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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2000년 여름 휴가 산행
지리산 종주 ... 팔공산
▶ <산행기에 앞서...>
이 산행기는 재작년 " 2000년 " 여름 휴가때 산행한 것으로 언젠가 정리해서 쓰려고 했었는데 이번에야 비로소 쓰게 되었다.
지리산 종주는 나로서도 아직 해 보지 못한 산행이었다.
물론 자투리 시간을 내어 구간 산행은 몇 번 해보았지만 이번 기회에 종주산행을 목표로 하였고 산악회의 소수 정예대원끼리 갈려고 했으나 꼭 가고 싶어하는 산악회 외의 동행인이 있어서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또한 나로서는 4년 만에 갖는 종주산행이자 야영산행이다.
그전에 몇 년 동안 몸이 좋지 않아 종주산행은 한동안 포기한 채
당일산행만 했었는데 이번에 큰 마음먹고 도전해 보기로 한 산행이기도 했다.
꼭 2 년전의 산행기록을 펴고 옛 기억을 더듬으며 (근데 아직도
생생한 느낌이다.... 잊지 못할 일이라서..) 썼다.
아~~ 너무나 생생한 기억이다.....너무나....
못난 대장을 만나서 지리산 종주의 목표달성도 못하고 애꿎은 비만 맞고 ... 그래도 별 사고 없이 잘 따라준 우리 종주대원에게
다시 한번 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비를 맞으면서 산행하여 메모를 간단히 기록하다보니 부분적으로
부족한 점도 있을 수 있으니 대충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일시> 2000. 8. 2 (수) ~ 6 (일)
▶ <인원> 산악회 6명 (김천일,이강무,성기혁,안윤희,황보레지나,
갈대 / 장태현(차량 운송 지원)
동행인 5명 (이종성,김기원,조정권,이명진,예정화)
산행 ; 11명(남 7명, 여 4명) / 차량 지원 ; 장태현
▶ <산행 코스 요약>
* 8월 2일(수)
오후 7;30 서구청에 집결 후 점검
오후 8;10 출발 (배상대님, 최타현님께서 배웅, 격려금 찬조해 주심)
오후 11;05-15 뱀사골 주차장
오후 11;40 성삼재 도착 후 야식, 대원간의 인사 , 산행일정 통보
, 개인 짐과 식량 배분, 야영
* 8월 3일(목)
05;50 성삼재 출발
06;45-08;00 노고단 산장 도착 후 간식
08;10-15 노고단(1507m)
08;45 돼지평전
09;35-11;20 임걸령 샘터 아침 식사
12;30-40 삼도봉
1;00-30 화개재
2;20 토끼봉
3;30 총각샘 - 야영 ... 폭우
* 8월 4일(금)
오전? 총각샘
오전? 연하천 산장 (우천으로 산행 통제 - 하산)
오후 2;20 벽소령 도로
오후 4;00 삼정리
오후 뱀사골주차장에서 차량 회수 및 장태현씨의 차량 지원 받음
가조에서 온천~(종성씨 팀과 작별)
대구 도착 ... 청기와 숯불갈비에서 저녁
팔공산 야영장으로 !!! (일부 대원은 너무 아쉬워 팔공산에서 나머지 휴가일 지냄)
* 8월 5일(토)
팔공산 산행 - 송득호님 만남.(격려금 주셨음)
팔공산 야영장에서 종주팀 다시 모임
* 8월 6일(일)
김종성님, 배태호님, 최타현님께서 팔공산 산행하시기 위해 우리
캠프에 격려차 오심.
팔공산 야영장에서 해산
▶ <산행 개요>
여름 휴가철 얘기가 나을 즈음에 휴가산행에 대해서 제각기 한 마디씩 한다.
이번에 어디 어디 가자고...
휴가 전에 모여 결정한 것이 지리산 종주 !!!
산악회 대원 외에 식구가 더 생겼다.
지리산 종주한다고 하니 윤희씨 아는 분(이종성 외 3인)도 함께
가고 싶어한다.
최대한 피해 안 끼치게 할 테니 함께 가자고...
하하하~~~ 같이 갑시데이... 괜찮심더... 널널하게 산행하는데 무슨 폐를 끼친다고....
