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역 새벽시간 하루종일 쓰고 편집하고 교정하고를 반복하다 겨우 1차 탈고를 마쳤다. 허기가 지고 어지럽다. 출판사를 나서니 한겨울 너무 늦은 시간 문을 연 식당이 안 보이다 막 문을 닫으려는 순대국집을 찾았다. 식사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순대국만 가능하다는 ㅠ 나는 순대국을 싫어한다. 왜 모르게 돈 내고 순대국을 먹어 본 적이 없는대 어쩔 수 없이 주문하고 먼저 나온 깍두기를 먹다 오래전 기억에 잠긴다.
25년전 충북 제천에 고모님이 제천역앞에서 순대국집 허드렛일을 하셨다. 서울서 기차를 타고 내리면 바로 앞에 일하시는 고모님을 뵙고 큰절을 올리고 내어 주시는 순대국을 먹었는대 식탁이 겨우 3개 사람으론 10여명이 앉으면 자리가 없는 곳에서 주인의 눈치를 보며 먹는 순대국은 고역이였다. 맛도 없는대 양도 많은 순대국을 다른 손님 때문에 허겁지겁 비우면 고모는 맛난 줄 알고 한 그릇 또 주셨다. 어른 주심 말 하심에 거역 못함으로 배운 난 눈치보며 또 먹고 밥값일랑 내려하면 택도 없이 밀려나와 한양서 오느라 고생했노라며 고모댁까지 택시타라시며 강제로 택시 태워 기사에게 만원짜리 돈까지 주고 먼저 보내셨다.
시골을 가려하면 서울에서 제천고모님을 먼저 뵙고 평창으로 가서 큰고모를 뵌 후 평창사는 막내와 큰어머니께 간다. 다시 강릉에 아버지와 형 3명을 보고 태백과 정선에 누나들을 보면 서울로 상경한다. 이 중 절대 1박을 해야 하는 곳이 제천고모와 큰어머님인대 누구라도 예외없이가 아니라 나만 그렇다. 12남매중 유일하게 친척을 찾아 뵙고 왕래하는 인간인지라 어른들이 각별하게 생각하고 사랑해 주신다.
제천고모님은 세상에 친정조카는 나 하나라 말씀하셨다. 친자식보다 애절하게 아끼시는 그 마음으로 순대국을 먹였으리라..어느 해 순대국이 너무 싫어 고모ㅇㅔ게 안들리고 바로 고모댁을 들어갔다. 저녘 퇴근무렵 정류장에서 마중하다 뵌 고모에게 큰절하고 일어선 후 평소라면 끌어 안고 우시던 고모는 말없이 집으로 향하셨다. 혹시는 역시였고 역전 순대국집을 거치지않음에 서운함이셨다.
고모댁엔 괴팍하고 약주 좋아라하시는 고모부가 밤 새 나와 노래하며 날을 샌다. 아침에야 주무시는 고모부를 뒤로하고 일 가시는 고모와 길을 함께 나서며 고모를 꼬옥 안아 드렸다. 「고모 미안 다시는 안 그럴께」 150도 안되는 키에 여린 몸을 지닌 그래도 너무 아름다운 고모는 내 품에 안겨 어제가 서운했다며 펑펑우셨다. 아무 말없이 10여분을 같이 울다 이젠 혜어질 시간 서로 계산을한다. 나는 고모에게 용돈을 드리고 고모는 내게 우동이라도 사먹으라고 차비를 준다. 이어 고모는 큰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닭사라고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수육사라고 또 돈을 주신다. 이 계산은 아직도 여전하다.
3년후 순대국집을 그만 두신 후 갈비집으로 옮기신 고모에게 성인이 된 나는 그 날 순대국집을 안 간 사연을 말하였다. 맛없이 눈치보며 10여번을 순대국 먹었을 조카가 안쓰러워 고모 또한 미안했다면서 툭하면 아는 사람들 찾아와 제대로 일 안한다며 구박 많았다고 하시며 또 펑펑 우리는 울었다. 갈비집주인은 종업원인 고모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며 살갑게 대하셨고 돼지갈비 먹겠다는 내게 굳이 소갈비를 내주시며 고모와 시간 나누라는 배려까지 해주셨다. 어느 해 추석 3일전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처음 같이 간 고모가게에 주인은 오늘 쉬시라고 10만원을 쥐어 주시며 우리를 내보냈다. 다음 해 설날 나는 그 주인부부에게 감사의 편지와 더블어 선물을 했고 그 후 명절마다 그리했다.
이젠 80줄에 고모는 거동도 불편하고 일하기 힘드심에 늘 집에만 계신다. 고모도 나도 순대국은 안 먹는다. 눈 앞에 순대국은 식었고 김치에 밥만 먹고 자리를 떴다. 고모가 참 그리운 새벽이다. 왜 모르게 눈물난다.
