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부(冶父)스님은 속성은 추(秋)씨요 이름은 삼(三)이다. 생몰연대가 뚜렷하지 않다. 다만 송나라(1127-1130)사람으로 군의 집방직(執方職)에 있다가 재동(齊東)의 도겸(道謙)선사에게 도천(道川)이라는 호를 받았고 정인게성(淨因繼成)의 인가를 얻어 임제(臨濟)의 6세 손이 된다. 다만 야부(야보)라는 호에 대해선 정확한 기록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야부라는 스님의 게송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게송(偈頌)이 한 경지를 뛰어넘은 진정 중국선의 극치를 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금강경 오가해’(金剛經五家解)의 “밥이 오면 밥 먹고, 잠 오면 잠잔다.”(飯來開口睡來合眼)은 나의 머리에 충격에 가까운 청량미를 주었다. 그것은 한 경지를 뛰어넘어 다시 순 경지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마치 공부를 하여 과거에 합격하고 벼슬을 한 후 마지막에 금의환향하는 본능적 삶의 귀결점을 찾은 것과 같았다. 그는 특히 금강경을 통해 자기의 견해를 송으로 후학들에게 많이 알려졌는데, 간결하면서도 한번에 내리치는 듯한 그의 활구(活句)는 후학들에게 큰 안락과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까닭에 나는 야부도천(冶父道川)스님의 송을 다시 음미해보고자 여기 발췌하여 싣는다.
마하대법왕 摩訶大法王 무단역무장 無短亦無長 본래비조백 本來非?白 수처현청황 隨處現靑黃
크고 크신 대법왕이시여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음이로다. 본래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지만 곳에 따라 청황으로 나타나도다.
화발간조염 花發看朝艶 임조축만상 林凋逐晩霜 질뇌하태격 疾雷何太擊 신전역비광 迅電亦非光
꽃피어 아침의 고운 모습 보이고 나무들 낙엽 지니 늦서리 내리도다. 천둥은 어찌 그리 크게 치는 가 빠른 번개도 역시 빛이 아니로다.
범성원난측 凡聖元難測 용천기도량 龍天豈度量 고금인불식 古今人不識 권립호금강 權立號金剛
범부, 성인 원래 측량키 어려워 천용 팔부 인들 어찌 헤아리리오. 예나 지금이나 아는 사람 없어서 방편으로 금강이라 이름 하네.
옳은 법이다 그른 법이다 하면 이는 법이 아니다. 죽은 물에 숨은 용이 활발하도다. 옳은 마음 그릇 마음이라 하면 이것은 마음이 아니다. 허공은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렇다. 다만 이것이니라. ?아도 찾지 못함이로다. 한 없이 펼쳐져 있는 구름 바람이 다 거두어들이고 둥근달이 고고히 천심을 비추네
노파에 적삼을 빌려 입고 노파에 문전에서 절을 하니 예의는 충분한 것 같아 대 그림자를 쓸어도 움직임은 하나도 없어 달이 연못을 뚫었지만 흔적조차 없구나.
야보 도천 ( 冶父 道川 ) (1127 ~1130)
宋나라 사람으로 생몰연대는 확실치 않으며 , 속성은 추秋 씨 이름은 삼三 이다,
軍의 執方職에 있다가 齊東의 道謙禪師에게 法化되어 道川이라는 호를 받았고
淨因斷成의 인가를 얻어 臨濟의; 6世孫이 되었다. 그리고 "야부" 란 말은 사람의 이름일 경우 " 야보 "라고 발음 해야 옳다 < 통상 " 야부 " 라 하는 것은 이렇게 된 사연임>
冶父스님은 속성은 추(秋)씨요 이름은 삼(三)이다 생몰연대가 뚜렷하지 않다 다만 송나라(1127-1130)사람으로 군의 집방직(執方職)에 있다가 재동(齊東)의 도겸(道謙)선사에게 도천(道川)이라는 호를 받았고 정인게성(淨因繼成)의 인가를 얻어 임제(臨濟)의 6세 손이 된다 그는 특히 금강경을 통해 자기의 견해를 송으로 후학들에게 많이 알려졌는데 간결하면서도 한번에 내리치는 듯한 그의 활구(活句)가 백미이다.
