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행운목 꽃향기 이 정 연(기갑)
바람에 나르는 꽃가루가 분(粉)처럼 쌓인다는 해발 415m의 분적산(粉籍山) 능선 아래 광주광역시 남구 남서쪽 위치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곳은 바람이 잘 통하고 환기가 잘되어 에어컨이 없이도 여름에 견딜만하다. 매년 2~3월 이사 때면 관상용 식물들이 아파트 귀퉁이에 많이들 버려지고 있다. 옛 기억 때문인지 유독 시들어 있는 행운목(幸運木)에 걸음이 멈추고 눈길이 간다. 아내는 정성을 다해 키우면 옛날처럼 꽃을 피울 거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며 화분을 집으로 옮겨왔다. 서울에서 살면서
옹기(甕器)에 수경 재배하여 꽃을 피웠던 옛 경험을 살려 잎을 닦고, 분 갈이를 하고, 물을 주고, 아침에 만나자는 인사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인큐베이터 속의 미숙아 돌보듯 생기가 돌 때까지 바람과 햇빛이 적게 드는 발코니에 놓고 가꾸었다. 부실한 나무토막에 잎사귀가 3개가 나와 잎이 생기가 돌고 노란 잎이 짙은 녹색으로 변했다.
지난 4월에는 초록빛 잎 사이에 꽃망울이 뾰족이 올라와 꽃을 바라고 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 달라는 주문도 해본다. 세 줄기 중 좌측의 큰 줄기에서 하얗고 예쁜 꽃봉오리가 솟아 나 보란 듯이 자리를 잡아 간다. 인간과 식물의 교감 속에서 어우러지는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매일 꽃봉오리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향을 맡아 보기도 한다. 행운목은 야행성 식물인지 오후 6시만 되면 꽃이 만개하여 집안에 라벤더 향을 진하게 뿌린 것처럼 향이 가득 찬다. 아침 6시면 꽃봉오리를 오므리고 조용히 잠을 자듯 멈추는 신비로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20일 정도 꽃을 피운다고 하는데 더 오래 피울 수도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도 한다. 꽃은 계단식인 18개 봉오리로 이루어져 하나의 봉오리에 20~60개 정도 꽃망울로 이루어졌다. 꽃을 피우지 않은 줄기는 옆 가지에서 나오는 향과 꽃의 화사함을 즐기며 서로 조화로운 생식을 하는 것 같다. 잎사귀는 좋을세라 더 짙은 녹색을 띠며 더 돋보이게 한다.
죽마고우(竹馬故友)에게 꽃향기를 담은 사진을 함께 보내기도 한다. 모두의 생각과 관심은 다양하나 일치된 메시지는 ‘행운’이라는 단어다. 혹시 나에게 행운이 올까 하고 설레며 꽃망울에 눈을 떼지 못하고 꽃향기에 취해 보기도 한다. 어렵게 피우는 꽃을 두 번이나 피웠으니 어쩌면 행운목 꽃은 우리 부부의 마음의 꽃이기도 하다. 18개의 봉오리에서 720개 꽃망울의 향기가 오늘도 집안에 강하게 퍼져 있다. 20일 정도면 꽃이 시들고 진다니 자연의 조화는 나의 욕심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은 생전에 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다는데 2번 꽃을 피워본 사람은 행운이다.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항상 곁에서 피어났으면 하는 생각이다. 하얀 밥알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 아침에 오 무린 꽃봉오리와 저녁에 만개한 꽃봉오리를 찰칵찰칵 찍어 본다. 진한 향기 또한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기고 싶다. 행운목은 꽃보다 향기일까? 향기보다 행운일까?