첫댓글어렷을때 먹던 순대국은 정말 맛있었는데요. 요즘 순대국은 별로 맛있는줄 모르겠네요. 내 입맛이 변한건지? 순대국 맛이 변한건지 모르겠네요. 전 후자라고 확신합니다. 그때는 완전 수제 순대국이었습니다. 순대도 직접 만들었구요. 순대국에 순대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요즘 순대국은 순대도 별로 보이지도않고 공장에서 만든것같군요. 정말 어렷을때 먹던 그 순대국이 그립습니다.
올빼미라서 밤에 잘 안잡니다. ㅎㅎ. 대신 아침잠이 많은게 문제지요. 못사는 처지에 돈버는데 지장이 많네요. 전 오히려 간을 잘못먹습니다. 퍽퍽해서요. 다른 내장도 별로 안좋아하구요. 순대가 먹기는 제일 좋은것같더군요. 다음이 머리고기..곱창은 별로 안좋아합니다. 왕십리 곱창볶음은 좋아합니다만.
97년말경 큰집에 셋째형 사촌형님이죠. 그 당시 돈으로 6천만원을 사기 당했답니다. 전 집안이 발칵 뒤집혔는대 저만 당한 건 아니지만 큰어머님은 지금까지도 그 미안함을 말로 다 표현 못하십니다. 12남매지만 너는 너 나는 나로 사는 형제도 5명이나 되고 아버지는 젊은 날 무수한 바람으로 참 많이 힘들었지요. 허나 사람이 어찌 미원만하고 살 수 있나요. 바람이 가는대로 그렇게 다독이고 이해하며 살아야지요. 님의 친척간에도 봄날을 기원해봅니다.
첫댓글 어렷을때 먹던 순대국은 정말 맛있었는데요. 요즘 순대국은 별로 맛있는줄 모르겠네요. 내 입맛이 변한건지? 순대국 맛이 변한건지 모르겠네요. 전 후자라고 확신합니다. 그때는 완전 수제 순대국이었습니다. 순대도 직접 만들었구요. 순대국에 순대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요즘 순대국은 순대도 별로 보이지도않고 공장에서 만든것같군요. 정말 어렷을때 먹던 그 순대국이 그립습니다.
아이구 벌써 댓글이
안 주무신건지 일찍 기침하신건지
거리에 파는 순대를 못먹어요
물론 수제도 안 먹는대 딱 한가지 간은 먹어요
저 닮아 아들도 간만 먹어요
올빼미라서 밤에 잘 안잡니다. ㅎㅎ. 대신 아침잠이 많은게 문제지요. 못사는 처지에 돈버는데 지장이 많네요. 전 오히려 간을 잘못먹습니다. 퍽퍽해서요. 다른 내장도 별로 안좋아하구요. 순대가 먹기는 제일 좋은것같더군요. 다음이 머리고기..곱창은 별로 안좋아합니다. 왕십리 곱창볶음은 좋아합니다만.
아하! 오늘 날씨가 괴팍하다하니 안전운전하시길..
일찍이부터 사뭇다른 철?이 드셨수~~
언제한번 아바이순대함 드십시다용~~^^
철만 ... 비타민이 매우 부족하던 시절!!
저 또한 과거 안좋았던 어린시절의 기억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분노보다는 아쉬움이되어 눈물짓게하는군요..
새삼 아련한 추억속에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글 잘읽었습니다...
토닥 토닥~~~
저에게 친척이란 모두가 평생원수들이라 그런 추억을 가진 님이 부럽군요 지금도 단1분1초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분들이죠 저한테는 어린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질 않아서 지금까지도...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자식을 키우면서부턴 더더욱...
97년말경 큰집에 셋째형 사촌형님이죠. 그 당시 돈으로 6천만원을 사기 당했답니다. 전 집안이 발칵 뒤집혔는대 저만 당한 건 아니지만 큰어머님은 지금까지도 그 미안함을 말로 다 표현 못하십니다. 12남매지만 너는 너 나는 나로 사는 형제도 5명이나 되고 아버지는 젊은 날 무수한 바람으로 참 많이 힘들었지요. 허나 사람이 어찌 미원만하고 살 수 있나요. 바람이 가는대로 그렇게 다독이고 이해하며 살아야지요. 님의 친척간에도 봄날을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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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울었져?~
사랑해요~~
역쉬 글쟁이 글이라 틀려 잘보앗습니다...^^
별 말씀을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병천순대를 맛보셨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텐데....
병천 아바이 다들 맛나다고들 하는대...
아린 기억은 어쩔 수 없는지라...