 각오’ ‘독한 각오’를 해서 그동안의 분위기를 배재하고
‘부처님의 참마음’ ‘불교의 진실이 어디 있는가’ 이런 것을 더듬어 볼 때라고
하셨어요.
사리불의 깨달음
지금까지 부처님은 어떻게 하면 영혼을 불어넣어서 불교 생명을 다시 생동하게 펄쩍펄쩍 뛰게 할 것인가 하는 마음으로 온갖 비유와 방편을 들어 말씀하셨다고요.
그러나 그 방편을 다 배제한 법화경, 그 안목인 방편품에서
“오직 일불승뿐”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셨는데,
“모두가 이미 성불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리불이 깨달음을 얻었다고요.
사리불이 깨닫기 이전의 과정, 깨닫고 나서의 심정을 술회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지금 낱낱이 따져가며 말씀드리지 못하고 빨리 넘어가는 것이 아쉽다고 하셨어요.
그러는 한편 “법화경은 일문일자시진불(一文一字是眞佛)”
“글자 하나, 한 구절의 문장, 낱말획 하나 이런 모든 것이 참다운 부처다”하는
것을 이해하고 거기에 눈을 떠야한다고 하셨어요.
한 페이지를 하루종일 보면서 이런 시각, 저런 시각에서 해석해 봐도 부족한 법화경이지만 시간의 제약이 있으니 “여러분들이 남은 시간 곱씹고 곱씹어서”
사유하라고 하셨어요.
“사리불의 깨달음이 곧 우리의 깨달음이라 생각하면서 천천히 음미하여 마음 깊이 읽겠습니다.”하시고 함께 경전을 읽었어요.
사리불이 깨달음을 얻다
“이제 세존께 이러한 법문(法門)을 듣고 마음이 크게 기쁘고 전에 없던 일을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예전에 이런 법문을 들었는데, 보살들은 수기(授記)를 받아 성불하리라 하였으나, 저희들은 그 일에 참여하지 못하여 매우 슬프고 상심하여 여래의 한량없는 지견(知見)을 잃었다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항상 산림(山林)에나 나무 밑에 홀로 앉기도 하고 거닐기도 하면서 생각하기를, ‘우리들도 법의 성품에 함께 들어갔는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소승법(小乘法)으로 제도하시는가. 이것은 우리의 허물이요, 세존의 탓이 아니라.’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만약 저희들이 성불의 원인까지 말씀하시기를 기다려서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였더라면, 반드시 대승으로써 제도하였을 것이지만, 저희들은 방편으로 마땅함을 따라 말씀하신 것을 알지 못하고 부처님의 법문을 처음 듣고는 곧 그대로 믿어서 결과를 얻으려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예전부터 지금까지 밤낮으로 스스로 책망하였는데 이제 부처님께 듣지 못하던 미증유(未曾有)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이제 모든 의혹과 회한을 버리고 몸과 마음이 태연하여 편안함을 얻었습니다. 오늘에야 진정한 부처님의 아들이며,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다시 태어났으며, 법에서 화생(化生)하였고, 불법을 얻은 줄을 알았습니다.”
법화경 상권 p.87-88
“이러한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사리불의 소감인데
그 법문이 무엇인지 기억이 나는가 물으셨어요. 잠시 사이를 두고
“사람이 부처다, 오직 일불승뿐이다. 다 좋은 말입니다.”하셨어요.
방편품 72,3쪽을 보면 그 내용이 나온다고요.
손 한 번 척 든 것, ‘나무불’ 한 번 한 것만으로도 “개이성불도”
어린아이들이 모래불탑 만든다면 “이것만으로도 다 이미 성불을 마쳤다”
꽃 한송이 불상에 공양하면 다 이미 성불해 마쳤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일불승, 사람이 부처다” 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요.
지금껏 줄곳 강조하다시피 사람의 위대한 가치에 눈뜨고
“인간의 본래 지극한 가치에 눈뜨면 더 이상 공부할 것이 없습니다.”
라고 하셨어요. “사람이라면 나도, 남도 사람”이라고 하셨어요.
