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혼자 가는 길
김 익 하
“할아버지 혼자 오셨어요?”
햇잎에 맺힌 아침이슬 같은 명징한 목소리라도 귀 거슬리는 말토막 땜에 임재만은 눈살부터 찌푸렸다. 진심을 담고 다듬어낸 깍듯한 인사말도 듣는 사람 정황에 따라서 때론 칼끝이 되어 심장을 찌르거나 도끼날로 가슴 복판을 가격하듯 충격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솜상조회사 커다란 유리출입문을 여닫고 들어서자, 출입구 쪽 가까운 자리에 앉은 여직원이 안경알을 탐조등처럼 번들거리며 찾아든 용무는 자세히 묻지 않고 대뜸 누구랑 같이 왔느냐는 반문 투로 맞았다. 그게 듣기에 마땅찮을 뿐더러 적잖은 불쾌감까지 주기에 눈살부터 찌푸려졌던 거다. 임재만은 요즘 ‘혼자’라는 말을 하도 들다 보니 과민반응까지 나타낼 만큼 그 말에 심한 거부감을 드러내곤 했다. 그런 차제에 이곳 초면 인사마저 별로 다르지 않으니 부아가 돋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변에서 식솔이 모두 떠난 뒤 홀로 사는 처지에서 그만 소릴 듣는 게 지당한 데도 임재만은 그때마다 공연히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런 말을 즐겨 사용하는 상대편에선 지금 곁에 조력자나 동행자가 있느냐는 걱정스러운 물음이겠으나, 듣는 처지에선 주변 사람들을 원만히 감싸 안지 않고 모두 훌훌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심보가 딱하다는 듯 ‘그래, 이제 홀로 사니 편하고 넘쳐나게 행복하시우? 혼자 살아보니 그래 생각만큼 살맛이 나긴 납디까? 사람 사는 게 결코, 그렇지만 않다는 걸 이제 겨우 아시기나 하슈?’ 그런 깐죽거림으로 들려서 몹시 불편할 뿐 아니라 다분히 힐난조로 여겨져 비위마저 북북 긁혔다.
뿐 만인가. 손이 커서 내놓는 음식이 먹고 남을 만큼 푸짐하다고 소문난 다리 밑 손칼국수집 뚱뚱한 남도여자도 자주 드나들어 이제 얼굴이 웬만큼 익었을 텐데도 찾아들 때마다 어김없이 고개 들어 입버릇처럼 내뱉는 인사 투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할아버지 혼자니껴?”
건강 검진하러 병원접수창구 앞에 서면 접수원이 자라처럼 목을 옆으로 틀어 내밀고 채근하듯 또 그런 식으로 물어온다.
“왜 같이 오시지 않고 혼자 오셨어요?”
고속버스 매표원도 그냥 ‘한 장 드릴까요?’ 로 물어도 될 일을 굳이 사람 속마저 뒤집어놓을 작정한 듯 새삼 처지까지 확인하려 들었다.
“혼자세요?”
이따금 교대로 집으로 찾아온 경찰안전센터 순찰 순경들도 신문하듯 묻는 투마저 그런 범위에서 오십보백보였다.
“혼자 사세요?”
그렇게 염장질 놓고도 임재만 대답에는 아랑곳없이 휘적휘적 돌아가면서 뒷말을 굳이 남겨 부아를 부채질했다.
“할아버지, 일 있으면 꼭 일일구나 일일이로 전화를 하셔야 합니다.”
뇌졸중으로 깜박 정신마저 잃고 쓰러져도 그 일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마치 이 양반이 언제 죽으러나-그걸 확인하려고 업무수행용으로 뱉은 빈말임을 눈칠 채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러나 뒤끝은 화장실에서 뒷일을 보고 나온 엉덩이에 휴지가 낄 때처럼 기분이 더럽다. 심지어 홀로 사는 노인 돌보미 ‘남혜경’이란 명찰을 목에 건 구청 복지센터 여직원까지 초대면 자리인데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내처럼 생긴 겉모습과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겨우내 언 강을 녹여내듯 나긋나긋했고, 게다가 콧소리를 양념처럼 섞을 때면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이 덩달아 좋아져 젊어지기까지 했다. 그녀도 바쁠 땐 그런 목소리를 앞세워 전화로 물어온다.
“지금 혼자세요?”
