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릉도 성인봉, 최고의 비경을 간직한 잊지 못할 산
1. 일자 :
2. 장소 : 성인봉 (984m)
3. 행로 및 시간
[첫날(7/30) : 묵호-울릉도, 해안 일주관광
둘째날(7/31) : 봉래폭로, 해안도로 걷기, 섬 유람선 일주, 독도박물관
셋째날(8/1) : 성인봉 등산, 케이블카, 묵호-동해
성인봉 산행 : KBS 중계소 코스 들머리(08:44,성인봉 4.1km) -> 대원사갈림(09:13) -> 구름다리(09:22) ->팔각정(09:47) -> 팔각정(09:47) -> 바람등대(10:12, 성인봉 1.1km) -> 성인봉(10:40) -> 팔각정(11:22) -> 구름다리(11:42) -> 대원사갈림(11:48) -> (가파른 콘크리트도로) -> 대원사(12:17)]
4. 동행 : 희선, 대식, 소영
< 울릉도 여행을 준비하며 >
살면서 여름 휴가를 후회 없이 보낸 기억이 적다. 학창시절엔 금전적 여유의 한계로 궁색한 여행이 되었었고, 직장생활 초기에는 짧은 휴가 기간과 같이 갈 벗이 적었고, 결혼을 한 이후에는 고려해야 할 변수(아이들, 집사람, 부모님, 장소, 거리, 동행자 등)가 많아져 어떤 조합을 택해도 집사람과 쉽게 조화가 되지 않았다. 집사람은 해외여행을 선호하지만 금전적 부담은 차치하더라도 사전에 예약하고 준비하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고, 내 나라의 좋은 곳도 다 둘러 보지 못했는데 ‘웬 해외’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 집사람과 갈등이 깊어 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유쾌하지 못한 과거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집사람과 연예하던 시절 동기 커플과 함께 울진에서 보낸 여름 휴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랜 시간 버스를 탄 피곤한 여정이었고, 해수욕은 물에 몸을 적시는 수준으로 끝났고, 더운 날씨에 도보로 성류굴에 오고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그러나 저녁 노을도 진 바닷가 낡은 배에 기대어 집사람과 살아 온 그리고 같이 살아가면서 해야 할 많은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눈 것은 지금도 내 삶의 보배 같은 추억이다.
금년 휴가는 결혼 후 17년 만에 떠나는 둘 만의 휴가다. 아이들에게 장인어른을 부탁하고 울릉도로 떠나려 한다. 대식 부부가 동참 제안에 응한다. 슬슬 울진 여행의 2탄이 될 것 같은 예감이 온다.
여행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자료를 토대로 여행 일정을 가름해 본다. 첫 날 10시에 묵호에서 배를 타고 160km의 거리를 시속 70km로 질주하여 도동항에 도착하면 12시가 조금 넘을 것이다. 숙소 배정을 받고 오후에 ‘섬일주 해안선 육로관광’(가두봉 등대 → 거북바위 → 몽돌 해변 → 사자암 → 남근바위 → 곰바위 → 만불상 → 코끼리 바위 → 추산 몽돌해수욕장 → 삼선암 → 너와집 나리분지)을 하면 하루가 저물 것 같다. 둘째 날 오전에는 ‘독도전망대 → 독도박물관 → 케이블카 → 약수공원 관광’을 할 것이고 오후에는 ‘섬일주 유람선 관광’ (도동항 → 거북바위 → 남양 몽돌해변 → 현포항 → 천부항 → 삼선암 → 관음도 → 죽도)을 할 것이다. 셋째 날은 오전에 성인봉 등반을 하고 오후에는 해안산책로와, 행남등대 관광을 끝으로 울릉도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배를 타고 묵호로 거쳐 집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성인봉, 저동항, 죽도 등 평소 귀에 익은 이름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듣고, 보는 여행지이다. 첫 날과 둘째 날 모두 도동항 기준으로 섬을 좌측으로 돌며 육지와 바다에서 울릉도를 관광하는 것이 주 일정일 듯하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곳을 돌아 보는 여정에, 저녁에는 대식 부부와의 울릉도에서의 추억도 만들어야 하니 바쁜 시간이 될 것 임에 틀림없다.