“사람의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뜨면 사람을 위해야 되겠다고 하는 마음이 나오게 돼 있다”고요.
손을 들고 꽃을 공양하는 등의 여러 가지 행동들은 “그것이 무슨 성불의 조건이 아니라는 뜻입니다”라고요.
“그러한 조건에 동참 안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하고 대중에게 물으셨지요.
결국은 다시 “인간의 본성은 본래 부처다”
‘본래 부처인 사람이 굶고 있다면’ ‘본래 부처인 사람이 노숙하고 있다면 어떻게 지나칠 수 있는가’ “그래서 보살행으로 회향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셨어요.
법화경 후반부에 관세음보살보문품이 나오는데
자비심은 “죄가 있거나 없거나 도와주고 살펴주고 애처롭게 여겨주고 내 모든 것을 희생해서 도와주겠다는 그런 마음”이 저절로 나와야 자비심이라고 하셨어요.
“최소 우리는 500분의 1 관세음보살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자꾸만 부르면서 무언가를 청한다면 부처님도 귀찮아서 들어주기는 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불이라고요. 그래서 그 이자가 비싸다고 하셨어요.
우리는 이제 “보문품 새로 읽기 운동을 해야한다”고 하셨어요.
불교는 참다운 이치를 일깨우는 종교인데 “껍데기만 남고 영혼은 사라진”
“송장만 남은 불교인지 몰라.” 그 점이 너무도 안타까와 “내 이러한 상태가 되어도” “그 이야기를 전파해 주려고 애쓰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관세음보살 ‘열심히 부르면 된다’ ‘등 켜면 된다’ ‘기도성취’다 하면서
‘기도접수 서까래 접수 그것이 불교인 줄 알았어’ 그런데 지금보니 아니라는 것,
그러한 것은 “뼈다귀만 남고 바짝 마른 불교인지도 모릅니다”하시면서
“사리불의 이야기입니다.”하셔서 청중이 웃었지요.
사리불 역시 부처님의 방편을
“처음 듣고는 곧 그대로 믿어서 결과를 얻으려 하였습니다.”
우리 역시 “전부 그런 결과를 기다렸는지 몰라”하셨어요.
정말 일불승을 안다면 할 일이 없다고요.
아등바등 볶지 않아도 “당신은 그대로 부처님”이라고요.
“못 사는 대로, 다리 하나 없는 대로, 늙어서 쭈그러진 대로 부처님이야.”
“젊으면 젊은대로 부처님이야” 그것이 미증유법이라고요.
“어린아이가 모래 쌓아놓고 불탑이라 해도 성불하는 것”이며,
“그냥 그대로가 사람은 손색없는 부처”인 것이라고요.
“부처니까 욕심부릴 줄 아는 거야. 시기질투하는 거야.”
그 능력의 밑뿌리를 살펴봐야 한다고 하셨어요.
사리불도 그런 것을 모르다가 “이제사 법문같은 법문 듣고”
“이것이야말로 진짜 불법인줄 알게 됐다”는 술회를 하고 있는거라고요.
여기까지가 법화경의 올곧은 정신이고 나머지는 형식이라 하셨어요.
사리불도 처음엔 의심하였다
처음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속으로 매우 놀라고 의심하기를
‘아마 마귀가 부처님의 모습을 지어
나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가.'하였습니다.
법화경 상권 P.91
“당신은 부처님” “탐욕, 음해, 모사하는 그 능력 그대로 부처님이다”라고 할 때
그 말 듣고는 “저 스님 뭘 잘 모른다, 법당의 등상불이 더 부처답지 않은가”라고
생각했다면 그런 말이 곧 “마귀다”라는 말과 같다고요.
큰스님이 인불사상을 말하지만 그 말을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셨어요.
불교 티비에서 큰스님 법회하는 것을 보고는
어떤 스님이 “아이 그래도 그렇지 않지, 사람이 부처님은 아니다”라고 하였다면
그런 말은 곧 “아마 마귀다”라는 말이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사리불 역시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라고 하셨어요.