그런데 한 사람이 더 추가된다는데.... 윤희씨가 말도 못 꺼낸다...미안해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한 사람은 완전히 공주였다.)
이미 다 계획이 수립된 데다가 왕초보라서 나에게 말을 꺼내지도
못한 것 같은데 이미 종성씨로부터 얘기를 들었다.
지리산 종주가 능력 있는 산꾼만 하는 산행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체력을 시험할 수도 있는 무대로 삼는 기회로 생각하라며 공주에게도 산행 참여를 허락하였다.
막중한(?) 대장역을 맡고 산행계획을 세우며 4박 5일간의 식단과
장비를 준비하며 함께 모여 먹거리를 함께 쇼핑하니 재미를 느낀다.
나로서도 참말로 오랜만에 맛보는 단체산행 준비의 즐거움이었다.
장태현씨가 회사 일로 사정상 산행에 빠지게 된 것은 지금도 아쉽다.
그 대신 성삼재까지... 그리고 우천으로 도중 하산 후 다시 차량지원을 해 준데 대해서 고마움을 느꼈다.
널널한 산행일정으로 출발했지만 노고단을 지나면서 차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많은 비는 아니었지만 멈출 비는 아니었다. 옷을 젖을 정도로 조금씩 오더니만 총각샘에서 부터는 그냥 쏟아졌다.
연하천 산장에서의 상황은 그야말로 초만원... 총각샘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지만 돌발상황이 발생하여 산행이 더 이상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세석산장에 인원이 700명인가 ? ...
900명인가 ? 대피하였다고 뉴스에 나왔음)
상황을 최종 점검하여 "계속 산행하면 같이 가고.. 내려가면 같이
내려간다" 는 팀웍을 내세워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지리산 관리공단에서도 산행 통제를 하여 삼정리로 내려오게
되었다.
▶ << 산행기 >>
*** 8월 2일(수)
한편으로는 염려도 된다. 나로는 어쩌면 무거운 배낭과 종주가 다시 예전의 병력을 재발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생긴다.
그러나 흥분된다. 얼마 만에 종주하는 산행인가 ?
산행계획을 다 세우고 출발할 시간만 기다리고 있지마는 흥분되는
가슴을 진정시킬 방법이 없다.
▶ 출발...
오후 7시 30분에 집결장소인 서구청에 왔다.
서서히 한 두명씩 모인다. 모두들 입가에는 즐거움의 미소가 흐른다.
우리 대원과 함께 동행할 종성씨 외 3명도 모였다. 간단히 통성명을 하고 출발할 준비를 한다.
마침 배상대님과 최타현님이 오셔서 우리의 지리산 종주 무사히
다녀오기를 바란다며 격려금도 주시면서 인사를 나누며 8시 10분에 서구청을 떠난다.
우리 대원은 천일씨 봉고차와 종성씨 팀의 차로 2대가 간다.
거창휴게소(9;20-50)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한다.
고속도로 위에 떠 있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 야아~~ 날씨
죽인다..... 이번 산행 진짜로 좋겠다 "
비가 올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아니 ...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신나게 달린다.
뱀사골 매표소를 그냥 통과한다. 으흐흐흐.... 이 시간에 사람이
없지.... 돈 벌었다...^^
뱀사골 정류장에 도착(11;05-15)
종성씨 일행이 탄 차를 이 곳에 파킹하고 차 한 대를 대절하여(20,000원) 우리 봉고차와 함께 성삼재까지 갔다.
▶ 성삼재에서 짧은 밤을 보내며...
성삼재에 도착하니 (11;40) 고지대여서 그런지 안개가 자욱하게
끼여있다.
덥기만 했던 날씨도 여기서는 추웠다.
주차장 한 쪽 귀퉁이에 텐트 2동를 설치하고 난 후 야식과 일정안내 및 짐 배분을 한다.
*** 8월 3일(목)
▶ 지리산 종주 첫발을 내딛으며...
태현씨는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너무 아쉽고 붙잡고 쉽지만 천일씨의 봉고차를 몰고 대구로 가야만 했다.