주변에서 그에게 도움 주던 사람들은 끝내 그를 홀로 내버려 두면서 짜고나 하듯 처음 인사가 하나같이 마치 이름이나 부르듯 ‘혼자’냐고 어김없이 물어온다. 분명 그렇게 물어오는 사람들 면면을 보면 분명 가족과 함께 살 텐데 홀로 사는 사람에게 무슨 관심이 그리 많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예전 부부와 아니 여러 식솔과 살 때도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그들이다. 홀로 된 지금 재산이 많거나 신수가 훤하지도 않은데, 부쩍 관심까지 보이니 복잡 미묘하게 변화하는 인간 다면성은 인정하더라도 심리 밑바닥으로 흐르는 이런저런 감정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하게도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홀로 되었느냐고 묻기는커녕 관심도 보이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다.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 홀로 사는 게 이젠 너와 나만 아닌 세태의 한 유형으로 수용한 지도 오래된 데도 부르는 호칭은 화폐단위처럼 변함없었다. 오히려 풍속이 변하여 식솔들이 북적이는 가정을 보면 왜 그리 물 잦아든 웅덩이 올챙이처럼 뒤엉켜 아등바등 다투며 복잡하게 사느냐는 물음으로 그치지 않고, 그 집 아이 교육환경을 걱정하고 결혼과 출산도 염려하며 취업까지 내처 챙겨주는가 하면, 또 너른 데 홀로 사면 전월세가 하늘까지 치닫는데 그렇게 너르게만 살아서 세금이며 청소며 어찌할 거냐고 총칼을 앞세우고 달려들 기세로 무장된 논지로 공격해온다. 딱할 때 챙겨주지 않으면서도 관여할 데가 눈앞에 보이면 끝까지 관여하겠다는 의지로 이판사판 나선다.
임재만도 사주에 어떻게 나오는지는 몰라도 애당초 작정하고 홀로 살진 않았다. 그러나 실제 팔자소관은 운세를 풀어가는 형세가 아니라 외로 꼬인 새끼줄처럼 바로 풀어도 뒤꼬여 끝내는 감나무 끝가지에 남은 까치밥처럼 홀로 댕그라니 남은 외톨이로 변했다.
그런데 식솔들은 태어나 인연을 맺은 역순으로 임재만 곁에서 훌훌 떠나갔다. 셋째 놈이 제일 먼저 곁에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떠났다. 맞은편에서 달려든 차량에 택시를 타고 가다 당한 교통사고였다. 둘째는 여식인데 선교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떠나가 얼굴이 검게 윤나는 애들의 천진난만함에 매료되어 아예 현지에 눌러 앉았다. 그렇게 아예 소식마저 끊었으니 제 어미 배만 빌려 태어났을 뿐 끝내 잊은 자식이 되었다. 큰놈은 공사판으로 떠돌다가 제 회사를 차려 사업한다고 껍적대다 왕창 말아먹는 것도 모자라 빚더미까지 아비에게 들씌우고 달아나 여태까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같은 하늘 아래에 살면서도 알 길이 묘연했다. 주민등록번호로 조회하면 외딴섬에 들어간 종적까지 추적 가능하다는 세상에서 그랬다.
마지막으로 주변에서 떠나간 사람은 여편네였는데 가장 요란법석을 피우며 떠나가서 두 번 다시 입에다 올리기 싫을 만큼 이름만 들어도 몹쓸 꼬락서니가 떠올라 머리에서 쥐부터 났다. 여편네는 귀가 얇아서 이웃들 말에 기고만장 설치는 성정 탓인지 짬만 나면 고슴도치처럼 성깔머리를 일으켜 세워 대응했다.
“에이고 살림살이에 짓눌리다 보니 주접 들어서 그렇지 나도 한껏 다듬고 나서면 누가 쉰여덟으로 보겠나. 용모도 그렇지만 이만 몸매는 처녀애들도 부러워할 끼다.”
듣고 있자니 귀가 뚫린 게 야속했다. 그 말에 낚인 네 살이나 아래 되는 홀아비와 눈을 설렁설렁 맞추기 시작하더니 석 달 동안은 부부간의 맺은 정을 씻어내는 씻김굿이라도 하듯 칼부림까지 마다하며 뒤엉켜 싸우다 임재만의 진을 깡그리 빼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떠나갔다. 헤어지기에 앞서, 남편과 쌈질 끝에는 여흥이나 풀려는 듯 이웃 아낙들에게 치민 홧김에다 악감정까지 더해 같은 이불을 덮고 살던 여자가 어떻게 저리 돌변했는가 싶게 악랄하게 그도 입이 부어 아프도록 떠벌리며 앙앙거렸다.
들에서도 새는 박바가지라고 여편네 짓거리에 이웃 아낙들이 모이면 그걸 흉잡아 수상쩍은 음탕한 눈빛으로 낄낄대며 관음 본성을 만판 드러내느라 허리를 뒤틀었다.
“아이고 그 집 아저씨 몸 중요한 어딘가 고장이 난 가봐.”
“아, 고장은 무슨 놈의 고장. 자식을 셋까지 낳았다는데 그만하면 기계는 상품이겠지. 아니 시방 그건 누구 들으라는 빗댄 소리야?”
“이런 이 여편네 좀 보소. 배부르면 생각하는 게 꼭……. 누가 아랫도릴 탓했나? 나 참, 오늘 하루 동안 내가 환장할 일이다.”
“멀쩡한 남편 두고 이제 내려앉을 그 나이에 그렇게 다른 사내와 바람나고 싶었을까? 헤까닥 돌아버린 그 이유가 잠 못들 만큼 참으로 궁금하네.”
“사내 기계가 멀쩡한가, 안 한가는 몸을 섞은 둘만이 잘 알겠지?”
“또, 또 너 머리통에는 온통 그딴 생각뿐이니 머리카락이 빨리 세지. 먹은 나이를 버리지 못해 너도 평생 남의 아랫도리만 훑느라 고생깨나 죽도록 하겠구나. 쩝-.”
