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60대 실패한 구도자로서 주소지는 공주시 마곡사 인근 신풍면으로 되어 있으나,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해발 600고지 산속에서 주로 생활하면서 지난 10여년 라마나 마하리쉬를
공부해왔었습니다.
저의 이야기들은 진실한 열정과 그 반대의 참담한 실패의 세월이었기에 ‘타산지석’의 의미는
있으리라고 생각되어서 여기 정리해보았습니다.
2015년 추석이 지난 후, 병풍처럼 집채 같은 바위들이 늘어선 이 곳 산속에 텐트를 쳐놓고
숙식을 하면서 11월 중순까지 매일 하루종일 한 집채바위 밑 틈새의 흙과 돌들을 캐낸 다음
판넬 창고를 지어서 12월부터 생활하면서 라마나 마하리쉬의 ‘대담, 저작전집’과 대행스님의
‘한마음 요전’ 3권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3권은 2003년 당시 서울에서 K통신사에 근무하던 시절, 1992년~1999년 동안 다녔었던
‘오쇼 명상모임’ 주변에서 들었던 ‘대행스님, 라마나 마하리쉬’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으로
교보문고에 들려서 구입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에 ‘불교 한자용어 및 상용되지 않는 한자용어 및 명상 관련 인도용어’들에
대한 지식부족 등 여러 가지 문제점 때문에, 스트레스 가득한 직장인으로서는 도저히 진도를
나갈 수 없었기에 그 3권에 대한 읽기를 포기하고 처박아 두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곳 산속생활 시작과 함께 맨 처음 가졌던 저의 계획은, 3년 정도 라마나 마하리쉬 관련 책들을
공부하여 수행에 대한 이론적 지식체계를 먼저 정립한 다음 남은 인생 동안 수행에 전념하는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2003년과 똑같은 문제점들에 직면하면서 곧 책 읽는 것은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아무도 없는, 다른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산 속이라 ‘한 마음 요전’은 꾸역꾸역 몇 번
읽을 수 있었고, 대행스님의 젊은 날의 수행사와 그 분의 가르침을 통해서 바가반께서 ‘에고-
나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강조하셨던 ‘나와 나의 것’을 완전히 내맡기는 ‘박티의 길’을 쉽게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담, 저작전집’은 형광팬으로 체크도 하고 볼펜으로 빈 여백에 메모도 하면서 몇
번을 정독하였지만, 결국 바가반의 가르침에 대하여 “숲을 보면서 나무를 본다”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전체적인 윤곽이 잡히지 않아 너무나 답답했었습니다.
2017년에는 이 3권을 읽으면서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들을 노트에 정리하면서 진도 나가는
방법을 시도하였지만, 어차피 대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어서 때문에 이 3권의 책들을
거의 전부 다 베껴쓰는 결과가 되어 정리한 노트들을 쌓으면 총 높이가 50cm 이상이었습니다.
2018년 1월에 라마나 마하리쉬 관련 책들을 추가로 구입하였는데, 그때 저는 ‘크리슈나다스
출판사’ 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있는 그대로’ 및 ‘크리슈나다스 여러 권을 포함한 총 8권
정도(?) 되었습니다.
일단 ‘탐구사’외의 책들은 한자어가 적어서 읽기에는 편하였지만, 번역에 참가한 사람들 각자
나름대로의 임의적인 표현방식 때문에 역시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으며, 거기에
더하여 함께 읽어야하는 ‘탐구사’ 책들과의 이질성 때문에 바가반의 가르침에 대한 ‘숲을 보는
관점’에서의 이해는 더욱 혼란스러워져 기가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제가 한국 사람인데다 K통신사에 근무하면서 총무, 회계, 마케팅 나아가 경영시스템 구축 등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문서작업도 했었고, 1992년~1999년 동안 ‘오쇼 명상모임’에
나가면서 불교 관련 ‘반야심경, 금강경’, 도교 관련 ‘도덕경, 금단의 비밀’, ‘탄트라비전 시리즈’,
기독교 관련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등 30여권의 책을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3년 동안
산 속에서 전업으로 홀로 10권 정도의 라마나 마하리쉬 책들을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분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다는 것과 더하여 해결방안이 없다는 것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내 남은 ‘삶의 의미’ 전부는 수행에 전념하는 것인데!!
이게 말이 되나?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그렇게 애를 태우며 지내던 중 2019년 봄에 대반전의 기회가 왔었습니다.
위에서 말했던 1990년대 오쇼 명상모임에 다니던 시절에 알았던 한 분과 우연히 연락할 수
있게 되어 천안에서 만났는데, 그 분이 오쇼의 ‘요가수트라 하권(쉼)’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오래전에 조식호흡 수련을 한 적이 있어서 차크라(단전) 등에 대한 정보가 궁금하였기에
즐겁게 읽게 되었는데, 가장 중요했던 것은 라마나 마하리쉬 공부에서 꽉 막혔던 혈로를
뚫을 수 있는 단서를 마련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책의 뒷 쪽에서 오쇼께서는 “마하비라가 언급한 ‘모크샤’와 붓다가 언급한 ‘니르바나’와
파탄잘리가 언급한 ‘카이발리야’는 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저의 뇌리를 스치는 번쩍이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제가 K통신사 시절 경영시스템 구축을 위한 전문가들의 교육을 받을 때, 그 분들이 가장
먼저 강조하였던 것은 회사 내 직원들 간에 그리고 회사 밖 고객들 모두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용어정의’였습니다.
각자가 ‘같은 말(용어, 단어)’에 대하여 우리나라 여야 정치권처럼 서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서로 다르게 이해한다면 그 경영시스템이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일 것입니다.
그 당시 제가 무척이나 정확하고도 분명한 ‘용어정의’에 굉장히 집중하였던 기억이 번쩍이며
떠올랐고, 동시에 2003년 판 ‘대담’이라는 책 맨 뒤쪽에 있는 아주 많은 ‘명상 관련 인도용어’
해설 부분(최근 판 ‘대담’에는 없음)에 대한 공부를 먼저 완성하면 되겠다는 직감이 제 뇌리를
번쩍이면서 스쳐갔었습니다.
예를 들어, 번역가들이 임의적으로 표현한 “자유, 참자유, 진정한 자유, 해방, 참해방, 진정한
해방” 등의 단어들을 우리 독자들이 읽었을 때 ‘모크사’, 즉 '윤회 속박으로부터 영원한 자유'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저의 경우에 얼마 전까지도 불교용어들을 몰랐기 때문에 “해탈, 열반” 등의 단어들을
접하게 되면 책을 계속 읽어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요가 수트라’를 다 읽은 다음 즉시 ‘대담’의 ‘명상 관련 인도용어’들을 몇 번이나
반복 숙달한 후부터 모든 책들을 쉽게 쉽게 읽어 나갈 수 있었으며 동시에 공부하는 즐거움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후 2019년부터 라마나 마하리쉬와 그의 헌신자들의 책들을 매년 8권 정도로 추가 구입하여
읽었는데, 2022년까지 총 합계 40권 정도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기존에 구입한 책들도 함께 반복해서 계속 읽어나갔는데, 2022년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바가반 가르침의 전체 흐름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점점 무어라 말할 수는 없는 어떤 자신감
같은 것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