의심이 찢어지고 “사람이 부처님이다”
부처님은 갖가지 인연과 비유와 방편으로 말씀하시니
그 마음이 바다와 같이 편안하고
의심의 그물이 찢어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과거에 열반하신 한량없는 부처님들이
방편에 머물러 계시면서
역시 모두 이러한 법문을 말씀하셨고,
현재와 미래의 여러 부처님들 그 수효 한량없는 이들도
역시 여러 가지 방편으로
이러한 법문을 설하신다고 하시며,
지금 세존(世尊)께서도 탄생하시고 출가하시어
도를 이루고 법륜(法輪)을 굴리시는데
역시 방편으로 말씀하십니다.
법화경 상권 P.91-92
오늘도 큰스님은 “사람이 부처님이다”라는 책을 “한 차 싣고 와서”
나누어 주셨는데요.
“마귀가 아니구나.”“무비스님이 제대로 공부하고 하는 소리구나.”
“그것이 저 스님의 올곧은 정신이구나.”
“의심이 확 찢어지고 더 이상 의심할 것 없이 눈 뜨고 사람을 위하여서
살아야 합니다.” 라고 하셨어요.
인간존중의 정신
“사람은 소중하다 이 사실 밖에 세계평화를 위한 길 없습니다.”라고 하셨어요.
자연재해로 죽는 사람도 많지만, 어리석게도 수천 만의 사람이 사람을 해친다고요.
“모든 위정자들이 ‘인간존중’의 정신이 있어야 하는데 생각해보면 안타깝고 속터지는 일입니다.”라고 간곡히 말씀하셨지요.
세존께서만 진실한 도를 말씀하시고
마군들은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마귀가 부처님이 된 것이 아닌 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제가 의심의 그물에 들어간 까닭에
마귀의 소행이라 여겼습니다.
법화경 상권 P.92
이제 아는 사람은 이런 소리를 하는 거라고요.
모르는 사람만이 아직도 ‘마귀가 부처소리 한다’고 하는 것이라고요.
“수행은 저 착하게 살라는 것이지 부처되는 일이 아니다”라고 하셨어요.
“닦고 수행해서 된 부처가 어딨습니까?”
그렇게 “탑 쌓듯이 쌓은 부처는 무너진다”고요.
부처란 “나쁜 짓하든지 착한 짓 하든지 항상 여일한 그 자리” 라고요.
사리불에게 수기하다
이제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수기 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도 약간은 방편이 있다고 하셨어요. 처음부터 모두가 부처라고 확 깨놓고 이야기 하면 또 오천 명이 나갈텐데 그렇게 되면 부처님도 기가 빠지실 거라고요.
사리불이 부처될 때의 나라 이름은 어떻고, 국토는 어떻고 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방편으로 나오는데...
이제 차츰차츰 분위기가 무르익고, 이해가 깊어지면 뒤에 가서 500명을 한꺼번에 보명(寶明)여래 라고 수기주는 ‘엉터리 수기’가 있고,
거기에 ‘간이 부풀’었는지 이제 2천명을 보상(輔相)여래라고
‘싸구려 수기’를 주는 대목이 나온다고요.
그리고 결국에는 상불경보살품에 가서 온 세상 사람에게 수기를 주는 내용이 나온다고요.
“나는 꿰뚫고” “부처님 속심 알고 이리 이야기 드리지만 순서대로 법화경 읽어보세요.”라고 하셨어요.
사리불이여 그대는 오는 세상에 한량없고 그지없는 불가사의한 겁을 지나면서 수많은 천 만 억 부처님께 공양하고 바른 법을 받아 지니며 보살의 행하는 도를 갖추어서, 마땅히 성불하리라. 그 이름은 화광(華光)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 세존이라 하리라.
법화경 상권 P.94
함께 여섯 줄의 경전을 읽고나서 “이렇게 하면 성불 못 할 사람이 어딨나?”
“아주 조건이 많다”하셨어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역시 방편이라고요.
진실은 “말기암 환자라도 그 말기암 환자 그대로 부처님이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면 “부처님 장사 안 된다”하셨어요.