우리가 종주 후 하산할 때 하산지점에 다시 차를 이끌고 와야하기
때문에......ㅠㅠㅠ
새벽 4시 40분에 기상하여 한 사람씩 눈을 뜨면서 짐 정리에 들어간다.
각자 부여된 짐을 정리하고 나니 천일씨의 배낭이 제일 무거운 것
같다.
내 배낭도 만만치 않다. 모두 야영장비이다. 종주 끝까지 가더라도 결코 배낭무게가 줄지 않을 것 같다.
아침은 노고단산장에서 하기로 하고 간단히 아침체조를 하고 출발
!!!!!! (05;50)
<소형주차장 / 노고단 고개 2.84>
새벽부터 나서는 이들도 우리말고 여러 팀이 있었다.
포장된 길을 나서면서 벌써부터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06;30경 포장도로를 버리고 오른쪽 소로길을 따라간다. <노고단
야영장 1.1 도로 / 노고단 야영장 0.28>
▶ 노고단 산장에서 ....
노고단 산장에 도착 (06;45-08;00) <노고단 산장(1370m) 천왕봉
32.6 반야봉 8.9 / 중계소 0.7>
많은 야영객들이 아침식사를 하거나 세면을 하는 등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다.
밥을 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많이 걸리고 복잡해서 간단하게 스프
및 행동식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좀 더 일찍 나서서 낮시간에는 휴식 겸 식사시간으로 하기로 하고 다시 나선다.
▶ 노고단
산장에서 10여분을 올라가니 노고단이다.(08;10-15) <노고단
1507m>
노고단 정상부에 올라서니 멀쩡했던 날씨가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지리산의 날씨는 기상청 할배가 와도 예측하기 어렵다.
" 헤헤~~ 이 정도 비 즈음이면 오히려 낳다... 더운 것보다는 나으니까..."
▶ 돼지평전
노고단부터는 능선길로 이어진다. 임걸령까지는 힘든 구간이 없기에 보통속도로 진행한다.
오랜만에 대형배낭을 매고 노고단까지 오를 때는 힘들더니 이제야
조금 괜찮은 것 같다.
비까지 쬐금 내리니 다행이다.
돼지평전 표지판이 간간이 나타난다. (08;45)
비가 온 탓에 안개가 끼여있어 시원한 전망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간다. (9;25) <삼도봉 / 노고단 /
피아골>
진행하면서 기혁이에게 지도를 펼쳐 보이면서 설명을 해 준다.
▶ 임결령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며...
갈림길에서 10여분을 진행하면 임걸령이 나온다. (09;35-11;20)
진행방향 왼쪽 10m 아래 샘이 있고 화장실도 있고 야영금지 표지판도 있었다.
<노고단 3.2 / 뱀사골 산장 4.0 >
노고단에서 임걸령 구간은 종주 길 중에서 힘들이지 않는 제일 쉬운 길이다.
여기서 아침인지 점심인지... 푹 퍼져서 시간을 잡아먹는다....^^
라면을 끓어 먹고 그것도 모자라서 라면과 밥을 동시에 해 먹는다. 거기에 차 한잔까지 ....
가랑비라고 하지만 제법 맞으면서 이 곳에서 한참을 쉬었더니 한기를 느낀다.
우의를 입어야겠다.
그나저나.... 시간을 많이 허비한 것 같다.
진행을 다시 한다.
짐이 무거워서 생각만큼 빨리 진행하지를 못하겠다. 물론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지만....
반야봉 갈림길에 도착(11;55-12;10)한다. 후미를 위해 다시 기다린다.
<반야봉 1.2 / 노고단 4.5>
강무씨가 바위 위에 배낭을 놓고 기대어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뒤에서 온 공주님(?)이 강무씨에게 한 마디 한다. " 저.... 여기 앉으면 안 돼요 ? "..... 그 후부터 공주가 되었다.....
(그 후부터 공주님의 여러 言行이 있었지만 ..... 생략....ㅋㅋㅋ.... 근데 상상외로 재밌더라...화장, 눈썹, 스틱, 목욕탕 등등.... )
▶ 삼도봉과 그 악마(?)의 계단...토끼봉
경남/전북/전남의 경계선인 일명 날날이봉이라고도 하는 삼도봉에
도착한다.(12;30-40)
<노고단 5.5 / 뱀사골산장 1.1 / 천왕봉 26.8>
이 후 내려가는 길이 나무계단으로 되어있네 ? 언제 해놨지 ?
