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호주제도가 문제인가. 세 차례의 개정을 거친 현행 가족법에
서 호주제도는 혼히 '상징적'인 조항이라고 일컬어지는데 왜 호주제도가 문
제인가. 호주제도가 단지 상징적인 조항이라면 어째서 그것의 개정이 그토
록 힘겨웠으며 폐지에의 저항이 그렇게 큰 것일까. 호주제도가 상징적이라
는 평가와 함께 그 동안 호주제가 얼마나 유명무실한 제도인가에 대한 논의
만 무성하였지 현재법에 존속하는 호주제도의 실제적 효과가 무엇인가에 대
한 논의는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이 글은 호주제의 효력이 단지 상
징적이지 않고 실제적이라는 것, 설사 그것이 상징적이라고 해도 공허하다
는 의미가 아니라 권력적이라는 의미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을 논
의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호주제가 행사하는 실제적 권력은 가부장제의 재
생산을 통한 여성 통제, 그리고 국가에 의한 국민 통제라는 서로 연관된
두 측면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호주제가 한국사회에 편만
해 있는 신분(가족관계를 통한 국민) 생산기제라는 점을 논의하고자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 글에서 다룰 호주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호주제도를 놓고 한국의 '전통'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다.
이것은 호주제도의 존속론자들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근거이다. 식민지 유
산인 호주제도를 우리의 '미풍양속'으로 정당화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만 이러한 주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역사성이 사상
된 가부장제에 대한 일반화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일제시기 호
주제도의 도입과정을 중심으로 하여 그것이 어떠한 의미에서 식민지 유산인
지는 논의하고자 한다. 이로써 호주제도의 가부장제를 보편적이 아닌 구체
적 역사적 산물로서 설명할 것이다.
둘째, 위와 연결선상에서 호주제도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부장
제의 보루로 작동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호주제도가 한국의 전통이요 순
풍양속이라고 하는 주장에는 호주제도에 의해 장자의 가계계승이 확보된다
는 의미가 내재해 있다. 그런 만큼, 호주제도의 전통논의는 단순히 허위라
고 하는 의미 이상의 것으로 그것에는 문화적 역사적으로 재구성된 가부장
제의 궤적이 담겨있다고 하겠다. 그 현재형으로서 오늘의 호주제도는 부계
계승제도, 부처제 결혼제도, 그리고 남성가장 중심의 가부장제를 확보해 준
다. 이 점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적극적으로 문제시한다면, 호주제는 한국
사회의 남성과 여성을 규정하고 여성을 통제하는 체계라고 파악할 수 있
다.
세째, 호주제도는 '추상적 가제도'라고 불리울 정도로 생활공동
체로서의 가족보다 문서상의 가족을 우선시하는 제도이다. 그것은 전체주의
적 국민국가 아래 가족을 정렬할 필요성이 강한 사회의 산물이며 따라서 호
주제도에는 근대성, 가족주의, 전체주의라는 여러 측면들이 녹아들어 있
다. 이러한 제도가 과연 현재의 한국사회에 어떠한 정합성이 있는 것일까.
중요한 문제는 호주제도가 추상적 가를 통하여 일정한 가족형태만을 '정상
적인 가족'으로 규정하는 기제가 된다는 점이다. 문화적으로 볼 때, 한국사
회에도 개인성을 강조하고 다양한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다원화의 물결이 점
차 고조되고 있다. 또한 이혼/재혼, 독신자, 동성애 가족 등이 증가하고 있
다. 이러한 가족들은 호주제도에서 '정상적'인 가족으로 제시되는 혼인관계
의, 부계계승적 가족모형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호주제도는 한국국가의 국민통제라는 측면에서 비판
되어야 한다. 위에서 호주제도는 아시아 사회의 맥락 속에서 국민국가의 정
립과 가족의 국가화가 매개되어 빚어낸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것
은 호주제도가 그 고안에서부터 국민통제 기제로 활용될 소지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호주제도는 호적제도, 주민등록제도, 주민등록번호, 주민
등록증으로 서로 연결된 한국의 국민통제의 핵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
다. 이와 같은 다중적 국민통제 시스템은 국민에 대한 사생활 정보를 국가
가 거의 완벽하게 장악한다는 점에서 국가에 대항하는 국민 혹은 시민세력
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억제한다. 따라서 호주제도의 개혁은 한국사회의 국
민과 시민의 성격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호주제
도의 개혁은 여러 측면에서 의의를 가지고 있다.