오천 명이 또 나가면 결국 부처님이 손해라고요. 그런데
“나는 부처님 속심 다 아는데 성질 급한 사람이 안 말할 수가 없다”고 하셨어요.
청중이 웃은 후 큰스님은
“당신이 부처”라는 “이 말 한마디 듣고 죽어야 보람이 있습니다”라고 하셨지요.
이 한마디를 우선 알아놓고, 우리는 이제 “부처님이 작전 짜놓은 대로” “차근차근 공부해봅시다.”라고 하셨어요.
"1년이든 2년이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방송국하고 관계없습니다"라고
하셔서 청중이 웃음으로 호응했어요.
진리로써 마음의 풍요를 느낄 때
나라의 이름은 이구(離坵)라 하리라. 그 땅은 평탄하며 반듯하고 청정하게 꾸며졌으며 안락하고 풍족하여 천신과 인간이 매우 많으리라. 유리로 땅이 되고 여덟 갈래 길이 있는데 황금 줄로 길가에 경계를 치고, 길 옆으로는 칠보로 된 가로수가 있어 꽃과 과일이 항상 열려 있으리라.
법화경 상권 p.94
사리불이 나중에 부처인 화광여래가 되었을 때의 국토를 설명하는 대목인데요.
“부처의 세상이 그와 같이 풍요롭고 화려하다”는 상징이라고요.
그렇지 않고 유리가 땅이면 걸을 수가 없고 과일나무가 칠보면 그 과일을 먹겠느냐고 하셨어요.“진리로써 풍요를 느낄 때 그 마음 상태를 멋지게 그려놨다.”고요.
“우리 마음이 완전한 부처인 줄 제대로 알면 더 이상 바랄 것 없다”
“사람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
“현재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간에 사람이라고 하는 사실”
“숨쉬고 눈뜨고 사물 보고 말 듣고 하는 이것으로써 행복하다. 평화롭다. 이 이상 무엇을 바라는가.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런 정도의 풍요로운 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하셨어요.
법화경의 비밀
사리불이 이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 출가하여 화광여래가 된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일 뿐이고, 법화경이나 불교를 몰라도
“매일매일 불교를 비방하는 저 누구도 부처님”이라고 하셨어요.
“절 무너져라, 부처님 무너져라, 불교 망해라” 매일 기도하는
“그 사람도 부처님”이라고요.
법화경의 이런 정신이 아니라면 교회 없는 기독교도들을 위해서 교회를 지어주었다는 대만의 증엄스님 같은 이가 나올 수 없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스님이 교회를 지어주는 그 마음은
“그 교회에서 절 무너져라 할 거면 해라, 얼른 가서 그렇게 해”
“내 새끼 시집장가 가는데 아파트 한 채 사주는 것”과 같은 마음이라고 하셨어요.
“세상에 이런 스님이 있어요?”
그 말씀에 청중사이에서 박수가 나왔어요.
사리불이 방편과 진실의 법을 청하다
이 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다시는 의심이 없으며 친히 부처님 앞에서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수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자유자재하여진 여기 일천 이백 사람들은 옛날 배우는 처지에 있을 적에 부처님께서 항상 교화하시기를 ‘나의 법은 나고 늙고 죽는 일을 떠나서 구경에는 열반에 이르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여기 아직 배우는 이들과 다 배운 이들도 제각기 ‘나’라는 견해와 ‘있다’‘없다’하는 견해를 떠나서 열반을 얻었노라 합니다. 지금 세존 앞에서 일찍 듣지 못했던 말씀을 듣고는 모두 의혹에 빠졌습니다. 거룩하신 세존이시여 원컨대 사부대중들을 위하여 그 인연을 말씀하시어 의문과 회한을 버리게 하여 주십시오.”
법화경 상권 p100
“뭘 잘 아는 사람에게는 묻는 게 대접이야.”라고 하셨어요.
사리불은 이렇게 수기를 받는 큰 은혜를 얻고 부처님께 법을 청한다고요.
보통 불교는 상대적 편견을 벗어나는데 힘을 쏟아서
무아(無我) 공(空)을 이야기 하는데
사리불도 지난날에는 그런 이야기만 들어왔다고요.
