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과 다행
요즘은 과학이론들을 사용하여 모든 것은 인간의식이 창조한 것이라는 주장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 진화론, 유물론 등등 모든 주장들은 인간 의식의 산물이죠. 또한 관찰자 효과와 같은 과학이론들을 사용하여 모든 사물뿐 아니라 우주 자체도 인간 의식의 산물이라고까지 하는 것이죠. 철학적인 방식이 아니라 과학적인 방법으로 주장하고 있고 학술지에 싣거나 논문으로 발표하는 것이죠. 그런 주장 자체의 신빙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극단으로는 의식의 작용이라고 하는 모든 현상들이 물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죠. 소위 대다수의 주류 과학자들의 주장이죠. 과학이라는 것의 바탕이 유물적인 것이죠. 물리 실험실에서 확인되는 것만 인정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죠.
극단적인 정반대의 주장들이 있고 또 완충적인 주장들이 있어서 아예 그런 과학이론들에 거리를 두는 사람들이 있죠. 몰라도 현실을 사는 데는 지장 없다는 것이죠.
모든 주장들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 주장이 진실인 것처럼 인상적으로 강력하게 주장할지언정 궁극의 진리라고 못 박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관련된 모든 연구가 종결된 것은 아니므로 발전된 연구를 통해 더 나은 결과, 더 신빙성 이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죠.
애초에 모순된 입장이죠. 가변적인 것은 결코 진리가 될 수 없죠. 무애서 모든 것이 생겼다고 주장하듯이 인간들의 모든 주장들도 무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기초 없이 지은 집과 같아서 애초에 그런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죠. 종교나 철학, 정치뿐 아니라 학문의 어떤 영역도 그러한데 그들이 그것을 학문이라고 하기 때문이죠. 특히 과학이라고 하면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팽이는 역삼각형 형태라도 누군가 돌려주면 도는 동안에는 서 있을 수 있죠. 인간의 이론이나 주장들은 설령 그것이 과학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본성상 거짓이면 그것을 일시적으로 지탱하게 해주는 거짓의 영에 의해 버티다가 결국은 휘청거리다 쓰러지게 되죠.
과학이 무익하거나 거짓되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짓을 과학과 연계하여 주장하는 것들이 그러하다는 것이죠. 창조론이나 진화론, 유신론이나 무신론, 유심론이나 유물론 심지어 요즘은 고대 사상가들이나 경전들의 말들도 그렇게 하고 있죠. 선문답 같은 것도 과학적인 진실로 둔갑하려 하는 것입니다.
어떤 거짓된 발상들은 그의 의식에 창조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창조의식이 없는 정신에서 나온 모든 것들은 설령 그것이 과학이라 하더라도 거짓된 것이며 해로운 것이죠.
진리는 가변적인 것이 아니며 창조주에 의해 선언된 영원불변한 것이기 때문이니다. 성서의 사상은 수천 년간 불변이며 오늘 조간신문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할 정도로 실용성이 있으며 대표적인 예지(영속성 있는 불변의 지혜)적 사상으로 평가받고 있죠.
과학을 하더라도 그러한 창조의식이 있어야 애초에 그 성격이 거짓일 수밖에 없는 그런 발상자체를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 발상을 하고 그 뒤의 헛된 지속적인 연구도 하지 않게 되죠.
지금도 얼마나 허황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지구에서 생겼다고 하는 우연에 의해 생명체가 생기는 일이 다른 행성에서도 일어난 것인지를 확인하려는 그런 터무니없이 무모한 노력 같은 것 말이죠. 소위 과학이라는 것에서 하고 있는 미친 짓이죠. 대량학살 무기를 만드는 그런 무도한 의식을 가진 존재들이 그 정도의 어리석은 시도를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도 하지만요.
인간의식이 모든 것의 창조자이며 시공을 초월한 신적인 존재라는 식으로 과학을 사용하여 하는 주장들은 한편으로 그 반대의 극단이라 할 수 있죠. 과학자들 중에도 유몰론 과학자들도 있고 유심론 과학자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각자는 앞으로 그들의 이론들이 계속 발전할 것이라는 즉 가변적이라는 극히 자가당착적인 모순된 사족도 곁들이는 것입니다.
이처럼 처참한 거짓에 빠지지 않게 보호해 주는 말씀이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얼마나 다행입니까?
존재의 목적에 거슬러 그 정신기능을 해롭게 사용하지 않게 보호되고 있으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