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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항 들어설 때 눈에 들어온 대흑산도는 평범했다. 섬 전체가 온통 산으로 이루어졌고, 해안선도 독특하지 않았다. 그런데 순환도로를 따르는 사이 뜻밖의 풍광에 계속 이어졌다. 바닷가 산봉에 올라서자 절벽 아래 짙푸른 바다가 빨아들일 듯 강렬한 빛을 띠었고, 도로 따라 한 굽이 돌면 시커먼 바위 벼랑 아래 검푸른 파도가 가슴 섬뜩케 했다. 그리고 또 한 굽이 돌면 꿈속에서 본 고향 같은 작은 포구마을이 나타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흑산도는 신비로운 자연과 순박한 인간이 조화를 이룬 섬이었다.
대흑산도 1박2일 투어
절경과 유적지 답사 이어지는 일주도로 관광
고속철을 타니 목포 가는 일은 역시 빨라졌다. 5시간 이상 걸리던 것이 3시간30분 이내로 1시간30분 이상 단축된 것이다. 그렇지만 대흑산도(大黑山島)로 들어가는 바닷길은 역시 녹록치 않았다. 1시간 가까이 마치 고속철을 타고 달리는 듯 편안할 만큼 잔잔했지만, '무슨 바다가 이래' 하며 마음속으로 얕잡아보는 순간 돌변했다. 도초도와 비금도를 잇는 다리를 빠져나가 난바다로 들어서는 순간 큰 파도가 일면서 정신을 쑥 빼놓고 속을 뒤집어놓았다. 어린아이들은 배가 파도를 탈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하지만 배멀미에 약한 나는 죽을 맛이다.
이렇게 한 시간쯤 몸을 비비꼰 상태로 있다 오전 10시경 대흑산도 예리(曳里)항에 도착했으니 멀쩡할 리 만무. 앞으로도 30분은 더 가야 하는 홍도가 목표인데 상태가 비슷한 사람들은 불편한 자세로 앉아 "아직 얼마나 더 가야 하냐?"며 울상을 짓는다. 몇몇 사람은 홍도를 포기하고 흑산도에 주저앉고 말았다.
민박집에 방을 잡아놓고도 한동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다 몸을 추스르고 지프 투어에 나섰다. 흑산도의 영업용 택시 10대 대부분이 사륜구동형 지프다. 기사는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부터 흑산도 자랑에 입이 다물어질 줄 모른다.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828년(신라 흥덕왕 2년) 장보고(張保皐)가 완도에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한 이후였고, 바닷물이 푸르다 못해 검어 흑산도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실제 볼거리는 많은데 홍도의 유명세에 가려 빛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죠."
제물로 바친 처녀의 혼이 서려 있다는 초령목(招靈木)에 이어 섬내 15개 당(堂) 중 최고의 당이라는 진리당(鎭里堂)과 어선의 무사고와 풍어를 빌었다는 용왕당(龍王堂)을 지나 상라산(上羅山·226.7m) 8부 능선을 따라 빙 둘러싼 반월성(半月城·상라산성)과 그 뒤편의 피바위에 관한 얘기를 들으며 지그재그 급경사를 올라서는 사이 '흑산도처녀' 노래가 들려온다. 흑산도처녀 노래비가 세워진 고갯마루 공원에서 울려퍼지는 노랫소리였다.
기사의 권유에 따라 고갯마루에서 하차, 계단길을 따라 상라산 정상 전망대에 올랐다. 황사로 먼 바다가 보이지는 않지만, 절벽 아래 짙푸른 바닷물은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 반월성을 향해 오르다 피바위에서 떨어진 해적들이 저 깊은 바다로 빠져들었으리라 생각하니 갑자기 섬뜩해진다.
지프가 상라산을 내려선 다음 절벽을 가로지르며 낸 도로를 따라 가는 사이 포구마을들이 눈에 들어온다. 해안 단애로 둘러싸인 포구는 호숫가 마을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따스하게 느껴진다.
