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경상대학교 앞에서 국도 2호선으로 들어가면 남강댐 하류를 지나게 된다. 조금 더 가면 북천역이 나오고 다솔사역이 나온다. 지금 정확히는 기억 못하지만 이 부근에 ‘사평’이라는 이름의 마을 이정표가 서 있다. 거기에 역이 있었더라면 그 이름이 ‘사평역’이다. 그랬다면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라는 詩의 지점으로 오인했을 것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하동 가는 길 사평을 지나갈 때 그 시를 떠올리게 된다.
무설재-무제의 이틑 날 우리는 무제 주인장의 뒤를 따라 김양수 화백의 집으로 갔다. 화실, 아뜨리에(atelier)다. 화실이라로 부르건 아뜨리에라고 부르건 간에 느낌이 좋다. 시실(詩室), 시방(詩房)보다 제법 더 좋다.
아뜨리에로 가는 길 그 초입에 ‘동막골’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정확히 동막골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동막골로 기억하고 있다. 영화의 그 ‘동막골’이 생각나서 여긴 안성 동막골임을 내게 확인시키면서 들어갔다. 골짜기다. 하동 지리산 어느 골짜기 그 이상의 골짜기였다.
참나리, 땅나리, 말나리, 털중나리, 하늘 말나리, 솔나리 이 중 하나일 것이다. 화실엔 그리던 나리 그림이 몇 개 걸려 있었다. 담 안 두 평 땅엔 한 그루 나리가 서 있었고. 禪僧 같은 화백은 나리 이야기를 오래 했다. 들으면서 나는 그의 나리 이야기가 說法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리 들고 하는 간화(看話)라고 생각 했다. 그리 보니 화실은 동막골 이곳은 수행공간이었다. 參禪이라고 말하면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이 될 것이다만, 화백의 공간은 참선 도량이라는 생각을 했다. 참선, 지관참선(止觀參禪)? 묵조선(默照禪)? 간화선(看話禪)?
듣는 우리는 들으면서, 들은 후 코 잡고 눈 감고 止觀했다. 그렇다면 그날 우리는 모두 수행자였던 셈이다. 코 잡은 눈도 진지했고 눈 감은 입도 단정했다. 나리, 마음의 나리를 직립으로 또 가부좌로 그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말하는 이의 저 눈은 반쯤 뜬 눈? 감은 눈? 감아도 뜬거고 떠도 감은 겨? 화엄세계 지관법은 저러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려야 할 것은 ‘마음’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려야 하는데도 못 그리는 것은 또한 '마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을 그린다면 어떻게 그려야 할까. 내 마음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어떤 꼴로 형상화될까? 궁금하다. 모르겠다. 그림 공부 한다면 내 마음 그릴 수 있을까. 마음공부 한다면 내 마음을 알 수 있을까?
나리는 어느 꽃 그 이상의 華嚴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화백의 집을 나섰다.
첫댓글 오늘 김양수 화백의 답변...화엄, 좋은 세에~~~~~~~~~~~~~~~~~~~~~사앙이죠....랍디다. 그리고 우린 오늘 동그란 안경 이야기만 실컷 했습니다 ㅎㅎㅎㅎ
무설재를 돌아오니 주요 직책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주요 직책은 다 거친 터라 이만하면 직책으로서의 봉사는 할만큼 했다고 자부하고 내 자유를 잠시 누리고 있었는데, 뜻밖에 그 자유도 찰라였습니다. 한 한달전에 앞 서점에서 철 지난 업무수첩을 두권이나 들고 왔더라구요. 희안타 했는데 그 수첩 쓸 일이 생겨버린 것입니다. / 동마골 화실 이름이 뭘까요? 물론 이름을 붙여 더 의미로워지는 건 아닙니다만. / 화엄세계에서의 미는 찰라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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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염산방(寂拈山房)이라 알고 있습니다, "먹물 한 점 찍어 붓을 들면 그들이 웃을까" / 글, 그림 / 김양수
적염산방(寂拈山房)이라... 적멸보궁을 생각케 하는 이름입니다. 아무래도 그 분은 불자이신 것 같습니다. / sappho님, 먹물 한 점 찍어 붓을 들면 그들이 안 웃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