이 모든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무엇보다도 성인봉 등산이 아닐까 한다. 내가 황금 같은 시간과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울릉도에 굳이 가려고 하는 이유 중 가장 먼저는 성인봉에 올라 넘실거리는 동해 바다를 굽어 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대략의 코스는 대원사에서 출발하여 473봉과 팔각정을 거쳐 바람등대에 오른 후 정상으로 향하고, 다시 바람등대를 지나 삿갓봉을 거쳐 대원사로 돌아 오는 코스로 4시간 정도를 예상한다. 성인봉 정상이 984m 수준이니 해변에서 오르면 올곧이 900m 이상을 올라야 하는 만만치 않은 코스다. 특히 초반 45도 수준의 된비알에 급격한 에너지 소모가 걱정된다. 그래도 섬 산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의 감동이 모든 힘겨움을 이겨낼 힘을 줄 것이라 믿는다.
< 희망사항 >
신혼여행 이후 처음인 듯한 실로 오랜만에 집사람과 함께 하는 원거리 여행이다. 가능한 한 아니 무조건 집사람을 기쁘게 해 주어야겠다. ‘쓸데없는 똥고집 부리지 말고 그녀의 의견에 동조하자’ 이것이 이번 여행 제 1의 미션이다. 이 미션만 지키는 나머지는 스스로 굴러갈 것이다. 나름대로 낭만도 있고 분위기도 탈 줄 아는 여자이니 기분만 맞추어 주면 된다.
첫 날 새벽, 묵호로 향하는 길부터 3일 후 저녁 늦게 귀가까지 만만치 않은 여정이 될 것이다. 차로 육로를 오갈 데 길이 막히지 않았으면 좋겠고, 날씨로 인해 배 편이 묶이는 일도 없었으면 하고 바래 본다. 날씨만 바쳐 준다면 울릉도 여행은 그야말로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워낙 자연경관이 좋아 보는 것 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고, 육지와 달리 여름에도 그리 무덥지 않아 피서하기에 그만일 것이고, 마지막으로 좋은 산도 있으니 더 이상 좋은 여행지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추억 만들기를 하고 싶다. 그 동안 바쁘게 살아 온 삶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도 함께 하고 마음에 맞는 친구도 동행하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돈 생각, 시간 생각 하지 말고 마음껏 즐겨 보자.
마지막으로 섬에서의 2박 3일, 어떤 감동이 내게 찾아올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산에서 보는 바다와 바다에서 보는 섬과 산의 멋진 감동을 기대해 본다.
< 첫 날(7/30) >
새벽 5시 집을 나서 10시에 배를 타고 12시 30분에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하였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길이 막히지 않아 좋았다. 1시간여를 터미널에 앉아 있었는데 여행의 설렘 때문에지 그리 지루하지는 않았다. 잠시 밖에 나와 묵호 포구를 살피는데 울릉도행 여객선 한 대가 출발하다. 포말을 그리며 포구를 나서는 배가 멋져 보인다.
배가 출발하면서부터 뱃멀미 증세가 있다. 잠도 안 오고 무료한 시간만 보내는데 스마트폰이 벗이 되어 준다. 문명의 이기의 혜택을 배에서도 누리는 세상이 고맙다. 출발 2시간 30분이 지나, 배가 포구에 들어설 때 울릉도에 첫 인상은 역시 굴곡진 산의 마루금이었다. 삶의 모든 그렇듯이 먼저 눈길 가는 곳으로 첫인상이 각인된다. 오늘 울릉도는 쌍봉으로 가장 높아 보이는 형제봉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해안에서 탄갓봉을 지나며 급히 솟아오른 능선은 형제봉을 정상으로 착각하게 만들더니, 이내 완만하나 지존의 풍모를 보이는 성인봉을 지나 말잔등을 넘어 다시 해안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온통 바위뿐일 것 같은 느낌이 울릉의 첫인상이었다.