야부는 군인이었다 궁수로 근무했다 한다 출신은 곤산의 적씨(狄氏)였고 이름이 적삼(狄三)이었다 여기 삼(三)은 대가족 집안의 세 번째 아들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경덕(景德)의 도겸선사를 찾아가 법(法)을 묻자 예의 그 조주 무자 화두를 들려주었다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알겠느냐?” 새벽부터 밤까지 직무도 보지 않고 화두를 안고 낑낑대는 것을 보다못한 상관이 화가 뻗쳐 곤장을 쳤는데 볼기짝을 맞는 순간에 적삼은 홀연히 깨쳤다
이에 도겸이 그의 이름을 고쳐주었다. “이제까지 너는 적삼(狄三)이었지만, 지금부터는 도천(道川)이다. 지금부터 등뼈를 곧추세워 정진한다면 그 도(道)가 시냇물(川)처럼 불어날 것이지만, 조금이라도 게으르고 방심(放心)하면 한심한 인간으로 다시 떨어질 것이다.”
그가 남긴 작품은 이 <금강경> 송이 유일하다 <오등회원>에는 이 책이 건염(建炎) 초 1127년에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고 적혀 있다 그의 나머지 삶은 베일에 싸여있다
冶父道川 (야부도천)
得樹攀枝未足奇(득수반지미족기) 나뭇가지 잡음은 족히 기이한 일이 아니니 懸崖撒手丈夫兒(현애살수장부아)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장부로다. 水寒夜冷魚難覓(수한야냉어난멱) 물은 차고 밤도 싸늘하여 고기 찾기 어려우니 留得空船載月歸(유득옹반재월귀) 빈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 오도다.
冶父道川
多年石馬放毫光 여러 해 동안 돌말이 빛을 토하니 鐵牛哮吼入長江 쇠소가 울면서 장강으로 들어간다. 虛空一喝無?跡 허공 향한 저 고함소리 자취도 없더니 不覺潛身北斗藏 어느 사이 몸을 숨겨 북두에 들었는고.
冶父道川
千尺絲綸直下垂 천 척의 낚싯줄을 곧게 드리우니 一波재(겨우 재?제?)動萬波隨 한 물결 일어나매 많은 물결 따라 인다. 夜靜水寒魚不食 밤은 고요하고 물을 차서 고기는 물지 않고 滿船空載月明歸 배에 허공만 가득 싣고 밝은 달 속에 돌아온다.
이 시의 원작자는 釋德誠이라는 당나라의 고승이라 함.
● 冶父道川
山堂靜夜坐無言 산 집 고요한 밤, 말없이 앉았으니 寂寂寥寥本自然 고요하고 고요해서 본래 이러하구나. 何事西風動林野 무슨 일로 서풍은 잠든 숲 깨워 一聲寒雁淚長天 한 소리 찬 기러기 장천을 울며 가는고.
● 冶父道川
法相非法相 법상과 비법상이여 開拳復成掌 주먹을 펴니 다시 손바닥이로다. 浮雲散碧空 뜬구름이 푸른 하늘에서 흩어지니 萬里天一樣 만리의 하늘이 온통 푸른 하늘이더라.
冶父道川
蚌腹隱明珠 조개 속에 진주가 들어 있듯 石中藏碧玉 돌 속에 옥이 감추어 있듯 有麝自然香 사향을 지니면 저절로 향기로운데 何必當風立 하필이면 바람 앞에 서야 하랴.
冶父道川
若要天下行 만약 천하에서 행하고자 할진대 無過一藝强 한가지 재주를 뛰어나게 하라
冶父道川
三佛形儀總不眞 법,보, 화신의 형상과 거동은 다 진실이 아니고 眼中瞳子面前人 눈 가운데 동자는 그대 앞의 사람이라. 若能信得家中寶 만약 능히 집에 있는 보배를 믿기만 하면 啼鳥山花一樣春 새 울고 꽃 피는 것이 한결같은 봄이로구나.