그리고 아직 그런 사람들은 진정 불교다운 불교를 이야기 하지 않고 의혹에 빠져있으니 사리불이 “다시 비유해 주십시오”하고 청하는 것이라고요.
그래서 “삼계화택(三界火宅)의 비유 여기까지 도달했습니다”라고 하셨어요.
“오늘은 사리불의 깨달음과 수기 받은 내용을 공부했습니다”라고 하시고
법회가 끝이 났어요. 박수소리가 시원했습니다.
따끈한 차 한잔
오늘 새벽에 “늘 있는 그 자리에 차가 있으니 맛있게 먹어요.”
하는 쪽지를 받았어요. 차를 담당하는 보살님께서 오늘 못오시게 되어서 간단히
알려주는 쪽지였는데, 그 새벽에 마음은 벌써 차 한잔을 마신 듯이 따뜻했어요.
어디서 보았더라....한 어린이가 아빠에게
“아빠 마음이 따뜻해지려면 차를 마셔.”했다면서요.
그래서 저는 오늘 오전에도 차를 마시고, 법회가 끝나고도 마셨어요.
함께 차를 마시는 분들이 계셔서 마음이 순해졌지요.
오늘 보살님들은 아래층에서 책을 나눠주시느라 바쁘셨어요.
잠깐 2층에 올라오셔서 큰스님께 삼배올리고
“일주일에 수요일만 있는 것 같아요.”라고 하시자
큰스님께서 “그 말 좋다.” 하시며 껄껄 웃으셨어요.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나눠주신
“사람이 부처님이다 (불광출판부 2002초판발행)” 책의 서문에는
“요즘 세상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란 마치 옛 아이들의 놀이에서 기둥을 잡고
뺑뺑이를 도는 일과 같습니다. 한참을 돌다가 잡은 기둥을 놓쳐버리면
저만치 나가 곤두박질을 칩니다.”하신 대목이 나오지요.
그 글은 지금, 법화경 노트를 정리하면서 눈에 띄였어요.
오늘 아침까지 저는, 슬픔이 진정되고 난 다음에 남아버린
영혼까지 손상시킨다는 깊은 상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다행히도 이어지는 다음 대목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영원히 놓칠 수 없는 인생의 튼튼한 기둥으로
더욱 큰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라는 대목이 나오지요.
법화경 영험이라 제목하자
강의가 끝나자마자 무상행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교통사고를...”그 소리에 얼마나 놀랐던지,차가 다 부숴져서 폐차를 시켰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떨었던지...
다행히 많이 다치시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정이 되었어요.
큰스님께서 먼저 병문안 가야겠다 하셔서 우리들은 모두 병원에서 다시 만났지요.
생각보다 멋진 병원이었어요. 그거야 당연히 환자이신 무상행님이
손등에 가벼운 찰과상만 입으셨기 때문이지요.
“오늘 법회2부는 여기서 하지.”
로비의 법회는 아주 짧고 경쾌하였어요.
큰스님 올리라고 말씀하신 제목은 “법화경 영험”이지요.
내용은 아마도 오늘 법문하신 그 내용이 전부 포함되겠지요.
그냥 우리는 그곳에서 “여기 정형외과 아니고 성형외과 아니예요?”
무상행님을 놀리고 “글쎄 그 순간에 다라니를 외우고 있었답니다.”
사고담은 그렇게 밖에 못들었어요.
고속도로였고, 혼자셨고, 차 바퀴에 뭔가가 걸리신 거라고요.
제가 다른 분께 들은 것은 그뿐이고요.
병문안 하는 그 자리에서는 다 같이 긴 의자에 앉아
사진 찍고 손 만져보고 방울 토마토를 함께 먹고 웃은 것이 전부지요.
도합 10분을 넘지 않은 법회였어요.
우아하고 멋진 시간이었습니다...정신이 맑아지고 용기가 생기는 시간이었어요.
돌아오는 길에 무상행님의 문자를 받았어요.
"....더욱 맑고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고맙고 사랑하는 우리 염화실 권속...다시 ..고마워요 "
무상행님, 혼자 무서웠을 그 사고를 겪고 ‘하나도 손상되지 않은’
다시 맑은 모습으로 일러주셔서 감사했어요.