< 묵호항 전경 / 섬나리꽃의 자태 >
배가 포구에 닿고 첫 사진을 찍었는데 후에 자세히 보니 해안 절벽에 울릉도를 대표하는 향나무 고목이 잡혀있었다. 수령이 2500년이나 된다는 그 섬향나무임에 틀림없다. 마치 나의 울릉도 입항을 지켜보고 ‘잘 왔어’ 라고 말하는 듯했다. 또 하나 인상깊은 것은 울릉도의 해안 절벽에는 어디든‘나리꽃’이 있다는 것이다. 그 진한 주황색에 검은 점무늬가 박혀있는 이 꽃은 울릉도의 정열을 상징하는 듯했고 섬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첫 날의 여행일정은 점심식사를 먹고, 차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명승을 둘러 보는 것이었다. 사동항을 지나 가두봉 부근의 신항건설지가 보이고 해안도로를 굽이쳐 도니 거북바위가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었다. 처음 보는 이국적 풍광에 쉴세 없이 카메라를 누른다. 이후 가파른 도로를 따라 오르다, 현무암주상절리 일명 국수바위를 감상하고, 남양몽돌해변에서 사자바위, 남근바위, 투구봉 등을 감상하였다. 이 기묘한 해안가 바위들은 울릉도가 아닌 육지에 위치했으면 그 하나 하나가 명승이 되었을 정도로 수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내 인생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이국적인 모습들이었다.
< 사자바위에서 / 버섯바위에서 >
< 만물상 전망대에서 >
< 대풍감에서 / 코끼리바위 >
1박2일 촬영지로 이름난 만물상전망대에서의 해안선 전경은 굽어보는 조형미가 돋보였는데 암괴와 숲과 밭의 색채 조화가 인상 깊었다. 태하항 부근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대풍감으로 올랐는데, ‘한국의 10대 비경지역’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풍광이 그만이었다. 모노레일 탑승장 위로 성인봉의 모습이 잠깐 고개를 내밀는 모습이 보였는데, 당시에는 성인봉이라 주장하는 가이드리 말을 믿었는데 그 후 그녀의 언행으로 판단컨대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어려울 듯하다. 대풍감에서 바라보는 쪽빛 바닷물과 멀리 송곳봉 일대의 전경은 최고였다. 송곳산 앞 코끼리바위는 그 형상이 매우 특이하였고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그 형상이 다르게 보였다. 송곳산 밑에는 또한 성불사라는 절이 있었으며 신축한듯한 불상 밑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 죽도 전망대 / 삼선암 >
가이드의 배려인지 원래 코스에 들어 있었는지 석포독도전망대에 올라 죽도와 관음도를 굽어 보고, 돌아 오는 길에 삼선암의 기이한 형상에 또 한번 놀랐다. 일주도로의 끝, 섬목도선장에서 어서 빨리 섬일주도로가 완성되기를 기원하며 도로를 통해 올 수 있는 울릉도 일주도로 길의 끝을 맞보았다.
< 나리분지 산나물 정식 / 저동포구에서 >
천부항 부근으로 돌아와 나리분지로 향했는데, 홍살문을 지나 4륜차로 다니기에도 벅찬 고개를 오르내리니 나리분지에
닿았다. 해가 어둑어둑해 지고 있다. 마당의 정취가 시원한
음식점에서 산나물 정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울릉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독특한 나물 맛에 입이 즐거웠다. 저녁에는 저동포구에서 오징어 회를 사 들고 펜션(사실은 민박)에서 주인집 식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였다. 주인 아저씨의 인상이 축구국가대표
< 둘째날 7/31 >
< 봉래폭포에서 / 행남해안산책로에서 >
날씨가 무척 더웠다. 봉래폭포 가는 길에 풍혈(바위 틈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섭씨 4도씨의 천연 냉장고)에서 더위를 식히고 봉래폭의 우렁찬 소리와 씩씩한 모습을 보았다. 봉래폭포 오가는 길에 커다란 삼나무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아쉬운 점은 많은 차들이 한꺼번에 밀려 가파르고 좁은 주차장 일대가 무척 위험해 보였던 것인데, 언젠가 큰 사고가 날 것 같았다.
< 행남해안산책로 전경 >
도동 포구로 돌아와서 이곳 사람들은 ‘좌안’이라고 부르는 행남해안산책 길을 걸었는데, ‘국내 제일의 산책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해안을 따라 1시간여를 걷는 코스가 압권이었다. 바다를 굽어보며 때로는 해안선을 타고 넘실거리는 파도를 벗삼아 걷는 기분은 신선이 따로 없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더욱 좋았다. 평소 고소공포증이 있는 집사람에게는
미안했지만, 반드시 다시 오고 싶은 최고의 길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냈더니 울릉도가 아니라 유럽에 간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왔다.
