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바 정부가 비상시기 선포하면서 국영농장을 협동조합으로 개편하는 농업개혁을 하면서 1993년에 생겨난 ‘기초단위 생산자조합(UBPC)’ 형태인 ‘알라마르’ 농장 |
필자는 지난 11월 13일부터 23일까지 10일간 캐나다를 경유해 쿠바를 다녀왔다. 이번 방문 목적은 사회주의 나라로만 알고 있는 쿠바에서 유기농업(생태친화적인 농업)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쿠바 정부와 연구기관 그리고 농가 사이에 어떤 유기적인 관계와 협력이 이루어지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UR 체결 이후 수입개방이 확대되고, 미국과 체결하려고 하는 한미FTA로 인해 어려워지는 우리나라의 농업의 현실 앞에서 어떠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방문했다. 특히 비슷한 정치적 상황과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북한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동포들의 식량난을 해결하고 보다 환경친화적인 방식의 농업과 발전전략을 수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이번 방문은 대청호 살리기 운동본부의 주관으로 진행되었고, 대청호 상류지역 농민과 대전ㆍ청주지역의 시민ㆍ여성ㆍ환경운동가, 소비자 단체 회원, 천안시의회 의원 등 21명과 동행했다.
쿠바의 유기농업의 추진과정과 현황
|
▲쿠바 최초 전문 농업연구소인 열대농업기초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으로부터 연구소의 역할과 쿠바의 유기농업, 도시농업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탐방 일행들 |
먼저 쿠바가 도시농업에 있어 유기농업을 채택한 배경에 대해서 열대농업기초연구소의 한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1989년 소련 등 동구라파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기 이전에 쿠바는 사탕수수, 담배, 커피 등만을 단일작물 중심으로 대량 생산하여 소련 연방에 팔고, 소련으로 부터는 석유나 비료, 농약을 값싸게 수입하였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되면서 이러한 것들이 들어오지 못함은 물론 미국의 경제봉쇄 강화로 인해 식량부족이 심각하였다. 그래서 1987년부터 이를 미리 예견했던지 연구소와 퇴역한 장성들을 중심으로 준비해 오던 유기농업을 도시중심으로 적극 시행하고 보급함으로써 1993년에 최악으로 치닫던 식량문제가 최근 어느 정도 해결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더욱이 과거 육류와 오염된 식품을 먹었던 것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몸에도 좋은 채소 중심의 친환경 농산물을 섭취함으로써 성인병도 예방하는 효과를 가져와 병원출입 환자수가 30% 줄어들고 영아사망률이 세계 2위로 낮아졌다.
더욱이 석유가 부족해 장거리 수송이 불가능함에 따라 도시에 집중해 살고 있는 쿠바 국민 80%의 먹을거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쿠바의 도시농업에 유기농업을 채택하였다. 현재 쿠바에서 유기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14% 정도이고, 매년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1993년부터 쿠바 정부가 유기농업을 강력 추진한 이래 10년 만에 이룬 대성과라고 하겠다. 그래서 쿠바를 세계적으로 ‘유기농업의 메카’로 부르고 있다. 참고로 한국의 유기농업은 채 1%도 되지 않는다.
쿠바 정부와 연구기관의 유기농업 지원
|
▲아바나 시내에 있는 원예 자재점 [컨설팅숍]. 시민농장과 자급텃밭을 지원하기 위해 길거리에 48개나 설치되어 있고, 초기엔 농업부가 직영했으나 농업기업이 독립채산제로 운영 중. |
쿠바에서 이렇게 단기간에 유기농업을 확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카스트로 정부가 농산물 거래에 일부 시장개혁을 하고, 개인농장과 협동조합 농가에게 국영농장을 저가 또는 무료로 임대(국영농장이 76%이상 차지하던 비중을 33%정도로 줄임)해 주는 대신 생산량의 80%를 정부에 의무적으로 매각해야 하고 정부는 이를 국민들에게 보급소를 통해 값싸게 공급하였다. 그래서 유기농산물을 대량으로 생산하게 함은 물론 국민들이 값싸게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다양한 농업 관련 연구소가 설립되고, 이 연구소들이 심도 있는 유기농 기술연구와 과학자들이 농민과의 협력 속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실용 기술지도, 농민들의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유기농 농사짓기가 어우러져 이룩한 결과였다.