“할아버지, 어떻게 오셨나요?”
이런저런 일을 떠올리다 보니 찾아든 목적마저 잊고 멍해 있는 임재만에게 상조회사 여직원이 딴생각에 빠진 그의 의식을 일깨워 주었다. 그제야 나갔던 정신으로 되돌아 온 임재만이 가까스로 대꾸했다.
“어험, 내가 이리로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곳에서 장례 계약할 수 있다는 말만 듣고 찾아오긴 찾아왔는데 분명 그게 가능하긴 한가요?”
“아예 할아버지, 우리 회사에서는 그런 영업도 해요. 할아버지가 하실 거예요?”
안경알이 탐조등처럼 번들거리는 여직원 얼굴은 벽화 작업을 막 끝낸 골목 담벼락처럼 화사하게 활짝 펴졌다. 여직원 판단에서도 임재만이 확실한 고객으로 보였음이 분명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지금 계약하고 싶다오.”
“예, 할아버지 그러하세요. 제가 담당에게 모셔드리겠습니다. 자 이리로 오세요.”
여직원이 앞장서 임재만을 매부리코에 억실억실하게 생긴 사내 앞으로 안내했다. 사십 대여섯 된 듯 보이는데 의자가 꽉 찰 만큼 몸피가 한 곳도 죽은 데가 없게 보일 만큼 우람해서 출하를 앞둔 육돈肉豚같았다.
“강 부장님! 할아버지가 장례 계약하러 오셨대요.”
컴퓨터 화면에다 졸린 듯한 눈길을 틀어박았던 강 부장이란 작자가 얼굴을 들어 씨름 상대나 만난 표정으로 임재만의 아래위를 훑어봤다. 그러면서 자리에서 게으르게 일어나 옆에 놓인 탁자 앞 의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임재만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이쪽으로 앉으세요.”
강 부장은 계약서 양식서류를 들고 맞은편 의자에 엉덩이를 내렸다. 북극곰처럼 우람한 몸집의 사내가 앞에 앉으니 임재만은 마치 높고 너른 산, 지리산을 마주한 듯 위압감을 느꼈다. 그런데 강 부장도 예외 없이 한마디 툭 던져왔다.
“혼자십니까?”
“아, 홀로 사니 혼자서 이렇게 온 게 아니겠소?”
젊은이 앞이라 느긋한 생각을 하다가도 그 말만 들으면 가장 예민한 신체 부위를 건드리듯 짜증이 왈칵 밀려와 달려들어 멱살이라도 잡아 줴흔들고 싶었다. 그러나 소망한 목적을 이루려고 이곳에 온 이상 끓어올라 뒤집히려는 성정도 지그시 눌러 참아내야 어른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 거다. 아무리 산만한 젊은이라도 어른 값은 하고 싶었다.
“아 어르신, 장례 계약서는 꼭 홀로 계시는 분이 아니라도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자식들이 있는 부모님들도 요즘 혼자서도 자주 찾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쭈어 본 것이니 언짢게 여기지 마십시오. 어르신.”
“나는 홀몸이요. 그래서 내가 직접 계약서를 써야 하오.”
소리라도 악악이 내질러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젊은 사람 앞이라 마음을 다잡아 내려 앉히며 차분히 대답하려고 말까지 가다듬어 혼자 온 사연을 밝히고야 말았다.
“잘 판단하셨습니다, 어르신. 요즘 삼일장을 상조회사에다 맡기면 대략 화장 처리만 한다 해도 천오백만 원 이상이나 들어갑니다. 그런데 장례 계약서를 쓰면 백여만 원 미만이면, 아니 그보다 더 간소화하면 더 적은 비용으로 장례가 가능하도록 기획 개발한 상품이 우리 회사에만 있습니다.”
“나에게는 티끌만 한 연고도 남아 있질 않소. 또한, 모아 놓은 돈도 없을뿐더러 그저 생활하다 남은 푼돈이 내 전 재산이라오. 그러니 아주 간단히, 그도 남 보기 흉하지 않게. 아 그렇지, 남의 무서운 눈만 가리면서 저승으로 보내주면 된다오.”
세상에 태어났다가 응당 한번은 가야 할 그 길인데 마치 만고불멸 업적이나 남긴 듯 임종을 각 신문 부고란에다 큼직하게 때리고, 복도 저 끝까지 애도 화환을 세우려고 이곳으로 찾아 온 발걸음이 아니다. 그저 죽은 뒤 시신이 거적때기에 싸여 짐승 사체처럼 천덕꾸러기로 이리저리 쓰레기장으로 굴러다니는 그 험한 꼴만 면하려고 찾아왔을 뿐이고 또한, 그 일을 맡길 사람이 하나 없기에 죽은 뒤를 위탁하러 찾아왔을 따름이다.
“어르신 그러시면 이제부터 저와 상의하시면서 계약서를 찬찬히 작성하시도록 하세요. 아이들 수능시험처럼 뭐 그렇게 어려운 건 없습니다, 어르신. 제가 옆에서 하나하나 도와 드릴 테니까요.”