< 전국노래자랑 촬영장/ 섬일주 유람선 관광 전경 >
오후에는 마침 이곳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 공연을 보고, 2시 30분배로 섬일주관광선을 탔다. 하얀 포말을 그리며 항해하는 배 위에서 갈매기를 벗삼아 한없이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배를 타고 다시 돌아보는 울릉도의 전경은 아름다움 모습 그 자체였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섬의 모습과 바다 위에 떠 있는 바위와 죽도, 관음도 등의 풍경도 그만인데, 새우깡 하나를 위해 숨막히는 경쟁을 벌이는 갈매기의 그 생생한 비상도 잊기 어려운 장관이었다.
2시간여의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금방 지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말 많은 것들을 보았다. 간간이 배 위에서 새로 산 스마트폰의 여러 기능을 시험해 보며 그 성능에 다시금 놀라곤 하였다.
바쁜 가이드의 일정상 우리가 직접 찾아서 독도박물관에 들렀다. 유물도 인상적이었지만 무더위를 식혀 줄 에어컨의 바람이 더욱 좋았다. 예년의 비해 올해 울릉도 날씨는 유난히 덥고 습하단다. 서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저녁에는 식사 후 저동항 해변축제 노랫가락을 들으며, 바닷가에서 회를 사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 성인봉 등산 >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너무도 화창하다. 햇빛이 너무 강렬해 볕에 서면 금방 얼굴이 벌개진다. 아침의 먹고 가이드의 배려로 KBS중계소 부근에 도착했다(08:44). 내심 가져간 지도에 표기된 해발 561m 중계탑이 들머리일 것으로 기대했으나, 실제 들머리는 KBS 방송국 숙소 부근의 350m 고도 수준이다. 여기에서 성인봉까지의 거리는 4.1km 가량이다.
강렬한 햇살을 피해 얼른 숲으로 들어간다. 초입 길은 꽤 가파른 오르막이다. 다행인 것은 숲에 들어오니 습도가 낮아져 조금은 쾌적해졌다는 것이다. 15분여 오르막을 오르니 작은 쉼터가 보인다. 오르다 보니 도시에서 온 모녀가 걷기에 힘겨워하며, 먼저 간 동생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쉼터에 올라와보니, 동생으로 보이는 똘똘한 꼬마숙녀가 너무도 씩씩한 모습으로 쉬고 있었다. 우리도 잠시 숨을 고른다. 동행한‘총각’은 별 어려움 없이 산을 오른다. 다행이다. 10여분을 더 치고 오르니 첫 갈림이 나온다(09:13). 표시는 없어도 우측으로 내려가면 대원사로 가는 길 일 것이다. 하산 시를 대비하여 눈 도장을 찍어둔다.
길이 순해진다. 덕분에 등산로 양 옆으로 뻗은 키 큰 나무들의 숲을 눈 여겨 본다. 육지에 산과 나무의 식생이 많이 다르다. 우선 그 흔한 참나무를 찾아 보기 어렵다. 대신 고로쇠나무, 동백나무, 곰솔, 서어나무 비슷한 줄기가 반들반들한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낮은 곳에는 고사리 비슷한 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참나무 일색을 숲을 보다가 그 새로움에 자꾸 눈 길이 간다.
잠시 후 구름다리가 보인다(09:22). 갈색의 아치형 다리와 흔들다리가 무척 멋져 보인다. 다리에 서니 멀리 정상부에 위치한 군부대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한동안 산책로 같은 편한 길을 걸으니, 등산의 즐거움이 묻어난다. 말수가 적은 청년도 자기 딴에는 등산길에 만족하는지 근교에 쉽게 갈 수 있는 산을 물어온다. 이틀을 같이 지낸 바에 따르면, 이리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일종의 파격이다. 집이 경기도 화정이라 하니 북한산성에서 출발하는 코스의 얼개를 설명해 주었다.