2. 호주제도의 식민성(coloniality)
호주제도의 도입과정은 그것의 식민성을 밝히는 첫걸음이 된다.
현재 한국에서 호주제도는 크게 보아 민법전에 속하는 가족법과 가족법의
부속법인 호적법에 의해 법제화되어 있는 제도로, 이러한 법적 장치의 기원
은 일제시대에서 고스란히 찾아진다. 식민지 조선에서 민법에 해당한 법은
1912년 조선총독 제령으로(제 7호) 포고된 조선민사령이다. 가족법에 직접
적으로 관련되는 부분은 조선민사령 제 11조에서는 '조선인의 친족, 상속
영역에 관하여 특별한 법령이 없는 한 관습에 의거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조
선에서의 가족법규는 토착적 행위규범(관습)에 의거한다는 원칙이 세워지
게 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제 1조에 규정된 바를 근거로 '식민지 조선
에 해당 법규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식민지 기간 내내 필요할 때마다 일본
의 가족법이 도입되었다. 이후 민사령 제 11조는 1차(1921), 2차(1922), 3
차(1939) 개정을 거치면서 일본 민법전의 친족상속편의 규정들을 점차로 조
선에 이식하였다. 1939년의 3차 개정에서는 조선 관습으로는 불가능한 타성
의 사람을 양자로 삼게 하는 서양자제도가 도입되었으며 같은 날 일본식의
씨 성명 변경(創氏改名)에 관한 제령이 포고되었다. 일본과 조선을 한 몸으
로 만든다는 내선일체(內鮮一體) 정책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의 법적 조치였
다. 이렇게 당시 가족법의 대원칙으로 여겨졌던 불문법적인 '관습'원칙과
일본의 편의에 따라 그때 그때마다 도입된 일본의 구민법전의 법규가 교차
되면서 식민지 조선의 가족법규는 그야말로 비체계적인 규칙들의 부정형의
집합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가족법의 맥락과는 대비되게 식민지 시기동
안 가족법의 부속법을 이루는 호적법은 상대적으로 분명하게 체계화되어 갔
다. 이미 1915년 식민지 정부는 기존의 민적법을 개정하였다. 민적법은 식
민지 지배 직전 1909년 대한제국 융희 황제시기에 도입된 한국 최초의 근대
적 호적법으로서 인구조사방식(census)을 채택하여 실제 거주단위로서 가족
을 기록하고 있었다. 1915년 개정의 핵심은 바로 이 인구조사방식의 폐지
에 있었다. 이로써 실제의 거주상태와 무관한 추상적인 '가(家)' 개념이 도
입된 것이다. 이 때의 '가'란 사실적 거주상태와 상관없이 호주를 중심으
로 조직된 호적문서에 기록된 가족을 의미한다. 1922년 12월 7일 제 2차
[조선민사령] 개정에 의해 가족 사항 변화에 대한 기존의 사실주의를 인정
하지 않는 등록주의 원칙이 채택되었다. 이로써 결혼, 출생, 사망, 양자,
파양, 분가/부흥가 등 모든 가족사항의 변동을 호적관계 사무소에 보고하
고 호적에 그 사실을 기록함으로써 인정받게 되는 대변혁이 일어났다. 이러
한 변화에 수반하여 다음날 (동년 12월 8일) [조선 호적령]이 포고되어 기
존의 민적법을 대체하였는데, 민적법은 호적제도를 한층 효율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가'의 추상화는 호적문서의 중심존재로서의 호주라는 지
위를 조선의 가족제도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만들었다.