"저기를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뭐가 생각나지 않나요?"
아름다운 해안에는 기암이 있기 마련. 비리(比里) 포구 직전 해안에서 떨어져 툭 튀어나온 기암에 구멍이 뚫려 있다. 한반도 형태의 '구멍바위'라 불리는 구문여다.
잘 포장된 도로를 타고 곤춘리를 지나자 섬내 최고봉인 문암산(門岩山·405m)의 거대한 암벽이 우뚝 솟은 듯하더니 이내 거친 비포장도로로 바뀐다. 차가 덜컹대자 "기껏해야 24km에 불과한 섬 순환도로를 공사하는 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게 말이 되냐?"며 기사가 볼멘소리를 낸다. 순환도로 공사가 시작된 것은 19년 전인 1985년으로 이제 63%밖에 진척되지 않았는데, 3년 뒤에는 꼭 완공시킬 계획이라고 하나 이것 역시 그때 가봐야 알 일이라며 미심쩍어한다.
심리(深里) 마을로 내려서는 사이 섬 최남단의 봉우리들이 보인다. 선유봉(仙遊峰·307m)~옥녀봉(玉女峰·274m) 줄기다. 해안단애 뒤로 기운차게 솟구친 이 봉우리들은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매혹적인 산세로 유혹하지만, 아무리 살펴도 기어들 틈조차 내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이 빼곡히 우거져 있다.
심리~사리를 잇는 비포장도로는 노선버스가 다니지 않는 게 이해가 갈 만큼 험악하다.
지프는 제법 큰 고개를 넘어선 다음에도 한동안 덜컹거리며 내리막길을 달리더니 산골 마을 같은 소사리에 내려놓는다. 소사리는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둘째형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1758-1816)이 15년간 유배생활을 한 곳이다.
1801(순조 1년) 신유사옥(辛酉邪獄)으로 유배당할 때 다산은 강진 다산초당 천일각(天一閣)에서 앞바다를 바라보며 형 손암을 그리워하고, 손암은 사택서당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며 동생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당대의 대학자답게 두 사람 모두 비통함을 잘 견뎌내며 역사에 길이 남는 저서를 냈다. 정약전이 펴낸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유배생활 중 근해의 물고기와 해산물 등 155종을 채집하여 명칭, 형태, 분포, 실태 등을 기록한 책이다.
도로 옆 민가와 밭 뒤 아담한 성당 위에 자리잡은 사택서당은 초가집으로,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지만, 멀리 바다 건너 강진쪽을 바라보며 아우 다산을 그리워했으리라 생각하니 웬지 가슴이 저며온다.
사리를 지나자 길이 더욱 험악해진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사리와 소사리 사이의 도로 구간은 관내버스가 다니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도로 양옆에 산림이 우거지고 산세도 기운이 넘쳐 섬이 아닌 내륙의 깊은 산중에 들어선 느낌이 들 정도다.
소사리로 내려서자 이번에는 학자이자 의병장인 면암 최익현 선생의 친필이 새겨진 지장암(指掌 )이 길가에 보인다. '기봉강산 홍무일월(箕封江山 洪武日月)'이라는 친필이 새겨진 바위 앞에는 뒷날 문하생들이 선생의 고매한 애국정신과 후학양성을 위한 뜻을 후손에게 전달코자 유허비를 세워놓았다.
문암산 산행 대신 관광선 유람으로 마무리
일주도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섬 최고봉인 문암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으리라 기대하고 이튿날 5월7일 오전 7시 소사리행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이른 아침 해무 낀 포구마을은 하나하나 너무도 정겹다. 진도가 멀지 않은 때문인지 동네를 돌아다니는 개들은 언뜻 봐도 진돗개 유사종이다. 마을버스를 바라보는 이 놈들은 우리가 낯선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싫지는 않은지 짖어대지는 않는다.