< KBS 중계소 들머리 / 구름다리 >
< 팔각정에서 본 포구 / 성인봉 정상부를 배경으로 >
구름다리를 지나고도 한참을 걷기 좋은 길이 이어지더니,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중간지점에 팔각정이 보인다(09:47). 지도상의 ‘중계탑, 삿갓봉, 팔각정’길을 염두에 두고 왔는데, 삿갓봉은 어디 가고 벌써 팔각정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지도는 2008년 등산잡지의 것인데 그 사이 등산로가 변했나 보다. 팔각정에서 굽어보는 해안가 포구의 경치는 연무가 옅게 끼었으나 나름 시원하다. 울릉도는 흐린 날이 많은 섬이라 했는데 그래도 이만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으니 오늘은 횡재한 기분이다.
다시 20여분 긴 오르막을 오른다. 오르막은 가팔라도 성인봉 코스는 전체적으로 육산의 풍모다. 화산에 의해 흘러 내린 해안지대가 온통 바위인 것을 생각하면, 산은 대조적으로 온순하다. 산의 겉과 속이 다를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한다. 겉은 우락부락한 험악한 모습이지만 속 정이 깊은 사내의 풍모가 느껴진다.
< 성인봉의 숲 >
우거진 숲에 햇살이 들이친다. 녹색이 햇빛에 반응한다. 숲은 금새 생기가 돈다. 키 큰 나무 틈으로 목격되는 빛의 조화가
신비롭다. 힘겹게 작은 안부에 도착한다(10:12). 벤치가
놓인 쉼터다. 부근에는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웬 조화인지
모르겠다. 한참을 시원한 자연 바람을 쐰다. 문뜩 집히는
생각이 있어 지도를 보니, ‘그래 이곳이 바람등대로구나’. 명불허전. 지나는 바람이 골을 만드는 곳이다. 다시 계단길을 올라서 완만한
오르막을 천천히 걸으니 정상 군부대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나리분지 하산길이 보이고 마침내 성인봉
< 성인봉에서 / 나리분지 방향 전경 >
많은 기대를 하고 온 것을 감안하면 무지불식간에 정상에 도착한 것이다. 출발 후 거의 2시간이 흘렀다. 생각보다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길은 전체적으로 청계산 수준의 난이도라 보면 되겠다. 정상에서의 흔적을 사진으로 남기고, 전망대로 내려간다. 나리분지를 지나 미륵산, 형제봉, 알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마루금이 무척 힘차다. 밋밋한 성인봉보다는 경치로는 몇 수 위의 위엄이 느껴진다. 이틀 전 도동으로 들어올 때 배에서 본 탄갓봉, 형제봉, 성인봉 능선에 못지 않고, 마치 외국 영화에서 본 듯한 이국적인 풍광이 느껴진다.
< 청년과 함께 / 하산 길 전망 1 >
청년과 처음으로 사진을 함께 찍고 하산 길을 서두른다. 하산 길의 선두는 청년이 나선다. 뛰듯이 길을 내려선다. 보조를 맞추니 대식이 처진다. 다시 팔각정에 도착한다(11:22). 내리막의 탄력이 붙어서인지 걸음에 거침이 없다. 구름다리를 지나, 오를 때 눈 여겨 보아두었던 대원사 갈림에 도착했다(11:48). 다시 미지의 길로 들어선다. 10여분 가파른 길을 걸으니 작은 매점이 나오고 이내 시원한 포구의 전경이 눈 아래 펼쳐진다.
< 울릉도 주목 / 하산 길 전망 2 >
매점을 지나며 넓어진 길을 따라 걷는데, 유난히 잎이 푸른 커다란 나무가 눈 길을 끈다(11:58). 줄기를 보니 주목이다. 태백산이나 덕유산에서 고사목 수준의 주목만을 보다가 이렇게 푸른 청년 주목을 섬의 낮은 고도에서 맞으니, 절로 생동감이 인다. ‘아 청년 주목은 이리도 듬직하고 푸르구나’라는 생각이 힘이 느껴진다.