숨을 뿜듯이 쉬익쉬익...하고 저 혼자서만
무너져버렸다는 무정물, 무쏘에게도 고마웠어요.
잠실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동부간선도로에서
중랑천(中浪川)변에 길게 길게
평화롭게 흐르는 물과 사람들을 보았지요.
“맑고 겸손하게”휴대폰에 찍힌 글자들을 다시 들여다볼 때
새로 수신메세지, 휴대폰 액정을 가득 채우는 빨간 하트들 반짝반짝 ...
법(法)에서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
법화행자의 법화산림 열 번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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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一文一字是眞佛(일문일자시진불) ㅡ 글자하나, 한 구절 문장, 낱말 획마다 모두가 참다운 부처다. 지혜로운 사람은 보리를 이룬다고 했듯이 사람이 최고라는 인간 존중의 정신이 바로 법화경 녹음이 짙은 가로수로 한결 가볍게 발걸음 하시는 큰스님의 모습 양로원 어르신 목욕 봉사 하면서도 땀이 범벅 되어도 큰스님의 가르침이 뇌리를 스치며 부처님으로 보니 짭짤히 입가로 들어오는 땀방울 조차 감로수 인듯법체 강령하옵소서._()()()_ 慧明華보살님 수고하셨습니다.
틱낫한 스님의 상상력을 빌리면 "그 땀이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저희집도 방문하겠군요^^ 감사합니다~~건강하십시오.
맑은 아침의 따뜻한 차를 늦은 오후에 함께 마시며 차근차근 읽어내리는 이 행복감... `"법화경 영험" 2부 법회가 깊은 바다만큼 풍요로움으로 다가와 자연스럽게 반짝반짝 빛날때 환자복으로도 충분히 멋스러움을 보여주시는 무상행님의 깜짝 이벤트도 고맙습니다...염화실 권속이기에 더욱 행복한 법화행자의 법화신림 열 번째날..._()()()_
바다의 비유는 언제나 신비롭습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우리 법회가 있었으면 ^^ 희망의 말 여기 적어봅니다. '함께여서 정말 따뜻했던 날' 마음이 치유되는 날이었어요^^~
‘우리 마음이 완전한 부처인 줄 제대로 알면 더 이상 바랄 것 없다’...그 오랜세월을 끊임없는 정진과 수행을 겸해 많은 불사를 행하시는 무상행 보살님, 당신은 항상 법화 경전과 함께 법화 행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음을 새삼스러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신 당신에게는 더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기꺼이 다 받아들이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당신은 부처님.. 당신은 부처님.. 당신은 부처님.._()()()_
“인간의 본성은 본래 부처다” ‘본래 부처인 사람이 굶고 있다면’ ‘본래 부처인 사람이 노숙하고 있다면 어떻게 지나칠 수 있는가’ “그래서 보살행으로 회향할 수밖에 없다”... 법화산림 열 번째날... 큰스님, 고맙습니다..._()()()_ 慧明華님, 고맙습니다..._()()()_
慧明華님 글안올라와 조바심내며 기다렸답니다. 차타는것 보지못하고,-- 휭 와버려서... 다음부턴 모든일에 조금더 조심스럽게 해야겟다고 몇번이나 다짐하며 항상보여주듯이 아름다움 가득한 한자한자들을 순식간에 읽어버리고 慧明華님의 맑고 아름다움을 뻑느껴봅니다... 그런 큰 일을 겪었음에도 더욱 맑고 맑아진 , 무상행님에게 내린 "법화경의 영험" 에 만월님의" 새로태어나심"이란 말이 가득 다가옵니다. 염화실의 권속으로 법화행자로써 행복합니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뜨게 해주는 법화경의 가르침..이 이상 무엇을 더 바라는가! 한걸음 한걸음 진리의 세계에 다가가는 법화행자의 행렬속에 염화실 권속임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법화산림 열번째날...고맙고 고맙습니다. _()()()_
날마다 날마다 행복한 것은, 사람의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뜨는 것 ... 그리고 염화실의 권속들과 환희로움을 함께 나누는 것 유정 무정 모든 것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 ...그리고 당신은 부처님... _()()()_