마을버스 기사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동네 아저씨 같다. 경치 좋은 곳에 닿자 담배 한 대 빼어 물면서 잠시 구경하고 오라 권한다. 샛게 해수욕장에 이르러 고운 모래밭을 밟으며 소사리까지 걷는 편을 택했다. 도로에서 볼 때 바닷물은 모래밭을 조금 남겨놓았을 정도로 많이 차 올라 있었으나 우리들이 차에서 내려 다가서기까지 불과 10분 사이 쑥 빠져버리고 제법 넓고 고운 모래밭이 드러났다.
갯바위에는 따개비가 다닥다닥 덮여 있다. 밟고 지나는 게 미안할 정도로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다. 조심스럽게 갯바위를 가로지르다 제법 긴장케 하는 바위턱을 내려서자 협곡이 나타난다. 밀물 때는 바닥이 물에 잠겨 걸어 들어설 수 없는 협곡이다. 마침 물이 빠져 들어설 수 있었으나 들어설수록 좁아지고 음침해진다. 하지만 협곡 안에서 내다보는 바다 풍광은 색다르다. 협곡 안에 하나의 세상, 바깥에 또 하나의 세상이 벌어져 있었던 것이다.
해안선을 따라 소사리 마을로 접근, 문암산 정상을 향해 올랐건만, 면사무소와 마을 주민이 알려준 외가닥 길은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없는 정상의 군시설물 관리막사에 물자를 올리는 보급용 산길이었고, 산길 양옆은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동백나무로 우거져 있다.
예리행 마을버스를 타고 맥빠진 상태로 민박집에 돌아오자 주인아주머니는 "유람선을 타지 않으면 흑산도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없다"며 바람을 넣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꿩 대신 닭이라는 생각에 오후 1시경 유람선에 올라탄다.
유람선은 섬을 끼고 한 바퀴 돌리라는 예상과 달리 북쪽으로 20여 분 나아가더니 대둔도(大芚島)와 다물도(多物島) 사이의 바다로 들어선다. 가리비 양식장이 많다는 대둔도 가리비마을, 홍어를 가장 먼저 잡았다는 다물도 홍어마을을 바라본 뒤 범마을~칠성동굴~돌고래바위~스님바위~촛대바위~남근석~거북이바위~홍어동굴로 이어지는 해상 절경을 둘러보는 사이 흑산도는 과연 자연미가 넘치는 신비의 섬이란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일주도로를 따르며 해안과 섬산을 바라볼 때도 그랬듯이 대흑산도 북쪽의 섬들 또한 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도 하나 하나 사람이 살고 있거나 혹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따뜻하게 느껴지는 섬들이었다.
해남 두륜산 산행
3개 명봉과 구름다리 거치는 대흥사 원점회귀 산행
오후 4시30분 출발하는 쾌속선을 타고 목포항에 돌아오자마자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 직행버스를 타고 해남으로 향했으나, 두륜산 대흥사행 노선버스가 끊기는 바람에 해남읍에서 하룻밤 묵고 이튿날 아침 일찍 두륜산(頭輪山·703m) 대흥사(大興寺)로 향했다.
바다는 제아무리 잔잔하더라도 마음에 잔잔한 동요를 일으키기 마련이지만 산은 달랐다. 대흥사 들어가는 길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아름드리 거목이 도열하고 그 뒤로 편백나무 빼곡한 숲길은 토요일인데도 시간이 이른 탓인지 길손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아 더욱 호젓하고 정겹다.
해탈문을 지나자 정원처럼 꾸며진 연못과 대흥사 당우들이 한눈에 든다. 그 주위로 짙은 숲이 우거지고, 그 뒤에 빙 둘러 솟은 바위봉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늘에는 구름 밀려온다. 두륜산 정상 가련봉(703m)과 그 양옆으로 노승봉(685m)과 두륜봉(630m)이 잠시 눈에 들어오다 곧 구름에 가려버리고 만다.