야부(冶父)스님은 속성은 추(秋)씨요 이름은 삼(三)이다. 생몰연대가 뚜렷하지 않다. 다만 송나라(1127-1130)사람으로 군의 집방직(執方職)에 있다가 재동(齊東)의 도겸(道謙)선사에게 도천(道川)이라는 호를 받았고 정인게성(淨因繼成)의 인가를 얻어 임제(臨濟)의 6세 손이 된다. 다만 야부(야보)라는 호에 대해선 정확한 기록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야부라는 스님의 게송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게송(偈頌)이 한 경지를 뛰어넘은 진정 중국선의 극치를 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금강경 오가해’(金剛經五家解)의 “밥이 오면 밥 먹고, 잠 오면 잠잔다.”(飯來開口睡來合眼)은 나의 머리에 충격에 가까운 청량미를 주었다. 그것은 한 경지를 뛰어넘어 다시 순 경지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마치 공부를 하여 과거에 합격하고 벼슬을 한 후 마지막에 금의환향하는 본능적 삶의 귀결점을 찾은 것과 같았다. 그는 특히 금강경을 통해 자기의 견해를 송으로 후학들에게 많이 알려졌는데, 간결하면서도 한번에 내리치는 듯한 그의 활구(活句)는 후학들에게 큰 안락과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까닭에 나는 야부도천(冶父道川)스님의 송을 다시 음미해보고자 여기 발췌하여 싣는다.
마하대법왕 摩訶大法王 무단역무장 無短亦無長 본래비조백 本來非?白 수처현청황 隨處現靑黃
크고 크신 대법왕이시여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음이로다. 본래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지만 곳에 따라 청황으로 나타나도다.
화발간조염 花發看朝艶 임조축만상 林凋逐晩霜 질뇌하태격 疾雷何太擊 신전역비광 迅電亦非光
꽃피어 아침의 고운 모습 보이고 나무들 낙엽 지니 늦서리 내리도다. 천둥은 어찌 그리 크게 치는 가 빠른 번개도 역시 빛이 아니로다.
범성원난측 凡聖元難測 용천기도량 龍天豈度量 고금인불식 古今人不識 권립호금강 權立號金剛
범부, 성인 원래 측량키 어려워 천용 팔부 인들 어찌 헤아리리오. 예나 지금이나 아는 사람 없어서 방편으로 금강이라 이름 하네.
옳은 법이다 그른 법이다 하면 이는 법이 아니다. 죽은 물에 숨은 용이 활발하도다. 옳은 마음 그릇 마음이라 하면 이것은 마음이 아니다. 허공은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렇다. 다만 이것이니라. ?아도 찾지 못함이로다. 한 없이 펼쳐져 있는 구름 바람이 다 거두어들이고 둥근달이 고고히 천심을 비추네
노파에 적삼을 빌려 입고 노파에 문전에서 절을 하니 예의는 충분한 것 같아 대 그림자를 쓸어도 움직임은 하나도 없어 달이 연못을 뚫었지만 흔적조차 없구나.
야보 도천 ( 冶父 道川 ) (1127 ~1130)
宋나라 사람으로 생몰연대는 확실치 않으며 , 속성은 추秋 씨 이름은 삼三 이다,
軍의 執方職에 있다가 齊東의 道謙禪師에게 法化되어 道川이라는 호를 받았고
淨因斷成의 인가를 얻어 臨濟의; 6世孫이 되었다. 그리고 "야부" 란 말은 사람의 이름일 경우 " 야보 "라고 발음 해야 옳다 < 통상 " 야부 " 라 하는 것은 이렇게 된 사연임>
冶父스님은 속성은 추(秋)씨요 이름은 삼(三)이다 생몰연대가 뚜렷하지 않다 다만 송나라(1127-1130)사람으로 군의 집방직(執方職)에 있다가 재동(齊東)의 도겸(道謙)선사에게 도천(道川)이라는 호를 받았고 정인게성(淨因繼成)의 인가를 얻어 임제(臨濟)의 6세 손이 된다 그는 특히 금강경을 통해 자기의 견해를 송으로 후학들에게 많이 알려졌는데 간결하면서도 한번에 내리치는 듯한 그의 활구(活句)가 백미이다.