하나둘씩 계단을 내려간다.
근데 .... 이게 장난이 아니다.... 와~~ 내려가니까 덜 힘들다마는 올라오는 사람들에게는 이거.. 보통 지루하고 힘든 것이 아니다....
천일씨는 이 계단을 내려가면서 얼마나 지겨울까, 힘들까 하면서
계단 수를 세였나 보다... 772 개 계단이라나 ?...
천일씨가 지리 종주 한다고 큰 배낭이 없어서 내가 예전에 쓰고
지금은 쓰지 않는 배낭(80 리터)을 빌려주었는데 그 배낭을 처음
매고 그 무거운 짐을 지고 가면서도 꾸준히 잘도 간다.
임걸령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조금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더니
지금은 괜찮은 것 같다.
윤희씨나 지나씨는 걱정도 안 한다. 조그만 체격이지만 워낙 잘
다니기에 신경도 안 쓴다... 그래도 혹시나 조금은 대장으로서 신경 쓴다...ㅎㅎㅎㅎㅎ
공주님은 아마 죽을 힘까지 다해 오고 있을 것이다. 뒤에는 종성씨가 함께 오고 있다.
화개재에 도착 (1;00-30)하여 휴식을 취한다. 여자들은 볼 일 보러 멀리도 간다.
이 후 길은 토끼봉을 향해 오르막이 계속된다. 또 쉰다.
토끼봉에 도착(2;20) <토끼봉 (1533m) 연하천 산장 3.3 천왕봉
24.8 / 노고단 7.5 / 범왕 4.7>
▶ 총각샘에서 위기 상황....
여러 번 쉬기를 반복한다. 꾸준히 다니는 산행도 큰짐을 매고는
힘이 드는데 어쩌다가 한두 번 다녔던 산행이 오늘처럼 무거운 배낭을 매고 따라왔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
총각샘에 도착했다.(3;30) 비는 조금씩 더 내린다.
반대편에서 오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니 비가 와서 관리공단에서
통제할 것 같다며 지나온 산장마다 초만원이란다.
으음.... 초만원이라....
우리 팀은 산장을 이용하지 않고 산장 주변 안 보이는 곳에 텐트를 치려고 했는데 산장이 초만원이라면 물 떠오는 것도 힘들겠는데...또한 우천으로 통제를 한다니...
이렇게 되면 더 가봐야 오히려 더 손해보는 것 같다.
복잡한 산장보다는 여기서 야영하는 것이 좀 더 편할 것 같다. 아무도 없고 샘도 있으니...
공주님이 너무 힘들어한다.
학생 두 명이 내게 와서 묻는다.
" 저... 천왕봉이 어디예요 ? "
띠요요~용 ....
아니.... 이 학생들은.... 복장부터 이들은 등산도 아닌... 소풍행장도 아닌....완전히 동네 뒷산 가는 폼이었다.
게다가 여기가 어딘데 천왕봉을 묻다니.....쬐매한 가방을 하나
둘러맨 행장 차림이었다.
단단히 일러준다. 천왕봉까지 산행할 생각말고 여기서 쭈욱~ 가면
산장이 나오니까 거기서 먹고 자고 집에 가라고 ... 아니면 너희들은 영영 집에 못 갈 수도 있다고....
한바탕 혼 줄을 내고는 재촉하여 이들을 보내 놓고 기혁이랑 연하천 산장으로 간다.
천일씨는 벌써 연하천 산장으로 간 것 같다.
일단 천일씨를 스톱시켜야 하기에 대원들을 여기에 멈추게 하고는
기혁이와 함께 배낭을 놔두고 연하천 산장으로 간다.
▶ 연하천 산장에서... 초만원
연하천 산장으로 가는 길도 일부 나무계단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천일씨는 배낭을 매지 않은 우리를 보고는 놀란다..