대흥사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날씨가 심상찮아진다. 오후에 많으면 100mm의 비가 내린다더니 그게 맞아떨어지려는 것일까, 두륜봉과 가련봉 위로 구름이 날아다니고 숲을 파고드는 바람소리가 간담을 서늘케할 정도다.
엊저녁 갑작스레 산행을 약속한 목포 산악인 임연택씨는 아들 지웅군(중 1년)과 유동석군(초교 4년), 그리고 애견 진돌이까지 데리고 새벽녘 대흥사 부근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 합류했다. 대흥사를 출발해 갈림목(북암 0.98km, 일지암 0.32km, 대웅전 0.38km)에서 북암길로 들어선다. 영리한 진돌이는 산에만 오면 신이 난다는 주인의 말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재롱을 피우다가도 주인이 멈춰 서기만 하면 곧바로 눈치 채고 다가간다.
대흥사를 지나 약 40분만에 도착한 북암(北彌勒庵)은 첫인상은 이렇다할 게 없다. 그러나 요사채 위에 올라앉은 용화전(龍華殿) 문을 여는 순간 부처가 환한 미소로 반겨주고, 그 미소가 맞은편 산까지 뻗쳤는지 짙은 구름이 벗겨지면서 고계봉 일원이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 용화전은 자연암벽에 새긴 마애여래좌상(보물 제48호)을 중심으로 세운 법당이다. 용화전 양옆 능선 끄트머리에는 삼층석탑 2기가 올라앉아 있고, 맞은편에 혈망봉~향로봉 능선이 적당한 높이로 솟아 더욱 안정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북암을 지나면서 옷깃을 파고들던 바람이 널찍한 오심재에 이르자 광풍으로 바뀐다. 시커먼 구름이 오락가락하는 고계봉은 흡사 마왕과도 같은 모습이다. 우리가 오를 노승봉도 만만찮다. 밑은 짙은 숲, 그 위에 기암 노승봉 능허대가 얹혀 있다.
"해남읍내 주민들이 매일 아침 떠다 마시는 물이랍니다. 식당에 가도 '이 물은 오심재 약수물'이라 적어놓을 만큼 좋은 약수니까 실컷 드세요."
늦깎이 대학생으로 중국에 어학연수 중 잠시 귀국했다 두륜산 안내에 나선 정지승씨(해남 땅끝산악회 회원)는 "도산 윤선도도 아침마다 찾았던 약수터"라며 침이 마르도록 오심재약수를 자랑한다.
노승봉 오르막은 발자국소리, 숨소리, 새소리만 들린다. 가장 원초적인 자연의 소리가 숲의 정적을 살짝 살짝 건드릴 뿐이다.
"아빠! 그냥 놔두면 어떡해요."
"스스로 알아서 해야 돼, 오를 수 없으면 알아서 내려가 있을 거고-."
내내 앞장서던 진돌이가 바위골과 구멍바위로 이어진 노승봉 등로 아래서 안절부절한다. 바위 중간 중간 턱이라도 있으면 건너뛰면서 오를 텐데 그렇지 못하니 크랙에 다리를 끼워넣고 잡아당길 수도 없는 개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런데도 임연택씨는 못 본 체하며 앞장서 오르고, 아이들은 "그냥 가면 어떡하느냐?"며 울상을 짓는다.
이렇게 한나절이지만 진돌이뿐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구멍바위를 빠져나가고, 쇠사슬과 쇠발판이 이어지는 바윗길을 오르자 널찍한 노승봉 능허대다. 그 뒤로는 가련봉이 아름답게 솟아 있다. 안개가 오락가락할 때마다 가련봉은 연꽃 몇 송이가 줄지어 피어난 듯 신비스런 모습으로 가슴 설레게 한다. 하지만 고흥 앞바다까지 바라보일 만큼 강진쪽 바다 조망이 일품이라는 정지승씨의 말에 아쉽기만 하다.