일본에서도 이러한 가부장적 호주제도가 흔히 봉건적 사회의 잔
재라고 일컬어지지만 일본의 이에(家)제도는 일본의 메이지 정권(1868-
1912) 하에 단행된 일본식 근대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메이지 제국주
의 국가는 그 자체 가족의 모형에 의해 디자인된 가족국가였으므로 이에의
고안이라는 것은 정치적으로 필수 사안이었다. 이에제도 속에서 개별 가족
은 국가의 살아 있는 세포이면서 동시에 국가는 이에의 확대된 형태이다.
이러한 배열에서 호주는 천황과 백성을 이어주는 연결점에 해당한다. 호주
는 가족내 문제의 책임자이면서 동시에 가족을 대표하는 남성 성인으로서
국가와 교류할 수 있는 일종의 시민의 지위를 갖는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보호와 복종의 상호교환, 천황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와 같은 정
신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에제도를 통하여 일본의 전 국민이 호주에 의해
편제된 가족으로 조직되었으며, 개개의 가족은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가족
으로서 등록되었다. 이 과정은 전 주민이 국가가 승인하는 문서에 등록됨으
로써 천황을 정점으로 한 가족모형을 가진 가족국가가 건설되는 것을 의미
하였다. 따라서 이 제도가 조선에서 실시될 때는 식민지 주민을 천황의 보
호 안으로 통합시키는 이념적 행정적 제도로서 기능하게 된다. 이렇게 일제
가 도입한 호주제도는 처음부터 식민지 지배를 위한 관심과 긴밀히 연관되
어 있었던 것이다.
호주제도와 결합된 일본식 호적제도는 식민지 조선에서 전 주민
에 대한 통제력의 증진을 의미하였다. 식민지 국가는 호적이라는 가족의 문
서를 통해 전 주민과 그들 가족내의 중요한 사항 모두를 파악하게 되었고,
호적은 이런 변화를 빠짐없이 담아내는 권위 있는 공식기록이었기 때문이
다. 더욱이 식민지 조선에서 국적법 등 여타의 신분법이 적용되지 않았던
점은 호적 및 호주제도를 한층 더 중요한 것으로 만들었다. 식민지 조선인
은 분명한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이민이 허용되지 않았고 일본인으
로서의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따라서 식민지 조선인에게 호적은 그
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유일한 문서이며 제도였다. 무엇보다도 일제시기의
호적 및 가족제도가 가지는 핵심적 의미는 식민지 조선의 전 주민을 일본
제국주의와 조직적으로 통합하고 혈통적으로 동질화하고자 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본의 이에제도와 조선의 호주제도, 그리고 현
재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호주제도는 같은 것일까. 이것은 일본의 이에제
도가 식민지 조선사회에서 토착화되는 과정에 대한 질문이며, 이에제도가
조선의 가족 '관습'에 미친 영향을 따져보는 문제이다. 이에 관해서 필자
는 일본의 이에제도와 조선의 가계계승논리의 합병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
다. 즉 한국의 호주제도는 일본 이에제도를 중심틀로 하여 그것과 동결된
조선의 '관습'이 합성된 논리인 것으로 해석한다. 경직된 혈연적 가계계승
논리와 호주 중심의 이에 논리의 합병 결과, 한국사회의 모든 소규모 가족
이 마치 계승되어 할 계통을 가진 것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즉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가정이 '대'를 이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부계계승주의 사명
을 짊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식민성과 가부장제는 한국여성의 남아출산
의 절박함으로 전가되어왔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에서 호주를 중심으로 하
는 이에제도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서 폐지되었다. 하지만 탈식민
후 남한의 법적 담론에서 볼 때, 일제시대에 확립된 '조선의 관습'에 대한
재조사는 부재하였고 호주제도는 한국의 미풍양속인 것처럼 자리 잡았다.
가족법 개정의 역사에서 볼 때도 호주제도의 개정은 가장 심한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호주제의 온존에는 뒤에서 살펴볼 것처럼, 분단과 독재상
황하의 한국국가의 국민통제라는 정치적 필요가 내재해 있다. 이렇게 한국
의 호주제도는 식민지 지배관심과 식민지 조선사회의 가부장성이 착종된 것
이며 이것에 다시 탈식민 한국의 지배관심과 결합되면서 오늘까지 계승되
고 있다.