" 천일씨 ... 상황이 좋지 않아 되돌아 가야겠어요 "
천일씨는 이미 여기에 도착한 후 한참을 기다리다가 추워서 다시
진행하려던 참이었다고 한다.
조금만 늦었어도 이산가족이 될 뻔했다.
산장에서 소주팩 10개를 사는데 기혁이가 나를 부른다.
" 대장님.. 학생이 왔는데요.."
아까 그 학생들이였다. 어찌할 바를 몰라 내게로 온 모양이다.
" 야 ~ 너그들.. 돈 있냐 ? .... 돈 있으면 일단 맛있는 거 사먹고 ... 따뜻한 국물이라도 사먹던지 얻어먹던지 하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편히 쉬지도 못할 것이니 산장관리인에게 사정사정해서 비바람 피할 수 있도록 자리 좀 부탁해라....알았나 ? "
▶ 총각샘에서 야영 결정... 대장으로서의 결단을 내려..
학생들에게 단단히 주의시키고 다시 총각샘으로 되돌아갔다.
비는 점점 더 세게 내리기 시작한다.
연하천산장으로 갔다 오는 사이에 우리 대원들이 체온저하를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았다.
비는 갑자기 폭우로 변했다. 날은 서서히 어두워진다.
이미 총각샘에서 산행중지를 하였기에 다시 연하천 산장으로 갈
수는 없었다.
나 또한 한기를 느낀다.. 아아~~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나 외에도 몇 명은 꼼짝도 않은 채 그냥 멍하니 있기만 한다. 초기 증세의 일종이었다.
버너를 급히 꺼낸다.
그리고 비상식으로 가져 온 노랑 설탕으로 진하게 설탕물을 끓여
모두 마시게 한다.
종성씨가 재빠르게 텐트를 치기 시작한다.
종성씨의 빠른 동작 덕에 내가 마음이 좀 놓인다.
그러나 텐트 두 동을 치고 있으면서도 나는 심한 걱정과 두려움을
느낀다.
쏟아지는 폭우에서 과연 무사히 지낼 수 있을까 ?
심하지는 않지만 환자(?)도 발생하였는데... 만약 응급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두운 밤길을 연하천 산장까지 가야한다.
대장으로서 내린 총각샘에서의 야영결정이 아무 일없이 무사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대원들에게는 편안하게 보이려고 여유를 부리면서 지켜보고 있지만 .... 마음은 탄다..타....
▶ 저녁 만찬...
텐트를 설치한 후 대원들이 짐 정리를 대충하고 옷도 갈아입으니
내 마음이 좀 놓인다.
천일씨의 자취 경력 덕에 저녁밥은 일품이었다.
내가 산에서 먹은 밥 중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었다.
혹시나 폭우에 염려하는 산악회 선배들이 있을까봐 연락을 하려고
해도 핸드폰은 안 된다.
(실지로 우리가 야영하던 날 뉴스에 세석산장에 700명인가 .. 900명인가 ? 대피했다고 함.. 산악회 선배님도 걱정이 되어서 연락을
했다고 하던데 연락이 되질 않았다고 함)
간간이 천둥소리에 번개가 번쩍인다.
그래도 이제는 맘이 놓인다. 대원들의 컨디션이 어느 정도 호전되었다.
저녁식사 후 한 잔씩 하기로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에 분위기는 좋아졌다.
어느 정도 지났을까 ? 여자들은 여자텐트로 들어가고 남자끼리 한잔씩 더 한다.
모자랄 줄 알았던 소주가 남아있네...
▶ 내일 산행을 걱정하면서...
오늘 밤은 이렇게 지내면 되겠지만 내일 산행이 문제될 것 같았다.
남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데 종성씨팀이 내일 하산을 하려고 하고 대장팀은 끝까지 완주하기를 바란다며 미안한 부탁을 한다.
남자들끼리 한 마디씩 의견을 논한다.
"모처럼 시간 맞추어 지리산 종주 하는데 비가 오더라도 끝까지
합시다"
"더 이상은 힘들어하는 일행이 있으니 일부는 먼저 하산 후 하산지점에서 만납시다"
기혁이는 산에 재미 붙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리산 종주를 꼭 하고 싶어했다...