“흔히들 보험 계약서를 쓸 때처럼 나에게 불리한 사항을 깨알 같은 글자로 감추고 좋은 조건만 강냉이 튀기듯 펑 튀겨 얘기하진 않겠지요?”
미래 일을 선 계약하는 덴 미심쩍은 일이 한둘 아니다. 임재만은 보험회사와 상해보험에 가입한 적 있었는데,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 혜택을 받고자 할 때마다 계약 때 설명에 없던 이런저런 계약조항을 불쑥 들이대며 거절당했던 일상 관념에 밴 불신감도 있어, 강 부장 얼굴을 불신에 가득한 얼굴로 빤히 쳐다보았다. 그 눈길에 당황한 강 부장이 서둘러 말머리를 찾았다.
“참, 어르신도, 여긴 그런 데가 아닙니다. 평생 속으면서 사셨어요?”
“으음, 화장실 갈 때와 올 때 사정이 틀린 세상살이를 하도 살아와서 늘 그런 생각을 한다오. 그렇다면 다 작성하고 난 뒤도 마음에 들지 않음 조항은 고칠 수는 있는 기요?”
“아예, 그럼요. 도장 찍기까지는 열 번 백 번 모두 가능합니다. 우선 여기 계약서에다 인적사항부터 적으세요. 인적사항을 모두 적고 나서 장례 방법은 제가 설명하는 부분에다 동그라미를 치면 됩니다.”
강 부장은 장례 계약서 양식지를 임재만 앞으로 검정 볼펜과 같이 밀어 보냈다.
장례 계약서 양식지를 받아 든 임재만은 인적사항부터 바삐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상조회사와 장례 계약서 작성은 자식들이나 보호자, 또는 나중에 유족들이 쓰는 행위라는 세월을 살아왔다. 눈감으면 선산 어디에다 묻어 달라, 화장하여 늘 푸른 수목 아래 그도 큰 놈을 골라 묻어라, 이름난 절에다 모셔 때맞춰 제를 올려라, 세계여행을 자주 못 갔는데 바다에다 풀어 영혼이 자유롭게 떠돌게 해 달라, 그렇게 빽빽한 마음을 간절하게 유언한들 눈을 감은 뒤면 희망 사항으로 그칠 수도 있는 게, 자식들에게 부탁하는 사후 일이다. 사후 일은 어디까지나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식들 선택영역이고, 그들 몫이기에 문서로 적어 남겨도 초등학생 연습장 한 페이지만도 못하다.
그런데 임재만은 막상 자신 장례 계약서를 쓰고 있자니 염라대왕 앞에서 저세상으로 가려고 수능시험을 치르듯 야릇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젠 다양한 분야까지 업무혁신 바람이 불어 제 장례까지 스스로 챙겨 놓고 죽을 수 있다는 게 행인지 불행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정황의 결말은 앞날에 반드시 죽긴 죽을 거란 확신이다, 그 불확실한 사후를 불안한 눈빛으로 자식들이나 유족에게 맡긴 채 이런저런 눈치 볼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죽은 일마저 명확하게 챙기게 되었으니 사는 날까지 그럭저럭 살아가면 뒷걱정쯤 하지 않는 그것이 분명해서 좋긴 했다.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묘한 감정이 꾸역꾸역 일었다. 막상 장례 계약서를 쓰자니 죽는다는 일이 코앞에 닥쳤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장례 계약서를 채워 가던 임재만이 눈앞에서 지켜보는 강 부장에게 물었다.
“여긴 어떻게 적으면 되오?”
두꺼비 같은 손을 가진 강 부장의 통통하게 살이 쪄서 순대 같은 손가락이 더디게 다가와 서류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장례 참석자’라는 글자가 반듯하게 박혀 있었다.
“이곳에다 어르신 임종 자리에 반드시 초대할 사람이 있으시담 적으세요.”
임재만은 알겠다는 듯 망설이지 않고 볼펜 끝에다 힘을 주어 거침없이 써 나갔다. 여편네였던 박영자, 큰놈 임장식, 딸애 임춘애. 그리고 막내 임성식?. 임성식은 이미 죽었으므로 쓴들 소용없음을 알았다. 물끄러미 이름을 내려다보던 임재만은 ‘임장식, 임춘애’ 이름 위에다 볼펜으로 쭉쭉 서너 번 그어 아님을 표기했다. 그 자식들이 자기 임종 자리에 올 리 만무기에 임종 자리에 참석할 칸에서 지우는 게 마땅했다. 볼펜 글씨라 지우개로 지워낼 수 없기에 금을 긋고도 불안하여 그 위에다 xxx xxx 표시를 할 도리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참 골몰하던 끝에 ‘박영자’에서 ‘박’ 자까지만 금을 긋다가 멈추기를 잠깐, 결심한 듯 입술을 깨물며 내처 쭉쭉 내 그었다. 여편네였던 그녀도 이미 남의 여자가 되었으니 울음을 달고 쫓아와 관머리를 두들길 유족 자격마저 상실한 처지였다. 임재만은 꽉 움켜쥐었던 손가락 끝을 맥없이 풀었다. 손가락에 잡혔던 볼펜이 임무를 다한 듯 떨어져 책상 아래로 구르는 소리가 여느 때와 달리 신경을 긁었다.