3.. 호주제도의 여성통제
이제 눈을 현재의 한국가족법의 법문으로 돌려서 여성주의의 입
장에서 그것을 분석하여 보기로 하겠다. 민법 제 4편과 제 5편을 이루는 가
족법에서 호주제도는 단지 호주라는 위치에 국한되지 않고 가족관계 형성
의 포괄적인 틀이다. 1989년의 제 3차 개정에 의하여 호주의 실제적 기능
이 약화되고 오직 호적의 필두자라는 형식적 기능만이 남아있다고 하지만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볼 때 호주제도는 한국가족의 가부장제의 골격을 여전
히 고수하고 있다. 먼저, 호주제도가 지지하는 부계계승주의(patrilineage)
에 대해 살펴보자. 민법 제 778조 호주의 정의에서부터 제 796조 가족의 특
유재산의 항에 이르는 조항에서 혼인내의 자녀, 혼외자의 입적, 분가 등
전반적인 호주/가족이라는 경계를 확정짓고 있다. 여기에서 제 781조 1
항 '자(子)는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가(父家)에 입적한다'에 의하
여 호주제도가 부계성본계승주의의 법적 기제로 기능한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이와 함께 호주승계에 관한 조항에서 볼 때, 호주승계의 우선순위가 직
계비속남자, 그 중에서도 연장자를 우선함으로써 장남자계승주의를 법제화
하고 있다. 이러한 장남자 계승주의는 현행법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제 789
조 법정분가 조항에서 호주의 직계비속 장남자의 법정분가의 불허용에서도
입증된다. 사실 호주의 정의 규정(제 778조)에서도 "일가의 계통을 계승한
자"라는 조건을 제일 먼저 들고 있다는 점에서 호주제도가 가의 계승을 유
지시키는 제도임을 확인할 수 있다. 부계계승주의는 이전의 법에 존재하였
던 제사계승과의 관련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전 법에서 호주는 제사용 재
산을 승계하고 소유할 특권을 가지고 있었으며(舊 제 996조), 제사주재자
의 계승을 위하여 사후양자(舊 제 867조)와 유언양자(舊 제 889조)제도가
있었다. 이는 법적으로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호주라는 지위에 제사봉사자로
서의 지위가 잠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대로 이에
제도의 호주와 제사계승자간의 착종현상을 표현하는 것이며 이러한 현상은
한국사회에서 암묵적인 '문화'로 작동하여 왔다.
부부관계에도 남성중심적 호주제도가 강력히 작용한다. 제 826
조 3항에서 보면, '처는 부의 가에 입적한다. 그러나 처가 친가의 호주 또
는 호주승계인인 때에는 부가 처의 가에 입적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이
조항의 후반부는 남편이 처의 호적에 편입되는 '입부혼(入夫婚)' 조항보다
훨씬 간략한 전반부에서 부처제 혼인제도(patrilocal marriage)가 제도화되
고 있다. 즉 입부혼이 아닌 한 부인의 호적이 남편 호적에 속하는 것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강제조항이다. 부처제 혼인제도란 전통적으로 부인이
남편의 집이라는 물리적 장소에 거주하는 제도를 의미하지만 현행 호주제도
에서 제도화하는 부처제 결혼이란 부인의 호적적 가족적 정체성을 의미한
다. 즉 호적상 남편가족에 속함으로써 '출가외인'이라는 관념을 문서적으
로 확고히 하고 있다. 이로써 기혼녀는 '호적을 파간 사람'으로 규정되며
사회적으로 남편의 가족에 속하는 사람이 된다.
이상의 부계계승제도, 부처제 결혼제도에 의하여 호주라는 지위
는 '자연스럽게' 남성의 지위가 된다. 특히 1962년 가족법 제 1차 개정에
의해 도입된 차남 이하 남성의 결혼이 당연히 분가를 하게 하는 법정분가제
도의 도입에 의하여 호주란 결혼한 모든 남성이면(장남은 전호주의 사망에
의해 승계) 다 가지게 되는 지위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가족을 대표하는
가장 지위인 호주는 남성신분으로 고착되고 이에 따라 여성은 가족대표자
의 지위로부터 배제된다. 이렇게 호주제도는 젠더에 따른 성신분 (gender
status)을 생산하고 영속시킨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헌법36조 1항에서 보
장된 "혼인과 가족생활을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
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는 조항에 전면으로 위배되는 것이
다. 흔히 이상에서 지적한 부계계승제도, 부처제 결혼제도, 남성에 의한 가
장제도(patriarchy)는 별로 논의되지도 않는 '자연스런' 가부장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세 가부장제의 축이 호주제도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다.