(기혁아~ 내가 니 소원 언젠가는 꼭 들어주마 ! )
의견을 종합하고는 대장으로서 결론 아닌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다.
" 우린 한 배를 타고 왔습니다.. 가면 같이 가고 죽으면 같이 죽자..... "
" 내일 날씨 및 상황을 보고 여자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최종 결정하도록 합시다. "
비좁은 텐트 안에서 잠을 청하기로 한다.
***
내가 만약 함께 출발했던 일부 대원을 놔두고 천왕봉까지 갔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의미로서의 가치를 둘 수 없었다.
한 대원이 어려움에 처했을 경우 모두가 한 힘이 되고 하나가 되어서 함께 행동했을 경우 비록 종주는 못했으나 대원간의 끈끈한
동료애와 우정, 팀웍이 마음속 깊이 남으리라.....
아마 그 팀웍은 산에서 배울 수 있으니까 ....
천왕봉 등정의 사진 한 장이 중요하지 않다.
천왕봉은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도 되고 내년에 가도 되고 .... 다음 해에 가도 된다.
천왕봉은 사라지지 않는다. 항상 그 곳에 있으니까...
***
▶ 비 오는 지리산 능선에서 .... 잠이 오나 ?
모두들 피곤한 탓인지 코를 골거나 낯선 잠자리에 선잠을 자는 사람도 있고...
종성씨는 떨어지는 비 소리에... 혹시나 하는 짐승들의 소리에 간간이 란탄을 밖으로 비추기도 하고...
나 역시 잠은 오지 않는다.
바위 틈 사이에 끼워 놓은 라디오 소리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른다.
여자텐트에서 부르는 소리가 나는가 싶어 가 봤더니...
잠은 자지 않고 웬 이상한 불빛이 아른아른 거린다며 무서워하고
있었다나 ? ....
" 아~ 그게 저기 라디오 켜 놨더니 그 불빛이겠지... "
여자텐트에 들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산에 대한 나의 가치관, 내일 산행에 대한 얘기, 산에 있었던 에피소드,,,
마음도 안심되고 두려움도 없어지고 ... 이제는 괜찮단다...
*** 8월 4일(금)
▶ 아침 회의 .... 결국 하산하기로...
뜬눈으로 지새운 밤이지만 비는 아직도 내린다.
으음..... 산행이 계속 되어질까 ?
모두들 서서히 일어난다. 아침을 먹고 난 후 회의시간을 가진다.
" 자... 모두 모이세요... "
어제 남자들끼리 회의한 내용을 얘기하고는... 지금도 비가 내리고 있어서... 여자들도 함께 하산하기로 동의한다.
아~~ 미안하고 안타깝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못난 대장 덕에 반쪽도 안 되는 종주를 마치고 내려가야 하다니....
일부 대원은 계속 산행하고 싶어했지만 그 뜻을 세워주지 못하고
함께 행동하도록 한 결정은 나 자신도 가슴 아팠다.
불평은 없었지만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소... 진짜 미안하오...
철수 준비를 하는데 번개와 천둥이 또 때리기 시작한다.
얼마의 시간이 흘렸을까 ?
비가 조금 그치기 시작하자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연하천 산장으로 간다.
명선봉을 오르고 지나 연하천 산장에 가니 조용하다.
어제 그 많던 사람들이 삼정리로 다 하산시켰다고 한다.
산장 관리인이 06시부터 입산금지 지시 통보를 받았다며 어떻게
왔느냐며 삼정리로 하산하라고 한다.
내심 살짝 가는 척하고 천왕봉으로 가고 싶었지만 11명의 인원이라 쉽게 발각(?)될 것 같고 하산하기로 결정한 이상 눈물을 머금고 음정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하산한다.
▶ 눈물을 머금고 연하천 산장에서 하산한다...
비는 조금씩 그치는 듯 하다.
아~ 이 정도 비라면 계속 진행해도 되는데 .... 너무 안타깝다.
얼마를 진행했을까 ?
왼쪽에 등산로 아님 푯말을 보고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바윗길 계곡인지... 너덜지대인지 ... 내리막 길이 장난이 아니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
벽소령 작전도로에 다다랐다. (2;20)
비는 거의 그친 듯 하다. 아아~~~~~~ 진짜로 미치겠다.