막내놈 교통사고 보상금이 사글셋집에서 조금 너른 전셋집으로 옮기는 데 도움을 주었으나, 나머지 자식들은 쌀바가지가 선반에 오르내릴 만큼 보잘것없는 살림살이에서 벼룩 간을 알겨먹듯 야박하게 야금야금 갈겨갔다. 그러나 그만하고 마무리되었다면 누더기처럼 몸에 거치적거리는 고달픈 삶이라도 꿈쩍거려 살만했는데, 큰놈이 사업에 실패하자 거처는 반지하 셋방으로 바뀌었고, 집안 살림은 반쯤 거덜 나서 하루살이 생활이 끼니마저 버겁게 했다.
그런데 여편네는 유독 독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살 수 없다면서 떠나길 작심하고 보따리를 싸놓은 여자가 퍼렇게 내뻗친 독기로 무장한 채 아랫목에 뒤틀고 앉아서 욕지기를 입에 담아 중얼대다가 임재만이 눈앞에 보였다 하면 줄 울음을 악다구니와 뒤섞어 큰소리로 내뱉으며 그악스럽게 설쳐댔다.
“아이고오! 팔자도 이리 더러운 년 봤냐. 떠난다는 년에게 여비도 안 준다니 수전노 같은 놈. 고따위로 야박하게 굴면 어떤 년이 좋아할까. 이런 놈하고 삼십 년이나 내 좋다고 몸 비비고 살았으니 내가 미쳐도 보통 미친년이 아니지. 아이고오 분해 죽겄네. 엉, 엉, 어엉!”
툭하면 벌리는 짓이라 이제 제법 곡조마저 터득해서 쥐고 죄는 울음에 가락까지 얹어 밀당질했다.
“시방 뭔 소릴 하는 게야? 떠나는 데는 멀쩡한 두 다리만 있으면 되는 거지. 얼어 빠질 여비는 무슨 놈의 여비야.”
임재만은 대거리하고 싶지 않았으나 여비를 내놓으라는 소리에 그만 속에서 울화가 울컥 치밀어 버럭 괌을 냅다 질렀다. 여편네가 아니라 자신의 쓸개를 터뜨리는 화근 덩어리고 틈나면 눈으로 파고 드려는 ‘깔따귀’와 같이 귀찮게 사람 성정을 박박 긁어댔다. 여편네는 이미 집고양이 신분에서 벗어나 있었다. 바깥세상 근본 없이 떠도는 여느 수놈과 눈이 맞았으니 멋대로 돌아다니는 아무것이나 배만 맞으면 사는 들고양이 신분이었다. 들고양이는 소속감에 얽매이는 신분이 아니었다.
석 달간이나 되바라지고 암팡스러운 성깔 잔치를 벌여 악세다 보니 임재만은 땡볕으로 짓이겨져 무른 푸성귀같이 심신이 만신창 나 있었다. 그는 한시라도 일찍 발목까지 빠진 진창에서 벗어나 단 하룻밤이라도 발편잠을 자고 싶었다. 남들처럼 그렇게 맘 편하게 네 활개를 뻗고 말이다. 제 귀책사유로 이혼까지 하면서 여비 타령하는 여편네와 헤어지자면 어차피 몇 푼돈이라도 쥐여 주어야 할 텐데, 아무리 눈을 밝게 뜨고 집 안을 샅샅이 살펴봐도 땡전 한 푼 나올 건더기조차 없었다. 당장 눈앞에서 긴요하게 쓰이는 것들도 돈 가치로 따지자면 하나같이 허접스러울 뿐이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임재만은 반지하 셋방을 빼서 더 높은 지대 지하 셋방으로 옮겨가며 차액을 주기로 작심했다. 앞으로 홀로 살아야 할 처지일 텐데 지하방이고 뭐고 간에 방과 부엌과 화장실 하나씩만 있으면 자고 먹고 싸는 데는 불편하지 않을 성싶었다.
떠나는 여비를 움켜쥔 여편네는 해외여행 가려고 공항으로 행하는 여자처럼 환한 얼굴로 큰 가방을 시멘트 바닥에 금이 남도록 덜덜 끌며 눈앞에서 휑하니 사라졌다. 그러면서 고작 남겨놓고 간 작별 말씀이 아주 각별했다.
“나 없이 혼자서도 잘살아 보시오.”
찰거머리 같은 여편네가 떨어져 나가니 마음은 때 벗긴 유리문을 통하여 바깥세상 보듯 그저 시원하고 상쾌했다. 아니 편안하게 웃은 뒤면 마치 꽉 찬 방뇨 뒤처럼 그저 꼬리 창자까지 통째 시원했다. 그래, 어차피 홀몸으로 태어났으니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 살다 종국에는 혼자 가는 것이 본디대로 가는 모습이지, 임재만은 그런 체념을 가슴에 명패처럼 달고 여편네가 떠나간 뒤부터 지하 셋방에서 홀로 살아왔다. 기초 생활 수급자니 정부에서 쥐여 주는 몇 푼에다 폐지를 수집해 얻은 돈이 생활비 전부였지만, 모두 곁에서 떠났으니 뜯기는 데가 없어 혼자 살만했다. 이젠 슬하에 오가는 자식도 없을뿐더러 일이 나면 숨넘어가게 달려올 일가붙이도 없으니 기다림도 바람도 또한 없었다. 등 비빌 언덕이 없는 소는 맨땅에 넘어져 뒹굴면 가려운 데는 그럭저럭 긁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얽혔든 끈을 풀어놓으니 주변에 거치적거리는 게 없이 간편해져서 신변이 한결 자유롭고 편하기까지 했다.