이상과 같은 호주제도의 남성중심성을 결혼제도에 초점을 맞추
어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기혼여성이 남편 가족에 소속됨으로서 결혼, 이
론, 재혼, 즉음 등 모든 사건들이 젠더에 따라 대단히 다른 것을 의미하게
된다. 남성의 결혼은 언제나 자신의 원래 가족이나 분가가족의 호주권을 담
보하지만 여성의 결혼은 새로운 가족에의 가족성원이라는 자리를 준다. 물
론 부처제 결혼제도의 효과는 여성이 호주가 되지 못한다는 것에 그치지 않
는다. 부처제 결혼이란 여성이 남성의 가족에 결박되는 존재라는 것을 뜻하
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남편이 살아있는 기혼여성으로 존재하는 한 어떠한
이유로도 그녀는 그의 호적을 스스로의 이유에 의해 변경시킬 수가 없다.
아니 변경시킬 이유가 없다고 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그녀는 남편
의 가족에 잘 속해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의 결혼은 가계계승이라는 필요에 순응한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데리
고 호적을 옮길 수 있다. 이것은 남성은 가족을 대표하고 새로 만들며, 가
족간에서 이동하는 활동성을 가진 주체라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하여 호주
제도에서 만들어내는 여성이란 가족 속에 배치되어 오직 그 구성원으로 묶
여있는 '가족적 존재'인 것이다.
호주제도에 의해 '정상적' 여성만이 통제되는 것이 아니다. 정상
적 여성의 규정은 많은 '비정상적' 여성을 생산하는 기제를 의미하기 때문
이다. 예컨대 이혼, 비혼, 비혼모 등과 같은 지위는 '비정상적' 상태로 규
정되며 따라서 이들의 가족적 정체성 또한 불완전한 상태로 쉽게 간섭받고
위협받을 수 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여성은 결혼 속에 묶일 때
만 '바람직한' 여성으로 규정된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먼저 이혼에 임하
여서 여성은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이 소속된 호적을 변경시키어야 한다. 하
지만 자기가족의 호주인 대다수 남성에게 이혼으로 인해 호적의 변경이 따
르지 않는다. 재혼의 경우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서 여성의 호적소속은
복잡하게 된다. 특히 여성은 전혼에서 탄생한 자녀와 함께 호적을 꾸미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자녀와 동거인의 관계를 가질 뿐이다. 따라서 열악한
상황에서 양육과 생활을 모두 담당한 어머니(가족)의 경우, 언제 아버지로
부터 요구될지 모르는 '남의 자식'이라는 위기감과 거리감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대다수 '아버지 자식'의 경우는 그들이 결혼 내이건 밖이
건, 전혼 관계의 자녀이건, 현재혼 관계의 자녀이건 아무런 표식이 남지 않
는다. 그것은 아버지의 인지만 있으면 부계성본을 계승하고 아버지 호적에
오를 수 있는 부계성본주의와 남성중심적 호주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
게 호주제도는 남성에게 호주라는 권위 뿐 아니라 결혼관계에 자신의 정체
성과 성(sexuality)을 국한시키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도 준다. 그리고 남
성의 권위와 자유로움의 이면에는 바로 여성의 무력함과 속박이 존재한다.