바윗길 따라 암봉 두어 개를 가로지른 다음 가련봉(703m) 정상에 올라서자 이제 안개구름이 우리를 감싼다. 우리들마저 신선으로 만들 참인가. 바로 지나온 노승봉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람과 구름이 몰아친다. 그런데도 바위틈에 자라는 철쭉은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환하게 꽃을 피우며 도도하게 자라고 있다.
월간山 취재팀과 여러 차례 동행한 바 있는 임연택씨는 정정현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는데, 몇 달만에 산행에 동참한 임학권씨는 그게 마음대로 안 되자 "모델 생활을 두어 달 쉬었더니 영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며 함성을 지른다. 그러더니 "참, 사운드가 없는 책이지" 하며 일행에게 웃음을 준다.
바위에 간간이 박힌 쇠발판을 밟고 쇠사슬에 의지해가며 가련봉을 내려선 다음 너덜을 지나자 오심재 못지않게 넓은 만일재로 내려선다. 여기서 오른쪽(서쪽) 길을 따르면 만일암터를 거쳐 대흥사로 내려서고, 왼쪽 길을 따르면 북일면 흥촌리 삼성 마을이 나온다.
초의가 차문화 다시 일으킨 일지암 거쳐 하산
날씨는 더욱 고약해지지만 그렇다고 두륜산 명물을 안 보고 내려설 수는 없는 일. 두륜봉을 마주보고 왼쪽 사면을 가로지르며 오른다. 드디어 명물이 나타났다. 아치형의 자연 다리인 '구름다리'다. 밑에서 보면 그저 그렇지만 구멍을 빠져나가 위에서 내려다보면 영락없는 아치형 문이다. 기분에는 툭 치면 무너질 것 같지만 사람 몇 명이 올라서도 미동도 하지 않는 바위다.
숲길을 빠져나가 두륜봉 정상에 올라서자 빗방울이 후드득거린다. 이제 정오를 조금 넘어선 시각이지만 오늘은 어서 산을 내려가라는 신호다. 숲 짙게 우거진 산길을 따르노라니 느닷없이 콘크리트 뒤섞인 찻길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100m쯤 오르자 진불암 경내로 들어선다. 자그마하지만 산사다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암자다.
"자, 이제부터는 내가 앞장서죠."
임연택씨는 정지승씨에게 길잡이 바통을 넘겨받더니 희미한 산길을 따라 학승들의 거처인 토굴을 지나 일지암 위쪽 능선으로 접어든다.
일지암(一枝庵)은 대흥사의 13대 종사인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가 40여 년간 머물면서 한국의 다경(茶經)이라 불리는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집필하고, 다선일여(茶禪一如)의 사상을 확립, 조선 후기 쇠퇴해 가던 차문화를 중흥시킨 차의 성지로 불리는 암자다. 또한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당대 최고의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일 날이 없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들은 여기서 차를 나누며 실학을 논하고 예술을 논하고 인생을 얘기했을 것이다.
과연 그렇게 마음을 열어놓고 얘기를 나눌 만한 산세를 지니고 있었다. 앞마당 아래 사면에는 차나무가 싱그럽게 자라고 있고, 혈망봉 능선 사이의 계곡은 마치 바다처럼 넓게 느껴진다. 초의선사의 맥을 잇는 대흥사 승려들인지 모르겠으나 요사채에 앉아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선사와 그를 찾아 드나들었을 시인 묵객들을 떠오르게 한다.
아이들은 일지암을 출발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 내려간다. 당연히 진돌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행이 대흥사 연못가에 다가갔을 때 지웅과 동석군은 풀이 죽어 있었다. 진돌이의 모습을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던 것.
