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산행과 구룡포 과메기 만찬으로 ‘기쁨 2배’
무서운 한파가 계속되는 연말연시이다. 올해는 너무 추워 해맞이 등산도 안 갔다. 2일 수원 일터로 복귀했다. 영하 15~25℃로 정말 뼛속까지 추운 날이다. 수도계량기 동파를 예방하기 위해 수도꼭지를 조금 틀어 물을 계속 흘려보낸다.
전종욱이로부터 등산을 가자는 연락에 OK 사인을 보냈다. 또 다른 친구인 유인성이가 ‘아이젠이 없는데...’ 라며 전화가 왔다. 수원과 대구 두 곳을 오가며 생활하는 나는 확인도 안 해보고 여벌이 있지 싶다고 했다.
등산 전날 장비 점검을 위해 찾아오니 있지 싶었던 여벌은 앗불사! 수원에 없었다. 저녁 8시인데 늦었더라도 전화를 했다. 아마도 지금시간에 대형마트나 동네 등산점에 가면 수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은 토요일 큰 딸아이의 예단을 보내는 날이다. 딸아이는 걱정이 되어 내게 예단편지와 예단 봉투를 써는지를 물어본다.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간략하게 정성을 담아 자필로 쓰고 예비신랑 신부에게 전하는 당부의 편지도 썼다. 그런데 예단.예단지를 각각 해야 한다며 한 장을 더해달라기에 사돈어른, 사부인께 라는 겉봉을 써주고 급하게 아파트를 나왔다.
사실 이런 날을 엄마가 대구에 있으니 아버지로서 딸아이의 심리적 걱정과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그러지 못해서 미안했다. 다행스럽게도 날씨는 예상외로 포근했으며 바람이 없었다.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친구는 아파트 건너편 유신고 주차장에서 막 도착했다. 바로 만나 전종욱이를 픽업하기 위해 명품도시를 지향하는 광교신도시로 향했다. 광교신도시는 아직도 공사가 한창이고 폭설로 눈이 치워지지 않아 미끄러운 상태였다.
종욱이가 버스정류장에 나와 있는 게 보였다. 새해 첫 만남이고 첫 산행이다. 오늘은 왕회장이라 불리는 방태조 고문이 고향인 포항에서 과메기를 가져와 산행 후 여러 명의 친구들이 과메기 맛을 보는 초대행사라고 한다.
수원에서 3명, 서울에서 최영우가 과천에서 방태조와 만나서 같이 온다고 했다. 육사를 나온 이만희는 군생활을 하며 눈이 지겹다며 집으로 온다고 한다. 또 합류하는 친구가 조공희, 우종협, 신동현, 오주한 등 총 10명이다.
약속장소인 백운저수지 입구 3거리에는 도착하니 버스가 바로 왔다. 버스를 타고 온 방태조와 최영우가 보인다.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고 차에 태워 백운산 아래까지 가서 차를 교회 주차장에 세웠다. 10시 20분경이다. 연거푸 내린 폭설과 강추위로 강산이 온통 하얗고 얼어붙었다.
이곳을 자주 다닌 전종욱과 방태조가 설명을 한다. 능안이라는 지명은 세종대왕의 4째왕자인 임영대군이 이곳을 세거지로 삼았으며 이 일대가 전주이씨 소유라고 하니 왕가의 재산은 아직도 대물림하고 있는가 보다. 세종은 18명의 왕자와 4명의 공주를 낳았다. 임영대군은 청송 심씨 소헌왕후 사이에 난 4째 왕자로 안평. 금성은 세조의 단종의 왕위찬탈에 반대했으나 임영대군은 세조에게 협조했으며 왕자끼리 싸우지 말고 백성을 해를 끼치지 않는 성품으로 ‘정간’공인 시호를 받았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총통과 화차개발에도 깊이 관여했으며 임영대군의 묘는 모락산 중턱에 있다고 한다.
2년 전에 광교산에서 백운산으로 하산할 때 으슥한 이곳에서 차안에서 뜨거운 정사 장면이 기억하며 한바탕 웃었다.
오늘이 小寒인데 의외로 날이 풀려서 덜 추웠다. 대한이 소한집에 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이 있듯 소한 추위는 예부터 유명하다. 임도를 따라 뽀드득뽀드득 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오르다가 아이젠을 신고 스틱을 펴서 설산을 오르니 바라재가 나왔다.
바라재에서 유인성이가 준비해온 떡과 전종욱이가 가지고온 유자차로 허기를 달랬다. 바라산인데 내가 생각하기엔 육마라밀로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를 구한다’는 산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사진기를 꺼내면 소풍파트너인 유인성은 알아서 폼을 잡는다. 바라산에 오르니 백운호수가 하얀설원으로 변하여 정적 속에 잠겨있다.