이러한 여성통제는 호주제도의 현실 가족공동체와의 유리로 표출
되기도 한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호주제도와 결합된 호적상의 '가'는 같은
유교문화권이라고 하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광범
위하고 관념적이다. 이러한 '가'제도의 핵심에 있는 호주제도는 장남자 계
승을 위한 이성애 혼인관계 가족만을 정상적 가족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호
주제도가 '비정상화'하는 부부중심의 가족이 아닌 경우 호적과 주민등록과
의 관계는 실로 복잡해진다. 예컨대, 일가 창립한 이혼 여성이 그녀의 자
녀 및 어머니와 동거할 경우, 이에 더해 그녀의 미혼 여동생과 동거할 경
우 이 가족 안에는 세 명 이상의 다른 호주(이혼녀 본인, 이혼녀의 자녀의
호주, 여동생의 호주 등)가 존재하며 그에 따라 이들 '가족'은 셋 이상의
상이한 호적에 속하게 된다. 동시에 실제로 경제적 정서적 단위로 삶을 영
위하는 이 가족의 민법상의 신분적 지위는 단지 '동거인'으로 남아있을 뿐
이다. 또다른 예로서, 최근 쟁점으로 부상하는 비혼모 가족의 문제가 있
다. 비혼부의 사회적 실종과 함께 비혼모의 자녀는 어머니 가족의 호적에
소속되는데 이 때 그 가족의 호주는 대부분 그 비혼모의 아버지이거나 남자
형제가 된다. 이렇게 볼 때 호주제도가 가지는 '관념적 정상성'은 주로 여
성의 가족적 지위에 대한 규제로 작용하며 그런 점에서 '여성'은 가족적 정
상성을 유지시키는 핵심 지점이 된다. 이외에도 독신, 동성애자, 비혈연
적, 비부계적 가족 등 다양한 가족형태가 급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혼
의 증가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추세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
을 수용할 수 없는 현재의 호주제도에서 여성은 여전히 남편과 아버지의 보
호 하에 있는 피보호 가족원의 지위를 가질 뿐이다. 이러한 경직된 호주제
도의 논리에서 여성과 미성년 자녀의 가족 선택권은 현저히 제한되고 삶의
복지는 크게 저해될 수밖에 없다. 호주제도를 '관념상의 가족제도'라고 부
르는 것은 정서적 교감과 실제적 생활 공동체로 전환된 가족생활로부터 유
리된 가족제도임을 스스로 웅변한다. 호주제도는 이렇게 가족의 변화된 기
능과 다양한 형태에 비해 너무나 뒤떨어져 있는 사회적 족쇄인 것이다.
4. 호주제도의 국민통제
앞에서 우리는 호주제도가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근대 국민국가
건설의 일환으로 창안된 제도라는 점을 살펴보았다. 사실상 호주제도의 가
장 큰 특성은 국가가 강행하는 가족제도라는 점이며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철저한 조직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호주제도는 국민을 개인으로서 상대하
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적 가족관계 속에 위치지원진 호주/가족으로서 국민
을 통치하는 모델을 내장하고 있다. 그런 만큼 한국의 호주제도는 가부장제
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통제 방식이다. 이로써 한국의 전주민은 남성과 여
성, 장남과 차남, 계층, 지역, 가치관 등과 상관없이 호주제도의 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한국의 국민은 그들의 선택과 관계없이 가족적 지위를 부
여받는다. 이렇게 호주제도는 국민을 조직, 규정, 파악하는 제도인 것이
다.
근본적인 문제는 호주제도가 호적제도, 주민등록, 주민등록번
호, 주민등록증제도과 같은 국민관리체제의 근간이 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다중적 시스템의 연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먼저, 한국의
호적제도가 현실의 생활관계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호주라는 '추상적' 지
위를 중심으로 부계혈통주의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주민등록제도와 같은 생
활관계를 밝히기 위한 별도의 제도가 필요로 하게 되었다. 여기에 군사적
인 필요와 행정적인 효율성 증진을 위해 주민등록번호와 주민등록제도가 추
가되었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주민등록번호라는 개인식별번호가 수록되어
있는 국가 신분증 제도가 있으며, 주민등록제도는 다시 신분등록제도인 호
적제도와 개인식별번호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러한 다중적 국민등
록제도는 우리 사회를 하나의 단일한 유기적 조직으로 묶어내고 있는 것이
다. 이러한 서로 다르면서 연동되어 있는 국민조직 시스템은 외국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관리시스템이다.