임재만은 스스로 작성한 장례 계약서를 다시 살폈다. 나름 부지런히 적었는데 아직 채워야 할 칸이 여태 남아 있었다.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던 만큼 죽음 길을 챙겨놓는 일도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껏 적은 인적사항을 다시 한 번 소리 내지 않고 눈으로만 읽어봤다. 그것들이 그와 동행했던 삶의 흔적이고 이력이었다.
‘그래, 드디어 나는 죽을 준비하고 있다. 음 그렇지. 주변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며 가뜩이나 세상살이에 시간 쫓기는 그들을 끌어 모아 절대 낄낄대지 말고 큰소리로 웃지도 말며 가장 수심 찬 얼굴로 최상의 곡진한 조문 인사를 유족 귀에다 애틋이 전해주는 도덕적 예의까지 강요하지 않아서 부담 없이 얼마나 가벼운가. 그저 작정한 대로 편히 쉬자. 전생에서 지지리도 고단한 삶을 살았으니 이제 저세상에 가서는 최상류층 십 프로 안에 반드시 들어 전생에서 누리지 못한 것을 남에게 과시까지 하며 마음껏 누려야지 삶이 공평하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한편 저세상이 미심쩍은 일은 이 세상에서는 육신과 정신을 다 해도 살아가기에 힘이 부치도록 어렵게 살았는데, 육신마저 버리고 가서 정신만으로는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저승에서는 어려움을 당하면 몸으로도 때워 넘긴다는 말도 불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이 세상살이를 접고 더 편하라고 선택한 저세상인데, 죽은 뒤 덕담은 보험사기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필시 그렇다면 아주 고약한 말장난질로 봐도 무방하리라. 이래저래 따져보아도 죽은 자만 섧다는 생각이 내처 들긴 했다.
비상연락용 벨을 설치해 놓은 뒤 일주일에 한 번씩 들락거리는 남혜경 복지센터 여직원이 어르신에게 드릴 간절한 소망 하나가 있다고 정색한 채 여러 번 말했다. 홀로 된 뒤 처음, 타인 입에서 나온 부탁 말이라 그는 그것만은 어떠하든 들어줄 작정이었다. 그 순간은 멀리 간 딸보다 눈앞에 바투 앉아 있는, 쐐기벌레 털처럼 시커먼 눈썹이 붙은 그녀가 제 피붙이 같았다.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데 그녀 말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녀는 당뇨로 혈당이 높고 고혈압까지 겹쳤다면서 당장 술과 담배를 끊으라고 했다. 그 말이 간절한 소망이라니. 끊지 않으면 죽을 거라 야박하게 말하지 않고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상당히 위험하다’고 어두운 얼굴로 어른이 애한테 주의 주듯 에둘러 그러나 엄하게 일렀다. 그런데 엄포도 놓지 않고 그게 제 소원이라고 남혜경은 간절한 눈빛으로 매달렸다. 맑은 그 눈빛에 임재만의 마음이 아이스크림처럼 여지없이 녹아내려 고집을 꺾고 뜻에 따른다고 항복하고 말았다.
“자, 어르신 인적사항을 전부 적으셨으면 이제 저와 장례절차를 협의하셔야 합니다.”
느긋한 생각에 잠긴 임재만의 공상을 깨뜨리며 시건방지게 들리는 투로 강 부장이 인적사항만 적은 계약서를 집어 제 앞으로 돌려놓았다.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자면 지금부터 제가 묻는 말에 찬찬히 생각해 보시고 잘 대답하셔야 합니다. 어르신의 사후 일은 지금 합의한 대로 진행되니까요. 그리고 이것이 계약 금액과 직결되니 지금 형편을 곰곰이 참작한 뒤 분명하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강 부장 말이 워낙 신중하여 임재만은 경찰관 앞에서 문초에 자백을 강요당하듯 잔뜩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험설계사도 속임수를 쓸 때는 엄중한 목소리를 내리깔며 그런 연막작전을 펴는 수가 더러 있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러나 본인 의지를 단호하게 전할 필요는 있었다.
“알겠소. 무어든 물어보시오”
“우선 돌아가시면 부고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런 생각이시라면 연락처를 작성해 주시면 사후에 저희가 일일이 연락하여 영전에다 불러 세워드립니다. 물론 계약에 포함된 사항이고요.”
“아, 시방 누구 염장 지르는 게요? 아까 분명 내가 얘길 했잖여. 올 사람이 없다고! 나 혼자뿐이라고 처음부터 얘길 했는데도 또 그리 물어?”