지척의 우담산, 건너의 청계산, 저 멀리 관악산 등이 눈을 뒤집어 씌고 자태를 뽐낸다. 친구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하산을 한다. 바라산은 望山, 鉢兒山이라고도 부른다. 바라산 정상에는 파라솔처럼 낮은 키의 소나무가 솔방울을 수없이 달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오르는 길에 만난 두 가지가 붙어서 동그란 모양을 한 소나무를 못잊어 다시 한번 더 살펴본다, 저 구멍 속으로 보면 세상을 구하는 지혜가 보일까? 나는 오늘 올해 무엇을 바라 볼 것인가? 무엇을 목표로 살아갈 것인가?
백운산을 오르는 길에는 방부목으로 계단을 만들어 등산로 이탈과 위험방지를하고 등산객들이 쉽게 오르도록 손잡이ㄹ르 만들었다. 전국의 유명산에는 등산객들을 위한 산림행정을 엿볼 수 있다. 아무튼 등산은 이제 국민스포츠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한국인이 오래 사는 이유는 산이 많고 산을 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일리가 있다.
백운산을 오르는 길에 갑자기 예쁜 개 한마리가 뛰어내려 온다. “왠 여우가 나타나느냐”란 나의 물음에 “여우는 바로 뒤에 있네”라고 말한다.
내 뒤에는 최영우가 따라온다. 그는 야시라는 별명을 고교시절부터 가졌는데 아마도 그것은 영우의 지혜와 민첩성이 뛰어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늘따라 내 휴대폰 벨이 자주 울린다. 자꾸 울리기에 갤럭시탭을 배낭에서 꺼내보니 메일을 보냈으니 기사를 확인해보라는 객원기자와 한국서예박물관장, 고령박씨 직강공파의 철산문중 회장이 온 전화이다.
그새 친구들은 저만치 앞서 간다. 까마귀 한 마리가 유연한 몸놀림으로 하늘을 유영한다. 흰눈이 덮혀 먹잇감을 찾을 수 없어 눈에 불을 켜고 먹이를 찾나 보다. 하늘에는 고도를 높혀 날으는 비행기가 일자로 하얀 구름 흔적을 만들고 지나간다.
백운산 정상에 도착하니 여름에 상주하던 막걸리 파는 아저씨는 없고, 많은 등산객들이 사진을 찍고 멀리 산들을 바라보며 정상 정복의 성취감과 상쾌한 공기에 도취된다. 2년전 보다는 위치를 알리는 의자와 표지판들이 잘 설치 되어있다.
사진을 단체로 찍고 정상 바로 아래의 원두막에서 유인성이 가져온 몇 종류의 떡을 나누어 먹으니 땀 흘린 뒤에 먹는 떡 맛이 끝내준다. 우리 옆의 등산객들도 삼삼오오 모여서 컵라면에 물을 부어서 먹고 막걸리 잔을 기울인다. 정상에서 먹는 저 술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안다. 막걸리는 산에서도 인기짱이다.
이제는 우리도 하산을 해야 한다. 인생도 산을 오르듯 뚜벅뚜벅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정상이고 정상에서 영원히 머무를 수 없는 게 인생살이 일 것 같다. 권불십년이고 화무십일홍이다. 전종욱이가 광교산 백운산의 다람쥐인 듯 손금 보듯 하산 길을 인도한다.
조금 내려가니 갈림길이 나왔다. 방태조가 이쪽으로 가자고 앞서 나간다. 그런데 자꾸만 오르막으로 오른다. 뭔가 이상하여 돌아올 것을 요청했으나 계속 오른다. 어쩔 수 없이 일행은 방태조 뒤를 따라 올랐다. 조금 오르니 백운산 오르는 길에 만났던 간이헬기장이다.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갑자기 하체에서 경련이 생기기 시작한다. 운동을 게을리 한 표시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다리를 주무르며 겨우 바라재까지 오니 일행이 기다리고 있다. 호산이란 내 아호가 부끄럽다.
야시는 마치 제 땅에 노닐 듯 걸음이 빠르고 눈밭에 개 뛰듯 사뿐사뿐 에너지가 넘친다. 아이젠을 신었던 임도에 도착하여 유인성과 방태조가 먼저 내려가서 차를 가져오겠다며 임도로 내려갔다. 내가 보기에는 판단 미스가 날게 뻔했다. 우린 계곡을 따라서 지름길로 하산을 하여 마을로 내려갔다. 다 내려오니 울타리를 쳐놓은 집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대자연 속에서 철조망 감옥에 갇힌 신세로 보였다.
모든 일은 만남에서 시작된다. 오늘 산행에서 방태조는 ‘희망40’ 블로그에 자주 간다고 했다. 카페지기는 67학번의 서울대 상대출신인데 주유천하를 하며 자유인으로 사는 모습이 무척 부러웠나 보다. 與民同樂이 통치자의 이상이듯 보통사람은 與友同樂이 로망이다.