야부는 군인이었다 궁수로 근무했다 한다 출신은 곤산의 적씨(狄氏)였고 이름이 적삼(狄三)이었다 여기 삼(三)은 대가족 집안의 세 번째 아들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경덕(景德)의 도겸선사를 찾아가 법(法)을 묻자 예의 그 조주 무자 화두를 들려주었다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알겠느냐?” 새벽부터 밤까지 직무도 보지 않고 화두를 안고 낑낑대는 것을 보다못한 상관이 화가 뻗쳐 곤장을 쳤는데 볼기짝을 맞는 순간에 적삼은 홀연히 깨쳤다
이에 도겸이 그의 이름을 고쳐주었다. “이제까지 너는 적삼(狄三)이었지만, 지금부터는 도천(道川)이다. 지금부터 등뼈를 곧추세워 정진한다면 그 도(道)가 시냇물(川)처럼 불어날 것이지만, 조금이라도 게으르고 방심(放心)하면 한심한 인간으로 다시 떨어질 것이다.”
그가 남긴 작품은 이 <금강경> 송이 유일하다 <오등회원>에는 이 책이 건염(建炎) 초 1127년에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고 적혀 있다 그의 나머지 삶은 베일에 싸여있다
冶父道川 (야부도천)
得樹攀枝未足奇(득수반지미족기) 나뭇가지 잡음은 족히 기이한 일이 아니니 懸崖撒手丈夫兒(현애살수장부아)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장부로다. 水寒夜冷魚難覓(수한야냉어난멱) 물은 차고 밤도 싸늘하여 고기 찾기 어려우니 留得空船載月歸(유득옹반재월귀) 빈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 오도다.
冶父道川
多年石馬放毫光 여러 해 동안 돌말이 빛을 토하니 鐵牛哮吼入長江 쇠소가 울면서 장강으로 들어간다. 虛空一喝無?跡 허공 향한 저 고함소리 자취도 없더니 不覺潛身北斗藏 어느 사이 몸을 숨겨 북두에 들었는고.
冶父道川
千尺絲綸直下垂 천 척의 낚싯줄을 곧게 드리우니 一波재(겨우 재?제?)動萬波隨 한 물결 일어나매 많은 물결 따라 인다. 夜靜水寒魚不食 밤은 고요하고 물을 차서 고기는 물지 않고 滿船空載月明歸 배에 허공만 가득 싣고 밝은 달 속에 돌아온다.
이 시의 원작자는 釋德誠이라는 당나라의 고승이라 함.
● 冶父道川
山堂靜夜坐無言 산 집 고요한 밤, 말없이 앉았으니 寂寂寥寥本自然 고요하고 고요해서 본래 이러하구나. 何事西風動林野 무슨 일로 서풍은 잠든 숲 깨워 一聲寒雁淚長天 한 소리 찬 기러기 장천을 울며 가는고.
● 冶父道川
法相非法相 법상과 비법상이여 開拳復成掌 주먹을 펴니 다시 손바닥이로다. 浮雲散碧空 뜬구름이 푸른 하늘에서 흩어지니 萬里天一樣 만리의 하늘이 온통 푸른 하늘이더라.
冶父道川
蚌腹隱明珠 조개 속에 진주가 들어 있듯 石中藏碧玉 돌 속에 옥이 감추어 있듯 有麝自然香 사향을 지니면 저절로 향기로운데 何必當風立 하필이면 바람 앞에 서야 하랴.
冶父道川
若要天下行 만약 천하에서 행하고자 할진대 無過一藝强 한가지 재주를 뛰어나게 하라
冶父道川
三佛形儀總不眞 법,보, 화신의 형상과 거동은 다 진실이 아니고 眼中瞳子面前人 눈 가운데 동자는 그대 앞의 사람이라. 若能信得家中寶 만약 능히 집에 있는 보배를 믿기만 하면 啼鳥山花一樣春 새 울고 꽃 피는 것이 한결같은 봄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