임재만은 드잡이도 불사하겠다는 듯 성정을 날카롭게 드러냈다. 콧숨까지 쇅쇅 샜다. 죽을 때 자식들에게 알리기를 기피하는 세태로 변해가는 일부 계층에서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강 부장은 깜짝 놀라 왜 성질부터 내느냐고 맞서려다가 상대가 노인인지라 얼른 머리를 조아리며 언성마저 부드럽게 낮췄다.
“어르신 제가 잘못했습니다. 진정하세요. 서류를 순서에 따라 작성하다 보니 그랬습니다.”
“부고는 일없으니 하지 마시오.”
“예, 알겠습니다. 부고는 하지 않는다로 정리하겠습니다. 다음은 빈소를 차리시겠습니까?”
“빈소?! 하 참, 딱하네. 올 사람이 없는 빈소? 조문 올 사람이 있어야 혼도 기다릴 것이 아닌가, 이 사람아. 그건 암만 생각해도 열없는 짓이지. 아예 없애버리자고.”
“그럼 빈소를 차리지 않는다. 좋습니다, 어르신. 그리고 장례 기간은 며칠로 할까요?”
“장례 기간? 아, 좀 전에 말했잖여? 올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을 텐데 삼일장, 오일장이 죽은 사람에게 뭐에 필요해. 죽을 때 굳었던 피가 몸속에서 풀리면 끌어 묻어도 되니 그때 바로 화장하면 되잖아. 죽은 걸 며칠 둔다 해서 벌떡 살아날 일이 있지도 않을 텐데…….”
“어르신, 빨리 서두른다 해도 이틀은 주셔야 합니다. 화장 시간을 잡아야 하고 또 사망신고 절차도 밟아야 하니까요. 아침 일찍 돌아가신다면 이틀이 넉넉하지만, 저녁이면 우리가 일 처리에 바빠서 환장한다니까요.”
말인즉슨 죽을 때도 저녁나절보다 아침나절이 좋단다. 이를테면 죽을 바에는 반나절이라도 당겨서 죽어줘야 죽음을 치러내는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는 논지였다. 아이 사주에 좋다는 태시를 맞추려고 인위적으로 분만일을 수술칼 끝으로 조절하듯 죽음 길도 그런 원리가 작동되는 모양이다. 따져보면 말버릇은 고약하고 쾌심했으나 일리 있는 소리여서 나무랄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래 그러 혀. 그 깐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몸인데 오래 둔다고 돈 되겠어? 그러니 가장 짧은 거로 하자고. 그게 비용은 훨씬 적게 들 게 아니여?”
“그럼 이틀로 하겠습니다. 그러고 수의는 하시렵니까? 혹 집에서 미리 준비한 거라도 있으시담 그걸로 하셔도 됩니다.”
임재만은 왠지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부아가 슬그머니 머리를 치켜들었다. 여태 강 부장이 가슴 밑바닥을 긁어대는 소리만 골라가며 지껄이기 때문이다. 죽는 일을 계약하는 데도 말씨름까지 하다니 정작 머리 뚜껑이 열릴 일이다.
“아, 수의를 마련해 놓을 여편네가 곁에 있다면야 혼자 이런 계약서를 쓰겠어? 아이코 이거 갑자기 열 받네.”
“어르신 조금 진정하시고요. 어이 윤지수 씨! 여기 음료수 한 잔 가져와요.”
강 부장이 손에서 볼펜을 놓으며 임재만의 울화를 진정시키려고 여직원에게 서둘러 심부름을 시켰다. 거듭 화를 벌컥벌컥 내는 임재만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분위기도 조금 식힐 짬이 필요했던 거다.
“어르신 계약사항에 다 적어놓아야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 죽은 다음에 문제를 일으킬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런 걱정까지 하시오?”
“어르신은 모르시는 말씀인데 경찰관이 임석하면 계약 조건과 어긋난 사항이 있으면 저희는 사기죄로 입건됩니다.”
“허 그 참, 세상 참 우습구먼. 산 사람은 제대로 사는가 살피지도 않을 판세인데 죽은 사람까지 공권력이 나서서 챙기다니 그거 참으로 같잖구먼. 살아 있을 때는 모른 척하다가 죽은 다음에 제대로 죽었는가를 감시 감독하다니 이놈 정권은 능력도 좋아 늙은이까지 웃겨도 너무 웃겨.”
여직원이 오렌지 주스를 쟁반에다 받쳐와 식탁 위에다 조심스럽게 내려다 놓았다. 임재만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농밀하게 보이는 노랑 액체를 들어다 바싹 타들어 간 입에다 소방수消防水처럼 부어 넣었다. 주스를 마시자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처음으로 창자 밑바닥까지 시원함을 느꼈다.
“천천히 드시면서 말씀을 주십시오. 자신의 장례 계약서를 작성하시는 분들 심경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해놓는 게 저희 일이기도 합니다. 어르신, 그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수의를 마련해 놓지 않았다면 새로 하는 거로 하시겠습니까?”
“그걸 꼭 입고 가야 저승사자가 데리고 간다 하던가요?”
임재만은 여태 꽁해진 속이 풀어지지 않았는데 다시 급히 꽁해지려는 마음을 참아내며 심술궂게 어깃장까지 놓았다.
