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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영상 : https://youtu.be/fiIs-D2-WSk
제목 : 예수님을 본받는 믿음
본문 : 빌 3:17-21
날짜 : 2025. 3. 16 주일오전예배
저는 얼마 전 재밌는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부모와 어린 자녀가 어떻게 교감을 이루는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아빠가 TV를 보며 박수치며 환호하자 옆에 앉아있었던 어린 아들은 아빠의 모습을 쳐다보며 똑같이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하였습니다. 또 아빠가 큰 소리로 웃으면 옆에 있던 아이는 아빠를 보면 큰 소리로 따라 웃습니다.
그리고 다른 영상에서는 엄마가 아기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눕자 아기는 엄마의 머리에 머리를 대고 눕는 시늉을 합니다. 그리고 박수를 치면 아기는 엄마를 따라 박수를 칩니다.
이것을 보면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자신의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우며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를 본받으며 인생의 가치관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엄마 게와 아들 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 게가 똑바로 걷지 못하고 옆으로 걷자 엄마 게는 아들을 꾸중하며 똑바로 걸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들 게가 계속 옆으로 걷자 엄마게는 아들 게 앞에서 엄마를 따라서 똑바로 걸으라고 하며 직접 걷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 게도 똑바로 걷지 못하고 옆으로 걸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가 아무리 자식에게 똑바로 살라고 다그치고 교육시켜도 부모가 똑바로 살지 못하면 그 자녀들도 부모처럼 똑바로 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이 올바른 믿음 생활을 하지 못하면 새신자들도 올바른 믿음을 갖기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인도의 간디는 평소에 예수님을 가장 존경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간디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믿음을 본받지 않는 삶을 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분의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도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예수님에 대해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은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처형되어 무덤에 장사 되었던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세상 종교인들처럼 죽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시며 동행하시는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성도들처럼 믿음을 본받아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일평생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님을 본받아 살았던 것처럼 모든 성도들이 자신처럼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기 원하였습니다.
마 28: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랐던 모든 사도들과 제자들은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모든 성도들 또한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믿음의 근본은 바로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그런데 본문 1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여러 번 빌립보 성도들에게 권면을 하였고, 심지어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일부 성도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오히려 예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삶,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믿음은 결국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어떤 믿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믿음인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 탐욕을 숭배하는 믿음을 버리라.
본문을 보면 “그들의 신은 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육체적 욕망을 하나님처럼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절제하게 육체적 욕망을 추구하거나 폭식만을 생각하면서 육체의 정욕대로 사는 쾌락주의를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타락한 종교들이나 종교인들을 보면 가장 먼저 쾌락주의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믿음 안에서 참된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당시 로마사회는 육체적 욕망을 추구하는 퀘락주의가 성행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적으로도 문란했으며 하루 종일 온갖 별미를 먹으며 낙을 삼았습니다. 심지어는 더 많이 먹기 위해 약을 먹고 하수구에 토해내고 또 다시 음식을 먹는 행위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의 하수구의 물 색이 온통 녹색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육체적 욕망과 쾌락을 추구했던 로마는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지 않고 이러한 육체적 욕망과 쾌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입술로는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그들의 삶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들은 결국 마지막 때에 심판대 앞에 설 때에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2. 부끄러움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믿음을 버리라.
당시에는 일부 금욕주의 문화도 있었지만 쾌락을 추구하는 문화가 유행했습니다. 그래서 개방된 성문화도 유행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성행위의 모습을 그림이나 벽화에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동성애도 만연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육욕적인 생활을 인간의 자유 또는 권리로 생각하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러한 육욕적인 생활을 하면서 이것을 마치 자신의 특권인냥 자랑스러워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일부 국가들 중에서는 동생애를 합법화하며 동성결혼을 합법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해마다 퀴어축제를 통해 동성애축제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저들을 죄인 취급하고 적대시해서는 안 됩니다. 저들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며 당신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고 계십니다. 특히 성 정체성으로 고통받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인권은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부끄럽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나오는 모든 죄인들을 맞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병도 고쳐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면서도 그들의 죄를 용납하거나 묵인하지 않으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부끄러운 일을 행하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3. 땅의 일을 생각하는 믿음을 버리라.
본문 20절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시민권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세상 속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 속해있기 때문에 땅의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하늘의 시민권이 없기 때문에 땅의 일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땅의 일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재밌는 예화 중에 한 정교회 신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권력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주님, 우리에게 임재하소서. 그러나 지금 당장은 오시지 마시고 더 있다고 오십시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 늘 주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때에 주님 앞에 설 때 주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땅에 속해 살고 있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 늘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며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분의 삶을 본받지 않는다면 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1:26절에 보면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안디옥 사람들이 최소한 1년 동안 안디옥교회 성도들의 삶을 지켜보고 그들의 모습이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볼 때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할 만한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들의 행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삶을 사는 목회자나 성도들의 삶 또한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나의 믿음 또한 누군가에게 본이 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늘 그리스도 예수의 삶을 본받아 사는 성도들 그리고 누군가에게 믿음의 본이 되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