행운목은 용설란과(학명 : Dracaena Fragrans)로 ‘행운목’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꽃을 좋아하는 전문가들은 ‘행운’의 의미를 담아 선물로 많이 주고받는 식물이다. 한국에서는 관상용으로 10cm~3m 이하인 수목으로 판매되지만 열대 자생지에서는 6m 이상으로 자란다고 한다. 나무토막에서 새순이 나와 자태를 갖추기 때문에 꽃 피우기는 매우 어렵다고 한다. 물의 흡수력이 빠른 식물이라 주 1회 습관적으로 물을 갈아 주어야 하며, 수경재배의 경우는 물을 오래 두면 썩을 수 있어 관찰을 잘해야 한다. 혹여 키우다 보면 잎이 누렇거나 힘이 없어 보이면 영양부족으로 비료를 주고, 수경재배는 액체 비료 몇 방울 떨어뜨려 주는 것도 방법이다. 행운목은 덥고 습한 환경을 좋아하나 건조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고 빛을 좋아하지만 강한 햇볕을 피하고 반그늘 정도의 차광을 하는 것도 좋다. 습도가 낮을 때에는 분무해 주고, 성장하는데 맞는 온도는 20~25℃이며 추위에도 강한 편이어서 12℃ 정도에서도 잘 견디어 낸다고 한다. 특히 잎에 무늬가 있는 종들은 추위에 좀 약한 편이어서 평균 15℃ 이상의 온도가 유지되어야 정상 색깔을 낼 수 있다고 한다. 유리그릇의 수경재배는 시원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 높은 건물이나 아파트에서 선호하는 식물이다. 특히 암모니아 제거 능력이 탁월하여 화장실에서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미국 NASA에서 공기정화 효과가 탁월한 식물로 인정되어 에코 플랜트(Echo-Plant) 11위에 선정된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후 조건이 잘 맞지 않고 토막 식재다 보니 뿌리가 튼튼하지 않아 꽃 피우기는 어려우나 기르는 데는 비교적 쉬운 편이다. 적절한 양의 물을 주고 온도만 잘 유지하면 잘 자라는 식물이다.
나는 20여 일을 동안 행운목 꽃에 심취했다가 오늘은 날씨가 쌀쌀하지만 청명한 하늘과 상쾌한 아침 공기에 일찍 분적산 능선의 둘레 길을 걸었다. 태양의 빛에 어리어 산 능선 숲은 더욱 강하게 다양한 색채와 빛을 내며 자신의 생존 조건을 방증하는 것 같다. 하얀 목련꽃, 노란 개나리, 연분홍 벚꽃, 하얀 연보랏빛 라일락, 강렬한 분홍빛 철쭉, 가로수 길을 좁쌀처럼 하얗게 물 드린 조팝나무 꽃, 야릇한 냄새를 풍기며 봄바람에 휘날리는 하얀 밤꽃, 뒤질세라 내가 왔노라 하며 노란송화가루가 날리는 소나무, 난 그저 시각적 아름다움에 취하고 만다. 뇌의 시각중추가 차지하는 비율이 40%가 넘어 당연하다고는 하지만 당연한 것에 머물러 꽃의 섬세한 모습을 놓치지는 않는지 생각하기도 한다.
꽃의 향기는 꽃이 전하는 분자의 확산이라고만 말한다면 느낌이 잘 살지 않는다.향은 뇌 속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유아기 때 어머니의 사랑과 젖 냄새처럼 말이다. 과거 속에 향은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향의 기억은 뇌만이 가지고 있는 해법이다. 꽃향기는 가까이하면 할수록 과거의 실체로 다가온다. 꽃에 코를 들이대는 이유이기도 하다. 향을 맡고 감촉을 느끼면서 외양의 화사한 색깔까지 느낀다면 비로소 꽃이라는 존재를 체험했다고 본다. 앞으로 어디에 가든 행운목이 있으면 나는 가까이 가서 과거의 꽃향기를 맡으려고 코를 들이댈 것이다. 잘 가꾸어 자라난 행운목이라는 식물이 내뿜는 향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 기억의 향은 그만큼 강렬한 것이다. 당신은 꽃 향기에 대한 어떤 기억을 하고 있는가?
추가 글 : 이 수필은 나의 생애 동안 꽃피우기 어려운 행운목 꽃을 두 번 꽃 피워 나의 마 음에서 우러나온 순수한 꽃에 대한 애정과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을 표현한 글이며, 연금공단 월간지에 수록된 수필입니다.
첫댓글 이박사님 오래만이네요. 마음에 와 닿는 "행운목 꽃향기" 수필 감상 잘 했습니다.
코로나와 찜통 무더위속에 늘 건강 잘 챙기시고 가족모두 강건 하사길 기원합니다^^
참 좋은글을 읽었습니다
남어지는 박광석님과 똑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