“아이 어르신도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승길은 전생에서 죽을죄를 진 사람도 버리지 않고 데리고 간다고 했는데, 어찌 걸친 의복을 탓하겠습니까? 한복도 깨끗이 빨아 입으면 가시는데, 문제 되겠습니까.”
“그려 그러 해여, 수의를 끌어당기며 큰소리로 통곡할 피붙이도 없는데 수의가 뭐에 필요해. 내가 입었던 한복을 깨끗하게 세탁해 놓을 거니 죽은 뒤 그걸로 입혀 줘. 당신 말이 맞는다면, 어디 저승문을 통과하는데 옷의 가치를 따질 텐가? 늘 몸에 걸치던 게 편안할 테지. 아마 이승에서 묻었던 온갖 잡스러웠던 때까지 깨끗이 빨아 입고 가면, 별 탈 없이, 아니 미련 없이 저승문은 통과할 것이여.”
“예, 알겠습니다. 수의는 입던 한복으로 하겠습니다. 그다음이 가장 중요한 일인데 장례를 치르는 방법입니다. 당연히 화장하시기를 원하시지요?”
“그건 당연한 일, 물으나 마나 한 일 아니오?”
“화장한 뒤 뼛가루를 어떻게 하실 겁니까? 봉안당奉安堂에다 산골장散骨葬으로 하시겠습니까?”
뼛가루 얘기가 나오자 임재만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잠시 대답을 멈추고 심호흡을 길게 한 번 뱉어냈다. 자신 죽음이 눈앞 현실로 당장 다가든 듯했다. 아니 흔히 봐왔던 그런 죽음 장면이 선연하게 떠올라 보였다. 봉안당도 그렇다. 찾을 사람이 없는데 앞으로 봉안당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봉안당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어. 산골장이라 허, 허. 그것도 좋지. 모질게 살았던 몸이라 한이 져서 흙에 묻힌 들 쉬이 썩겠는가. 아예 화장으로 때 묻은 육신을 털어내고 남은 뼈는 가루가 되도록 부셔 산이든 바다든 흩뿌려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듯 일시에 없어지는 게 좋지. 암 그게 아주 좋아. 내가 이제 이승에 뭐에 미련이 있다고…….”
임재만은 허허롭게 헛웃음을 날렸다. 자신의 뼛가루가 산이든 바다든 허공에 뿌려져 바람결에 날리며 허옇게 떨어지는 정경이 눈앞에 선연하게 보이듯 했다.
“어디에다 산골散骨 하길 원하십니까? 산으로 할까요, 바다로 할까요?”
협의가 진행되어갈수록 강 부장이 각박하게 여길 만큼 임재만의 대답을 정확하게 요구했다. 뼛가루를 뿌리는 일로 장례의식의 끝남을 알리듯 강 부장이 쥔 볼펜 위치가 계약서 끝으로 내려와 있었다.
“가만있자. 내 평생 해외는커녕 국내로도 여행이란 한 번도 가지 못했는데 바다가 낫겠지? 출렁출렁 이곳저곳으로 떠다니게. 암 그게 썩 좋고말고. 으음 마침 내가 태어난 곳이 동해 바닷가니 그곳이 좋겠네.”
임재만은 평생 걸어가고 싶었던 길을 마음 내키는 대로 떠나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생활에 여유라는 걸 느껴보기는커녕 누군가 쫓아오는 듯 가고 싶지 않았던 길만 쫓겨서 숨 가쁘게 줄행랑치듯 그렇게 허겁지겁 살다 보니 이렇게 세상 끝자락에 닿았다. 가길 소망했던 길이 있어도 눈앞에다 그리며 바라다보았을 뿐 평생 마음 내키는 대로 갈 수 없었다.
장례 계약서 작성은 두어 시간 만에 끝났다. 강 부장이 그것을 임재만 앞으로 내밀었다.
“어르신 한 번 확인해 보시고 마음에 안 든 부분이 있음 제게 얘기하십시오.”
“어련히 알아서 하지 않았겠소?”
“물론입니다. 제가 한 번 중요한 사항을 확인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략 추려보면 이렇습니다. 부고는 없다. 빈소는 차리지 않는다. 장례 기간은 이틀이다. 한복으로 수의로 한다. 화장하여 고향 앞바다에 산골한다. 모두 협의한 대로입니다. 어르신 의사에 반하지 않으시지요?”
“틀림은 없는 것 같소. 이제 남은 일은 계약금이 얼마인지 말씀하시오. 지장을 여기다 찍으면 되는 거요?”
“예 어르신. 그곳에다 찍으시면 됩니다. 백만 원을 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세한 것은 금방 우리 직원 윤지수 씨가 뽑아드리겠습니다. 어이 윤지수 씨! 경비를 계산해 어르신께 설명해 드려. 어르신 지금껏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끝났습니다. 이젠 저쪽 의자에서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강 부장은 할 일을 모두 끝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가 의자 가득 차게 내려앉았다. 채워져야 할 공간이 비로소 찬듯했다. 그러나 임재만은 할 일이 아직 하나 남아 있었다. 여생에 남은 단 하나의 일, 혼자서 죽는 일이 그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