이러한 국민등록제도는 국가의 인권침해, 혹은 국민의 프라이버
시 침해의 관점에서 시민단체 등에 의해 문제시되어왔다. 이러한 견해는 옳
지만 부분적이다. 이러한 국민등록제도의 기반이 되는 호적/호주제도의 가
부장제에 대한 천착 없이는 국민관리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를 꾀하기는 어려
울 것이기 때문이다. 호적제도는 이러한 시스템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포괄적인 정보체계이다. 호적에는 본적, 전호주, 호주, 가족의 이름,
본, 성별, 출생일, 주민등록번호, 가족이 된 원인, 가족사이의 관계를 계통
적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입적과 제적의 관계가 상호의 호적부에 분명히 드
러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호적부는 가장 기초적인 신원확인 공문서이
다. 우리의 신분등록제도의 특징은 인적으로 편제되어 각 사람의 신분변동
이 하나의 기록부에 반영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신분관계가 쉽게 노출되도
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제적부의 보존연한이 80년이므로 사실상 거의
무한으로 혈연관계를 추적할 수 있음을 물론 평생동안의 관련 지역을 추적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신분등록이 국가에 의해 강제될 뿐 아니라, 부계
계승제도를 골격으로 하는 혈통적 계통을 밝히는 문서로서 한국인들에게 받
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점에서 호적제도가 변화에 크게 저항적
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호적제도는 국가의 정치학이자 완고
한 문화체계의 접점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한국국가의 국민
에 대한 지나친 정보 관리체계를 국가의 인권통제 혹은 '개인'의 사생활 통
제라는 근거로 비판한다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호적을 구성하는 문법적 논
리가 가부장제라고 할 때, 바로 그 가부장제에 대한 자기비판이 호적제도
의 변화를 가져오는 결정적 열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호주제
도와 호적제도를 단지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는 마치 여성을 보호해 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을 포괄하는 사회질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하
고 그것이 한국의 국민통제의 기반이 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가부장제
는 여성과 남성을 조직해내는 한국국가의 정치학이다. 그것은 또한 전주민
을 가족 관계속에 위치지움으로써 개인의 권리의식을 억제하고자 한 일제
의 통치방식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현재화된 식민지 유산인 것이다.
5. 맺음말
이렇게 호주제도는 여러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 그것은 식민지 유산을 연속하고 계승하여 일제가 만들어 놓은 사회관
계와 조직을 재생산하여왔다. 그 안에서 부계계승제도는 역설적으로 한국
의 불변하는 '전통'으로 재창조되어왔다. 둘째, 호주제도는 공/사 영역에
비견하는 남녀간의 사회적 공간배치를 확립시킴으로써 대단히 발달된 젠더
정치를 구사하여왔다. 국가는 그의 시민인 남성 성인에게 가장의 권위를 줌
으로써 모든 성인 남성으로 하여금 모든 성인 여성을 대변하고 통제할 것
을 승인하는 셈이 된다. 세째, 호주제도는 부계계승적 혼인 가족만을 정상
적 가족으로 인정함으로써 그러한 모형을 가지지 않은 현실의 다양한 가족
공동체로부터 유리된 관념상의 가족규범이다. 그것은 특히 많은 여성과 아
동의 가족적 선택권을 제한하고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네째, 호주제도는
다른 국민관리체계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여러 차례의 가족법 개정
때마다 한국의 국가(정부와 국회)의 지배적 태도는 무관심과 방관으로 일관
하였으며, 그 속에서 기존 질서의 연속에 대한 의지가 표현되었다.
호주제도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또 폐지될 것이다. 하지만
호주제의 문제는 폐지냐 아니냐 보다 어떻게 폐지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이 글은 호주제도의 폐지 이후의 대안을 그 내용으로 하
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을 위하여 호주제도가 가진 문제점, 그 현실적 효과
를 풍부하게 검토함으로써 폐지에의 지점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제까지
논의한대로 호주제도는 한국사회가 가지는 가부장성, 식민성. 시대착오성,
비민주성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을 드러내주는 다중적 문제지역이다.
호주제도의 개혁 없이는 한국의 여성과 남성의 인권의 제고를, 그리고 시민
사회의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