이제 거의 다 내려 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대원사는 나타나지 않고 콘크리트 포장 길이 길게 이어진다. 경사도가 워낙 심해 그냥 서 있기도 힘겹다. 대식은 뒤처져서 보이지 않고, 앞서 걷던 청년도 앉아서 쉬고 가겠단다. 유난히 산 길을 잘 걷는다 싶었는데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보다. 홀로 길을 내려온다. 차가 다니는 도로가 가까워진 곳에서 대원사 대웅전이 보이고 그 밑은 여러 번 지나다니던 대원사 팻말이 있던 도로였다.
3시간 30여분 동안의 짧은 등산이었지만 좋은 날씨 덕분에 섬산의 진수를 만끽했다. 색다른 나무들의 식생, 바람등대의 시원함, 성인봉에서 맞는 여름날의 풍성한 햇살, 성인봉 넘어 나리분지 능선의 우람한 산군, 젊은 주목, 산에서 본 포구 등이 성인봉 산행을 대표하는 키워드들이다.
< 셋째날 8/1 >
< 케이블카 전망대에서 / 삿갓봉과 뒤 정상 능선 >
< 독도 모형도 / 향토박물관에서 >
< 바다의 꿈 / 울릉도 향나무 >
성인봉 등산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 와 샤워를 한 후,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처음엔 싫다는데 굳이 이리로 안내한 가이드가 원망스러웠으나, 전망대에 올라 굽어보는 도동항의 모습과 멀리 성인봉 정상부와 삿갓봉의 경치가 그만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른 향토박물관에서 울릉동에 대한 여려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울릉도는 약 250만년 전 화산 폭발로 형성된 섬으로, 동서 10k, 남북 9.5km 크기의 섬으로 성인봉 칼데라 화구가 함몰되어 나리분지가 형성되었다 한다. 섬의 평균 경상도는 25도로 거의 모든 곳이 가파르며, 8월 평균기온이 24도라 한다. 조선 태종때 공도정책으로 섬을 방치하다가 1882년 공도정책을 버리고 울릉도 개척령을 공포해 이민을 장려했다. 조선 초의 공도정책이 현재와 같은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분쟁의 하나의 씨앗이 된듯한데, 늦게나마 개척령이 시행되지 않았으면 구한말 어수선한 시기에 일본의 침탈에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와 함께 신라시대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하고 신라에 귀속시키고 기록에 남긴 것도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5시 30분에 묵호로 출발하는 배를 기다리며 도동항 바위해변을 걷는 것으로 울릉도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배를 출발 전 마지막으로 올려다 본 해변 바위 언덕에 2500년 세월을 묵묵히 지켜 온 섬향나무가 나를 배웅한다. ‘잘 가라고 한다. 난 고맙다 했다’.
< 에필로그 >
인상 깊은 행위를 할 때 매 순간은 길게 느껴지지만, 지내 놓고 나면 전체적인 일이 빠르게 지나가 버린 느낌이 들곤 했는데, 내게 이번 울릉도 여행이 그랬다. 첫날 새벽에 집을 출발해 묵호에 닿고, 도동에서 나리분지까지 섬의 9/10를 왕복하고, 다음 날 아침 다시 봉래폭포를 향하는 길에, 하루 만에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꼈음을 깨닫고 놀랐고, 둘째날도 섬일주 관광에서 갈매기의 비상과 질주가 생생하게 기억나고, 성인봉에서의 이국적인 산줄기의 추억도 생생한데 벌써 3일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만큼 이번 울릉도 여행은 볼 것 많은 여행이었다.
출발 전, 추억 만들기를 하고 싶다고 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에 맞는 친구와 마음껏 즐겨 보자고 마음 먹었는데 많은 부분 그 약속을 지킨 것 같아 마음이 가볍다.
지난 3일간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혹 눈과 카메라에 담지 못한 울릉의 비경은 마음에 추억이란 이름으로 담아야겠다.
살면서 울릉도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면 그것들은 나리꽃, 섬향나무, 모노레일, 봉래폭포, 바다 위 바위, 산나물, 홍합밥, 등대, 경사진 도로, 행남해안산책로 그리고 청년 등 중 하나일 것이다.
도동 해변 절벽가에 2500년 동안 꿋꿋이 서 있던 향나무가
앞으로도 아주 오랜동안 울릉도를 지켜 줄 것을 기원하며 2박 3일의‘울릉 유희’를 이것으로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