비 온 후의 지리산 능선을 바라보며 봉우리에 걸친 안개를 한없이
바라만 본다.
작전도로를 따라 가면서 윤희씨와 지나씨는 벌써 다음 산행을 이야기한다.
정말이지 .. 그녀들은 워킹에는 베테랑 급이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천일씨가 장태현씨와 연락하여 우천으로 삼정리로 내려왔다고 연락한 후 차량 지원을 부탁한다.
▶ 삼정리 마을에 도착...
삼정리 마을에 도착한다.(4;00)
종성씨가 봉고차를 부른다. 버스 기다리기보다 차를 부르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나는 가만히 있는다.
담뱃값으로(?) 2만원 주고 뱀사골주차장에 도착.
차량 한 대를 회수하고는 산내에서 장태현씨가 천일씨 봉고차를
가지고 와서 합류한다.
▶ 아쉬운 작별 ... 그러나 팔공산으로
인월의 중국음식점에서 점심을 맛나게 먹고 가조 온천에서 온천
후 종성씨팀과 헤어진다.
헤어지기 전에 함께 손을 모아 " 나는 해내었다 .. 우리는 해 내었다.. 우리는 하나다.. 화이팅 " 라는 구호를 외치고 다음에 만나기를 약속하고 헤어진다.
이제는 우리 산악회 팀만으로 대구에 도착하여 우리의 아지트인
청기와 갈비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수영씨도 달려왔다.
아쉬움을 달래면서 이야기 나누다가 .... 팔공산으로 가자고 한다.
오케이~~~ 가자 ... 팔공산으로.... 나머지 일정도 남아있으니 거기서 다 보내자......
*** 8월 5일(토)
▶ 팔공산에서.... 다시 만남
아침을 먹고는 팔공산 산행을 한다.
지나씨와 나는 텐트에 남고 나머지는 산행에 나섰다.
산행 도중 송득호님을 만나 함께 오고있다는 교신을 받았다.
송득호님이 오시고 여기서 동동주 한잔에 또 하나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우리들의 지리산 산행 얘기를 하니 송득호님도 옛 기억을 되살리는 듯 웃으시며 .... 격려금까지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녁에 종성씨팀이 왔다.(한 분은 불참.. 애석하게도 하산하던 날
친척 분이 喪 당하셔서...)
멋진 고기 숯불파티에 지리산에서 이틀동안 있었던 얘기를 한참
재밌게 나눈다.
각자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모두들 아쉬웠다고 한다. 비만 안 왔어도 좋았을 텐데...
그리고 " 우리는 하나 " 라는 데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공주님의 얘기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ㅋㅋㅋ.... 내용은 밝히지 않으렵니다)
모두들 한 마디 한 마디에 내 눈가에는 눈물이 글썽거린다. 보는
이는 없었겠지... 밤이라 안 보이지...
마지막 내 차례다... 많은 얘기를 한 것 같았는데.....
" 무능하고 부덕한 탓에 지리산 종주도 못하고 ....
그나마 대장이라고 잘 따라 주셔서 고맙다고...
우리는 하나라는 동료애로....
이로소 이번 여름휴가 지리산 산행은 여기서 마칩니다 " ........짝짝짝 ~!!!
*** 8월 6일(일)
▶ 집으로...
김종성 회장님이 우리 소식을 전달받고 우두산 산행을 미루고 팔공산 산행하는 길에 잠시 우리 캠프에 격려차 최타현 이사님, 배태호 운영부장님이 오셨다.
이번 지리산 산행에 많은 분이 격려해 주셨고 걱정해 주신데 대해
다시 한번 더 감사함을 전합니다.
최종 정리를 마치고 집으로.......
*** 산행기를 마치며....
아~~~ 이제야 산행기를 다 쓰게 되었구나...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 때 그 상황....
총각샘에서 야영하기로 할 때의 걱정과 두려움... 지금도 아찔하기만 하다.
히히히히.... 공주님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
함께 간 종성씨 외 팀 몇 명은 작년인가 ? .... 한 번 봤었는데....
그때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 힘은 별로 안 들었던 것 같은데... 참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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