이렇게 진돌이와의 인연이 끝나는가 했는데, 해남읍내 부근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헤어진 다음 목포를 향해 가고 있는데 임연택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진돌이가 북암에 있지 않을까 올랐으나 보이지 않아 위로 더 올라갔더니 오전에 헤어진 지점에서 진돌이가 비에 흠뻑 젖은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는 물론 표정을 관리했겠지만, 임연택씨의 목소리는 기쁨에 넘쳐 있었다.
여행 & 산행 길잡이
대흑산도를 들어가려면 목포에서 쾌속선을 이용해야한다. 서울을 기점으로 삼을 때 당일 출발해 첫배(07:50)를 타기는 어렵다. 따라서 오후 1시20분이나 2시 출항하는 쾌속선을 타는 식으로 계획을 짜야한다. 목포역에서 목포 여객선터미널까지는 택시로 기본요금 거리다.
첫날 흑산도에 들어서면 오후 3시20분이나 4시가 넘어선다. 그러면 숙소부터 잡아놓고 택시로 섬 일주 관광을 하도록 한다. 24km 섬 일주도로를 따라 한 바퀴 도는 데 대략 2시간30분 걸린다.
일주하기에 너무 늦었다 싶으면 섬을 조망할 수 있는 상라산 전망대를 다녀온 다음 예리항 주변의 생선, 홍어, 전복, 가리비를 취급하는 식당가를 둘러보는 것도 좋은 구경거리다. 길가 횟집마다 흑산도산 홍어라고 내놓고 있지만 가격이나 크기로 볼 때 그리 믿을 만하지 못하다. 섬 주변 바다에 전복과 가리비 양식장이 많아 비교적 싼 값에 고급 어패류를 맛볼 수 있다.
둘째 날은 날씨가 좋다면 일출시각에 맞춰 상라봉 전망대에 올라 서해 일출을 바라보도록 한다. 물론 택시를 예약해 놓아야 가능하다. 그리고 첫날 섬 일주관광을 하지 못했으면 오전에 일주관광을 하고, 점심 식사 후 오후 1시 출항하는 관광유람선을 타도록 한다.
이후 오후 4시30분 쾌속선을 타고 목포로 돌아오면 6시30분쯤 되고, 저녁식사 후 서울 방향 고속철 막차(20:40)를 타면 그 날로 귀가가 가능하다.
두륜산 산행까지 계획했다면 해남읍에서 하룻밤 묵고, 이튿날 일찍 대흥사로 이동해 대흥사 사찰 탐방과 두륜산 산행에 나서도록 한다. 취재팀이 답사한 대흥사~북암~가련봉~두륜봉~진불암~일지암~대흥사 산행은 4시간이면 충분하지만, 노선버스 종점~대흥사 왕복과 사찰탐방 시간을 더하면 6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서울에서 첫 열차(06:35)를 탄다면 산행을 즐긴 다음 막차를 타고 당일로 귀가할 수 있다.
대흥사 입장료 어른 2,5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교통(지역번호 061)
목포행 고속철 시각
서울 목포=06:35(용산역 발), 10:35(용산), 12:35(서울), 14:35(용산), 16:35(서울), 18:35(용산), 20:35(서울). 서울역 발은 용산역도 정차. 서울역 발 3시간3분, 용산역 발 2시간58분 소요. 요금 41,400원. 철도 노선·예약 안내전화 1544-7788.
목포 서울=6:40(용산역 착), 08:40(서울), 10:40(용산), 14:40(용산), 16:40(서울), 18:40(용산), 20:40(서울).
대흑산도행 교통
목포 대흑산도=대흑산도 경유 홍도행 여객선이 1일 3회(07:50, 13:20, 14:00) 운항. 1시간40분~1시간50분 소요. 요금 24,800원. 왕복 48,100원. 홍도는 편도 30,250원, 왕복 59,000원.
대흑산도 목포=09:50, 11:00(10:30 홍도 출항), 16:30(16:00 홍도 출항) 출항. 편도 요금 23,300원.