우리가 방문한 열대농업기초연구소와 아바나시 농업산림기술자협회(ACTAF), 컨설팅샵은 기존 농가와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들에게 계속적인 유기농 정보와 기술을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었다.
|
▲쿠바의 유기농업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 연구하기 위해 만든 NPO(비영리기구)로서 아바나시 농업산림기술자협회(ACTAF)의 임원들. 이 단체에는 정부 소속의 연구소와 개인 농가, 단체 등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
특히 아바나시 농업산림기술자협회(ACTAF)는 유기농업을 연구하고 확산시키는 NPO(비영리기구)로서 정부 소속의 연구소와 개인 농가, 단체 등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고, 지속가능한 농업과 관련한 저서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었다.
우리가 만나본 농가들은 판매에는 전혀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다. 쿠바에서 도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식량을 유기농을 하는 도시농업에서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농가 수입은 1인당 매월 도시 노동자 수입(3백패소)보다 최소 3배에서 최고 5배의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유기농산물의 가격이 우리의 상식을 뒤엎고 저렴하였다.
|
▲아바나 시내에 위치한 농민시장. 쿠바 정부가 1994년 10월에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자유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되어 전국 각지에 설치된 직판장. 가격은 자율에 맡기더라도 농업부와 국내상업부가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다. |
특히 학교와 병원 등은 우선적으로 유기농산물을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건강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쿠바 정부의 정책이 부러웠다. 한편 쿠바가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을 실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임을 알아야 하겠다. 각 학교 교정에서도 텃밭가꾸기와 학생들의 농사 체험을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아바나 시내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직접 확인한 바 있다.
쿠바의 유기농업 사례
|
▲젊은 날에는 게릴라로서 지하활동을 하고, 카스트로와 함께 혁명전을 치룬 쿠바 국방군의 실력자 셔원 전 장군 |
쿠바는 도시농업을 해결하기 위해 ‘오가노포니코’ 방식을 많이 채택하였는데, 이는 콘크리트 벽돌과 돌, 합판, 스티로폼 등으로 둘레를 친 다음 그 한가운데에 지렁이 분변토와 유기물 퇴비를 넣고, 모종을 묘목장에서 가져와 심어 키우는 방식이다. 유기물 함량이 적은 토양의 특성을 가진 쿠바 상황에서, 특히 쓰레기매립지 등 토양이 척박한 도시 어디에서든지 사용할 수 방법으로, 이는 퇴역장군 셔원(중국계)씨가 아바나 상하이 농장을 만들어 처음 시도하였다. 이때 사용되는 지렁이 분변토는 소에서 나온 분뇨와 잔여 농산물 등을 모아 지렁이에 먹여 생산함으로써 축산폐수를 하천에 버리지 않고 재사용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또한 어떤 협동조합 농장은 작물에 해충이 덜 생기도록 주변에 기피식물을 재배하는 방법도 착안하고 환경에 무해한 생물농약도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배급소에 배급하는 농산물이 부족하여 암시장과 가격급등을 방지하기 위해 쿠바 정부가 농민시장 개장을 허용하였는데 이중 하나를 잠시 방문하기도 하였다. 아직도 쿠바의 유기농업이 더욱 확대되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아바나시 농업담당 공무원이 말했다. 이를 통해서 도시의 녹색화도 더욱 확대해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아바나 상하이 농장에서 생산하는 [지렁이 분변토] 생산지를 둘러보고 있는 탐방 일행들(좌). 아바나시 서부에 위치한 쿠바 최초의 도시 채소농장. 전혀 흙이 없는 도로가에서도 새롭게 농지를 만드는 쿠바의 독자적인 기술, [오가노포니코] 형태가 보인다(우). |
한국의 유기농업 확대를 위한 제언
|
▲아바나시 서부에 위치한 초등학교내에 있는 학생들의 농업 체험시설 |
같이 동행한 한국 유기농업 농민들은 “오히려 한국의 유기농업 기술이 앞서 있다. 하지만 우리 한국과는 달리 쿠바 정부가 적극 나서서 농민들이 유기농업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각종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어 부러울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쿠바의 유기농업 성공 사례를 통해서 볼때 한국의 유기농업 확대를 위한 대안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다.
