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의 수행덕목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에게 영원한 생활 자세이자 완성해야 할
공통적인 수행덕목이 있는바 그것은 바로 육바라밀(六波羅蜜, Sadparamita)이다.
바라밀이란 범어 Paramita의 음역으로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경지를 의미한다.
육바라밀은 보시 바라밀(布施 波羅蜜), 지계 바라밀(持戒 波羅蜜),
인욕 바라밀(忍辱 波羅蜜), 정진 바라밀(精進 波羅蜜),
선정 바라밀(禪定 波羅蜜), 지혜 바라밀(智慧 波羅蜜)으로
이에 대해 알아본다.
첫 번째로 보시 바라밀(布施 波羅蜜, Dana-paramita)이다.
보시 바라밀의 올바른 정신은 주기는 하되
받을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다.
즉 보시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신적·물질적인 것을
남을 위해 베푸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참된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며 또 그것을 실천적 행동으로
행 할 것을 강조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보시인 것이다.
이 보시는 재물과 물질을 널리 베푸는 재시(財施),
법울 구하는 사람에게 법을 혜시(惠施)하여 주는 법시(法施),
모든 중생의 슬픔과 두려움을 제거시켜 마음의 평화를 되찾게
해주는 무외시(無畏施)가 있는데 이런 보시는 모두가 조건이 없는
자비(無綠大悲)와 자기와 일체 중생이 서로 깊은 관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마음(同體大悲)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근본불교에서도 보시는 커다란 공덕이 있는 종교적 행위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의 보시는 공덕을 바라고 보시를 하는 것은 아니다.
대승불교의 보시는 받는 사람이나 베푸는 물건이나 가르침의
주체로서의 자기에 대한 집착이 없이 오로지 모든 중생을 구제하여
불도에 들게 하고, 여러 부처님들이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배우고
실천하는 동시에 널리 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속에 아무런 생색이나 바램이 없는 보시를
무주상 보시(無住相 布施)라 하며 이런 보시야말로 보시의 완성인
보시 바라밀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지계 바라밀(持戒 波羅蜜, Sila-paramita)이다.
지계 바라밀은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을 말한다.
위대한 목적을 세우고 출가한 승려의 모임인 승단에도
규칙은 있어야 하며 불자 개개인도 지켜야 할 윤리와 규범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계율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자신이 열반하고 난
뒤에는 계(戒)로서 스승을 삼으라고 하셨을 정도로 계는 중요한 것인데
불교인들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계로는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의 오계(五戒)가 있고
출가한 비구에게는 250계가 있고 비구니에게는 350계의 구족계(具足戒)가 있다.
그러나 지계는 이렇게 명시된 계목(戒目)에 한정되지 않고
삼취정계(三聚淨戒)의 기준에 해당하는 모든 행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삼취정계는 제정된 제반 계율을 통한 윤리 기준을 말하는 섭율의계(攝律儀戒)와
선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모두 행하는
선량한 마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을 말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와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원칙에 따르는 기준인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계율은 타율적이 아닌 자율적으로 행하여야만 한다.
세 번째로 인욕 바리밀(忍辱 波羅蜜, Ksanti-paramita)이다.
인욕 바라밀은 괴로움을 받아들여 참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바세계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 많기에
참아야 할 것도 그 만큼 많다.
참는 데는 자신을 해롭게 하는 사람들의 악행을 참고 용서하는 내원해인(耐怨害忍)·
자신의 고통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고통도
받아들여 같이 해결하는 안수고인(安受苦忍),
모든 일에 대해 기쁨과 슬픔으로 동요되지 않고 사물의 본성을 정확히 관찰하여
평등함을 깨닫는 제찰법인(諦察法忍)이 있다.
그러므로 인욕이란 분노를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정확히 파악하여 마음의 동요를 없애는 것이다.
네 번째로 정진 바라밀(精進 波羅蜜, Virya-paramita)이다.
정진 바라밀은 몸과 마음에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성불을 이룰 수 있는 존재이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좌절과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정진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겠다.
다섯 번째로 선정 바라밀(禪定 波羅蜜, Dhyana-paramita)이다.
선은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사색을 하는 것으로
불교처럼 존재의 실상을 밝혀 인간의 마음속의 무지를 깨뜨리려는
종교에서는 특히 중요한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욕망에 이끌려 본연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자기를 잃어가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불안정 된 마음을 가지고 괴로움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선정 바라밀은 바로 이런 불안정 된 마음을 안정된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며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사물의 이치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섯 번째로 지혜 바라밀(智慧 波羅蜜, Praina-para mita)이다.
지혜는 번뇌를 끊는 정신작용을 초월하여 깨달음에 눈을 뜰 때
나타나는 예지이다. 우리는 나를 중심으로 경험한 것을 주관적이고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그러나 이것은 지혜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불교에 있어서의
반야의 지혜란 이런 분별지(分別智)가 아닌 주관과 객관의 분별이나
대립분별이나 대립분별을 떠나 있는 것으로 무분별지(無分別智)인 것이다.
이 무분별지는 경험이나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선정(禪定)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이는
곧 깨달음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
[출처] 나 홀로 절로 | 작성자 성민
첫댓글 육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