여객선 문의 및 예약 : 목포 여객터미널 243-0116, 동양고속(골드스타, 뉴골드스타) 243-2111~4, 남해고속(남해퀸, 남해스타) 244-9915~6.
대흑산도 내 마을버스=소사리행은 1일 2회(07:00, 11:00), 사리행은 1일 3회(09:00, 11:00, 16:00) 운행. 상라봉행은 수시 운행한다. 요금 소사리·상라봉 1,500원, 사리 2,700원. 흑산교통 전화 275-8510.
대흑산도 일주도로 관광=마을버스가 사리~신사리 구간을 다니지 않기에 지프를 이용해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6명까지 탈 수 있으며, 비수기에는 60,000원, 성수기에는 80,000원선이다. 동양택시 275-9744. 개인택시(이상수) 011-644-9776. 단, 오전 7시 첫 마을버스를 타고 신사리까지 가고 이후 사리까지 걸어간 다음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저렴한 비용에 섬 일주 관광을 할 수 있다.
해상관광유람선=1일 3회(08:00, 13:00, 17:00) 운항한다. 대흑산도 북쪽 대둔도와 다물도 일원을 약 1시간40분 동안 운항. 요금 1인당 15,000원. 전화 275-9115, 011-633-9115.
대흑산도 숙식
예리항 부근에는 횟집, 중화요리집, 한정식집 등 식당과, 여관 민박집 등 숙박업소가 많다. 예리수협숙소타운 275-6117(8), 여로장여관 275-9236, 서해민박 275-9189, 우리민박 275-9691.
서해민박을 비롯한 민박집들은 1인당 5,000원씩에 제법 맛깔스런 백반을 차려낸다. 숙박비는 5인실 3만원, 10인실 4만원 정도로 저렴하지만, 휴일 전이나 성수기에는 예약해야 이용이 가능하다.
두륜산 교통
목포 해남=공용버스정류장에서 약 40분 간격(06:20~21:00)으로 직행버스 운행. 1시간 소요, 요금 3,900원. 1544-6886. 해남교통은 10명 이상일 경우 대흥사까지 바로 연결해주기도 한다. 해남교통 전화 533-8826.
해남 대흥사=시외버스터미널에서 30분 간격(06:50~19:40)으로 해남교통 완행버스가 다닌다. 요금 750원.
2003년 2월14일 개통한 두륜산 케이블카는 1.5km(처진 상태 1.6km)로 고계봉 북릉으로 올라간다. 이후 남쪽으로 500m쯤 올라가면 고계봉 정상으로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고계봉 정상에서 오심재로 내려설 수 있으나 험한 내리막길이다. 약 20분 간격 운행. 이용료(왕복) 대인 6,800원, 소인(4세~초등학생) 4,000원, 단체 6,500원(30명 이상). 편도 4,000원. 만 3세 이하 무료. 문의 전화 061-534-8992. 홈페이지 www.skycablecar.co.kr
두륜산 숙식
대흥사 진입로변의 유선장은 300여 년간 대흥사 객사로 이용되다 70여 년 전 개인에게 넘어가면서 여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유서 깊은 객사다. 숙박 손님에 한해 1인당 저녁 10,000원, 아침 7,000원씩에 정식을 차려낸다. 2인실 30,000원, 4~6인실 60,000원, 12인실 120,000원. 전화 061-534-2959, 3692.
대흥사 집단시설지구에 숙박업소가 여럿 있다. 남흥각 534-5222, 산장모텔 535-3131, 두륜각 535-0080, 그린장 533-3344. 해남읍내에는 새로 지은 장급 여관이 여럿 있다. 2인 1실 30,000원선.
대흥사 입구 집단시설지구 내의 전주식당 표고전골은 해남군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꼽힌다. 야채와 쇠고기 외에 해산물도 들어가는 표고전골은 1인분 10,000원, 산채정식은 4인 기준 한 상에 50,000원. 전화 532-7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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