친구 부부와 함께 세상을 동행하며 사는 인생은 멋진 일이다. 태조는 각 지역별로 여행하는 은행통장을 만들어 해마다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그는 여기저기를 다니며 카톡에 사진을 올린다. 좋은 풍광을 보면서 자연의 경외로움을 느끼고 겸손해지며 어딜 가나 人生到處有上手이고 三人行必有我師이다. 상대를 통해 배우고 깨닫는다.
총무인 종욱이는 오늘 왕 회장인 방태조 집으로 올 2군 과메기 애호가에게 전화를 걸어 중간점검을 한다. 약 10명의 고교동기들이 모인다고 귀띔을 한다.
처음 만났던 삼거리에 예상대로 우리가 먼저 도착했다. 앞으로 쏜살같이 사라지는 야시를 향해 종욱이는 “한꾼 가자~”라고 외친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 보는 경북 성주지방의 사투리이다. ‘같이 가자’는 말인데 얼릴때 듣던 나의 모태어가 무척이나 반갑다.
안양의 꿈마을 아파트 14층을 서너명이 찾아가니 범수 엄마가 따뜻하게 맞아준다. 거실에는 상을 2개 이어 붙여서 구룡포 특산품인 과메기 술안주 밑반찬이 차려져 있었다. 빈손으로 찾아간 우리 일행이 스스로 순간 미웠다. 빈손으로 찾는 실례를 한 것이다.
화장실에서 손과 얼굴을 씻고 나니 살 것 같았다. 동기 회장과 우종협 고문이 조할머니집에서 전주로 불그레 취해서 과일 한박스를 사오고 오주한이 도착하고 과메기 광으로 불리는 조공희, 신동현이 도착하여 총 10명이 급습을 하니 질펀한 우정이 쏟아진다.
방태조는 과메기 껍질을 숙달된 솜씨로 능숙하게 벗겨서 상에 올리고 우린 소주잔을 기울이며 “소취하 당취평”(소주에 취하면 하루가 즐겁고 당신에게 취하면 평생이 즐겁다)으로 건배사를 하고 새해 덕담을 주고받으며 주도를 닦았다. 소주 7병이 금새 바닥이 나고 종이팩 소주 2개와 막걸리 3병이 바닥을 드러냈다.
태조는 한해에 600마리인 30두릅 과메기를 포항에서 구매하여 친구들에게 베푼다하니 태조의 베풀고 나누는 멋진 삶의 자세가 귀감이 된다. 언젠가부터 우린 소모임도 집이 아닌 식당과 회관, 가든에서 하는 게 무슨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것은 아내의 편함과 일손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으나 친한 사람들도 진정한 삶의 진면목은 감춰지고 숨어버렸다. 그러면서 모두들 정에 메말라한다.
대구고 출신이라 생대구탕을 끓이고 아파트14층은 내가 대구고 14회라 그렇다나 ㅎㅎㅎ 아무튼 기분 좋을 때 아전인수식 멘트와 해석은 재치이고 자유이다. 한바탕 흥건한 웃음꽃을 피우고 과메기 만찬은 시작되었다.
몇몇 친구는 콩잎파리를 가져오라며 이집 밑반찬을 꿰고 있다. 콩잎파리 반찬은 외할머니가 만들어 주었던 입맛을 상기시켰으며, 바닷물에 간친 배추김치는 울진의 사장 어른을 생각나게 했다.
최영우는 방태조의 부인이 최씨라 태조가 장가를 잘 갔다고 최씨 자랑을 하니 과연 여우의 재치는 알아줘야 한다. 신동현이는 영우 부인이 신씨라 최영우가 장가를 잘 갔다고 우긴다. 나도 처음 먹어본 통째로 말린 과메기의 깊고 부드러운 맛이 산화된 일반 과메기 보다 좋은 것 같다. 조공희와 신동현은 명불허전이다. 과연 과메기광으로 과메기를 자르지도 말라며 먹어치운다.
하지만 모든 일에 끝낼 시간에 마칠 줄 아는 게 멋진 인격자의 모습이다. 재경 대구고 14회 동기회장 이만희의 신임 포부를 14일 듣기로 하고 서둘러 해산을 하고 아파트를 내려오니 아직 구름과자를 먹는 칭구들이 주섬주섬 참았던 니코틴을 보충하기에 바쁘다.
우린 고교시절을 숨어서 피운 경력으로 벌써 금연한 지가 10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백해무익한 마약 니코틴을 저렇게 사랑하다니 이 일을 어쩌나. ㅉㅉㅉ
수원에 도착하니 도로사정은 나빠 차는 정체되었는데 적당한 으슥한 곳에서 차를 세우라며 아우성이다. 모씨는 참았던 오줌을 갈기고 다시 차에 타면서 이제는 살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