숨쉬고 눈뜨고 사물 보고 말 듣고 하는 이것으로써 행복하다. . 이 이상 무엇을 바라는가~~~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10여년 동안 타던 차를 폐차 시키려고 PACKER(차를 실어 나르는차)에 실려 가는 차를 보면서, 마치 오래동안 함께 지내던 사람과 영원히 이별하는것 같은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그 동안 큰 사고 없이 우리 가족들을 보살펴준것에 대한 고마움이랄까... 無情物도 정이 들면 有情物이구나 싶었지요. 無相行님 살리고 만진창이가 되어 영원히 가버린 무쏘님, 고맙습니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준 하루였습니다. 慧明華님 고맙습니다. _()()()_
감사_()_
늘 사진과함께 법화경 강의를 정리해주신 慧明華보살님 감사합니다 이 염치불자는 보살님의 공덕을 컴 앞에서 받고 있으니 주신 보살님 받고있는 나 행복합니다 _()()()_ 그리고 무상행 시인 보살님 사진으로 뵈올땐 멋진 모자를 쓰고 계시길에 법화행자 되시더니 멋쟁이기 되신줄 알았더니 사고를 당하셨군요 빠른 쾌휴 기원 드립니다 _()()()_
법화경의 정신으로 무장하신 법화행자에게 그 어떤것도 침범하지 못하는 당당함이 있다는 걸 경험하며.. 바른선지식의 인연으로 순간을 해탈하는 삶으로 회향하기를 기원하며,...애불심과 반짝이는 지혜의 언구로 법화살림 열 번째날의 싱거러움을 알뜰하게 보도 해 주시는 慧明華님...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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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文一字是眞佛.....을 이해하고 거기에 눈을 떠야한다, 일승불 사람이부처다 ,,,,본래 부처인 사람이 노숙하고 굶고 있다면 어떻게 지나칠수 있을것인가 그래서 보살행으로 회향할수밖에 없다,....慧明華님 수고하셨습니다,_()()()_
어제 올라온 글인데 왜 지금에서야 보았을까요 어젯밤에도 분명히 들어왔었는데 지난 수요일 무리를 하면 무상사 들렀다 조계사에서 지장재일 음성공양 올릴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답니다. 돌아오는 수요일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일찍 들릴 생각입니다. 혜명화님 계셔서 결석하고도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알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뜨면 사람을 위해야 겠다는 어른스님의 말씀이 지난 목요일 혼자사시는 남자 어르신 모습을 모면서 가슴이 울컥하면서도 감사했습니다. 열번째 법화소식 전달하신 혜명화님 수고하셨습니다..._()()()_
고맙습니다 ()()()
항상 얻기만 하고 고마움을 느껴요. 무상행님의 쾌유도 빌께요._()()()_
어느듯 법화산림 열번째날 ,큰스님께서 인간존중의 정신이 절실함을 간곡히 말씀하셨지요.혜명화님,늘 아름다운 마음 읽고갑니다.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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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읽다가 다 못 읽고,오늘 차근차근 다시 읽었어요...무상행님께서 교통사고로 입원하신 것도 지금 알았는데,정말 부처님 가피가 있으셨네요저는 어디 좀 편찮으신 줄로만 알았거든요...마음이 순해지는^^...이 말이 왜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 지...저는 지금 마음이 순해지는^^ 염화실에서...점심에 상추쌈을 먹은 후유증으로^^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이기고 있답니다수고 많으셨어요,혜명화님_()()()_
오늘에야 진정한 부처님의 아들이며,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다시 태어났으며, 법에서 화생(化生)하였고, 불법을 얻은 줄을 알았습니다...나무묘법연화경
고맙습니다 _()()()_
큰스님께서 주시는 法食. 정말 기쁜 공양 받으시고 모두 모두 행복하신 부처님 모습 그대로입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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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거나 형이상학적인 깊은 이치는 비유로써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다고요.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써 알아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