먼저, 한국 정부는 유기농산물의 판매 확대를 위해 학교ㆍ관공서 등 대규모 급식에 우선 지급하도록 지원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직거래 물류유통망을 확대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더욱이 논농업직불금 확대와 함께 생물다양성 협약과 람사협약을 근거로 하여 친환경농산물 직불 보조금을 확대해야 하겠다.
둘째, 농지 임대차 보호법 개정과 토지공개념 실시 등 토지개혁과 시장개혁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생태계와 조화되는 방향으로 지역적 흙 살리기와 유기질 비료의 저가 및 무상 공급과 함께 각 지역에 토양연구소를 두어 토양보전 기능과 토양의 지역별 작물별 이용성을 연구 보급해야 한다.
넷째, 분권적 지방중심의 정책 추진과 지역순환농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즉 농민들과 협조체제를 잘 이루는 각종 연구소를 지역별로 육성하고 유기농업 정책, 농업기술, 유통, 그리고 생활환경 및 사회체제는 지역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다섯째, 전통농업 기술을 발굴하고 그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현대적 과학기술과 접목시켜야 한다. 즉 혼작, 간작, 그리고 윤작농업, 소(한우) 경운, 복합영농 등 그들의 전통농업 형태를 오늘날 실정에 맞게 분업화시키고 여러 연구소를 통해 천연물질을 활용한 방제연구, 천적연구, 퇴비개발, 비옥한 흙 개발 등 현대적 과학기술을 지역현장에 정착시켜야 한다.
|
▲쿠바 정부가 비상시기 선포하면서 국영농장을 협동조합으로 개편하는 농업개혁을 하면서 1993년에 생겨난 기초단위 생산자조합(UBPC) 형태인 알라마르 농장을 방문한 탐방 일행들 |
쿠바의 유기농업은 세계사적 흐름쿠바의 유기농업 확대 추진은 세계사적인 흐름에도 잘 부합하고 있다. 유엔의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위원회(WCED)가 1987년 제8차 위원회에서 채택한 ‘우리 공동의 미래’라는 공식 보고서의 내용 중 생태학적 자원순환체제로의 전환을 올바로 인식한 것이며, 국제 지속가능 농업협회(WSAA)나 국제 소비자기구(IOCU)가 제시한 ‘지속가능한 농업(생태학적 농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쿠바에서는 2년에 한번씩 ‘쿠바 유기농업 대회’를 열어 유기농업을 세계적으로 확대시키는 데도 기여를 하고 있는데 내년 4월에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쿠바의 유기농 현장을 돌아보면서, 쿠바가 유기농업을 통해 생산성 향상과 소득향상은 물론 생명의 순환시스템을 통해 자연생태계를 살리고 지역자원을 지속가능하게 최대한 활용하는 생태보전형 농업으로 발전시키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앞으로도 쿠바는 미국이 경제제제 조치를 철회한다 하다라도 계속적으로 유기농업을 확대 추진해 갈 것이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 그래서 ‘인류가 가야할 모범’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의 동포인 북한도 무분별하게 삼림벌채와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면서 농토를 확장하거나 많은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농업을 할 것이 아니라 비슷한 사회제도를 체택하고 있는 쿠바의 사례를 연구하고 도입해 농업의 활로를 찾아가길 희망한다. 북한 동포 돕기에 나서고 있는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들도 북한이 유기농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